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46화 (46/188)

# 46

면접을 보고 3일 후, 태범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상정회계법인으로부터 합격 소식이 알려져 왔다.

그리고 태범은 오늘 사내 교육을 시작으로 사회인으로서 정식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태범아, 가서 윗사람들 말 잘 듣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가서 잘 할게.”

“사람이라는 게 간사해서 일을 못 하면 욕하고 그렇다고 자기보다 잘하면 질투하고 그러거든 사회에 망나니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래도 저래도 처음에 가면 욕먹을 수도 있어. 근데 그걸 꾹 참고 꾸준히 일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 성장하는 거야.”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밖을 나서려는 태범에게 아버지는 사회 생활에 대해 조언을 늘어 놓았다.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자기 자식이 불안한 아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회계사를 합격하던 수석이든 간에 자식을 사회에 내놓는 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풍파를 겪어 왔고 그 무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알았어.”

태범은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했지만, 자신을 어린애로 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 잘 다녀와.”

“다녀올게요.”

그렇게 태범의 첫 출근이 시작됐다.

* * *

오늘은 기본 업무 교육으로 모두 신입회계사 전원이 대 강당에 모여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상정회계법인 대표이사 이재진입니다.”

가장 먼저 대표이사의 인사가 있었다.

상정회계법인의 대표이사인 이재진 대표, 깔끔한 정장 차림에 금테안경을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듯한 CEO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재진 대표는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고 자기소개와 함께 운을 떼기 시작했고 신입 회계사들은 대표의 자기소개에 힘껏 박수를 쳤다.

“먼저 상정회계법인의 가족이 되신 여러분께 축하드립니다. 회계사 자리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온 거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회계법인 중 업계 1위인 이곳에 발을 들였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충분히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된 것입니다.”

대표는 신입 회계사들을 띄워주는 것부터 말을 시작 했다.

하지만 달콤한 말 뒤에는 쓰디쓴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는 미국의 글로벌 회계법인 WAC와 파트너쉽을 맺고 국내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까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희는 그 어느 곳보다 뛰어 나야 합니다!”

대표의 점잖은 목소리는 점점 강단 있게 바뀌었다.

“회계사에 합격에서 다들 기분 좋으시죠? 며칠 동안은 가족과 친구한테 축하한다는 소리 들으며 잠시 천국에 온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천국이 아닌 지옥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1등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땀이 들어가 만들어지는 거죠.”

“여러분들도 1등 기업에 온 이상, 모든 힘을 쏟으셔야 할 겁니다.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쏟은 땀만큼 그 이상의 대가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대표는 신입 회계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신입 회계사들은 대표의 강단 있는 어조와 흡입력 있는 연설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어서 등장하는 파트너급의 회계사분들의 업무 설명은 곧 수면제가 되어 신입 회계사들을 괴롭혔다.

“안녕하십니까, 파트너 회계사 박철중입니다. 여러분께 간단히 기업의 구조와 업무 프로세서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들어오자마자 밉보이는 건 아닐까. 강당에 앉아있는 신입 회계사들은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힘겹게 이겨내며 눈을 간신히 뜨고 있었다.

“잠깐 쉬고 이어 가겠습니다.”

그렇게 5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저기 이번 회계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신 분 맞으세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쉬는 시간이 되고 태범은 눈을 잠시 감으려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태범은 자기를 알아보는 남자를 보며 벌써 유명인이 된 건가 싶은 기분이었다.

이미 포털 사이트에 ‘회계사 수석합격’을 검색하면 인터뷰 기사에 자신의 얼굴이 뜨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알아볼 줄은 몰랐다.

“아 저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거든요. 대단하시네요.”

옆에 있는 남자가 슬쩍 앞자리 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태범은 남자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손끝이 가리킨 건 앞자리의 남자였고 그 역시 신입 회계사로 보였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태범은 손으로 가리킨 곳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보통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시선을 피할 만도 한데 굳이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시선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이야.’

태범은 모르는 사람의 기분 나쁜 시선에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하고 말았다.

분명 저 시선은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닌, 째려보는 것이었다.

마치 야생에서 만난 두 마리의 짐승을 보는 듯했다.

