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88화 (88/188)

# 88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라면 분명 저보다 잘하지 않겠습니까?”

태범의 자신감 있는 태도 때문일까 남자는 당황한 듯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연이어 들이마셨다.

상대가 아무리 약해 보여도 자신 있게 나온다면 뭔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법이었다.

남자 역시 태범이 믿고 있는 구석이 있어 저런 제안을 하는 건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정답이었다. 태범에게는 스캐너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었으니 남자와 대결에서 별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 자신 있습니까? 당신이 지면 당신이 올린 그 글 잘못된 거라고 말 하시고 저한테 사과하셔야 해요. 그렇게 되면 카페에서 신뢰가 떨어지겠죠. 감당할 자신은 있는 거죠?”

겁을 주려는 걸까, 남자는 태범이 내기에서 질 것처럼 이야기했다.

“네, 제가 지면 어떤 욕을 들어먹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태범은 자신이 질 가능성을 단 1%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만약에 진다면 태범은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생각이었다.

왜냐, 이 남자가 이긴다면 그는 세기의 천재 폰 노이만과 워렌버핏의 능력을 뛰어넘는 천재가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면 정말 졌다고 도망가기 없기입니다. 분명 약속하셨죠?”

첫 인상 때 보였던 예의는 온데 간데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남자의 입에서 도발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괜히 악플을 쓰던 사람이 아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태범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응했다.

“쥐새끼도 아니고 도망가긴 어딜 도망갑니까. 저희 둘 다 고추 달린 남자 아닙니까? 남자답게 승부를 봅시다.”

“그래요. 그럼 내기는 성사된 걸로 하죠. 그럼 여기서 한 말들 카페 게시판에 올리시죠. 어떤 식으로 할 건가 말이에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범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시작된 것이다.

태범은 거래 방식에 대해 자세한 조건을 제안했다.

“각자 100만원으로 시작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수익을 봅시다. 어떠세요?”

“아뇨, 100만원은 너무 작아요. 300에서 시작하죠.”

100만원은 너무 작단다. 그저 이유 없는 패기로는 보이지 않고 남자에게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보였다.

‘오호! 자신 있다 이거지…… 멍청이는 아닌가 보네.’

태범은 남자의 반응에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 게임도 수준이 있어야 재밌는 법이다. 이 남자 행동하는 걸 봐서는 꽤 재밌는 게임이 될 것만 같았다.

“일어나 보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안 좋은 사이로 만나서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저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남자가 태범의 얼굴을 뚫어지라 보더니 물었다.

“네? 처음 보는데요.”

“아, 그런가. 낯이 익은 거 같아서…….”

“그럼 이만…….”

* * *

가치 투자 클럽 카페에는 태범과 남자의 대결로 시끌벅적 해졌다.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다고 평온했던 카페는 순간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존 유저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태범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좀 똑똑한 투자자로 알고 있을 뿐 강태범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몰랐다.

다행이 악플러가 태범의 얼굴을 몰라서 다행이지 TV 좀 본다는 사람들은 재방송으로라도 태범의 얼굴을 보고 알아챘을 것이다.

내기는 간단했다. 그저 300만을 5일 동안 크게 불리는 사람이 승리를 하는 것이다.

혹시 모르는 편법을 막기 위해 둘의 계좌 정보는 하루를 단위로 카페에 공유하며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했다.

└ 가치 투자 카페에서 단타 대결이라니 재밌네요.ㅎㅎ

└ 강버핏님 꼭 이겨서 저희 카페의 자존심을 살려주세요!

└ 웬 투기꾼 하나가 와서 물을 흐려놓더니,

└ 관종은 무시가 답인데…… 그냥 무시하시거나 고소하시지. 왜 굳이 내기를 하시나요.

└ 이 카페 사람들은 무슨 지들이 다 워렌버핏인줄 암. ㅉㅉ.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태범의 편에 서 있었다. 일단 카페 이름이 ‘가치 투자 클럽’ 인만큼 단타에 있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태범에게 있어서 홈그라운드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응원이 주는 약간의 자신감밖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말이다.

악플러인 남자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수이지만 원정을 온 건지 카페 가입 날짜가 오늘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단타 위주의 거래를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 * *

태범에게 단기 투자라 하면 초창기 워렌버핏의 능력을 얻었을 때뿐이었다. 그때 초심자의 행운과 능력이 더해져 큰 수익률은 얻긴 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단기투자에 손을 댄 적이 없었기에 다시 한번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태범은 손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손을 풀었다. 이제부터 가장 고생할 놈이 바로 손일 테니 말이다.

‘시작해볼까.’

컴퓨터가 켜지고 태범은 잠자리 잠옷 그대로 입고 키보드를 두들기며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단타에 맞는 흐름을 파악해야겠어.’

짧은 시간 주식 싸움은 결국 흐름을 얼마나 잘 관찰하고 파악하는 데 있었다.

주가는 기업의 호재나 악재의 징조가 나타나며 변동하긴 하는데 사실 기간이 짧아질수록 사람의 심리가 많이 적용되기 마련이었다.

단타에서만큼은 사람의 심리가 바로 주식의 흐름을 말했다.

특히 인간의 탐욕, 기대감은 주가를 상승시키는 원동력이 되며 불안과 체념은 주가를 하락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이 꼭 경제 사정과 같아진다는 법은 없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건 시장에 따라 꼭 곧이곧대로 작용하는 게 아닌 만큼 그 무엇보다 분석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어려우면 정신병원에 정상인과 정신병 환자를 섞어 놓고 의사에게 환자를 맞춰보라면 이를 쉽게 판별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만큼 사람의 정신은 모호한 면이 많았다.

