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55%)-창의성(30%)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대단해…….”
오늘의 스캔을 마치고, 태범은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 방 주위를 살펴봤다.
새롭고, 신비로웠다.
분명 10년 이상을 살아온 집이고 매일 잠을 자던 방이지만 다빈치의 능력을 스캔할 때마다 다르게 느껴졌다.
똑같은 공간이라도 창의성과 미술 감각이 뛰어나면 공간과 사물을 왜곡해서 예술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잠시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빈치의 능력이 주는 예술적 영감을 느끼고 있었다.
“형. 형!”
“아. 깜짝이야.”
그것도 잠시 동생 태인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태범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분명 문을 잠가놨는데…….’
항상 스캐너를 사용할 때면 방문을 잠가 놓는데, 다시 보니 제대로 잠겨있지 않았다.
“노크 좀 하라니까!”
“알았어, 할게.”
다른 형제들도 다 이런 걸까, 태인은 도대체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라고 몇 번이나 일렀지만 그것도 잠깐 일뿐 이렇게 사람을 놀래 킨다.
‘빨리 독립을 해야지…….’
태범은 슬슬 독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서 스캐너를 사용할 때마다, 혹시나 누가 볼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동생이란 놈은 이렇게 불쑥 찾아오니 더 이상 집에 스캐너를 둘 수가 없었다.
“그래, 왜?”
태범은 인상을 찌푸리며 태인에게 말했다.
“형,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이거. 다 형이 그린 거잖아.”
동생 태인이는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태범의 유화 그림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치 유럽의 르네상스풍과 현대 미술의 추상적인 느낌이 가미되어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이었다.
“응, 내가 그렸긴 했지.”
“아니, 형이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이렇게 그려?”
태범의 미술 능력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이에 대한 걸 태인이 의심하고 있었다.
20년을 같이 살며 태인은 태범이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걸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 같은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림 실력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내가 안 한 것뿐이지 원래 그림에 관심 있었어.”
태범은 애써 태연한 한 척 표정 변화 없이 태인에게 말했다.
“형이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고?”
“응, 원래 좋아했긴 했는데 안 한 거뿐이었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배우고 금방 할 수 있지.”
“진짜? 그런 거야?”
“그렇다니까!”
태범은 대충 변명거리를 늘여놨지만, 사실 별 믿을 수 있는 변명은 아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태인 역시 태범의 시원치 않은 대답에 별 공감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형, 그러면 나 유화 그리는 것 좀 알려줘.”
“그건 왜?”
“학교에서 수업이 있는데 내가 유화 그리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태인이 뭔가를 부탁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같이 게임을 할 때 태범이 옆에 붙어 게임을 알려달라며 부탁을 한 적이 있어도 이렇게 다 크고 나서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갔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태인은 자신의 관심사인 그림에 대해 태범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알았어. 준비해봐.”
태범의 한 마디에 태인은 유화에 필요한 물감, 캔버스, 기름, 붓 등 준비물을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말을 잘 듣던 애인가 할 정도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유화에 있어서 중요한 건, 깊이감과 두께감이야. 네가 색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고, 원하는 깊이를 나타낼 수 있느냐가…….”
태범은 유화에 관해 설명을 늘여놓으며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태인은 항상 컴퓨터 타블렛으로 만화나 그리던 애라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걸 익숙지 않아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화는 색을 직접 만들고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칠해야 하므로 확실히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 이렇게.”
어느새 캔버스 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그려졌다.
마치 하늘을 날던 새가 진짜 나무 인 줄 알고 착각해 앉을 것만 같았다.
“형은 색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구도로 그림을 그릴지 머릿속에 바로 떠올라?”
그저 캔버스 모퉁이 위에 그려진 작은 나무 한 그루지만 태인은 형의 솜씨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태범은 그림을 그릴 때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바로 붓질을 했기 때문이다.
채색은 어떻게 할지, 구도는 어떻게 잡고, 어떤 기법을 쓸지 등 많은 고민과 함께 붓이 움직이는 게 당연하지만 태범에게 그런 모습은 없었다.
“기법이나 그런 것 너무 따지지 말고 너의 느낌대로 그려봐.”
태범은 태인의 붓놀림을 보며 옆에서 평가와 수정을 해주며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있었다.
‘쟤네들이 웬일…….’
방문이 열린 틈 사이로 어머니는 태인과 태범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본 태범과 태인의 뒷모습은 정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우애 깊은 형제의 모습이었다.
* * *
일을 하던 도중 태범은 영월식품 분식 회계와 관련하여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태범도 사람인지라 가끔 농땡이를 부리곤 했다.
‘아직도 검색어 1위네…….’
요즘 한동안 영월식품 뉴스가 메인과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나름대로 전통도 있고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식품회사가 저렇게 방만한 경영을 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 영월식품이 망한 건 모두 경영자 때문 아닌가, 거의 50년이나 돼가는 기업인데 결국 재벌 2세가 다 말아먹었네.
└ 이제부터 영월식품 꺼 안 사 먹는다!
└ 결국 저기도 더러운 곳이었구나.
└ 얼마나 허술하게 작성됐으면 신입 회계사 혼자 분식 회계를 발견하냐?
└ 와…… 회계사 깡도 좋다. 밑에서 저러기 힘들었을 텐데.
많은 댓글이 영월식품을 공격하고 있지만 그중 상당수에 태범을 지칭하는 신입 회계사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실명은 공개되지 강태범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지만 경제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강태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입 회계사 주제에 대한민국의 대표 식품 회사를 박살 내버렸으니 말이다.
