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59화 (59/188)

# 59

편집부의 권희은 차장은 인사를 한 뒤, 종이뭉치를 들고는 태범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만든 문제네요.”

종이 위에는 태범이 만들었던 회계사 문제가 적혀있었다.

“네, 회계사 준비생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얻었거든요.”

“커뮤니티 사이트요?”

“네, 회계사 준비생들이 애용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곳에 몇몇 문제가 있더라고요. 알아보니까 우리대학교 출신의 강태범 회계사분이 만든 문제라 들었고요. 근데 운이 좋은 건지 하필 우리 회사네요?”

“아, 그랬던 거군요.”

“잘 모르셨나 보네요?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름 인기 좀 얻으셨던데요?”

“제가요?”

“네,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인데 한 번도 안 들어가 보셨어요?”

“네, 제가 그쪽은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지금 그 커뮤니티에서 회계사님이 만든 문제가 인기더라고요. 지금 다른 문제도 달라면서 댓글로 아우성을 치던데요? 호호.”

“아…… 그런가요, 이게 왜 인기인지 모르겠네요.”

태범은 본인이 만든 문제에 대한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일단 말은 그렇게 하니 믿겠는데, 본인은 별 대단한 문제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공부를 위해 대충 끄적거리며 만들었던 문제였으니 말이다.

“제가 회계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이쪽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저도 잠깐 몇 문제 보고 검토해봤는데 회계사님이 만든 문제는 기존의 문제지에 있던 문제와는 달랐어요.”

“제가 좀 이것저것 섞긴 했죠.”

“맞아요. 보통 만들어진 문제는 세무, 회계, 경영, 경제 이런 식으로 분리가 되어있는데 회계사님이 만든 문제는 절묘하게 섞여 있더라고요. 근데 문제가 빈틈이 없고 완벽하다 할까, 그런 걸 느꼈어요.”

권희은 차장은 태범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이번 회계사 시험에 수석한 사람이 만든 문제라니까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거겠죠?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벌써 제가 수석이라는 거까지 알고 있나보네요.”

“원래 인터넷이라는 곳이 그렇잖아요.”

태범은 한 번 더 인터넷의 힘과 소문의 속도에 대해 실감했다.

“명품이 왜 명품인지 아세요? 물론 품질 면에서 우수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름값 때문에 명품이죠. 회계사님도 지금 수석이라는 타이틀에 브랜드가 붙어있는 셈이에요.”

권희은 차장은 혼자 질답을 모두 하며 북 치고 장구 치고 태범을 띄어주려 애쓰고 있었다.

사람을 기분을 좋게 해주는 데는 항상 이유가 있는 법 태범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지켜봤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 부서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아시죠?”

“네, 회계 관련 서적 출판하는 곳 아닌가요?”

이만해서 태범은 권희은 차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도 출판 관련된 이야기를 할 것처럼 보였다.

“네, 저희가 회계사님이나 교수님들을 저자로 책을 출판하는데요. 이번에 태범 회계사님이 만드신 문제가 마음에 들어서요.”

“아…… 지금 제가 신입이고, 감사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네, 가능해요. 상정회계법인에 계신 분들도 저자로 많이 참여하셨어요.”

“혹시 자세한 사항 같은 건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출판 쪽에는 전혀 문외한 상황이라.”

“인세는 판매액의 10%로 해드리고요, 초판은 예약 주문을 받아보고 반응에 따라 수량을 조절할 거고요. 아마도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좋을 거라 보거든요.”

“그럼 저는 문제만 제공하면 되는 건가요?”

“네, 나머지 편집, 영업 같은 출판에 필요한 것은 모두 저희가 해드려요.”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미 시험공부 할 때 작성해 놓은 문제들은 한가득 있었고 출판과 관련된 업무는 알아서 해준다니 말이다.

태범은 전혀 손해 볼 건 없었다. 그저 약간의 수고만 덜면 될 뿐이었다.

“네, 그럼 한번 해보고 싶네요.”

