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44화 (44/188)

# 44

“으아!”

미리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태범은 눈을 번쩍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은 잤지만 머릿속에 있는 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본능적으로 시간에 맞춰 눈을 뜨게 한 것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7시 2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1분 전,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알람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빠르게 스마트 폰을 켠 뒤 알람을 껐다.

“일어났어? 오늘 컨디션 어때?”

“괜찮아.”

밤 동안 가득 찬 방광을 비우러 가는 태범은 어머니에 대답에 잽싸게 대답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벽에 기업 분석력을 100%를 채우면서 받은 짜릿한 전기충격 때문인지, 갈증이 심해 물을 많이 마셨는데, 그게 지금 폭포수처럼 나오고 있었다.

“밥 바로 먹을 거야? 아니면 씻고 먹을래?”

화장실에서 나와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혹여나 태범에게 작은 피해라도 줄까,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먹고 씻을게. 으.”

태범은 식탁에 앉아, 팔을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활짝 켰다.

“아빠 나가신 거 알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일단 택시 타고 가래. 아빠가 택시비는 준다니까.”

“됐어. 내가 시험 보는 건데, 내 돈 내고 타야지.”

태범은 더 이상 부모님에게 어린애처럼 굴기 싫었다.

이제 능력도 있겠다. 부모님 보호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며 오히려 역으로 본인이 가족을 감싸주며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응.”

태범은 어머니가 끓여준 북어국과 함께 속이 편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했다.

“태인아, 형 시험 보러 가는데. 잘 보라고 말이라도 해야지.”

“엄마, 그냥 내버려 둬. 자는 것 같은데.”

태범은 자고 있는 태인을 깨우려는 어머니를 극구 말리며, 조용히 가겠다고 했다.

마음에 없는 말보다 침묵이 낫다고, 굳이 자는 동생을 깨워 응원을 받아봤자 힘이 날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택시!”

어머니는 태범이 택시 타는 곳까지 같이 나와, 손수 택시를 잡아주며 태범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었다.

“그래, 시험 잘 치고 와. 파이팅!”

어머니는 태범이 택시에 올라타기 전까지 응원과 함께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응, 잘하고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태범은 확신에 가까운 대답을 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혹시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태범은 워렌버핏과 폰 노이만에게 백번 천번 사죄를 할 각오로 그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태범이 탄 택시는 고사장인 집 인근의 성관대학교로 향했다.

아침 시간이라 차가 좀 막혔지만 일찍 집을 나섰기에 늦지 않고 고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확실히 한 번의 시험을 경험해봐서 그런지 긴장감은 덜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눈앞에 고사장이 보이니, 이전에 가진 긴장감이 더욱 줄어들고 있었다.

고사장 분위기는 1차 시험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들 침묵을 유지한 채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됐고, 총성 대신에 계산기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로 수험생들의 치열한 싸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차를 합격한 실력자들이 모인 곳이라 그럴까, 여유로움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시험에 관한 내용과 유의사항을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험 시간이 다가오고 시험 감독관은 칠판에 붙은 안내표를 보며 시험에 대해 설명했다.

2차 시험은 총 이틀 동안 5과목을 보는 것으로 계획이 되어있다.

1일 차 시험은 각 120분씩 세법, 재무 관리, 회계 감사 3과목이 치러진다.

그리고 회계사 1차 시험과 다르게 모든 게 주관식이라 기존의 이론을 얼마나 잘 응용하나가 관건이다.

하지만 태범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보통은 주관식이라 하면 보기가 없고, 오직 자신의 풀이로만 답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곤 하지만 태범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스터디를 하면서 모의고사를 통해 연습하며 충분히 응용능력을 기를 수 있었고 게다가 수리 이해력과 기업 분석력이 합쳐져 이뤄내는 시너지는 화폐를 계산하는 모든 문제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시험 곧 시작하니까, 보던 책들 모두 가방에 넣어주세요.”

시험이 시작되고 감독관은 시험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문제지를 받자마자 태범의 눈은 빠르게 문제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는 뇌리에 정확히 꽂히며 빠르게 인식되었다.

타타타타.

태범의 오른손은 계산기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고 계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다른 학생들을 압도감을 줄 정도였다.

계산기 위의 숫자와 풀이를 적은 종이 위를 동시에 보며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3과목 360분 동안 온몸의 에너지를 쏟으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회계 감사의 마지막 문제의 답을 적었을 때는 확신했다.

합격이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태범은 합격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2일 차 시험 역시 똑같았다.

다음날 원가회계, 재무회계 2과목을 봤고 마찬가지로 마지막 정답을 적고 펜을 놓으니, 몸은 벌써 본인에게 축하라도 하듯 전율을 일으켰다.

‘수고했다.’

* * *

2차 시험을 본 뒤 2달이 지났다.

태범은 무조건 합격이라는 생각과 함께 발표하기까지 남은 2달 동안은 지금껏 못했던 여유를 한껏 누리며 지냈었다.

관리하지 못했던 사이트를 정리했고 가치 투자 클럽에 자신의 복귀 소식을 알렸고 또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주식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등 능력을 온갖 곳에 사용하고 다녔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8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그리고 현재 워렌버핏의 능력도 끝을 보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시장 통찰력과 기업 분석력만 얻고 빠지려 했지만 시너지를 위해 올려둔 도전 정신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같이 가져갈 생각이었다.

태범이 도전 정신을 올리면서 느껴 본바 이 능력은 걱정과 긴장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발휘할 중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인생의 시간을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이기도 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복권을 사야만 복권에 당첨되듯,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동이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태범은 능력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오늘 공인 회계사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 다가왔다.