남자라는 게 사실 길을 가다가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미묘한 기 싸움이 일어나곤 하지만 저렇게 첫 출근자리에서 저런 눈으로 바라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던 건가, 아무리 세상의 별의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직접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너무 그렇게 빤히는 보지 마세요.”

옆 남자가 태범의 어깨를 살짝 건들며 속삭이듯 말했다.

“네?”

“여기 쳐다보는 사람 있잖아요? 저 사람 대표이사 아들이에요.”

“대표이사 아들이요? 방금 강단에 올라온 이재진 대표님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태범과 눈이 마주친 남자의 이름은 이효준, 그는 상정회계법인의 대표이사의 아들이자 막 회계사가 된 신입 회계사였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회계사의 길을 선택하고 아버지의 일터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근데 저 사람이 절 계속 쳐다보는 것 같던데…….”

“수석이라 하니 궁금해서 쳐다본 게 아닐까요? 저쪽에서 아까 그쪽 이야기하던 것 같던데…….”

“제 이야기를요?”

“네, 아마 수석 합격 해서 궁금해서 쳐다본 걸 거예요.”

“그런가…….”

물론 길에서 연예인이 보이면 쳐다보듯, 궁금해서 쳐다볼 수는 있지만 태범은 기분이 썩 좋지만 않았다.

아까 느낀 그의 눈빛은 그저 호기심이 아닌, 째려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내가 착각한 거겠지.’

어디 길에서 굴러먹던 양아치도 아니고 이 자리까지 온 지성인이 그러지는 설마 저러겠냐라고 생각하며 태범은 그저 본인이 착각한 거라 여겼다.

“저기 성함이?”

옆 남자가 태범에게 물었다.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경철입니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으니 친하게 지내죠.”

“네, 같은 동기인데 친하게 지내죠.”

태범은 그렇게 사회에서의 첫 번째 친구를 만들었다.

마치 학창 시절 새로운 반에서 만난 옆자리 짝꿍과 인사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이경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문대로 꼽히는 한국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태범 보다 2살이 많은 형이었다.

“한국 대학교면 여기에 동기들 많으시겠네요?”

“바글바글하죠. 내가 알기론 70명 가까이 되는 것 같던데.”

“와…… 차원이 다르네.”

“에이, 뭘 놀라고 그래요. 수석이. 하하.”

태범의 놀라는 모습에 경철은 수석합격자가 저러니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태범과 경철은 쉬는 시간이 올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쌓았다.

낯선 공간에서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심적으로 안정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자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기업 업무 프로세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보고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쉬는 시간은 짧게 지나갔고 교육은 다시 시작되었다.

교육은 오전부터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다.

실무적인 교육보다는 기업 구조와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략적으로 알아가는 수준이었다.

“자 수고들 많으셨고요. 명절에 푹 쉬시고 우리 필리핀에서 만납시다.”

오늘 교육은 그저 맛보기였고 진짜 교육은 추석이 끝나고 진행되는 해외 연수였다.

상정회계 법인에서는 매년 신입 회계사들을 데리고 해외 연수를 실시해왔다.

국제적인 업무를 담당하기에 회계사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키운다는 의미였다.

태범은 자신의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랐다.

* * *

첫날의 사내 교육이 끝나고 바로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태범은 마치 금의환향을 하는 줄만 알았다.

이미 부모님의 입에서 전해진 말들은 친척들에게 빠르게 퍼졌고 모두들 태범의 회계사 합격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수석 합격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져 존경에 가까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러 대학의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치르는 시험이었기에 합격의 의미를 더욱 빛이 났다.

사실상 이날은 추석이라보다는 태범의 축하 파티에 가까웠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관심이었다.

원래 가문의 미래라는 타이틀은 태범의 사촌인 태준에게 있었다. 한국 대학교 조기 입학에 강 씨 가문의 유일한 명문 대학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타이틀은 태범에게 건네줄 때가 된 듯했다.

친인척 모두는 이미 태범의 능력에 빠져있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93%)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추석명절이 지나고 태범이 스캔을 통해 달성한 능력이었다.

도전정신도 93%로 거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일주일이면 다른 인물로 스캔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누구로 하지?’

이제 슬슬 다음 인물을 고민할 때가 왔다.

한번 인물을 고르고 진행을 시킨 상태면 다시 바꾸는 게 어렵기 때문에 즉흥적인 선택보다는 어느 정도 계획이 필요했다.