“잘 생각하셨어요. 이걸로 은근히 쏠쏠히 용돈 벌이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거든요. 어떤 회계사분들은 책이 잘나가서 교육 쪽으로 진출하신 분들도 있고요.”

“아, 그런데 정확한 출판 날짜는 어떻게 되죠? 혹시 모르니 저도 스케줄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요. 회계사분들 많이 바쁘신 건 저희도 잘 알죠. 저기 이거 제 명함인데, 혹시 명함 한 개만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준비되면 연락드릴게요.”

권희은 차장은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태범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명함을 받은 태범도 마찬가지로 명함을 건넸다.

“준비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럼 다음에 또 뵈죠.”

“네, 연락기다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태범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다시 감사1본부 사무실로 올라갔다.

“태범아.”

“네.”

강인후 차장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태범에게 손을 까닥이며 불렀다.

“그래? 출판부는 갔다 왔어?”

“네, 방금 갔다 오는 길이에요.”

“그래, 거기서는 뭐라냐?”

“저 아마 저자로 출판 작업에 들어갈 것 같아요.”

“아, 출판 제안 받았어?”

“네, 아직 확정은 된 게 아니고 계약서 준비해서 다시 연락해준다고 했어요.”

“흠…….”

태범의 말에 강인후 차장은 고개를 기울이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야, 그거 골 아플 건데 나도 공동 저자로 법인세 관련 서적 출판 작업에 참여한 적 있었는데 쉬운 게 아니었거든. 머릿속에 아는 내용이라도 이걸 또 설명문이나 문제로 만들어 내는 데 애를 먹었다니까.”

“아! 저는 문제만 제공하는 거로 말이 돼있어서요.”

“문제? 아까 그 문제?”

“네, 제가 회계사 공부할 때 만든 문제들이 있거든요. 지금도 집에 가보면 노트에 잔뜩 있어요. 아마 힘들건 없을 것 같아요.”

“하긴 당길 수 있을 때 당겨야지. 우리 같은 샐러리맨들이 이것저것 따지면 안 되긴 하지.”

“네.”

태범은 강인후 차장의 말에 100% 공감했다.

돈을 얻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운에 포함되는 타이밍이 성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니 말이다.

“아! 그건 그렇고 태범이 너 다음 필드 정해졌다.”

“네? 어디죠?”

“영월식품”

“영월식품이요?”

영월식품이라 하면 대한민국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식품 회사이다.

인근 슈퍼에만 가도 영월이라고 찍혀있는 간편 식품들이 즐비하고 이 기업의 상품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 간첩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그리고 하필 이것도 운명인지, 우연인지 작년 추석에 큰아버지가 추천해준 종목이자 자칫해서 집안을 말아먹게 할 뻔한 기업이었다.

작년에 오너 일가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 거래가 적발되는 바람에 많은 규탄과 함께 불매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는 게 아니라, 서수철 부장님이 인차지(감사 현장 책임자)로 들어 갈 거야.”

“서수철 부장님이요?”

“응.”

태범이 감사를 맡았던 이전의 두 팀과는 다르게 운영될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기업의 규모가 커서 그런지, 책임자 역시 차장이 아닌 부장급으로 높아졌다.

“아! 그리고 명심할 게 있어.”

강인후 차장은 뭔가 조심스럽게 할 말이 있는지, 태범을 가까이 끌어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뭔데 그러시죠?”

“이번에 영월식품은 박철중 전무님이 직접 마크하시는 기업이거든.”

“네.”

“직접 마크한다는 게 무슨 말인 줄 아나?”

“아니요. 잘…….”

“박철중 전무님과 경영진이 어느 정도 두터운 사이라는 거지. 영월식품과 관련된 계약은 전무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거고.”

박철중 전무, 태범과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자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태범의 귀가 솔깃해졌다.

해외 연수 마지막 날 그 이후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혹시 본인을 잊었나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이 들려오니, 어쩌면 지금 받은 업무가 우연치 않게 부여된 게 아닌, 박철중 전무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럼 기존의 중간감사와 다른 게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감사야 그게 그거니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잘하면 되는데, 좀 눈치껏 행동하긴 해야 할 거야.”

