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45화 (45/188)

# 45

합격 열차에는 결국 태범을 포함해 모든 스터디원이 탑승을 했다.

한 스터디에서 모든 인원이 회계사에 합격한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

회계사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태범의 스터디는 하나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태범은 합격의 기쁨도 잠시 금융 감독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리고 금감원에서 전해온 소식은 태범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그리고 학교 사람들까지 놀라게 했다.

수석 합격.

합격자 평균 61점보다 29점이나 높은 90점을 얻어 최고 득점자가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석이라 하면 매년 명문대에서 싹쓸이 하다시피 했지만 서울 하위권 대학에 속했던 우리 대학교에서 회계사 수석을 배출했다는 건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태범은 한순간에 그냥 합격자에서 수석 합격자가 되어 많은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학원에서 일일특강 요청도 들어오고 많은 기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모두 받아주기에는 너무 벅찼고 먼저 모교인 학교에서 들어오는 요청만 간간히 해주고 일부 영향력 있는 경제 관련 언론 쪽의 인터뷰만 받기로 했다.

* * *

태범과 김영석 교수의 식사 자리.

김영석 교수는 할 말이 있다며 태범에게 식사를 요청했고 태범은 이를 흔쾌히 받아줬다.

물론 태범은 교수가 무슨 말 할지는 대충 예상이 갔지만 말이다.

“뭐 먹을래?”

교수가 메뉴판을 펼치더니 태범 앞에 가져다 놨다.

“음…….”

만약에 오늘의 식사 메뉴를 고르는 문제가 회계사 시험에 나온다면 태범은 불합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범은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교수의 입맛과 적당한 가격 이 모든 게 완벽히 일치되는 메뉴를 찾아야만 한다.

“훈제 오리 어때? 여기 저번에 먹어보니 맛있던데.”

“네, 그걸로 먹을게요. 오리 고기 맛있죠.”

“응, 그걸로 시키지.”

하다못해 결국 메뉴 선택은 교수의 몫이 되었다.

“여기 훈제 오리 정식 2인분이요!”

“네, 알겠습니다.”

태범은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지금껏 감사하기도 하고…….”

“에이 됐어! 학생이 교수한테 잘못 대접했다가 법에 걸리는 거 몰라? 오늘은 내가 살 테니 마음껏 먹어!”

태범은 자기를 회계사 길로 이끌어준 교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스캐너의 능력이 가장 공이 컸지만 길을 열어 준 건 교수였기 때문이다.

태범은 교수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교수는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요즘 시대에 잘못 얻어먹었다간 큰일나는 경우가 있기에 교수라는 자리에서는 항상 몸을 조심해야만 했다.

“태범아, 수석 합격 축하한다. 내가 살아생전 수석 제자가 생기는 일은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니? 학교 역사상 네가 처음이다, 처음. 그리고 도대체 한 스터디에서 모든 사람이 같이 시험에 붙는 건 말이 되는 거니?”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끊임없이 뱉어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김영석 교수에게는 연이어 일어난 믿지 못할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궁금하고 물어볼 게 많았던 참이었다.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 붙었겠죠. 제가 옆에서 같이 공부했잖아요. 현찬이랑 한석이 형, 원욱이 형 모두 열심히 했어요.”

모두가 열심히 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태범에게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고 합리적 의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명문대면 몰라도 우리 대학교에서 스터디원 전원이 회계사에 합격한 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 말이다.

“이번에 회계사반에 와서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그런 것 좀 특강 식으로 설명해주면 안 될까? 학생들이 태범이 너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 하더라고. 현찬이랑 한석이, 원욱이도 다 네 덕에 합격했다고 하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허허”

“아 회계사반 학생들 앞에서요?”

“그래, 학생들이 태범이 너한테 배울 게 많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걔네들도 기대하고 있고 말이야.”

