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89화 (89/188)

# 89

태범의 눈앞에 백발의 노인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누구시죠?”

“난 주식의 신.”

“주식의 신이요?”

“그래, 보면 못 알아보겠나?”

노인은 본인을 주식의 신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태범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웬만한 전설적 인물들은 다 꿰고 있는 태범에게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얼마나 성공하셨길래 주식의 신이라고 하시는 거죠?”

“난 말 그대로 주식의 신이야! 돈을 얼마 벌었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노망이 난 걸까 이 할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본인 입으로 주식의 신이라 하니 사기꾼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 가지 충고하자면 자네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죠. 많이 알고 있으면 좋은 게 아닌가요?”

“가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지.

“주식은 정보 싸움입니다. 많이 아는 자가 이기는 거라고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 들어보지 않았나? 많은 정보가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지. 불순한 것들은 뺄 줄 알아야 해. 너무 배만 채우려 하지 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태범은 알 수 없는 노인의 말에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그 순간 공간이 뒤틀리더니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태범의 육체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헉.”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하얀색 벽지가 붙은 천장이었다.

꿈이었다. 생생하게 기억에 각인된 꿈이었다.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태범이 자기 전 머릿속에 주식 생각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도 주식의 신이라니…… 태범 본인이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렇게 실없는 웃음을 내뱉고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기지개를 켰다.

“으아!”

그 순간 뼈 소리와 함께 폭죽 터지듯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생각들이었다.

사람이 잘 때 뇌가 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최소한의 부분만 남겨놓고 여전히 활동을 유지한다.

특히 깨어 있을 때 뇌 속에 입력된 정보들은 잠을 잘 때 무의식 상태에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동시에 기존 정보를 조합시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냈다.

그러한 뇌의 원리로 태범은 아침을 아이디어와 함께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잠에서 완전히 깬 태범은 대충 세안을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7시밖에 안 된 이른 시간이지만 주식 시장에 들어가기 전 미리 준비를 해야만 했다.

꼬르륵.

어제 식사를 대충 해서 그런지 눈을 뜨고 몰려오는 건 뱃속 거지의 외침이었다.

어제 금융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하루 종일 굶었던 터라 어쩔 수 없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태범은 대충 바람막이 하나를 거치고 집 밖 편의점으로 향했다.

집에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반찬이 있긴 했으나 중요한 밥이 없었다. 역시 혼자 살다 보니 식사에 신경을 잘 안 쓰게 됐다.

밥은 거의 사 먹다시피 했고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배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간 태범은 아침 식사를 위해 도시락을 골랐다.

새벽부터 이른 아침까지 항상 있었던 아르바이트생이 안 보이고 오늘은 사장님이 직접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어? 아침인데 사장님이 계시네요?”

“네, 이제 새벽에는 저희 가족이 돌아가면서 일하거든요.”

“알바생이 그만 뒀나 봐요?”

“아…… 요즘 장사도 안 되고…… 최저 시급 맞추는 것도 힘들어서 그냥 가족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최저 시급’ 이라는 단어가 태범의 귀에 들리자, 순간 태범은 자동으로 최저 시급과 관련된 경제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사나 정보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며 이를 금융과 연관시켜 또 다시 정보를 가공, 생산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스스로 뛰듯 생각 역시 반사적으로 이뤄졌다.

얼마나 머릿속에 주식 생각으로 가득했으면 굳이 떠오르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생각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태범은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생각을 하나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은 떠오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나 수첩에 적고는 하지만 태범은 약간의 집중만 있으면 됐다.

미간의 모으며 생각을 되새김하면서 기억으로 완전 각인시켰다.

태범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었다.

반찬을 집을 때 도시락에 한 번 눈길을 주고 씹을 때는 모니터 속 주식 정보를 검토했다.

오늘부터 직접 주식 거래를 하기로 결심했고 장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미리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계획에 맞춰 거래할지 그리고 기준으로 거래를 할지 말이다.

어제 기준으로 나타난 주식 차트를 보며 특정 주가가 나타내고 있는 그래프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과거 그래프를 탐색했다.

태범의 머릿속에는 암기력으로 저장된 과거의 주식 차트가 수없이 많이 들어있었다.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기도 하는 이 차트는 시장 통찰력과 기업 분석력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맞춰 재가공 되었다.

사람은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크게 본다면 사람의 심리변화는 변화하지 않는다.

이를 잘 캐치만 한다면 최소한 투자를 하는데 손실을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9시.

장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장이 열리자마자 거래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범은 봐왔던 몇 개의 주식 종목을 빠르게 탐색했다.

주식의 추세가 이뤄지기 전, 차트는 모든 걸 말해준다.

주가가 상승할 것 같은 모양을 보인 차트를 선별해 태범은 이를 집중적으로 봤다.

그중 눈에 띄는 게 대영 건설의 차트였다.

과거 차트의 내역을 보면 분명 곧 상승세를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분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주식이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면 모를까 변동이 심한 경우에는 상승의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잘 잡아야만 했다.

아무리 미래에 주가가 오른다는 걸 알아도 그 지점을 모르면 말짱 꽝이었다. 특히 단타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심리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수 세력과 매도 세력의 충돌이었다. 대영 건설의 주가를 짧은 시간 동안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고 있었다.

심리가 경합될 때에는 주가가 기업 가치와 불일치를 이루며 그 사이에 수익과 손실 구간이 반복된다.

