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태범은 본인이 지금껏 모은 돈과 아버지의 돈 1억을 기초 자본으로 법인 설립 준비에 나섰다.
어머니는 회사에 나와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했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의 여유 자금으로 돌린 주식투자가 나름 성공적인 길을 가고 있었고 태범을 신뢰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태범의 첫 번째 고객인 셈이었다.
“태범아, 이 주식은 언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해?”
아버지가 모니터 속 주식 계좌를 가리키며 말했다. 회사를 나오고 본집에 있는 일이 잦아진 태범에게 아버지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직 본래의 평가대로 주식이 오르지 않았어. 경기 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느리게 올라가지만 계속 가지고 있으면 올라갈 거야.”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던 건 음료 식품 회사의 주식이었다. 내수가 탄탄한 종목에 경기 변동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 식품 대기업이었다.
이번에 유명 아이돌 광고로 떠오른 음료 때문에 주식이 잠깐 반짝였는데 아버지는 이때를 매도 타이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태범은 본인의 투자 기법을 아버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면 주당 순 자산(BPS)가 아주 적당하게 잡혀있어.”
“BPS가 뭔데?”
“자산의 총액을 발행 주식수로 나눈 거.”
“음. 그래?”
“어쨌든 BPS라고 기본적으로 이렇게 투자 정보에 들어가 보면 다 나와 있어.”
태범은 포털 사이트 증권 창에 나타난 기업 투자 정보를 클릭해 보여줬다.
“아…… BPS.”
“응, 난 이 BPS를 나만의 방식으로 계산해서 쓰거든 무조건 자산이라도 모두 같은 자산이 아니야. 자산에도 무늬만 자산이지 실질적인 가치를 하지 못하는 게 있어. 그래서 실질적인 자산 가치를 지닌 것만 다시 뽑아서 계산해봤어.”
이번에는 책상 위에 있는 노트를 펼쳐 펜을 끼적거리며 설명했다. 태범은 본인이 개발한 계산방식을 노트 위에 적어 나갔으며 아버지는 이를 바라볼 뿐이다.
“회계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한 번 더 거를 필요가 있어. 생각보다 회계 정보는 완벽하지 않거든.”
회계사로 일했던 사람 입에서 회계 정보가 완벽하지 않다니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나만의 방법을 통해 정보를 한 번 더 거르는 거지.”
태범이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 여러 수학적 기법과 논리 방법이 사용됐다.
대부분 태범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기법이며 이건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낸 방법이었다.
일단 워렌버핏의 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폰 노이만의 암기력이나 수리 이해력을 통해 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주식과 관련 없을 것 같은 다빈치의 능력에도 중요한 게 있었다.
‘창의성.’
창의성은 각 능력들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했다.
게다가 정적인 숫자와 기록된 정보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감적인 판단도 필요했다.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경제 흐름에도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존재했다.
태범은 과거 여러 기업과 경제 상황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어놓고 있었으며 반복되는 패턴을 읽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투자도 마찬가지 과거에는 원숭이가 하던 걸 현재는 침팬지가 하는가? 아니다.
언제나 주식은 인간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흐름은 반복되고 있었다.
경제 상황이나 시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는 보이지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판단하는 데는 과거의 흐름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태범의 설명을 듣던 아버지는 계속된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결국 이해하는 걸 보기 했는지 한숨은 얕게 쉬더니 말했다.
“아이고 아빠는 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이거 너무 복잡하네.”
아버지는 돋보기안경을 벗으며 이해하는 걸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태범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르면 더욱 쉽게 설명해주면 되는 법.
태범의 자세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뒀다.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와 대강 개념만 다시 설명해 드리기로 했다.
“그럼 진짜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일단 기업의 뿌리가 되는 재무상태를 확인하고 얼마나 높고 멀리 뻗어 나갈 수 있는지 사업 상황을 파악해야해.”
한동안 태범은 아버지를 한 명의 고객처럼 여기며 정성껏 자문을 해주었다.
분명 자문을 받는 투자자들 중에는 아버지와 같이 무작정 돈만 맡기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의 표본이었다.
띠리링.
열심히 설명을 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왜 또 문의 전화냐?”
“모르는 번호인 거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태범이 회계법인을 그만뒀다는 소문은 빠르게 흘러갔다. 회계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태범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직 사업허가도 나지 않았지만, 태범에게 많은 문의가 들어왔다.
특히나 태범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기업들부터 시작해 어디서 번호를 알았는지 개인적인 문의도 들어오곤 했다.
확실히 회계사로 일하면서 쌓아둔 이미지는 시작부터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 * *
회사를 그만두고 정부에서 투자 자문에 대한 사업이 허가가 날 때까지 태범은 각종 사업 준비에 나서고 있었다.
사무실은 조그마한 방 한 칸짜리였다.
어차피 처음에는 혼자 운영하는 것이기에 굳이 사무실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고객을 맞이해줄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사무를 볼 수 있는 책상만 있으면 됐다.
게다가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해 성장하는 게 얼마나 묘미가 있을까!