태범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무대 공포증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포를 모두 떨쳐버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시선이 본인에게 모인다는 건 꽤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태범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과거보다 미래의 나은 삶을 꿈꾸며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고 앞으로 전진 해야만 했다.

“네, 할게요.

“정말? 그래 줄 수 있어? 그럼 시간은 언제 잡을까?”

“제가 시간 나면 그때 따로 연락드릴게요.”

“어이구! 그럼 좋지. 편할 때 언제든 전화해.”

* * *

태범은 면접 장소인 상정회계법인 본사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주신 맞춤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여의도의 빌딩 숲을 걸으니 사회에 첫발을 디딘 사회인이 됐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여의도는 한국 증권 거래소의 이전을 시작으로 각종 증권 회사와 은행 등 금융 기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정치적 기관들이 많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2010년 금융 위원회는 여의도를 금융 중심지라고 지정하고 정부에서 금융 도시를 만들려고 애썼던 지역인 만큼 한국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태범은 벌써부터 대한민국을 휘어잡을 경제계인이 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

태범은 본사 건물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오늘 면접을 볼 상정회계법인의 본사는 높게 솟은 빌딩 안에 입주해 있었고 세련되고 도시적인 빌딩의 위엄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마치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을 온 것처럼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태범은 호흡을 깊게 들이 내쉰 뒤 상정회계법인의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저기 면접 보러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태범은 미리 받은 안내에 따라 21층으로 올라갔고 바로 보이는 안내 데스크에는 면접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태범도 그들 사이로 다가가 안내 데스크에 말을 물었다.

“회계사 채용 면접이시죠?”

“네.”

“여기 복도 끝으로 들어가시면 문 앞에 면접 대기실이라고 안내가 돼 있을 겁니다. 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내를 받고 찾아간 면접 대기실에는 30명 정도의 회계사가 모여 있었다.

상정회계법인은 채용인원과 지원자가 많다보니 면접을 여러 날과 시간으로 쪼개 지원자를 불러 면접을 실행하고 있었다.

다들 준비를 많이 해왔는지 손에는 면접과 관련된 종이 한 장씩은 들려 있었다.

“전미영 씨 들어가세요.”

태범의 앞 순서인 회계사들이 차례로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앞사람이 하나씩 빠져나가며 차례와 긴장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긴장할 거 뭐 있어? 그냥 다 같은 사람인데. 태범아 쫄 거 없다.’

긴장도 잠시 태범은 이까지 것 한번 부딪쳐보자며 속으로 의지를 다짐을 하며 긴장을 물리치고 있었다.

“강태범 씨 들어가세요.”

“네.”

태범은 옷매무새를 한 번 더 정리하며 면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편하게 앉으세요.”

태범이 면접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곳에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면접관 한 명이 앉아있었다.

면접은 파트너 직급의 회계사와 1 : 1 면접으로 이뤄진다.

회계법인의 직급에는 주니어-시니어-매니저-시니어 매니저-디렉터-파트너로 이뤄졌고 파트너는 유한 회사인 법인의 지분을 가지고 대표와 함께 경영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배상준 파트너, 한국 대학교 경영학 졸업 89년 상정회계법인 입사, WAC에서 2년간 교환 근무, 12년간 회계 감사, 세무 업무를 담당했고 지금은 M&A(기업 인수 합병)분야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물.

태범은 면접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회계법인 사이트에 주요 임원들에 대한 프로필이 있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이트에 있는 모든 내용을 암기하고, 숙지한 태범에게 그를 알아보는 것은 쉬웠다.

“회계사 합격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동네 형이랑 대화하듯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면접관은 면접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는 듯 환하게 웃으며 틀에 잡힌 면접이 아닌 자연스러운 대화가 있는 면접을 요구했다.

태범이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면접관은 온화해 보였다.

회계사는 돈을 만지는 직업이고 정확성과 완벽성이 요구되다 보니 딱딱하고 냉철해 보이는 이미지 일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옆집 아저씨처럼 한 없이 편하게 느껴졌다.

