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55화 (55/188)

# 55

5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니, 정말 횡령하신 거 맞아요? 왜 그런 거예요?”

당당하게 태범을 째려보던 박하윤 부장의 눈빛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안진환 팀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유를 묻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휴, 이러면 큰일 날 거라는 건 몰랐어요?”

“저도 모르게…….”

“하…… 그게 할 말이에요? 저도 모르게라뇨!”

박하윤의 대답에 어이없어 안진환 팀장은 한숨을 크게 쉬더니 불호령을 내렸다.

그리고 태범과 강인후 차장은 그저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계사가 경찰은 아니기에 일단 여기서 더 이상 터치하기는 힘들고 나머지는 회사 내에서 처리할 문제였다.

“이건 엄연히 횡령에 속하는 거 알죠? 혹시 이거 말고 더 한 게 있어요?”

“아…… 아니요.”

안진환 팀장은 혹시 모를 추가 범행을 의심하고 있었다.

일단 돈을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상, 이 외에도 빈틈이 있으면 다른 방법을 통해 횡령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이에요? 어차피 걸린 거 다 말하세요.”

“정말. 그거만 한 거예요.”

“아휴. 쯧쯧.”

강인후 차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말에 전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이미 신뢰를 잃은 자의 말은 더 이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일단 회사에 보고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되나요? 정말 제가 미쳤던 것 같아요. 회계사님들도 제가 무례하게 굴었던 것 죄송합니다.”

“아니, 이게 개인적인 문제도 아니고 봐주긴 어떻게 봐줍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범죄를 저질러 놓고 이를 덮어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강인후 차장은 그녀의 발언에 어이가 없어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같은 경리부 직원들은 아무 말 못 하고 혼이 나고 있는 자신들의 부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부터 직원들의 마음속에는 본인들의 선임이 아닌 범죄자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팀장님, 저희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내부 통제 제도에 대한 검토와 혹시 모를 추가적인 횡령이 있을 수 있으니 비용 검토에 자세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멀찌감치 이를 지켜보고 있던 강인후 차장은 팔짱을 풀고 안진환 팀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일은 끝났기 때문이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런 일에 괜히 고생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많이 있는 일들인데요. 뭐.”

“그럼 여기 일은 제가 마무리할 테니 올라가서 일들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강인후 차장은 태범에게 이곳에서 나가자며 손짓을 했다.

“이야 신입 한 건 했네? 이거 완전 신고식 치른 건데?”

경리부 사무실에서 나오자 강인후 차장은 태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필드에 처음 온 거 맞아?”

“네, 오늘이 처음이에요.”

“어허 원래 대부분 신입은 첫 필드에 오면 어리바리 하면서 배우기 바쁜데 횡령 자료까지 찾아내네?”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어쩌다 보니 제 눈앞에 나타난 건데요.”

차장의 칭찬에 태범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장님, 어떻게 되셨어요?”

강인후 차장과 태범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자 다른 회계사들이 관심어린 눈으로 상황을 물어봤다.

“경리부 부장이 횡령한 게 맞더라고. 내부 통제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회사에 건의해야겠어.”

내부에서 횡령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내부 통제 제도가 잘못됐다는 의미였다.

계약과 비용 처리를 한 곳에서 하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둘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금액 차이를 숨길 수 있고 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마도 소액 같은 경우에는 중요성이 낮다 보니 소홀히 관리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저번에 감사한 곳에서도 경리가 회사 돈 횡령해서 달풍선이나 쏘고 있고 요즘 문제가 많네요.”

양현성 과장이 과거사건을 떠올리며 말했다.

“원래 예전부터 다 그랬어. 돈을 만지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게 사람이잖아. 자, 그만하고 다들 일들 시작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혹시나 업무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강인후 차장은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손바닥을 탁탁 치며 작업 재개시를 알렸다.

* * *

똑. 딱. 똑. 딱.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방 안.

태범은 그저 시계를 바라보며 시계바늘이 12시를 가리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처음 현장에 투입되어 일했고 피곤도 할 만했지만 이를 꾹 참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평범한 스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워렌버핏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을 스캔하는 날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걸 해야 하나.’

태범은 새로운 능력을 얻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기존 인물의 능력과 최대한 겹치는 게 없어야 하며 사는 데 있어서 효율적이어야만 했다.

‘육체? 두뇌?’

일단 머리는 이미 폰 노이만의 능력으로 어디 가서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좋아졌다.

육체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최대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떤 걸 고를까…….’

태범은 여러 인물의 사진을 앞에 두고는 까칠까칠하게 올라온 수염을 만지며 고민을 이어갔다.

‘이거 될까? 되면 대박일 텐데…….’

그리고 다시 드는 의문점.

과연 가상의 캐릭터의 능력도 스캔이 가능할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스캐너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걱정은 태범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태범은 자신의 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에서 주인공인 손오공이 나온 부분을 찢은 뒤 스캐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계를 바라보며 12시가 지나길 기다렸다.

59분 55초…… 56…… 57.

초가 움직이는 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책상에 튕겼다.

58…… 59…….

00시!

저녁 12시(00시) 지났다.

시간에 맞춰 태범은 스캔 버튼을 눌렀다.

찌잉.

분명 스캔 시 들리는 소리는 나고 있다.

