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90화 (90/188)

# 90

연이은 수익률을 자랑한 남자의 거래 내역을 보고 자극이 되었다. 어쩌면 댓글에 달린 것처럼 짧은 기간의 투자 대결은 운에 치중될 수도 있는 상황, 태범은 더욱 확실히 해야만 했다.

‘그래, 이번 주 만큼은 주식에 미쳐보자.’

능력만 믿고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능력이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운’이었으니 어쩌면 실패에 대한 각오는 하고 있어야만 했다.

확신과 자신감은 행동에 과감함을 줄 수는 있으나 자칫 방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좋든, 나쁘든 어떤 감정이든 과도하게 됐을 때 그 부작용을 염두에 둬야만 했다.

그렇다고 내기를 제안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약간 자신감이 주춤했긴 했으나 어쨌거나 태범은 자신이 이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유부리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 * *

3일 차, 태범은 전날 시간을 더 투자하며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무기를 빠르게 무장시킬 수 있었다.

분명 하루 차이지만 어제와는 또 다르다. 완벽한 암기력에 있어서 하루에 흡수할 수 있는 양은 어마어마하니 태범이 마음만 먹고 시간을 투자한다면 이로 인한 영향으로 어제와는 다른 사람을 만들었다.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야겠어.’

태범은 투자 대상을 재설정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 나섰다. 변동이 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전초 현상을 찾기 위함이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는 데 도가 텄다.

필요한 정보를 떠올리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 키워드를 알맞게 조합시켰다.

키워드가 정교하고 많아질수록 목적에 맞는 정보들이 나타났다. 흔히 말하는 신상 털기.

태범의 정보 탐색 능력이면 이는 식은 죽 먹기일 만큼 주식의 정보를 터는 데 있어 선수가 다 됐다.

손과 눈이 하나씩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머릿속 능력에 비해 눈과 손은 한 쌍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육체적 한계가 존재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수족을 만드는 가 싶었다. 천재들은 오직 자신의 육체 하나만 가지고 능력을 만족 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벌컥, 벌컥.

시장이 열리기 전 10초 전, 태범은 물 한 잔을 빠르게 들이마셨다. 이제 장이 열리고 나면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승리를 이루겠다는 다짐과 함께 드디어 시작했다.

단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태범은 바로 흐름 분석에 들어갔다.

항상 마찬가지로 시장이 열리는 순간 물량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트의 처음과 끝에는 사람의 심리가 가장 잘 대변되어있다.

순간 변화하는 차트의 중간과는 다르게 처음과 끝은 나름 고심 끝에 이뤄진 사람 심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인 물산, 태범의 투자 목록에 있던 주식이 상승세를 나타나고 있었다.

아직 눈에 띄는 호재나 정보는 없었으나 주가가 갑자기 급등한다는 건 분명 미래에 발생할 무언가의 전조 현상이었다.

한인 물산은 나스닥 상장을 기대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현재 자금 사정이 좋지 않기에 상장으로 인한 추가 자금 유입을 원하는 상황. 하지만 상장에 대해 결정된 정보는 없었다.

태범은 다시 과거의 유사한 종목의 차트 모양을 머릿속으로 탐색했다.

그리고 심리 반응을 통계와 확률을 통해 계산에 나섰고 어디쯤이 고점인가 대략적인 예측에 나섰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유사한 차트를 찾아보려 했지만 호재 없이 나타난 급등은 세력의 개입이 느껴졌다.

오르는 주가를 보자니 마음이 초조해진다. 빨리 분석을 마치고 매입을 하던가 해야 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안서고 있었다.

순간! 태범의 움직이고 있는 마우스는 매수 버튼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클릭.

1주당 42,000원대 20주를 매수했다.

이번 매수는 머리보다는 마음이 이끄는데 가까웠다.

매수를 했으니 매도 타이밍을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묘한 껄끄러움이 느껴지고 있다.

이번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물 잔 안에 조그마한 이물질이 섞여 차마 마시지 못하는 기분과 같았다.

‘오를 것 같긴 한데, 이유를 모르겠어.’