“어이고 회계사 시험 수석 합격자가 온다더니, 강태범 씨였네요.”

면접관은 안경을 바로잡고 이력서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태범이 수석합격자라는 걸 알고는 놀라워했다.

“네, 맞습니다.”

면접관의 관심에 태범은 어깨가 우쭐해졌다.

“동차에다가 수석 합격까지 하셨네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공부는 얼마나 하신 거예요?”

“1년 정도 했습니다.”

“1년이요? 일?”

면접관은 못 믿겠다는 듯 집게손가락을 펴며 일이라는 숫자를 강조한 채 재차 물었다.

사실상 다수의 수석 합격자는 오랫동안 회계공부를 해 온 사람이던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는 사람이었지만 면접관 눈앞에는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니 말이다.

“네, 회계학과로 회계 공부는 군대 가기 전 1학년 때부터 했는데 본격적으로 회계사 공부를 시작하나 건 작년 1학기 마치고 그쯤에 시작했습니다.”

“이야. 대단한데요. 원래 회계사를 1년에 이렇게 동차로 합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수석까지 해버렸으니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겠네요.”

“네,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태범은 면접관의 질문에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요. 근데 회계사는 어쩌다 준비하시게 된 거예요? 원래 이쪽 계통에 관심 좀 있었나요?”

“네, 어렸을 적부터 금융이나 경제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기업 활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이 모여 기업을 이루고 그게 하나의 인격의 권리를 부여받아 법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는 제게 큰 호기심을 가져다줬습니다. 그때부터 경제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계사로 연결이 됐습니다.”

태범은 말을 청산유수와 같이하며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 대다수가 허풍이었지만 말이다.

회계라는 단어도 대학교 올라와서 알았고 그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오기 위해 학교에 맞춰 학교를 지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자기 위장은 필요한 법. 태범은 그럴싸한 말로 면접관을 홀리기 위해 과장된 말을 덧붙인 것이었다.

“오,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많았나 보네요. 하긴 뭐든 빨리 시작하는 게 낫죠. 알게 모르게 알고 있던 지식이 많았나 봐요? 그러니까 수석 합격하셨겠죠?”

“네.

다행히 면접관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수석 합격생이 주는 신뢰는 아주 컸으니 말이다.

“우리 회사에 지원하신 계기가 있나요?”

“회계법인 중에 최고라고 들어서 지원했습니다. 최고인 곳에서 일하며 최고가 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아? 그래요.”

면접관은 태범의 답변에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당돌하면서도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면접관의 눈에는 태범의 행동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다른 사람이 저 말을 했으면 괜한 오기라고 생각하겠지만 태범의 이력은 벌써 최고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최고라는 게 어디에서 최고를 말하는 거죠?”

면접관이 생각하는 최고는 최고의 회계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통 사람이 아닌 인물이 앉아 있으니 혹시나 해서 질문을 건넸다.

여기에 있는 ‘최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최고…….’

면접의 질문에 태범은 잠깐 머뭇거렸다.

최고의 끝을 생각하면 회계사는 그저 끝에도 한참 못 미치는 작은 꿈에 불과했다.

태범은 그 이상을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본심을 말하자니 자칫 잘난 체에다가 밉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능력 중 하나인 도전 정신 때문일까, 마음속 진실을 밀어내면 낼수록 반대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 인생 한 번 사는 거 패기 있게 질러버리자!

태범은 용기 있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 회계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에서 최고를 말합니다. 그게 부가됐든 명예가 됐든 제가 가지고 있는 꿈과 욕망을 모두 최고로 일궈내고 싶습니다.”

“하하하.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좋아 보이네요.”

면접관은 소리를 내며 크게 웃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면접에는 실무적인 질문은 전혀 없었다. 미리 내정이라도 해놨듯 면접관은 개인적인 질문만 쏟아 내더니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그럼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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