# 91
꿈속 주식의 신이 태범에게 준 깨달음은 단 한마디로 표현이 가능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첫날 꿈에서 이 말을 들은 태범은 그런가보다 싶어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이틀 뒤 또 다시 등장한 주식의 신의 말에 태범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주식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흡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닥치는 데로 머리에 집어넣었다.
폰 노이만의 암기력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들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정보의 결과가 충돌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며 선택의 장애를 일으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보와 생각은 자칫 주관을 잃어버리고 정보에 빠져 본인을 속이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는 요즘 말하는 정보의 홍수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태범은 오죽하겠으면 단 한 번 바라봄으로 모든 걸 기억하니 말이다.
‘그래, 이제 새 정보보다는 기존의 정보를 다듬어 보자!’
주식의 신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 태범은 정보의 습득보다는 잔가지 치기에 시간을 사용했다.
이미 머릿속 정보는 포화 상태에 있었고 쓸모없는 정보는 제거, 수정해야만 했다.
태범은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기 보다는 기존의 정보를 가지고 정리에 나섰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든가 노트위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적어가며 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잔가지를 치고 나니 오히려 정보는 불순물 없이 꼭 필요한 것만 남게 되었고 이는 한층 더 정확한 분석과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주식의 변화에 깔끔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태범은 오늘 하루 4%의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꽤 놀라겠지?’
태범은 악플러인 남자가 자신의 수익률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태도를 보이던 그가 어떤 충격을 받을지 감정이입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타타닥.
태범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글을 마치는 마지막 말에는 도발 섞인 멘트를 적었다.
물론 말에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이는 누가 봐도 남자에 대한 도발이었다.
[쫓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 와! 4%라니 내기 끝나면 어떤 식으로 투자했는지 정보 공유 가능한가요?
└ 이분 패기 보소. 처음에는 그냥 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역전하네요.
└ 제발 정보 공유 좀 해주세요.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 게임 끝난 것 같은데요? 그냥 이쯤에서 끝내고 투자 기법 좀 공유해주시면 안 될까요?
회원들은 태범의 능력과 더불어 쇼맨십에 열광했다.
게다가 연이은 수익률을 보자니 회원들의 눈은 완전히 뒤집혔다. 댓글과 쪽지에는 하나같이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알려주고 싶어도 쉽게 알려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식 상황에 대응해야만 하는데 이는 간단한 공식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숫자를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과 흐름을 읽는 감도 필요했다.
386컴퓨터에 최신 3D게임을 넣는다고 돌아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태범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에 빠져 잠시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게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을 확인하던 중, 태범은 뜻밖의 댓글을 발견했다. 바로 내기 상대인 남자의 댓글이었다.
그는 태범의 도발에 걸려들었고, 댓글을 달고 말았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좋아하지 마시죠?]
댓글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분명 문장에는 당당함이 느껴지지만 이상하게도 최후의 발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린 꼬맹이가 화가나 싸우자며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 님, 이미 끝났습니다.
└ 누가 봐도 끝났는데요? 마지막 도박이라도 하시려나.
└ 그만 저희 카페에서 나가주시죠.
안타깝게도 남자에 대한 회원들의 민심은 모두 돌아섰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승리를 점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남자를 욕하고 있다.
참,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정도로 너무도 쉽게 움직였다.
‘이제 슬슬 내일을 준비해볼까?’
원래라면 침대에 한 번쯤 벌러덩 누워 중력에 짓눌린 척추를 펴줄 만도 한데 태범은 꿋꿋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일을 위한 주식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주도권을 태범에게 돌아왔으나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됐다.
주가는 상한가로 하루 최대 30%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만약 남자가 우연치 않게 급등주에 올라타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지 말이다.
태범은 끝날 때까지 만은 온 신경을 이번 내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은 건 단 하루다.
* * *
5일 차.
꿈에서 나왔던 주식의 신이 된 기분이었다.
태범에게 차트의 흐름을 보는 꿰뚫어 보는 혜안이 생겼다.
물론 본인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허풍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렌버핏과 폰 노이만이 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상황이었다.
태범에게 있어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현실이었다.
‘아이고 개미들 곡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태범은 한 타임 빠르게 사람들의 심리를 예측할 수 있었다.
주식의 차트는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기보다는 사실상 심리 측정기에 가까웠다.
마치 심장 박동을 나타내는 그래프처럼 차트 위의 선이 위로 향하면 사람들은 기대감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아래로 향하면 허탈감과 좌절에 심장박동수가 느려지더니 결국 멈춰 죽고 만다.
가치 투자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단기 투자는 차라리 투자라기보다는 심리 게임에 가까웠다.
그렇게 태범은 사람들의 심리를 예측해 가며 심리 게임의 우승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끝이다! 으아!”
시장이 닫히고 드디어 내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각자 게시판에 오늘의 수익률을 올리며 담판을 짓는 일만 남았다.
‘설마 급등주를 탄 건 아니겠지?’