매도를 하기 위해 재분석에 나섰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보다는 마음에 가까운 결정 때문일까. 차마 계산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세력의 힘이 가해져 개미들이 엉겨 붙은 것 같은데 어디가 고점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거 자칫하다가 당한다.’

이렇게 우물쭈물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러다 오직 운에 모든 걸 거는 꼴이 된다. 능력이 있는데 굳이 자신의 운명을 운에 걸 필요는 없었다.

태범은 매수했던 한인 물산 주식을 그대로 매도했다.

그 결과 손해를 본 건 없지만 이득을 본 것도 없었다.

매도 후 한인 물산의 차트를 모니터 한쪽에 띄어 놓고 흐름을 체크했다.

그 결과 태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잘못하다가 상투 잡힐 뻔했다.’

주가 변동폭이 클 때 고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을 상투라고 하는데 자칫 이곳에 물릴 뻔했던 것이다. 태범이 매수한 구간은 고점에 가까웠고 곧 떨어지는 부근이었다.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잠깐 논리에 벗어난 감정적인 행동을 했다. 태범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후…… 후.”

너무 급했다. 태범은 잠시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숨 고르기에 나섰다. 생각을 너무 연이어 하다 보니, 감정이 개입되는 걸 눈치채지 못한 탓이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태범은 주문을 외듯 속으로 몇 번을 다짐 후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숨 고르기를 마치고 다시 한 번 흐름을 읽으며 기회를 노렸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의 눈이 된 듯 다시 차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딩동!

그렇게 주식에 열중하던 한낮 점심 뜻밖의 손님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바로 어머니였다. 양손에는 도시락통이 든 커다란 비닐 가방이 들려 있었다. 본집이 같은 서울에 다가 거리가 가까워 부모님이 자주 찾아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벌써부터 이리 올 줄은 몰랐다.

“엄마, 갑자기 왜 왔어?”

“네 고모랑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이 부근에 왔다가 온 김에 들렸지. 집에는 아무 일 없지?”

“뭐, 나 혼자 사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

태범은 잠깐 문만 열어주고 재빨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선은 모니터에 있고 오직 입으로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의 시선도 모니터 위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눈은 차트와 보조 지표, 거래량 등을 포함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보, 투자자들의 반응까지 모두 파악하려면 눈이 여러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나마 태범이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대화를 하며 이 모두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이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말 한마디 뻥끗하지 못한 채 정보 분석에 몰두하기 바빴을 것이다.

짧은 단타의 핵심은 타이밍에 있고, 눈꺼풀 한번 깜빡할 동안 바뀌는 게 주식 시장이니 시선만큼은 다를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많이 바쁜가봐? 아직 나라에서 허가 안 떨어지지 않았지 않니?”

“원래 사업을 할 때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야. 좀 바쁠 것 같아.”

“그래도 좀 쉬엄쉬엄해. 너무 무리하다가 건강 상하면 오히려 그게 손해다?”

“…….”

어머니의 말에 태범은 묵묵부답, 눈앞에 기회가 보였고 이제는 모든 신경을 주식에 집중시킬 때였다.

차트가 물결치는 징조를 찾아냈고 정말 얼마 있지 않아 차트 위에 선은 물결을 치고 있었다.

“냉장고에 반찬 넣어 놓고 갈 때니까 꼭 집에서 밥 먹어. 너무 사 먹지 말고.”

어머니는 가져온 반찬 통을 냉장고에 하나씩 채워놓고 있었다. 사실 태범이 어머니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의식하고 있었다면 냉장고가 열리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냉장고는 열렸다.

“아이고. 반찬이 그대로네. 그대로. 집에서 밥은 먹긴 하니?”

어머니는 냉장고를 뒤지며 반찬 통을 하나씩 확인하더니 태범에게 잔소리와 함께 나무랐다.

애써 정성껏 싸온 반찬이었지만 냉장고에는 얼마 먹지 않고 남은 반찬들로 쌓여 있던 것이다.

자취 첫날에는 꼬박꼬박 집에서 밥을 챙겨 먹으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손이 안 가게 되었다.