이런 인간 심리에 맞는 주식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태범은 스캐너가 준 모든 능력을 사용하며 머리를 굴렸다.

첫날 태범은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았다. 5일간의 싸움이지만 결코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주식은 노동 시간에 비례에서 수익이 들어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안 하고 수익률 0%가 승리할 수도 모르는 게임이 주식이었다.

‘침착하자…… 침착!’

태범 역시 거래를 하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했지만 꾹 참았다.

태범은 참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참을성과 인내심이라 말할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어 투자를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타이밍을 놓치면 얄짤 없기 때문에 신속함은 필요했지만 급하게 서두르는 건 이와 다른 부분이었다.

이것이 개미들이 실수하는 부분이었다.

큰 이익이 난 개미나, 손실을 본 개미나 빨리 결판이 나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됐건 눈앞에 결론이 나와야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급함에서 실수와 오류가 나오는 법. 계획과 다르게 상황이 꼬이면 결국 실패한 투자가 되는 것이다.

태범은 그런 투자자가 되지 않도록 계획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은 과거의 주식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시키는 것이었다. 흐름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투자하고자 하는 업종별, 테마별, 시장별 등 분류할 수 있는 단위를 나누고 이에 대한 변화 추이를 검색했다.

과거의 수많은 호재와 악재 정보 그리고 인간 심리를 보여주는 그래프에 기사에 개인적인 글까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아예 씹어 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모든 걸 암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 역시 읽기 중독자라고 할 정도로 독서광이라고 한다. 특히 그가 읽은 건 기업들의 재무 정보였다.

금융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그는 막대한 기업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투자 대상 기업뿐만 아니라 경쟁사까지 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정보는 모두 머리에 넣었다고 한다.

아무리 백 번, 천 번을 거래한다 한들 토대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법이었다. 본인만의 주식 거래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토대를 쌓아 올려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태범에게 엄청난 어드밴티지인 셈이다.

단 한 번만 보고 모든 걸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암기력, 이 하나의 능력만 봐도 일단 일반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거쳐 할 일은 태범은 단 하루도 되지 않아 가능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건 즉시 뇌에 저장이 되며 머리는 마치 생각하는 컴퓨터랑 다름이 없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본집에 있었으면 어머니가 식사시간을 알리며 잠시 쉬었을 테지만 혼자 사는 태범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암기에 빠져있었다.

아침에 시작한 암기는 어느새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동안 밥 한 끼도 먹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신 밥이 아닌 엄청난 정보와 데이터 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배꼽시계는 꼬르륵 배고픔을 알리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배를 포기한 만큼 머리에서 많은 걸 섭취했기에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딩동!

“벌써 올렸나 보네.”

스마트 폰의 알림이 울렸다. 태범은 남자가 올린 글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알림 설정을 해 놨다. 그가 글을 올리면 스마트 폰에 알림이 울린다.

주식 시장 마감 이후 날이 지나가기 전까지 오늘의 투자 결과를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어디 얼마나 잘했나 보자.’

태범은 남자의 글을 확인했다.

웨어테크 -0.8%

릭스 +2.2%

.

.

.

유정 산업 +2.1%

총 수익률: 2%

‘오…….’

오늘의 결과를 본 태범은 감탄사를 뱉었다.

남자는 하루 치고는 좋은 성과를 냈다. 2% 작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단 하루였다.

저 수치가 계속 보장된다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수치였다.

남자는 스켈핑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이는 주가의 변동을 이용해 수익을 얻어냈다.

스켈핑(scalping)은 초 단위를 다툴 만큼 빠르게 치고 빠지는 투자 방법을 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단타 기법이었다.

그의 거래 내역에는 수많은 거래가 담겨 있었다.

‘단타 치고는 나름 잘 선방했네.’

증권사의 수수료와 정부의 거래세 때문에 스켈핑은 쉬운 게 아니었다. 자칫하면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며 일해 놓고 증권사와 정부 좋은 일만 하게 되니 꼴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2% 수익은 대단한 일이었다.

‘짜식 좀 하네.’

살짝 긴장이 되긴 하지만 태범은 남자의 오늘 실력은 운으로 치부했다.

어차피 하루 2%라는 수치가 계속 유지될 거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말 저 수치가 계속 유지가 된다면 이곳에서 내기나 할 사람이 아니었다.

월 가에 가서 세계 제일가는 투자자가 되어 금융계를 호령해도 모자랄 테니 말이다.

물론 내기는 5일 안에 결정되니 운이 정말 좋다면 남자는 꾸준히 수익을 낼 수도 있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 남자가 아니라 운을 점해준 신의 능력에 박수를 쳐야 할 것이다.

남자의 성적표에 이어 태범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계좌를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오늘의 거래량 0.

수익률 0%

태범이 글을 올리자 게시글의 댓글에는 많은 사람들로 술렁이고 있었다.

└ 강버핏님 어디 놀러 갔다 오셨나요? 왜 아무것도 없습니까?

└ 헐…… 뭐야! 강버핏님 거래 내역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직 준비 중 이신 건가.

└ 제대로 올리신 거 맞음? 내역이 없는데요? 설마 손실 날까 봐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한 거 아닙니까.

태범이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이들은 그저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낼 뿐이었다.

하지만 댓글의 부정적인 반응과 달리 태범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