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취약점은 컴퓨터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보안상 문제점, 즉 약점을 말했다. 흔히 말하는 해킹과 바이러스 공격들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에 속했다.
태범은 이점에 대해서 스낵 피쳐(snack picture)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크 하인버그의 제안에 태범이 입을 떼려는 찰나 캐서린이 말을 가로채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뭐래 태범 씨가 일하러 영국에 온 줄 알아? 안 그래도 한국에서 코피 흘리며 일하고 있다는데…….”
한국에서 이곳까지 먼 길을 오며 쉬러 온 건데 기어코 이곳에서까지 본인 남자 친구에게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태범이 한국에서 수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수시로 연락하고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에 태범의 일에 대해서는 속속히 모두 알고 있었다.
캐서린의 눈에 태범은 어쩌면 일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이곳 영국에서만큼은 푹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 뭐 싫다면 안 하면 되는 거고.”
캐서린의 날카로운 눈빛에 하인버그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제안은 없던 일로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대답을 안 했는데 여기서 끝날 수가 있을까?
캐서린의 반대에도 태범은 흥미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케이. 좋아요. 제가 한국에 가기 전까지 한 번 찾아볼게요.”
“뭐? 안 그래도 돼. 왜 여기서 까지 힘들게 그래.”
“아니, 재미있겠는데? 정말 제가 취약점 찾으면 주식 주시는 거죠?”
“네…… 그렇긴 한데…… 캐서린이…….”
캐서린이 여기서 얼마나 여장부 노릇을 하고 있었으면 하인버그는 태범의 답변보다는 캐서린을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태범은 끝까지 하인버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꽤 재밌는 경험일 것 같았고 태범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프로그래밍을 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놀이? 재밌잖아요!”
태범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하인버그의 제안을 승낙하자 캐서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인버그는 태범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취약점을 발견하신다? 그럼 스낵 피쳐의 주식 0.2%를 드리죠.”
스낵 피쳐의 주식 0.2%, 아직 시장에 나온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를 산정할 수 없는 주식이다.
물론 현재 기업 자본금으로 보자면 큰돈은 아닐지 몰라도 미래의 가치로 보자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가치의 주식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태범은 보상보다는 그저 취약점 발견 자체에 목적을 두고 마크 하인버그와의 게임에서 승리하고 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을까요? 분명 취약점이 존재할걸요. 제가 프로그래밍에서는 감이 좋거든요“
살짝 도발이 들어가야 게임이 재밌어진다.
격투기 선수들도 경기에 앞서 서로 눈싸움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데 이는 정말 화가난 것보다는 쇼맨십에 가까웠다. 지금 태범이 한 말도 그러했다.
“물론 세상에 100% 완벽함이란 없죠. 음 그런데 제가 만든 건 99.99%정도?”
하인버그도 물러설 기세는 안 보였다. 본인의 스낵 피쳐에 완벽성을 자신감 있게 주장하고 있었다.
“둘 다 꼴값을 떠시는구만!”
태범과 하인버그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자니 꼴이 사나운지 캐서린은 거북해하고 있었다.
“맞아 누가 보면 세기의 대결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앤드류도 캐서린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앤드류가 무슨 말을 하든 하인버그의 자신감과 본인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본인들을 못 믿고 있는 거야? 난 지금 완전 확신하고 있는데?”
* * *
“자기야, 정말 할 수 있겠어? 그냥 하인버그 말 무시하고 푹 쉬어도 돼. 걔가 원래 좀 그래.”
사무실 투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캐서린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태범에게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난 오히려 재밌겠는데?”
“뭐가?”
“아니, 경쟁에다가 보상까지 이거 딱 게임하고 똑같잖아. 그리고 내가 취약점 발견해주면 캐서린 너희 회사에도 도움이 될 거고…… 일석이조잖아?”
취약점을 찾는 건 태범에게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의 놀이이다. 그저 지뢰 찾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그런가…… 그럼 난 누굴 응원해야 하는 거지?”
취약점이 발견되면 캐서린의 회사의 보안 구축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사업 진행에 문제에 생긴다는 건이고, 이는 분명 캐서린의 책임이기도 했다.
반대로 취약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자신의 남자친구인 태범의 말은 그저 헛소리가 되는 셈이었다. 즉 남자 친구의 자존심이 상하는 만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캐서린은 태범이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근데 마크 하인버그는 어떤 사림이야?”
“하인버그? 왜?”
“아까 일하는 거 보니까 자부심이 엄청 강한 거 같던데…….”
태범은 갑자기 마크 하인버그에 대해 궁금해졌다. 잠깐이지만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태범 본인을 보는 듯했다.
완벽함에 대한 확신은 그를 뒷받침해줄 근거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하인버그는 그냥 일을 즐기는 얘야.”
캐서린은 하인버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마크 하인버그는 확실히 일을 즐기는 사람에 가까웠다.
평소 괴짜 같은 이미지에 프로그래밍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기 좋아했던 친구이며 장난도 많고 어린아이 같은 면은 있으나 일에 대해 열정이 대단한 친구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태범은 더욱 열의에 차고 있었다.
단단히 박혀있는 뿌리를 빼는 건 쾌감 있는 일이었다. 태범은 하인버그의 깊은 확신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기로 했다.