태범의 온 가족은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종 합격은 고시반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 떨린다. 합격은 했을 거야. 분명 합격이야!”

“태범아, 빨리 확인해봐. 엄마 심장 터져 죽을 것 같다.”

태범은 합격을 장담하면서도 막상 합격자 확인을 하자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은 뒤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누른다!”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리고 금융 감독원의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 있는 이름 석자. 강태범.

강태범, 합격.

“으하하하하.”

“우와!”

“합격이야? 합격한 거야?”

“으하하하하.”

태범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모니터에 합격이 나타났음에도 어머니는 아직도 믿기지 못하는 듯 태범에게 재차 사실을 물었다.

“뭘 자꾸 묻고 그래. 합격이잖아. 합격!”

아버지는 자꾸 묻는 어머니에게 모니터 속 태범의 수험 번호를 콕 집으며 말했다.

“합격 축하한다.”

그제야 어머니는 한 타이밍 늦게 기쁨을 표출했다.

띠리링.

가장 먼저 전화가 온 건 현찬이었다.

“태범아 합격했니?”

“이야! @#$%.”

합격을 물어오는 현찬의 목소리 배경에는 환호성이 섞여 있었다.

아마도 현찬이 역시 가족과 합격을 확인하는 중이었나 보다.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저 정도의 환호성을 질러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으니 말이다.

“응, 합격했어. 너는?”

“역시 넌 될 줄 알았어. 근데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뭔데? 너 합격이지?”

“응, 나 합격 크크크.”

흥분되고, 들뜬 현찬의 목소리에서는 어린아이가 선물을 받고 방방 뛰는 모습이 상상됐다.

“축하한다. 너도 참 대단하네.”

“대단은 무슨. 이게 다 네 덕이지.”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노력해서 된 거지.”

“아니! 매일 네가 만들어온 문제 풀면서 빡세게 공부해서 그런지 오히려 시험이 1차보다 쉬웠던 거 같았어. 하하.”

스파르타식으로 머리를 굴렸던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1㎏짜리 아령을 들다가 5㎏를 들면 무겁게 느껴지지만 10㎏를 들다가 5㎏를 들면 가볍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평소 기출 되는 문제 수준보다 높게 잡고 풀다 보니, 시험이 쉽게 느껴진 것이었다.

“한석이 형하고 원욱이 형은?”

태범은 같이 스터디를 했던 두 형의 결과가 궁금해 물었다.

“대박인 거 뭔지 알아? 아까 한석이 형이랑 통화했는데 그 형 붙었데.”

“정말? 원욱이 형은?”

“그 형은 계속 통화 중이라 한석이 형도 연락이 안 된대, 근데 느낌이 좋지 않아? 왜 계속 통화중일까?”

현찬은 추측하고 있었다.

만약 시험에서 떨어졌으면 누구와도 통화하고 싶지 않겠지만, 합격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핸드폰은 쉴 틈이 없이 합격 소식을 전해 나를 것이다.

아직 소식은 없지만 원욱이 형 역시 합격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설마…… 그 형도 합격한 건 아니겠지?”

“진짜 그 형까지 합격하면 우리 스터디에 4명 모두 되는 거 아니야? 거의 이건 기적인데.”

보통 1차 합격자 5명꼴로 1명의 2차 합격자가 나오지만 벌써 4명 중 3명이 합격 소식을 알렸다.

원욱이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기적은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원욱이 형까지 모두 합격생 열차를 탄다면 이 열차는 신이 주신 선물임이 분명했다.

[연락이 안 돼서 문자한다. 태범아 너 합격이니?]

현찬이와 전화를 끊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영석 교수님의 메시지였다.

태범은 합격을 알리기 위해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교수님의 전화기에서도 불이 났을 것이다.

띠리링.

[김용수 선배님.]

잠시 후 교수님에게 전화가 왔나 싶어 확인하니 교수가 아닌 김용수 선배였다.

고시반에서 특강을 했던 학교 선배이자 회계사로 일하며 태범에게 명함을 줬던 그 사람.

“강태범 씨, 안녕하세요. 상정회계법인에 김용수입니다. 저 기억나시죠?”

“안녕하세요.”

“회계사 합격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교수님한테 연락받았죠.”

어떻게 된 건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교수님에게 합격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역시 발 없는 말은 그 무엇보다 빠른 법이었다.

“법인은 어디로 갈지 생각하셨어요?”

“일단 BIG4 생각 중인데 사실 선배님 있는 상정회계법인에 지원할 생각이거든요.”

상정회계법인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30% 이상의 감사를 맡고 있는 회사였다.

게다가 태범의 스캐너를 생산한 샘정 그룹의 대다수 계열사가 이곳과 외부 감사 계약이 되어 있을 만큼 업계에서는 제일 잘 나가는 법인이었다.

“그럼 빨리 지원하세요. 마감 날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저도 같은 회사에서 봤으면 좋겠네요.”

“정말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물어볼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요.”

“아, 감사합니다.”

태범은 김용수의 전화를 끊고, 선배 회계사의 천절함에 감동받아 또 다시 미소를 발사했다.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게 감정을 숨길 수 가 없었다.

“전화 한 사람 누구니?”

태범이 전화를 끊자 아버지가 물었다.

“학교 선배인데 회계사 분이신데. 축하한다고…….”

“그래? 좋은 선배네. 그건 그렇고 태범아. 당장 정장부터 맞추러가자! 내가 제일 좋은 것으로다가 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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