영월식품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나 투자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정부패한 기업을 청산시켰다는 의미에서 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반응과 함께 인터넷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론하는 걸 보니 왠지 신기했다.
연예인이나 받을 법한 관심이 태범에게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띠리링.
책상 위에 있던 회사 전화가 울리고 있다.
“네, 재무 자문 본부 강태범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표 비서실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대표님이 호출하십니다. 대표실로 올라오시겠어요?”
“대표님이요?”
무슨 일일까,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대표가 개인적으로 태범을 호출했다.
이번 영월식품 관련해서 쓴 소리를 늘여 놓을 셈인가, 분명 좋은 일로 부르는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네, 가능하면 바로 올라오셨으면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예고 없이 갑작스런 대표의 호출이었다.
태범은 비서실에서 연락을 받은 후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대표실로 향했다.
“저기, 강태범 회계사입니다. 절 부르셨다고?”
“네, 잠시만요.”
대표실 앞에 비서실이 있었고, 비서실에서 신분을 밝힌 후, 잠시 대기를 하다가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의 비서가 대표실의 문을 열어주며 태범을 안내해주는데 막상 문 앞에 서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다.
똑. 똑.
“대표님, 강태범 회계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태범의 눈앞에는 의자에 앉아있는 이재진 대표이사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금테안경에 머리는 바짝 올렸고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들어와요.”
태범이 대표실로 들어오자 대표이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태범을 맞이했다.
“앉으세요.”
대표는 검은색 가죽 소파에 손짓을 하며 자리를 권했고 태범은 바로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태범은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단출하네.’
태범이 생각하고 있던 대표실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저 좀 넓은 교수실 정도의 느낌이랄까 사치스러운 물건은 없었고 그저 기본적인 사무 가구와 용품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도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서류와 책들로 한쪽 벽을 이루고 있었다.
“태범 씨를 알고 있긴 했는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
“아. 저를 알고 계셨나요?”
“그럼 잘 알지. 우리 아들을 제치고 회계사 수석으로 합격한 사람 아니야?”
대표도 태범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제는 상정회계법인에서 강태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어쩌면 가장 위에 있는 대표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태범 씨를 여기에 부른 건 대충 예상은 할 텐데 이번에 영월식품 분식 회계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려고…….”
올 게 왔구나!
역시나 영월식품 때문에 태범을 부른 것이었다.
이번 영월식품 분식 회계 사건으로 상정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법적인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상정회계법인 역시 대외적인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상황이었다.
돈 때문에 회계사가 지켜야 할 원칙과 윤리를 내버리고 불법적인 행동을 했기에 이는 회계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혹시나 이런 여파로 대표가 혼을 내지는 않을까 태범은 대표의 말을 듣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태범 씨, 이번 영월식품에 개입 된 우리 법인의 회계사들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정부에서나 여론이나 상정회계법인을 포함해서 회계사 전체를 물어뜯고 있단 말이야.”
“네.”
“사실 예전부터 암묵적으로 회계법인과 고객사인 기업 간의 거래가 있긴 있었거든,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대표는 회계법인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암묵적으로 봐주기 감사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물론 원칙에 따라 정석대로 감사를 하는 것이 회계사의 기본 윤리에 속하지만 이는 고객 입장인 기업에서 별 반기지 않았고,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영업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태범 씨가 다시 회계사들의 이미지를 살려줬으면 좋겠어.”
“네? 제가요?”
“그래, 솔직히 이번 영월식품 분식 회계 사건의 가장 수혜자가 태범 씨 아니야? 언론이나, 여론이나 신입 회계사가 부패 기업을 흔들었다며 완전 찬양을 하던데…….”
이번 분식 회계에 가담한 회계사들과는 반대로 태범은 회계사로서 커다란 명예를 얻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회계사라며 칭호를 붙여줬고 일각에서는 미친 회계사라며 신입이 일으킨 패기와 행동을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그리고 대표는 이러한 이미지를 획득한 태범에게 다시 회계사들의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긴 한데 제가 어떻게?”
“솔직히 말해서, 태범 씨는 이제 감사일 쪽은 하기 힘들 거야.”
“그렇겠죠. 감사를 받는 기업들이 꺼려하겠죠.”
“감사 업무를 잃었어도 대신 다른 업무에서 기업들이 태범 씨를 찾고 있어.”
“그게 어떤 거죠?”
“지금 재무 자문 본부에 지원 나와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참에 그쪽으로 본부를 아예 옮기지?”
“지원이 아니라 아예 본부를 옮기라고요?”
“이번에 태범 씨 혼자 분식 회계 발견하고 처리했잖아? 지금 알 사람들은 다 알더라고. 수석 출신에 신입 회계사 혼자 영월식품 분식 회계 잡아내고. 이 정도면 사람들에게 능력을 입증한 셈이지. 감사 업무가 아닌 고객을 돕는 업무면 고객들이 분명 많이 찾을 거야.”
대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신을 감시, 감사하는 사람이 능력이 너무 좋으면 꺼려지겠지만 일에 대해 도움이 필요한 업무라면 좋은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게 당연했다.
“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범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럼 당장 본부 이동시켜 줄 테니까, 이제 재무 자문 본부에서 일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내 제안 바로 받아줘서 고맙네. 분명 자네가 자문 쪽에서 일하면 고객들한테 인기가 많을 거야. 감사와 다르게 자문은 실력 좋은 회계사가 최고거든.”
“저도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번 사건으로 회사에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다행이다.
대표에게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은 일이 생겼다.
“그건 앞으로 태범 씨가 잘 해나가면 되는 거고 아 그리고 주말에 봉사 활동 있는 거 알지? 나도 가니까 그때 다시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