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75화 (75/188)

# 75

‘샘성 뮤직, 소리 천국, 뮤직 박스, 밍크 뮤직…….’

태범은 앨론 뮤직과 유사한 업종의 기업을 찾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에 ‘음악 감상’을 검색해봤다.

음악 관련 산업은 포화 직전에 있었다.

길거리의 편의점을 보는 듯 너도나도 음악 산업에 뛰어든 흔적이 보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애플리케이션부터 시작해 대기업까지 다양한 규모의 음악 관련 기업이 존재했다.

‘일단 분류를 좀 해야겠어.’

앨론 뮤직과 흡사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을 찾아내야 했다.

같은 음악 산업이라도 수익 구조가 다르면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현재 앨론 뮤직의 대부분 수익은 음원 유통 과정에서 발생했다.

간단히 말하면 음악을 대신 팔아주는 하나의 플랫폼이었다.

흔히 음악은 정부가 허락한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잘만 이용한다면 무궁무진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고 경영만 잘 된다면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었다.

태범은 앨론 뮤직과 마찬가지로 음원 유통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태범 씨, 뭐 모르는 거 있어?”

김진태 차장이 태범에게 물었다.

이 물음은 신입에 대한 하나의 예의였다.

대한민국 문화 특성(?)상 먼저 질문을 하는 걸 꺼려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특히 눈치를 보는 신입들 같은 경우는 그게 더 심했다.

김진태 차장도 이런 신입들의 심리를 잘 꿰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범에게 물은 것이었다.

“아니요. 아직 괜찮습니다.”

“정말?”

“네.”

“그래, 걸리는 게 있으면 꼭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김진태 차장의 이런 염려도 한순간이었다.

태범의 눈에는 빛이 나고 있었다.

서류를 씹어 먹을 것 같은 집중력을 보이며 강렬한 몰입을 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잡아가도 모를 지경이다.

“점심 먹고 하지?”

어느새 시간은 점심을 가리켰다.

역시 몰입만큼 시간을 빠르게 하는 건 없었다.

그렇게 3명의 회계사는 식사를 위해 다 같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는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회계사들로 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태범은 메뉴를 보기 위해 전시된 메뉴를 살펴봤다.

‘닭볶음탕!’

메뉴는 한식, 양식, 분식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태범은 한식에 있는 닭볶음탕이 당겼지만 김진태 차장의 발걸음은 양식으로 향했다.

줄이 길게 늘어선 탓에 서로 다른 줄에 설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태범과 용수는 눈치껏 차장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 점심 메뉴는 짜장밥이었다.

“이 짜장만 보면 중국이 생각나네.”

자리에 앉은 김진태 차장은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당연히 짜장이 중국 음식이니 중국 생각이 나지 아니면 일본이 생각날까?

친구였으면 그게 뭔 소리냐 한마디 했겠지만, 꾹 참았다.

“요즘 중국 자본이 대한민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는 거 잘 알지?”

“네? 네.”

“요즘 자문 업무하면서 투자 관련 건 들어와서 보면 하나같이 중국 자본이야.”

“그렇죠. 아무래도 중국에도 성장하면서 여윳돈이 생기다 보니…….”

“가끔은 미래가 걱정된다니까, 투자는 씨앗을 뿌리는 건데 그걸 중국이 하고 있으니 말이야. 결국 수확은 그쪽에서 다 해갈 것 아니야.”

차장은 현 대한민국의 투자 자본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안타까운 하소연을 이어갔다.

짜장밥 이야기가 중국 그리고 투자로 이어가니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모든 걸 재무, 투자로 보는 하나의 직업병으로 보였다.

물론 태범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한때 폰 노이만의 수리 이해력을 100% 채웠을 때 모든 게 수학 공식으로 보였다. 자꾸만 머리에는 숫자가 떠올랐고 모든 걸 수리 공식으로 이해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업이 회계사이니 큰 관심사가 회계로 바뀐 상황이었다.

“결국 혜안을 가진 사람이 해 먹는 거죠.”

태범은 차장의 말에 입으로 넣으려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결국 기업의 투자 성과는 투자자가 가치를 얼마나 잘 보는가에 따라 달렸다.

투자자라 하면 투자에 대한 혜안을 가져야만 했다.

그게 바로 태범 본인이 앞으로 할 일이었고 스캐너만 있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다고 믿었다.

“그건 그렇지. 결국 똑똑한 놈들이 먹는 거지. 그래도 이왕에 한국사람 손에서 투자가 이루어지면 좋잖아?”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오면 결국 중국의 개입과 간섭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문제가 김진태 차장에게는 별로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숟가락에 한마디씩.

식사 동안 김진태 차장의 경험담과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배를 두둑이 채우고 후식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하암…….”

태범은 고개를 돌려 하품을 하고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비교 대상의 기업을 경쟁력을 통해 한 번 더 거르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이럴 때 유용한 능력은 시장 통찰력(100%)이었다.

시장의 전반적인 구조와 흐름을 파악하고 시장에 속한 기업의 등급을 나눌 수 있다.

같은 수익 구조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수익과 미래의 가능성은 천지차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비교 대상에조차 집어넣을 수 없는 기업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껍데기만 남아있는 기업.

재무 상태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앨론 뮤직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태범은 정리해 놓은 동종기업의 명단 중 비교 대상이 아닌 기업은 지워냈다.

가치조차 산정할 수 없는 기업들은 일단 거르고 앨론 뮤직과 견줄 수 있는 기업들만 남겨 놨다.

