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35%)-창의성(20%)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능력을 얻은 지도 한 달 반쯤이 지났다.
이제 미술에는 어느 정도 경지가 오른 상황.
아직 35%뿐이지만 100%가 된다면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인지 태범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기대가 됐다.
주말 아침, 태범은 스캔을 마치고 책상 옆에 서 있는 캔버스 앞에 의자를 옮기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붓을 잡더니 자신만의 예술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볼펜으로 시작했다가 4B연필에 이어 이제는 나름 화가로 불려도 될 만큼 도구만큼은 제법 갖추고 있었다.
슥슥.
붓이 캔버스 위를 스치며 나는 희미한 붓질 소리는 귓속을 간질이듯 묘한 쾌감을 가져왔다.
예술에서 나오는 쾌감은 다른 감정과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
여태껏 이 쾌감을 모르고 살아왔던 게 한탄스러울 정도였고 이제야 예술인들이 왜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술의 끈을 놓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거 한 100년 뒤에 역사적 작품으로 남아서 수백, 수천억에 팔리는 건 아닌가?’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만 해도 가격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수천억 수조에 이른다고 추정될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태범의 그림은 어떨까.
“푸…… 흡”
남이 보면 재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상상은 자유라고 태범은 실실 웃으며 먼 미래를 떠올렸다.
혹시나 본인이 그린 그림이 후대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되어 교과서에 실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예술 혼을 일깨워주는 작품이 되는 건 아닐지 혼자 상상을 했다.
* * *
영월식품 수출 식품 보관 창고.
태범을 포함해 영월식품의 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사들은 부산에 있는 식품 보관 창고의 재고 실사를 나왔다.
실제 장부에 맞게 제품과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산의 항목이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이 부분의 재고를 실사할 겁니다.”
창고로 들어가기 전, 컨테이너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서 회계사들은 조사 항목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회계사에게는 서류가 주어졌는데 그곳에는 오늘 조사할 재고들의 품목과 수량이 나와 있었다.
태범은 받은 서류를 한 번 쓱 보더니 양현성 과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거만 확인하면 되는 겁니까?”
“네, 여기 나와 있는 물품만 가서 확인하면 됩니다.”
“음…….”
양현성의 말에 태범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속으로 탄식을 삼키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영월식품의 재고 조사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거라 추측됐다.
식품 창고 특성상 수많은 재고들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고 무작위 선택을 통해 재고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했지만 서류에는 무작위가 아닌 지정된 재고 상품들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조작해 논 거는 보지 말고 정상적인 것만 보라는 것과 같았다.
대놓고 눈을 가리는 행위였다.
하지만 태범은 일단 지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리됐든 저리됐든 지금은 박철중 전무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이기에 아직은 본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태범은 먹잇감이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잡자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기말 감사가 끝나는 시점이 될 것이다.
가벼운 사전 회의가 있고 회계사들은 수출용 물류 창고로 향하며 본격적인 재고 조사에 돌입했다.
“으…… 엄청 많네.”
창고 안은 박스로 산을 이루듯, 엄청난 양의 상품들이 쌓여있었다.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고 회계사들은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다 조사하려면 피똥 싸겠는데요. 하하. 그러니까 다들 편하게 합시다.”
양현성 과장이 장난치듯 너스레를 떨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으니 결국 피똥 싸고 싶지 않으면 대충조사하고 빠지자는 뉘앙스였다.
수많은 상품에 한바탕 놀란 후, 본격적으로 서류에 적혀있는 상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일을 시작했다.
“저기 있는 박스 열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1, 2, 3, 4, 5…….”
회계사들은 창고의 상품을 확인하고 있었다.
서류에 적혀있는 품목이 놓인 위치를 찾아가 손가락으로 집으며 하나하나 개수를 세어갔다.
태범이 역시 창고를 거닐며 재고조사에 나섰다.
“35, 36, 37…….”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날카롭게 눈을 뜬 후 박스 속 상품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맞습니까?”
“네, 맞네요. 이번에는 이곳으로 가보죠.”
태범의 옆에는 창고 직원 한 명이 자석처럼 붙어 다니며 실사를 돕고 있었다.
명목상 창고를 안내하기 위해 있는 직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감시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기는 뭐에요?”
상품 확인을 마치고 다른 상품으로 이동하려는 도중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정된 상품이 아닌 걸 조사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이미 이것들은 재고 조사를 대비해 말을 맞추고 준비를 했을 텐데 이를 벗어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태범은 바로 실행에 옮겨 보기로 했다.
“저기 뒤에 있는 것도 열어 보세요.”
“네? 이것도요?”
“네, 열어보세요.”
“아…….”
태범이 서류에 지정된 위치의 상품이 아닌, 다른 걸 손으로 가리키자 창고 직원은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가 잘못됐나요?”
“아…… 아니요…….”
“열어보세요.”
“네…….”
창고 직원은 머뭇거리며 손은 박스 위에서 멈춘 채 있었다.
“열어 보시라니까요. 제가 직접 열까요?”
“태범 씨, 거긴 아니에요. 저쪽으로 넘어가요.”
저 멀리 양현성 과장이 태범의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달려와 행동을 멈춰 세웠다.
“아! 여기 아니구나.”
양현성의 지적에 태범은 실수인 척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서류에 있는 것만 확인하세요. 무슨 창고에 있는 거 다 확인하고 싶으세요?”
“제가 잠깐 착각을 해버렸네요.”
“에이. 똑똑한 사람이 그러면 안 되죠.”
“아…… 확실히 하겠습니다.”
“이것 말고도 할 게 많으니까 빨리 끝내고 가죠.”
양현성 과장이 황급히 태범의 어깨를 밀치듯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범의 옆에 있던 창고 직원은 놀란 심장을 쓸어내린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56, 57, 58…….”
