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태범은 빠르게 분식회계를 찾아냈다.
다른 조원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자료를 확인하는 족족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른 조원의 역할은 그저 금액이 회계프로그램으로 작성된 금액과 일치 한지, 그리고 서류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틀린 그림 찾기가 돼버렸다.
역시 공부 좀 하던 사람들이라 그럴까, 그 누구도 딴짓 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른 조 역시 주어진 문제에 몰입해서 풀고는 있지만, 태범의 속도를 따라오기에는 한참 부족한 상황이었다.
어느새 노트북은 태범 앞에 놓이게 되었다. 조원들은 1등을 하기 위해서는 태범에게 노트북을 넘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조원들은 태범이 찾아낸 분식회계에 대해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태범이 잘못된 서류와 코멘트를 더해 조원에게 넘겼고, 조원은 그대로 작성만 할 뿐이었다.
“이대로 적으면 되는 건가요?”
혹시 몰라 태범에게 한 번 더 확인까지 하는 모습까지. 완벽한 승리를 위해 조원들은 태범에게 모든 걸 떠맡겼다.
“이제 보고서 제출할까요? 거의 다 찾은 것 같은데.”
“네. 없으신 것 같으면 제출하죠.”
태범의 눈에는 더 이상 분식회계가 보이지 않았고, 조원들은 보고서는 모두 작성한 상황이었다.
태범은 조원들에게 제출 의사를 물었고, 조원들은 태범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듯 모든 권한을 넘겼다.
이제 효준이 찾아낸 것과 취합해 제출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저기요. 효준 씨. 다 하셨으면 제출하죠?”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기에, 지금은 방에서처럼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태범은 효준에게 말을 걸며 작성한 보고서를 요구했다.
하지만 효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전히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다 안 하셨어요? 나눠서 할까요?”
“아.. 아무 문제 없는 걸 집었나.”
효준은 뭔가 안타까운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결국 조원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와 보고서를 건넸다.
그리고 효준의 종이 위에는 뭔가를 계산했었는지, 몇 가지 공식이 적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런 분식회계도 발견하지 못한 듯 보였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대로 제출하시죠.”
“네. 그럼 제출하죠.”
효준은 자신이 본 서류에는 문제가 없다며 장담했다.
효준이 확신하며 말을 그렇게 하니, 태범은 아무 의심 없이 보고서를 들고 앞으로 나갔다.
자신 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보이면 초조해지는 법, 태범이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앞으로 나가자, 다른 조의 회계사들은 태범의 빠른 제출에 괜히 초조해지며 과제에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범의 조인 4조는 모든 조 중에 가장 빨리 제출한 조가 되었다.
“벌써 다 하셨어요?”
“네. 다했습니다.”
강단 위에 걸터앉아 신입회계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상범 과장은 태범이 다가와 보고서를 제출하자 놀라며 물었다.
마치 대학 시험 중에 가장 먼저 자리를 벅차 시험지를 내고 퇴실을 했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아직 시간 남았는데 더 하시죠?”
서상범 과장은 침을 바르며 태범이 제출한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겨보더니, 뭔가 부족해 보였는지 보고서를 다시 태범에게 건넸다.
분명 뭔가 덜 찾아낸 게 있는 게 분명했고, 태범은 보고서를 받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저희 아직 다 못 찾은 거 같은데요?”
“네? 분명이 검토 다 했지 않나요?”
태범이 다시 돌아온 모습을 보고 조원 중 한 명인 안영미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모르겠어요. 과장님이 다시 돌려주시는데. 뭔가 이유가 있겠죠?”
퇴짜를 받은 데는 이유가 있을 터, 태범도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다시 한번 검토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일단 시간이 많이 없으니 그나마 분식회계가 숨겨질 수 있는 중요 부부만 검토하죠. 우리가 뻔한 데서 놓쳤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에요.“
태범은 각 인원들에게 서류를 나눠주며 말했다.
다시 모두 재검토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분명 조원들이 검토를 하다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에 숨겨져 있는 것이기에, 그럴싸할 만한 곳만 부분적으로 재검토에 들어가야 했다.
“문제가 없는데.”
태범은 손을 턱에 얹고는 서류를 넘겨보는데, 이미 한번 살펴봤던 서류에는 분식회계가 될 만한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는 폰 노이만의 암기력으로 한 번 더 되짚어 보는데 역시나 문제는 없었다.
이때 태범은 속독이라는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상을 했다.
“혹시..”
그럼 남은 건 단 하나, 효준이 가져갔던 서류에 분식회계에 대한 서류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
태범은 그 서류를 집어 들고 빠르게 넘기며 검토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없을 텐데..”
태범의 효준이 검토했던 서류를 집어 들자 효준은 자신감이 없는지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말했다.
하지만 효준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태범은 발견하고 말았다.
분명 효준이 검토한 서류에는 기업이 타인에게 보증을 해준 증서가 있었지만, 재무제표의 주석(재무제표의 보충적 정보)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회계기준에는 보증내역이 반드시 주석에 작성되어야만 하는데 노트북 안의 재무제표의 주석에는 눈을 씻고 봐도 그런 사실이 적혀있지 않았다.
“찾았어요, 여기 보증에 관한 주석이 안 적혀있네요.”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껏 태범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효준이 태범을 향해 몸을 기울이더니, 노트북 속 재무제표를 시선을 옮겼다.
효준이 역시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재무제표에는 적혀있어야 할 보증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그제야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효준은 입을 벌리며 당황스러워했다.