“아…… 눈치…….”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자면 그쪽 경영진하고 너무 밉보이지 말라는 거지. 문제가 발견됐으면 인차지(감사 현장 책임자)에게 먼저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게 좋은 거야.”

강인후 차장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껏 맡았던 기업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은 갔다.

“거기 가서는 단독으로 행동하려 하지 말고, 항상 인차지에게 보고 한 뒤 일을 처리하고 고객사와도 트러블이 없도록 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강인후 차장은 태범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자…… 전기조서야. 오늘 대충 검토하고 내일부터 필드로 출근해.”

강인후 차장은 영월식품의 전기조사가 담긴 USB를 건네주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잘하고 와.”

강인후 차장은 태범의 어깨를 한번 토닥이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태범은 차장에게 받은 USB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영월식품이라…….’

* * *

[창의성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5%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20%)-창의성(5%)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퇴근 후 돌아와 새벽에 하지 못했던 스캔을 마무리 짓고 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A4용지를 펼쳐 그 위에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태범의 책상 위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진 A4용지가 한 움큼 쌓여있었다.

퇴근 후 집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어느새 작품이 꽤 많이 만들어진 것이다.

‘권희은 차장 왼쪽 눈 아래에 조그마한 점이 있었지.’

태범은 오늘 처음 봤던 출판부의 권희운 차장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태범은 처음 본 사람의 얼굴을 그리곤 했다.

자신의 암기력과 그림실력을 동시에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태범은 단지 한 번만 보고 그들의 외모가 모두 기억해 냈다.

조그마한 잡티부터 시작해 주름 하나까지 태범이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려울 게 아니었다.

쓱쓱.

이제는 볼펜이 아닌 오늘 퇴근길에 사가지고 온 4B연필을 이용해 명암을 줘가며 그렸다.

손목에 힘을 빼고, 연필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 명암과 질감이 그럴싸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전문가 수준의 영역은 아니지만, 완벽한 암기력이 더해져서 그런지 세심한 부분에서는 그 어떤 것 그림보다 월등했다.

[캐서린: 이거 정말 네가 그린 거야?]

그림을 그리던 중 캐서린에게 메시지가 왔다.

퇴근하고 저녁 이 시간이 유일하게 영국에 있는 캐서린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때였다.

지금이 8시니, 영국은 점심쯤 됐을 것이다.

태범은 손에 쥔 연필을 놓고 스마트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강태범: 응, 어때 똑같지?]

[캐서린: 그림은 또 언제 배운 거야?]

[강태범: 최근에 배우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

어제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캐서린에게 메시지로 보냈었다.

오직 기억 속에 있는 외모를 통해서 그렸던 것이었는데, 역시나 기억은 정확했다.

캐서린은 태범의 그림실력에 놀라워 하고 있었다.

[캐서린: 자기는 못 하는 게 없네. 도대체 어떤 실력을 얼마나 숨기고 있는 거야?]

[강태범: 내가 도둑놈도 아니고 뭘 숨겨.]

[캐서린: 날 놀래 키려고 일부로 숨기는 거야? 가끔 보면 태범은 능력이 팝콘 터지듯 빵! 하고 갑자기 나오는 것 같아.]

[강태범: 어떻게 알았어? 내 꿈이 뻥튀기 아저씨라는 걸.]

[캐서린: 뻥튀기?]

[강태범: 아! 코리아 팝콘이라고 있어.]

캐서린의 의심에 태범은 유머를 섞어가며 자연스럽게 넘기려 했지만, 그의 유머는 실패였다.

그렇게 한동안 캐서린과의 대화를 나눈 뒤 태범은 다시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휘휘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태범은 휘파람을 불며 그림을 그려 나갔다.

캐서린의 칭찬이 더해져 그림이 좀 더 잘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됐을 때 태범은 본인의 그림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이야!”

태범은 완성된 자신의 그림을 보고 스스로에게 감탄을 하고 말았다.

웬만하면 자화자찬은 하지 않겠지만 이 그림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감탄이 내뱉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다 못해 본인만의 특색이 담긴 예술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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