정말 되는 게 아닐까, 태범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상의 인물의 능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세상을 손에 쥘 수 있기에 태범에게 엄청난 기대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스캔할 사진을 유리판 위에 올려주세요.]

“어!”

컴퓨터 모니터에는 스캐너에 사진이 없다는 알림 창이 떴다.

“하!”

아마도 가상의 인물은 스캐너가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태범은 한숨을 쉬는 동시에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워했다.

‘역시 될 일이 없잖아?’

아쉬움도 잠시, 태범은 이를 당연시 받아들였다.

물론 지금 일어나는 일들도 어쩌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영화나 만화 주인공 같은 가상의 인물 능력이 스캔 된다면 이는 사실상 신이 된 거랑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사진을 올려 달라니 올려줘야지. 태범은 스캐너 유리판에 올려둔 손오공 사진을 빼낸 뒤 책상 위에 있는 다른 사진을 집어 올렸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

-통찰력 (0%)

-창의성 (0%)

-호기심 (0%)

-도전 정신 (0%)

-미술 감각 (0%)

태범이 선택한 인물은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오래된 인물이긴 하나, 그는 당시로 치면 수많은 업적과 작품을 남겨 놨고 현대에서는 누구나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 많은 미술작품을 만들었고 직업을 딱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조각가, 음악가, 해부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등 그 당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얼마나 호기심이 많았으면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댔으며 심지어 인체 해부도를 그리기 위해 시체 보관소에 틀어박혀 살았기까지 했을까.

주체하지 못한 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호기심? 도전 정신?

그는 현대에 와서 성인ADHD가 아니었을지 의심할 정도도로 한 가지 일보다는 여러 가지 일에서 활동을 했었다.

‘도전 정신은 중복 되네…….’

천재라면 도전 정신은 필수로 있는 능력인 것 같았다.

물론 인물이 다르니 정신 또한 다르겠지만 일단 중복되는 건 패스!

‘호기심?’

좋다. 호기심은 생각과 행동에 대한 첫 시작을 알리는 정신적인 힘이자, 욕구이다.

하지만 이미 몸 안에 넘치는 능력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고 호기심은 풍부한 상황. 이것도 일단 패스!

다빈치 하면 가장 떠오르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미술 아닌가 태범에 가장 눈에 띈 건 미술 감각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동생 태인이와 다르게 태범은 미술에 관한 손재주는 꽝이었다.

사람을 그리라 하면 졸라맨을 그리고 태양은 꼭 도화지 모서리에 그리는 놈, 그게 바로 태범 본인이었다.

[미술 감각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5%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5%)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이제는 모니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능력창이 커져버렸다.

항상 해왔듯 얻은 능력을 테스트해 볼 시간이었다.

태범은 프린터에 껴있는 A4용지를 한 장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펜 한 자루를 집었다.

일단 간단하게 선을 이용해 동그라미를 휙 그렸다.

원을 그리는 게 쉬워 보여도 생각보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마치 누구한테 얻어맞기라도 한 듯 원에 혹이 나 있든지 푹 들어가서 이상한 원 모양이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치 자에 있는 모형 판을 대고 그린 듯 정확한 원형 형태의 원이 그려졌다.

확실히 손에 대한 감각이 좋아진 것 같았다.

다음은 테스트는 한 단계 더 높여서 인체를 그려볼 생각이다.

지금껏 작대기로 표현한 졸라맨 모양의 사람과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면 이제는 정말 만화에서 본 듯한 그럴싸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볼 셈이었다.

명암을 넣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체구도에 비례하여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모양을 말이다.

쓱쓱.

태범은 사람의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

확실히 이전 보다 손의 움직임에 대해 통제가 잘 되는 기분이었다.

아직 5% 뿐이라 확연히 좋아지는 건 못 느꼈지만 선의 모양이 깔끔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암기력을 통해 사람의 인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수리 이해력을 통해 인체 비례를 계산했다.

기존의 능력이 다각적으로 사용되며 미술 능력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한 가지 도구가 많은 곳에 쓰일 수 있는 것처럼 능력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졌다.

‘오!’

볼펜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그렸고, 나름 그림이라고 느껴질 만한 작품 한 개가 탄생했다.

볼펜이라 수정을 할 수 없음에도 선은 깔끔하게 이어졌고 정확한 인체 구도에 의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의 형태가 그려졌다.

태범은 그럴싸한 자신의 첫 작품을 동생에게 평가받고 싶었다.

태인은 본인을 그림쟁이라고 생각하니 아마도 자신의 눈보다는 그림을 보는 눈이 좋을 것 같았다.

똑. 똑.

태범은 태인의 방문을 노크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야. 이거 잘 그렸지?”

태범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을 만지고 있던 태인의 앞에 자신의 작품을 휙 던져 놓았다.

“형이 그린 거야?”

“어때? 피카소 같지 않냐?”

“피까츄는 아니고?”

“뭐?”

동생이 개그라고 내뱉었지만 태범의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급식 먹던 인간이 아재 개그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때? 네 눈에 보기에는 평가 좀 해줘.”

“이걸 정말 형이 그렸다고?”

“응.”

“이거 형이 그린 거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뭐 대고 그린 거야?”

“어떤데?”

“이거 잘 그린 건데.”

디테일은 많이 부족했지만 태인에 눈에는 정확히 보였다.

정확한 인체 비례와 구도에 맞춰 그려진 그림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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