스티브잡스도 처음에 창고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으리으리한 빌딩안의 회사를 이뤄냈다.
태범도 마찬가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한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그다음 할 일은 미래의 고객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태범의 다음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천재답게 투자에서도 빛을 볼까 아니면 그저 잠깐 반짝였던 별이었을 뿐일까. 사람들은 태범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태범의 잠재적 고객들이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살짝만 빛을 내주기라도 한다면 이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올 고객들이었다.
그렇게 사업 관련 준비를 하다가, 12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아 스캐너를 실행시켰다.
[창의성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75%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76%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100%)-창의성(76%)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슬슬 다른 인물을 찾아볼 준비를 해야만 했다.
태범이 필요한 다빈치의 능력은 거의 다 얻어갔고 한 달도 안 돼서 다른 인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더 이상 능력을 얻지 않아도 될 만큼 태범이 스캐너에게 받은 능력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미술이면 미술, 운동이면 운동, 게다가 두뇌면 두뇌. 능력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어떤 인물을 선택하든 겹치는 능력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고 능력이 늘어날수록 다음 인물의 선택은 어려워졌다.
스캔을 마치고 잠이나 잘까 싶어 침대에 누웠지만 어느새 손은 스마트 폰에 가 있었다.
‘오랜만에 가치 투자 클럽이나 들어가 볼까?’
과거 태범이 활동했던 가치 투자 클럽. 요즘은 뜸하게 들어갔지만 회계사도 그만뒀겠다. 오랜만에 카페를 방문했다.
태범의 닉네임은 ‘강버핏’ 이곳의 우수회원이다.
학생 때 혁신 기업 가치 투자 방법부터 시작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올리곤 했다.
이곳 회원들은 태범의 정체를 모르고 있으나, 현실에서만큼 이곳에서도 ‘강버핏’ 하면 다들 알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태범의 창의적이고 색다른 가치 투자 기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태범은 추억을 되살려 자신이 작성했던 글들을 다시 확인해봤다.
└이거 워렌버핏이 쓴 거 같은데요. 워렌버핏이 한국말을 언제 이렇게 잘 했나요?
└이분은 한국의 워렌버핏이시다!
댓글에는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글을 올린 지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는 듯 최신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렸대?’
글 제목의 오른쪽을 보면 댓글 수가 표시되고 있었다.
태범은 본인의 글 전체 목록을 보던 중, 다른 글과는 다르게 댓글이 200개 이상인 글을 발견했다.
사람이라면 궁금해서 클릭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클릭.
태범은 댓글을 보고는 순간 카페에 잘못 접속한가 싶었다.
분명 가치 투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카페인데 가치 투자를 비판하는 사람의 댓글이 달려있던 것이다.
그리고 가치 투자의 옹호자들과 비판을 하는 사람의 싸움이 댓글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가치 투자는 사기입니다. 누가
└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고, 마냥 기다리나요?
└ 애초에 워렌버핏은 시대 상황과 맞아서 운이 좋았고 지금은 거대 자본의 힘과 명성을 통해 돈을 버는 거지.
└가치 투자는 주식을 모르는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워렌버핏도 가치 투자만 하신 줄 아십니까?
‘뭐야. 이 자식…….’
한명의 회원이 태범이 올린 글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투자 방법에 대한 글을 보고 돈이라도 잃은 건가 분명 댓글은 비판을 넘어서 악의적이었다.
└ 뭐가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죠. 각자에 맞는 투자 방법이 있으니까요. 가치투자를 무조건 사기로 몰아가시는 건 성급한 판단인 것 같네요.
글 작성자인 태범은 그의 댓글에 반박 댓글을 올렸다.
관심종자에게는 무시가 제일이라지만, 차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댓글 하나를 남겼다.
이 글에 알림을 설정해놨는지 악성 댓글의 주인공이 바로 나타났다.
└오! 사기꾼 등장하셨네요! 투자자들에게 그럴싸한 말로 홀린 다음 영업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이야 회계법인을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제는 자칫 글을 올리면 정말 영업을 위해 올린 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범은 정말 순수하게 정보 공유 차원에서 올린 글이었다.
글 쓴 날짜만 봐도 1년 전 대학생 때이다. 태범은 그의 억지 주장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말 하는 겁니까? 저는 순수하게 정보 차원에서 올린 글인데, 사기라뇨.
└일단 가치 투자를 한다면서 변동성이 큰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방법을 올린 것부터가 수상합니다. 전통적으로 가치 투자라 하면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건데 이 글에는 워렌버핏도 조심스러워 했던 IT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워렌버핏 아빠라도 됩니까?
└제가 워렌버핏 보다 못할 게 있습니까?
└네? 당신이 워렌버핏보다 가치 투자를 잘한다고요?
└그건 가봐야 아는 거 아닙니까?
└이거 봐! 사짜 냄새가 물씬 풍기는구만!
└그럼 그렇게 말만 하지 마시고 직접 만나 보는 게 어떻습니까? 본인의 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말이죠.
└현피 라도 뜨자는 겁니까?
└아니요. 당신을 설득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태범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태범은 그의 낯짝을 한 번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