태범은 효준이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누락된 정보를 빠르게 보고서에 작성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은 보고서 작성에 한껏 몰입 돼 있는 태범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태범에게 뭔가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라던가, 몰입도 자체가 다른 신입회계사들과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태범은 누락된 정보까지 모두 작성한 뒤 다시 앞으로 나가 서상범 과장에게 제출했다.
“이제야 됐네요.”
서상범 과장은 태범의 4조 보고서를 한번 쓱 살펴보더니, 이제야 만족이 되는 지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태범의 조는 재검토를 했음에도 여전히 가장 먼저 보고서를 제출한 조가 되었다.
4조를 시작으로 시간이 흐르고 다른 조들도 하나 둘씩 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모든 제출이 마무리되고 서상범 과장은 다시 강단 위에 올라간 후 분식회계에 관련된 정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산으로 과대계상 된 개발비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상범 과장이 신입회계사들에게 나눠준 제무재표의 분식회계를 집어주며 설명을 하는데, 태범의 조가 적어낸 모든 분식회계 정보가 포함되어있었다.
이대로면 1등이 분명했다.
“우리 1등 아니에요?”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태범의 조원들은 본인의 조가 이번 수업의 1등이란 걸 예상 할 수 있었고다.
수업 중이라 말은 못 하지만 미소로 서로에게 1등이라는 확신의 메시지를 보냈다.
* * *
6시 이후 일과가 끝나고 태범의 조원들끼리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교육이 끝나면 사실상 자유 시간이었기에 어디를 가든 상관은 없었다.
단지 필리핀 치안상 호텔주변을 제외하고는 멀리는 나가지 말라는 주의사항만 있었을 뿐이었다. 해외에 나와서 호텔에만 박혀있을 수는 없었다.
[안영미: 6시 30분에 호텔 앞에서 만나죠.]
조원들 단체 대화방을 개설한 4조의 한 명인 안영미가 약속시간과 장소를 공지로 남겼다.
밖을 나가기 전 태범 잠시 호텔방으로 올라와 약속시간이 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려 했다.
침대에 대자로 뻗어 온 종일 앉아 있어 뻐근해진 허리의 피로를 녹여주었다.
효준은 침대에 앞으로 엎드려 ‘회계감사‘ 전공서적을 보고 있었다. 책 두께만 벽돌만 한 게 시험 준비할 때 지겹게 봤을 텐데, 지금 이 시간에 책을 본다는 건 독종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진 태범도 같은 책을 몇 번을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새 6시 30분이 다가오고 태범은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같이 가시죠?“
태범은 침대에 엎드려 독서를 하고 있는 효준에게 말했다.
물론 말을 무시할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원들끼리 모이는 친목자리이기도 하고, 같은 룸메이트이기에 효준을 데려올 책임감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묵부답인 효준의 모습에 태범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텔방을 나섰다.
“왜 혼자 나오세요? 효준 씨는요?”
“몰라요. 안 나올 건 가 봐요. 말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네요.”
태범이 혼자 나오자 조원 중 한 명인 안영미가 의아해하며 효준을 찾았다.
하지만 태범은 그를 데려오는 건 자기 능력 밖이라는 걸 말로 표현하며, 어쩔 수 없음을 알렸다.
“아. 그래도 같은 조인데, 빠지면 안 되죠.”
안영미는 당돌하게 한마디를 하더니, 교육 시작하기 전 받은 조원 연락처를 통해 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래도 첫날같이 밖에서 한자리하는 건데 나오시죠. 다들 친해지면 좋잖아요.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안영미는 효준을 술자리에 데려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효준과 나누는 대화만 들어도 그녀의 노력을 알 수 있었다.
“온대요. 조금만 기다리죠.”
이 여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 효준이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저 멀리 회전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는 효준의 모습이 보였다.
효준은 못 이기는 척 터벅터벅 다가왔다.
“이렇게 모두 모이니 얼마나 좋아요? 자 가시죠!”
모든 인원이 모이자 안영미의 한마디에 태범의 조는 술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닐라 호텔 정면에는 많은 술집과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다. 태범의 조는 가장 가깝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술집으로 입장했다.
술집에 들어가니 테이블 앞에서는 밴드가 자리에 앉아 전자피아노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확실히 필리핀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증명하듯, 투박하게 생긴 두 명의 아저씨는 마치 팝스타처럼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1층에 자리가 없으니,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술집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태범과 조원들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호텔 술집이라 그런지 1층에는 이미 몇몇의 다른 조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손님으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
태범의 무리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 메뉴판 좀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뭐 시킬까요?”
메뉴를 고르지 못하는 태범의 버릇이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전 이거요.”
“전 이거.”
조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하나씩 선택했다. 그리고 주문을 해야 하는데 외국이라 그런가 서로 눈치만 볼뿐 나서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태범이 직접 주문에 나섰다.
“prime riveye steak with mashed potatoes and buttered vegetables 이랑 soloim all-bef buger ... chili cheese fries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태범은 메뉴판을 보지 않고, 조원들이 말한 그대로의 메뉴를 종업원에게 읊었다.
그러자 주문을 받는 종업원은 태범의 유창한 주문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주문서를 체크했다.
같은 조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 영어를 아무리 잘한다 한들 이를 모두 암기해 말한다는 걸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태범 씨, 기억력 엄청나게 좋네요.”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 눈에도 보통 기억력이 아니었다.
조원들은 태범의 기억력에 감탄하며 칭찬을 저절로 내뱉어지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