‘샘성 뮤직, 알라딘 뮤직, 뮤직 박스, 녹색창 뮤직…….’

뮤직, 뮤직, 뮤직. 대부분의 음악 감상 어플에는 ‘뮤직’이라는 단어가 필수 있듯 보였다.

직관적이긴 하나 개성 없는 이름들이다.

이렇게 분류된 기업을 토대로 태범은 본격적으론 워렌버핏의 기업 분석력(100%)을 이용해 비교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가치 투자로 주식을 할 때처럼 기업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객관적으로 작성된 가치 평가서에 슬쩍 MSG를 뿌려 앨런 뮤직의 미래 가치를 빛내면 됐다.

누구나 이 기업을 보면 입맛을 다시게 할 만한 가치 평가서가 태범의 손에서 작성되고 있었다.

* * *

얼마 후 최종 가치 평가 보고서를 어빌리티 측에 제출했고 얼마 있지 않아 그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이메일을 통한 답장에는 보고서에 대한 질문과 추가답변 요구서가 담겨있었다.

어빌리티 측에서 요구한 질문은 똑같이 3명의 회계사에게 돌아갔고 각자 맡은 부분만 처리하면 됐다.

“오, 예리한데.”

어빌리티의 질문은 정곡을 찌르고 아주 섬세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는 득과 실을 정확히 따져야 할 문제이기에 꼼꼼히 따지는 건 나쁜 게 아니었다.

단지 이를 처리하는 입장에서 좀 신경이 쓰일 뿐이다.

태범이 작성할 답변은 본인이 맡은 시장 접근법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와 관련된 답변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이미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태범의 머릿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 * *

“다들 수고 많았어.”

앨론 뮤직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오늘로 끝났다.

물론 투자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련 업무는 지속하겠지만 대략 큰 업무는 해치운 셈이었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마무리를 지으려던 때였다.

“네, 상정회계법인 재무 자문 본부 김진태입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가려는 찰나 김진태 차장은 전화를 받았다.

태범와 용수는 그의 전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서려했다.

순간 차장은 미간의 잔뜩 힘을 주며 손바닥 내밀며 멈출 것을 명령했다.

‘왜 저러시지?’

찰나의 순간이지만 차장이 전화를 받은 뒤 주름이 깊어지는 게 보였다.

태범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하…… 정말입니까?”

김진태 차장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입술을 물었다.

그의 몸짓만 봐도 알 것 같았다.

100%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평소 저런 표정을 보기 어려운데 단지 전화 한 통으로 고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죄송합니다.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진태 차장의 입에서 연이은 사과가 나왔다.

“후…….”

계속 사과만 하다가 전화를 끊은 김진태 차장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문제라도?”

“용수 씨…….”

차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김용수의 이름을 불렀다.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애써 참을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네?!”

용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네?”

“왜 그러시는지…….”

“아니, 용수 씨가 한 수익 가치 평가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게…….”

“당장 노트북 켜보세요!”

“아…… 네!”

군대 조교가 명령을 내리듯 김진태 차장은 강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용수는 겁에 질린 듯 손을 떨며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을 켠 후, 기업 가치 평가서 중 용수가 맡았던 부분을 화면에 띄운 뒤 살펴보기 시작했다.

“할인율 계산한 부분 봐 봐요.”

모두의 시선이 노트북으로 향했다.

‘헉! 큰일이다.’

계산할 것도 없이 태범은 노트북 화면을 보자마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인율이 1이하여야만 하는데 이상하게도 1이상으로 잡혀있었다.

할인율 부분이 크게 잘못되어있었고 그로 인해 기업의 가치가 뻥튀기된 것이다.

할인율은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할 때 쓰이는 것이었다.

금리가 5%일 때 미래에 105원을 벌어들인다면 현재의 가치는 100원이다.

당연히 미래의 예상 수익에서 현재가치를 구하려면 1이하로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 내가 왜이랬지.”

용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본인이 한 걸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분명 실수였다.

회계를 공부하는 대학생도 알만한 걸 단지 한 개의 숫자 때문에 결과는 크게 달라졌다.

“끝났어.”

용수는 다시 숫자를 고치며 수정을 하고 있지만 김진태 차장은 좌절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지금 고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야. 어빌리티 측에서 투자를 못하겠다잖아”

아마도 앨론 뮤직에 대한 투자가 무산된 듯했다.

만약 회계사 측의 오류나 실수로 투자가 무산됐을 시에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고객을 잃는 건 둘째 치고 심하면 법정 공방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용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

김용수의 질문에 김진태 차장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한숨을 내뱉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이렇게 감정 낭비로 에너지를 소모시킬 때가 아니지!’

무기력해 보이는 차장의 모습에, 태범은 안타까워했다.

이를 그냥 이대로 둘 수만은 없었다.

지금 한숨을 쉴 때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야만 했다.

“차장님, 어빌리티 측이랑 만나보면 안 됩니까?”

태범은 차장에게 물었다.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무릎이라도 꿇고 싹싹 빌게?”

차장은 낙심한 듯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였다.

“아니요. 설득해야죠. 그들도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 아닌가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태범은 스캐너를 얻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실패를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를 이대로 둔다면 태범에게는 큰 오점이 남는 것이었다.

“뭐 대책이라도 있어?”

태범의 당당한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천재의 이미지 때문일까 힘없이 처져있던 차장의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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