태범은 이 차트를 읽고 가장 유사한 과거 차트를 머릿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의 파일 검색을 하는 것처럼 대영 건설의 차트를 머릿속에 입력하고 이와 가장 유사한 과거 데이터를 찾았다.

쓱쓱쓱.

태범의 손은 컴퓨터가 아닌 노트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를 숫자로 나타내는 작업이다.

사실상 예측하기 힘든 사람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인도 본인 마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남이 분석하려니 오죽하겠나. 하지만 태범은 개인 심리보다는 단체 심리를 기준으로 삼아 통계와 확률을 통해 계산에 나섰다.

태범이 가치 투자를 연구하면서 만든 공식들이었다. 물론 단타를 위해 조금 다듬었고 최적의 타이밍을 위한 계산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 성공을 이루는 건 아니다. 애초에 100%를 이룰 수 있는 기법이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저 수익을 낼 수 있는 확률의 배팅을 찾는 것뿐이었다.

‘이쯤이다.’

태범은 본인이 생각하는 최적의 배팅 타이밍을 선택했고 그 구간에서 주식을 매입했다.

그렇게 대영 건설 40주를 매수하며 약 160만 원을 넣었다.

내기에 사용되는 300만 원의 절반이 넘는 수치였다. 안전하게 금액을 쪼개 투자를 할 수도 있었지만 짧은 시간의 단타 내기인 만큼 과감한 투자가 필요했다.

‘올라간다!’

매수 세력이 매도 세력을 꺾고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범의 예상대로였다.

이제 반대로 매도 타이밍을 잡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에 나섰다.

‘됐다. 이쯤에서 빼야 해.’

분명 계속해서 오르곤 있지만 커다란 호재가 아닌 이상 일정 수준에서 발을 빼야만 했다.

더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확신에 의한 투자보다는 운에 의존하는 투자에 가까워진다.

태범은 바로 발을 빼며 수익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대영 건설 주식을 통해 3%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태범은 같은 방식으로 미리 봐왔던 주식에 투자를 이어 갔다.

여러 번의 거래를 통해 수익을 거둬내기도 또한 손실을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단타 위주의 거래 횟수가 많다 보니 손실 없는 거래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총액을 토대로 수익을 냈다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장이 닫히고 태범은 남자가 글을 올리길 기다렸다.

과연 그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수익을 거뒀을까,

딩동!

스마트 폰에 알림이 울렸고 태범은 남자의 글을 확인했다.

오늘의 수익 2%.

“아니? 오늘도 2%?”

설마 하는 마음에 태범은 여러 번 확인했지만 조작이 없는 정말 2%의 수익이었다. 그것도 이틀 연속이나 같은 수치의 수익이다.

5일의 내기 기간 중 이틀 연속 수익을 거뒀다는 건 크게 유리한 것이었다.

자신감 넘치던 태범도 자칫하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태범 역시 사람인지라 감정에 있어서 냉정할 수만은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함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이틀 연속으로 2% 수익이라니…… 저게 한 달만 유지 돼도 떼돈을 벌겠네요.

└ 5일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기간이 짧을수록 실력보다는 운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네요.

└ 단타는 운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이를 모두 실력으로 친다면 아마 이 사람은 주식 천재가 될 겁니다.

카페 회원들은 애써 남자의 수익을 운으로 치부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단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깨지려 하니 이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이곳은 가치 투자 클럽이다. 대부분 가치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단타나 짧은 거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에 이어 태범도 본인의 오늘 거래 내역을 게시판에 올렸다.

오늘 수익률 1.5%

이것도 그나마 대영 건설에 크게 배팅하고 성공을 이뤄냈기에 얻어낸 결과였다.

160만 원이 아니라 금액을 쪼개서 넣었으면 한 자리 숫자의 수익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 잘 하시긴 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파이팅 하세요!

└ 솔직히 운 빨이긴 하나, 두 분 다 수익을 내는 것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 두 배인 3%만 됐으면 이겨 볼만할 텐데 이제 3일 남았는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수익을 거뒀다는 것만으로 만족할만한 결과이긴 하나 지금은 그냥 투자가 아닌 대결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상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은 카페 운영진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쪽지에 강하게 나타났다.

[발신: 가치 투자 클럽 운영진]

내기를 그만 두시는 게 어떻게 싶습니다.

애초에 악플러랑 내기를 하시는 게 손해 보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치 투자 클럽인 만큼 가치 투자에 대한 이미지도 생각해주셔야 하는데 여기서 단기 투자로 내기를 한다는 건 카페 목적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악플러를 신고 처리하고 카페에서 강퇴 시키면 어떨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강버핏님 생각은 어떠한지 묻고 싶습니다.

이쯤 돼서 운영진도 태범을 못 믿는 눈치였다.

사실 뭐가 됐든 내기의 승리가 수익으로 끝난 다면 가치 투자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되는 건 당연했다.

단타를 통해 수익을 거둬내는 걸 보면 기존의 회원들도 혹해서 투자 방식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카페의 우수회원인 태범이 진다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미꾸라지 한 명 때문에 가치 투자 클럽이 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범은 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투자는 수익을 얻어 내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수익을 낼 수만 있다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가 됐든 뭐가 됐든 투자를 하는 게 옳다고 봤다.

단타니, 중단타, 장기, 가치 투자, 무슨 기법이니 해서 이를 나눠 규정하는 것보다는 본인이 맞는 투자를 한다면 그게 옳은 투자였다.

거래를 마친 태범은 쓸모없는 감정은 잠시 제쳐 두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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