방금 전까지 괜찮았던 태범의 심장은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남자의 게시물이 올라올 시간이 됐는데 아직 알림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날이다 보니 누가 먼저 올릴지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승패는 결정 났긴 했으나 남의 것을 먼저 봐야만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겁먹었구나.’
항상 먼저 올리던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이미 자유 게시판에는 왜 글이 결과가 안 올라 오냐며 회원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지쳐 태범은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어차피 먼저 올린다고 결과가 바뀔 것도 아니다. 태범은 게시판에 본인의 수익률을 올렸다.
+4.7%
이것이 오늘 태범이 만들어낸 수익률이었다.
1일 차부터 시작해 복리로 따지자면 지금껏 엄청난 수치의 수익을 올린 것이었다.
└ 말도 안 돼!! 또 수익이라고?
└ 제발 투자 방법 좀 알려주세요. 불쌍한 저희를 좀 구제해주세요.
└ 쪽지 좀 확인해주세요.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연이은 미친 수익률에 회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태범의 능력에 빌붙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태범이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어서 남자의 거래 내역이 올라왔다.
“게임 끝!”
태범은 모니터에 나타난 남자의 수익률을 보자 손을 불끈 쥐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무리수를 뒀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대변하듯 그는 도박을 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단타를 함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단타를 주 종목으로 하는 사람치고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안웅 제약에서 해외 계약과 관련된 호재가 뜰 거라는 소문이 금융권에서 돌았었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었고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찌라시 같은 수준에 불과했으니 태범은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바보같이 이곳에 손을 대고 만 것이다. 물론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했겠지만 그래도 투자자로서 별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찌라시가 돌며 잠깐 상승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안웅 제약의 주가는 금세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그것도 모자라 하락세를 보이고 말았다.
남자의 수익률은 -1.2%
승리를 잡기 위해 마지막 발버둥 올인의 결과였다.
남자의 수익률을 확인한 태범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약속대로 사과문만 받으면 모든 사건은 끝이 나는 것이다.
“끝난 거 맞죠?”
“네, 제가 졌습니다.”
“그럼 약속대로 사과문 올리셨으면 합니다. 뭐가 됐든 무조건 그쪽 잘못이고 사과를 하셔야 하는 거 알죠?”
“네.”
남자는 통화 내내 단답으로 본인의 심정을 표현했다.
악플을 쓸 때는 그렇게 장문으로 별의별 소리를 다 하더니 이제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처럼 힘겹게 입을 떼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얼마 있지 않아 사과문이 올라왔다.
[이번 사건 물의를 일으킨 것에 정말 죄송합니다.
저 또한 투자자입니다. 단기 투자에 포지션을 잡고 있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해서 가치투자를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왜 이 카페에 방문했겠습니까? 저 역시 다른 투자방법에 관심이 있었고 혹시나 얻어갈 정보가 있을까 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글을 둘러보던 중 강버핏님의 ‘혁신 기업 가치 투자 시 고려할 사항’ 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이 제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답답한 마음에 과격한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강버핏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찌 됐건 제가 진 것은 인정합니다.
……앞으로 하실 투자 자문 사업은 잘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 투자 자문이라고요? 거기가 어디죠?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 헐. 강버핏님 투자 자문사였네요. 어쩐지 이쪽 계통에 일하는 사람 갔더라고요.
└ 제발 쪽지 좀 확인해 주세요!!!
└ 이거 혹시 두 사람이 짜고 한 거 아니야?
남자의 사과글로 사건을 마무리가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의 끝부분에는 또 다른 흥미를 불어 올 만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회원들은 태범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내가 여기서 공개해봤자, 잘못하면 욕먹을 것 같은데…….’
태범은 이를 기회 삼아 잠재적 고객을 늘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나서다가는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자신이 성공한 투자자라며 부를 과시하고 다른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사기를 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쓰레기 비상장주식을 팔던가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이용해 주가 조작을 하는 등 자문사라는 이름으로 나서다가는 자칫 사기꾼으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태범은 일단 조만간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어떤 사람인가, 얼마 있지 않아 태범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태범이 카페에 가입했던 이메일 주소를 통해 다른 정보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 결과 세상에 신기한 일이에 출현했던 그림쟁이 강태범 그리고 회계사 강태범. 이 모든 정보들이 카페 회원들의 눈과 귓속으로 전해졌다.
이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저 태범을 노리던 몇 기업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번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각 커뮤니티에 전해지며 대중들이 태범의 투자 능력에 눈을 뜬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기꾼과는 다르게 다양하고 신뢰할만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태범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은 하루 종일 불나도록 울리고 메일함은 폭탄 메일을 받고 이미 포화상태였다.
사업을 시작도 하기 전 태범에게는 잠재적 고객들이 어마하게 생긴 셈이었다. 혼자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이럴 때 또 다시 느껴지는 게 몸뚱어리가 한 개라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능력을 주체하지 못해 모든 일에 손을 댔던 다빈치. 그 역시 하나 뿐인 몸뚱어리에 한탄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