재고 조사는 숫자와의 싸움이었다.
상품 개수를 몇 번이나 세고, 확인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겨울이라 금방 해가 졌고 퇴근 시간을 알려왔다.
이미 오늘 할당량을 마친 태범은 다른 회계사들을 돕고 있었다.
“도와줄까요?”
“벌써 다 확인했어요?”
태범은 자신이 손에 쥔 서류의 모든 항목을 확인하고 모자라 영미에게 다가가 옆에서 도와주겠다며 손을 건넸다.
“네, 그래 주시면 좋죠.”
안영미는 태범의 호의를 바로 받아들였고 같이 창고를 걷기 시작했다.
“뭐든 빠르시네요.”
안영미는 태범의 빠른 업무처리 속도에 또 한 번 놀라워했다.
“제가 타지 생활을 별로 안 좋아 하거든요. 빨리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야죠.”
평소 너무 많이들은 말이라 태범은 그녀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영미 씨, 웬만하면 여기서 손 떼는 게 좋으실 거예요.”
재고를 조사하다가 창고 깊은 곳까지 들어 가다보면 어느 순간 둘만 남게 되던 타이밍이 있었다.
태범은 그 틈을 타 속삭이듯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밝은 미래를 보시고 라인을 타신 것 같은데, 잘 못 탄 거예요. 기말 감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나오세요.”
태범의 갑작스러운 말에 안영미는 당황한 눈치였다.
혹시나 누가 들을까 주변을 살피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하지만 태범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그녀 역시 본인이 분식 회계에 일조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고. 이 상황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태범 씨도 같은 배를 탄 거 아닌가요?”
안영미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더니 태범에게 슬쩍 물었다.
“뭐…….”
태범은 확실히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태범의 마음속에는 이미 박철중 전무의 배에서 내린 지 오래됐으니 말이다.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배인 줄 알고 탔지만 알고 보니 다 낡아서 곧 있으면 침몰할 것 같은 배였다.
그리고 이번 기말 감사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태범은 그녀가 그 낡은 배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때까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는 그녀 역시 태범의 먹잇감으로 희생 될 테니 말이다.
“영미 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직 사회 생활한 지 얼마 안됐잖아요?”
“네.”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너무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가죠.”
태범은 넌지시 하고자 할 말을 전했고 영미는 눈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잠깐 고민에 빠졌다.
“생각 많이 해보세요.”
태범은 고민에 빠진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범의 손에는 이미 많은 분식 회계 증거들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기업의 파산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본인이 터트리지 않더라도 언젠가 터질 만큼 위험을 가득 안고 있는 문제였다.
경영진의 개인적 비용처리는 약과에 불과했다.
재고품을 조작하여 자산을 부풀리는 것도 모자라 수출 상품과 수출액을 조작하며 매출액을 허위로 작성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들은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꼴에 불과했다.
그리고 저 시한 폭탄이 터지는 날, 괜한 사람들이 다칠까 태범은 걱정하고 있었다.
* * *
재고 조사가 끝나고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박철중 전무의 부름으로 그의 측근 회계사들이 모두 술자리에 모였다.
한참 기말 감사 준비로 바쁠 시간이었지만 전무가 부르니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자 다들 현장에 나가느라 수고들 많았어요.”
“아닙니다, 전무님. 직접 발로 뛰는 것보다 일에 대한 보람을 주는 건 없죠. 항상 전문님과 함께 일하면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항상 그렇듯 박철중 전무의 첫마디와 함께 그의 말에 딸랑거리는 양현성 과장의 말이 더해지며 회식의 시작을 알렸다.
“태범 씨, 처음 감사일 해보니까 어때?”
박철중 전무는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태범에게 질문을 건넸다.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고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야, 좋아. 일은 즐겨야지 그래.”
“영미 씨는?”
“저는 뭐…… 힘들 것도 있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는 것 같아요.”
“맞아. 원래 이 바닥이 힘들긴 해도, 한 만큼 보상이 있는 법이지. 나랑 같이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니까, 신입들 봐. 분명 앞으로 잘 될 거야.”
항상 자리가 있으면 박철중 전무는 신입을 띄어주기에 바빴다.
이는 자기에게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기술로 보였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어 그래, 왔나. 요즘 일은 잘 돼 가나?”
술자리가 무르익기 시작할 찰나 낯선 남성 한 명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박철중 전무에게 ‘형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살갑게 대했다.
“형님, 덕분에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 자리에 앉아.”
박철중 전무의 권유에 남자는 자연스럽게 회계사들 테이블에 합류했다. 그리고 박철중은 그 남자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 인사들 하세요. 여기는 여러분들이 감사를 맡고 있는 영월식품의 박종덕 이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영월식품에 박종덕 이사입니다.”
박종덕 이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회계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회계사들 역시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회계사님들 열심히 저희 회사를 위해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종덕 이사는 영월식품을 대표해 회계사들과 관계를 쌓고자 하는 거로 보였다.
물론 그 관계가 은밀하고 어두운 관계였지만 말이다.
“많이 봤던 얼굴들도 있고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네요.”
박종덕 이사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얼굴들을 쓱 살펴보며 말했다.
“아. 저기 두 명은 신입이라 처음 봤을 거야.”
박철중 전무는 태범과 영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처음 오신 분들이구나. 앞으로 잘 해드려야겠네요.”
“그래, 앞으로 너희 회사에 꾸준히 일 들어갈 사람들이니까, 잘 해봐.”
“알겠습니다, 형님.”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박철중 전무와 박종덕 이사.
태범은 안주 오징어를 씹으며 그 둘을 슬쩍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웃을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어쩌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박철중 전무의 하얀 이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