“봐봐. 내가 완벽한 건 없다는 걸 보여줄게.”
태범은 자신감 있게 한마디 툭 던지고 캐서린 컴퓨터에 있는 스낵 피쳐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텍스트가 전송되는 과정이 프로그래밍의 주를 이루고 있었고 개인정보가 저장, 기록되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살폈다.
태범은 조용히 바라보던 캐서린은 시간이 지나자 기어코 한마디를 꺼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찾기 힘들걸? 우리 3명이 몇 번이나 완전성을 확인했고 외부 기관에서도 마무리된 건데?”
캐서린 역시 스낵 피쳐에 창업자 중 한 명인지라, 결국 본인이 낳은 스낵 피쳐에 손을 들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태범은 캐서린의 말에 개의치 않아 하며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 * *
호기롭게 하인버그와 내기를 시작한 시간도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태범은 캐서린에게 몇 번이나 포기 요구를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태범은 스캐너에게 받은 온갖 능력을 총동원했다.
폰 노이만의 언어 이해력, 암기력, 수리 이해력 그리고 다빈치의 창의성까지, 문제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떠올려보고 계산을 하며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결국…….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깨달았을 때 외쳤던 유레카, 태범은 이를 외치며 자신의 발견을 알렸다.
드디어 태범의 눈에 취약점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스낵 피쳐 코딩 방식에 문제점이 있었고 자칫 사용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용자에게 엄청난 양의 스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마치 서버 디도스(DDos) 공격과 비슷한 원리로 사용자의 단말기를 마비시킬 수 있는 양의 스팸을 보낼 수 있었다.
이대로 스낵 피쳐를 서비스하기에는 커다란 취약점이 분명했다.
당장 캐서린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일이 있다며 스낵 피쳐 사무실에 나가 있었다.
까무러치며 놀라겠지?
벌써 하인버그나 캐서린의 놀란 얼굴이 상상이 됐다.
* * *
교수님들이 스낵 피쳐 사무실에 방문했다.
오픈 시기를 앞두고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대다수가 컴퓨터 공학 관련 교수나 박사였고 학교 창업 지원단 관계자도 있었다.
그리고 교수 사이에는 현재 런던대 명예 교수인 존 스미스 교수까지 있었다.
창업자이자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이들의 방문을 맞이했다. 학교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가 있는 만큼 사후관리에도 철저했다.
학교에서 투자금만 받아먹고 금세 사라지는 스타트업들이 종종 있었고 이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저한 감시와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존 스미스 교수가 창업자들에게 물었다.
“다들 고생들 많으시네요. 마무리는 잘 돼가죠?”
“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달 안에 서비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캐서린, 마크 하인버그, 앤드류. 이 세 친구는 본인들이 만든 프로그램에 확신을 가지며 교수에게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교수와 관계자들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질문과 답변을 오가며 서비스 전 마무리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순간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습니다. 취약점.”
태범이 외치며 사무실문을 덜컥 열고 들어오자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태범에게로 쏠렸다.
사무실 안에 창업자 3명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좁은 사무실에 사람들로 붐볐다.
뭔 상황인가 싶어 태범은 당황스러웠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무슨 일 있나 보네요. 다음에 올까요?”
오면 안 되는 시간에 온 것 같았다. 태범은 발을 돌려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취약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어디서 들었던 목소리에 태범은 귀를 쫑긋 세우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확인했다.
태범을 돌려세운 건 바로 존 스미스 교수였다. 분명 영국행 비행기 옆자리에 탔던 그 노인이었다.
캐서린에게 설명하기 위해 직접 초상화를 그려보기까지 했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 그때 비행기 그분…….”
태범은 존 스미스에게 손짓을 했지만 그는 태범을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본인의 인종이 아닌 다른 인종 사람을 구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양인인 태범은 존 스미스 교수의 눈에 다른 동양인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태범은 그런 존 스미스 박사에게 본인을 설명했다.
“런던행 비행기에서 저 만나지 않으셨어요? 런던 대학 존 스미스 교수님?”
“네?”
“저. 비행기에서 그림 그렸던 사람. 같이 수학 문제도…….”
“아…… 아! 맞아, 맞아. 그 사람!”
그제야 태범을 알아차렸는지 입을 벌리며 놀라워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죠?”
영국 땅도 좁긴 좁나 보다. 런던대 교수라는 걸 알았어도 이렇게 다시 만나는 건 엄청난 우연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런던대 학생인가요? 그때 한국에서 여행 왔다고 하지 않았나…….”
존 스미스 교수는 태범이 런던대 학생이라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그렇지 않은 이상 여행객이 이곳에 나타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존 스미스 교수의 착각은 태범의 말에 금방 풀렸다.
“스낵 피쳐 창업자 중 한 명이 제 여자 친구거든요. 그래서 잠깐 놀러 왔는데 일이 바쁠 때 왔나 보네요.”
“허허. 그때 말한 여자 친구가 여기 캐서린이었군요.”
존 스미스 교수는 이런 우연이 있냐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 태범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그래, 그건 그렇고 아까 취약점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컴퓨터 학과 교수라 그런지 취약점이라는 단어에 아주 민감하게 받아드리고 있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실용성도 중요하긴 하나, 사용자를 가지고 사업에 이용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보안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부분이었다.
튜링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존 스미스 교수가 이를 모를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