“밖에 음식이 좋은 게 아니야. 조미료 덩어리에…….”

어머니는 반찬통을 열 때마다 한 번씩 입을 열었다. 태범을 향한 잔소리였지만 태범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범은 이제 모든 감각을 모니터 속 주식 상황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태범이 듣고 있는지 모르는지 허공의 외침을 이어갔다.

냉장고에 반찬통을 넣고 이제는 빨래 바구니 위에 걸쳐진 걸레를 집고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청소까지 할 생각이었다.

“바닥에 먼지 봐라. 요즘 미세 먼지니 뭐니 해서 공기도 안 좋은데, 먼지는 그때그때 닦아야 해.”

태범의 살림 꼴을 보고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어머니의 잔소리에는 자식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청소하다가 태범이 일에 집중했다는 걸 눈치채고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엄마! 성공했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눈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자취방에 도착한 지 한 시간 이제야 어머니는 태범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들 얼굴 보기가 참으로 귀한 순간이었다.

“왜? 뭔데? 뭐 좋은 일 있어?”

“어? 아니, 하던 게 있는데 잘 돼서.”

겨우 악플러랑 내기 따위나 하고 있자니 어머니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자와의 차이가 역전된 순간, 쾌감이 느껴졌다.

남자의 오늘 수익률은 0.5%

어제보다 떨어지긴 했으나 일단 수익을 올렸다는 것에 대단한 선방이었다.

└ 3일 연속 수익이라니, 단타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 하네요.

└ 이참에 나도 돈 좀 빼서, 단타 좀 쳐볼까?

카페 회원들은 3일 연속 단타로 수익을 내는 그를 보고는 슬슬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치 투자의 대가 워렌버핏도 연간 수익률을 계산해보면 약 22%대가 나온다. 하지만 남자의 연속된 수익률이 이대로 간다고 가정한다면 워렌버핏을 능가하는 수치였다.

물론 수익이 365일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경향이 강했다.

“뭐야! 이 사람도 한인 물산에서 물렸잖아?”

태범은 남자의 거래 내역을 보고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우연의 일치로 그 역시 태범과 같은 한인 물산의 주식을 매수했던 것이다. 그것도 비슷한 고점에서 말이다. 일명 상투 잡혔다고 할 수 있었다.

태범과 다른 게 있다면 고점에서 물리고 그대로 하락장을 탔다는 것이다.

한인 물산에 상투만 잡히지 않았다면 남자는 어제보다 더 좋은 수익률을 자랑했을 것이다.

태범의 오늘 수익률은 1.6%

어제에 비하면 0.1% 상승했다. 일단 어제보다 수익률을 높였다는 데에 큰 만족이었다.

게다가 악플러인 남자의 수익률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것에 비하면 태범은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태범이 남자의 게시물을 읽고 확인하듯 그 남자 역시 태범의 글을 확인할 것이다.

태범은 오늘 올린 게시물 글 말미에 도발에 가까운 한 마디 멘트를 적었다.

[저 먼저 올라갑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 *

4일 차, 남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범이 점점 쫓아오는 걸 의식해서일까 그의 투자는 점점 과감해졌다.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지, 점점 분석보다는 운적인 배팅을 하고 있었다.

차트의 파동이 큰 주식에 큰 금액을 넣다 뺏다를 반복, 그는 결국…….

남자의 오늘 수익률은 - 1.2%

그의 첫 마이너스 수익률 이었다.

태범은 그의 거래 내역을 읽으며 초조해 보이는 남자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태범의 눈에는 그저 화폐 금액과 수익률이 보이는 게 아니라 투자 순간의 심정들이 느껴졌다.

태범은 이날 새벽, 꿈에서 또 다시 주식의 신을 만났다.

그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닌, 잠 속에서 이뤄진 태범의 무의식의 산물이었다.

태범은 자는 동안 스캐너의 능력이 생성한 아이디어를 주식의 신이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투영시킨 것이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 결과 태범의 오늘 수익률은 말도 안 되는 상승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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