‘손오공?’

태범의 책장에는 어릴 적 일던 오래된 만화책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하며 주변을 살피며 고민을 하던 중 만화책이 눈에 띈 것이다.

그리고 생긴 궁금증 하나.

과연 현실의 인물만 스캔이 가능한 걸까?

* * *

추석이 지나고 신입 회계사는 전부 필리핀으로 향했다.

역시 회계사라는 대우가 실감 나는 게 입사 시작부터 해외 연수라니 믿기지 않았다.

보통 기업에서는 특별한 사람이나 우수한 몇 명만을 뽑아 해외 연수를 보내주곤 하는데 이곳은 시작부터 전원 해외 연수였다.

“아. 비 오네.”

“뭐야 오늘 비 안 온다고 했는데. 여기도 기상청이 말썽인가 보네. 쯧쯧.”

필리핀에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한 상정회계법인의 신입 회계사들을 반기는 건 하늘에서 내리는 강한 빗줄기였다.

이번 연수를 책임지는 박현민 차장과 유혜영 과장은 예상치 못한 비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각 지정된 조에 맞게 가이드 안내에 따라 버스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유혜영 과장과 가이드가 신입 회계사들을 천천히 버스로 인솔하기 시작했다.

출발 전 각 인원에게 지정된 조에 따라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버스는 마닐라 에르미타 지구에 있는 마닐라 호텔로 이동했다.

“크네…….”

태범이 떠올린 연수라 하면 학교 MT처럼 산속에 허름한 건물 하나 빌려 사용할 줄 알았다.

버스에서 내리고 앞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비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높은 크기의 호텔이 눈앞에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호텔 같은 느낌, 도시가 한눈에 내려 보일 것 같은 위치에 건물은 우뚝 서 있었다.

딱 봐도 일반 호텔은 아닐 터 적어도 5성급의 호텔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회계사들은 호텔에 들어가 배정된 자신의 숙소키를 배부 받았다.

“강태범입니다.”

“네, 여기요.”

안내 가이드가 모든 호텔 키를 가지고 있었고, 명단에 맞춰 룸 키를 나눠줬다.

2인 1실로 같은 조원 중 한 명이랑 짝을 지어 5일 동안 지내기로 되어 있었고 아직은 누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태범은 그저 좋은 사람과 방을 같이 사용하길 바랄 뿐이었다.

“아직 안 왔나 보네?”

태범이 방에 들어갔을 때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방이 자신을 맞이할 뿐이었다.

“와 풍경 좋네.”

거울을 통해 마닐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어떤 나라는 수도는 휘양 찬란한 법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평양까지 나름 빌딩(?)으로 도시가 꾸며져 있으니 마닐라는 그 어떤 도시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발달돼 보였다.

집합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고, 태범은 캐리어의 있는 짐을 대충 정리하기 시작했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방을 같이 쓸 동기가 온 모양이었다.

태범은 짐을 정리하다 말고 짧은 시간이지만 룸메이트가 될 동기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다가갔다.

“어?”

“어!”

한 방에서 얼굴이 마주친 둘은 서로에게 놀란 나머지 외마디 외침이 입에서 나왔다.

출근 첫날 태범과 눈싸움을 했던 대표이사 아들, 이효준이었다.

“반갑…….”

“하…….”

태범이 인사를 하려고 손을 내밀며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효준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나왔다.

사람 면전에 대고 저리 싫다는 표정을 지으니 태범도 어이가 없기는 마련이었다. 태범 역시 표정이 굳어졌고 악수하려고 나왔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하지만 어린애도 아니고, 최소한의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태범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강태범이라 합니다.”

“…….”

하지만 이효준은 아무 말 없이 태범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태범의 인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괜히 머쓱해지는 상황이었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태범은 본인이 착각한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말했던 사회 속에 있다는 망나니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효준의 행동에 태범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하며 혀를 찼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으나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대표 아들이라고 굽히고 들어가야 할까. 아버지 말대로라면 사회생활 초반이니 꾹 참고 견뎌야 했겠지만 태범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태범은 스캐너가 준 능력으로 자신감이 가득 찬 상황이었고 아무리 대통령 아들이 온들 본인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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