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42화 (42/188)

# 42

“후…….”

현찬은 컴퓨터 앞에 서서 자기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을 눌러야 하지만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뜸을 들이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으면 태범은 현찬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줄만 알았다.

뒤에서 지켜보는 태범마저 자기 일은 아니더라도 감정이입이 된 나머지 같이 떨고 있었다.

딸칵.

현찬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마우스로 확인 버튼을 눌렀다.

“으아!”

질끈 감은 눈을 천천히 뜨며 모니터 속의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합격]

평균 71점으로 합격자 명단에 현찬의 수험 번호가 들어있었다.

현찬은 소리를 지르며 개구리처럼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됐다. 됐어!”

얼마나 기뻤으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태범을 껴안기까지 하고 있었다.

“야. 알았으니까 이것 좀…….”

기뻐서 저러는 건 이해하지만 차마 남자가 자신을 껴안은 건 느끼고 싶지 않았다.

태범은 현찬이를 밀치며 품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현찬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앞에 보이는 게 없는 건지 태범을 계속해서 끌어안았다.

그저 이 순간만큼은 합격이 주는 행복을 즐길 뿐 있었다.

“하…….”

현찬이 기뻐하는 사이 그다음 수험생이 자신의 결과를 확인 했고, 깊은 한숨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이 금세 온 공간을 지배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서 확인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 합격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부분 결과를 개인적으로 확인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감이 불합격으로 바뀌는 순간 이곳은 지옥이 되었다.

방금까지 천국과 같았던 이곳은 어느새 지옥이 되었고 천국과 지옥이 오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현찬에게 태범은 시각을 돌리며 밖으로 나가자는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현찬도 분위기를 눈치를 챘는지 조용히 회계사반 방을 나섰다.

“너 때문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뒷사람은 떨어졌는데 그렇게 거기서 좋아하면 어떻게 하냐.”

“그랬어? 미안. 너무 흥분돼서. 사실 이번에 시험 볼 때 잘 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하고 있었거든. 근데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와.”

여전히 기쁨이 가시지 않은 현찬은 애써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든 다행이다. 우리 둘 다 합격해서 말이야.”

태범은 속으로 현찬을 대단한 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같은 학생이지만 충분히 존경할 만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태범과 현찬은 휴게실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기쁨을 나눴다.

오늘만큼은 그 어떤 고급스러운 커피보다 이 설탕 덩어리 싸구려 커피가 맛있게만 느껴졌다.

“애들아! 너희들 합격했다며?”

“네, 교수님.”

감독 실장님에게 소식을 듣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고시반으로 들어온 김영석 교수였다.

교수는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태범과 현찬이의 앞에 앉더니 함박웃음을 짓고 투 머치 토커라는 별명답게 입을 끊임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하한다. 정말. 너희 둘은 꼭 될 거라 생각했거든, 이제 알았지?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는 걸. 둘 다 내가 추천해서 이곳에 들어왔잖아.”

“아! 맞아요. 맞아. 정말 감사합니다.”

현찬은 지금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교수의 자기 자랑도 그저 감사하게 느껴지니, 허리를 푹 숙이며 교수에게 감사함을 전달했다.

태범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래, 잘했다. 지금 다른 애들은 어떤데? 아직 너희 둘 밖에 안 된 거야?”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저희가 먼저 확인하고 나왔거든요.”

“안에 애들 많이 있어?”

“네, 저희 포함해서 열 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았는데요.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확인하려나 봐요.”

“음, 그래? 너희들은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 내가 애들 얼마나 합격했는지 안에 들어가서 확인 좀 하고 올게.”

“네, 알겠습니다.”

교수는 휴게실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벅차며 회계사반으로 향했다.

지금 학생 다음에 가장 바쁜 사람은 교수인 듯했다.

“애들아 어떻게 됐니?”

교수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고시반 수험생들의 합격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에 교수는 눈치를 보며 목소리 톤을 낮췄다.

“결과는 나왔니?”

“죄송합니다. 저 떨어졌어요…….”

“아…….”

교수의 물음에 먼저 대답한 건 졸업생인 오현택이었다.

고시반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한 사람으로서 본인도 이번 시험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수님 역시 이번년도만큼은 꼭 붙을 거라 장담을 했지만 신의 장난인지 오현택은 올해도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오현택의 눈에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눈물이 맺혀있었다.

“…….”

평소 말 많던 교수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험은 냉정한 전쟁이었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있으면 패배자도 있는 법, 전쟁에는 자비란 없으며 그저 강한 자의 손만 들어 줄 뿐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공부해온 현택은 결국 이번 전쟁에서 또 패배를 맞고 만 것이다.

“너무 기죽지 마라. 그래도 열심히 했잖니?”

“죄송합니다. 신경 많이 써주셨는데. 전 여기서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회계사 시험이라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현택은 결국 포기 선언을 하고 말았다.

자그마치 6년간의 긴 대장정이었다.

교수는 현택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보듬어줄 뿐이었다.

교수 역시 현택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전쟁의 승리자는 승리에 도취되는 것도 잠시, 다음 전쟁을 위해 계획에 나섰다.

“저기, 태범아. 우리 2차 시험은 사람들 모아서 같이 공부할래?”

“같이?”

“응, 사람들 모아서 모의고사로 답안지 작성 연습하자. 선배한테 물어보니까 이게 좋은 방법이라 하더라고.”

평소 독고다이로 공부해왔던 태범에게 스터디는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태범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 채 고민을 하다가 대답을 꺼냈다.

“그래, 같이하지 뭐.”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모두는 아니지만 분명 여기 있는 회계사 준비생 친구들은 언젠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갈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학연으로 이어져있는 인맥은 사회에 나가서 꽤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빠, 주한식품 주식 매도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왜? 무슨 일 있어?”

“가치투자라고 하기에는 이제 불확실성이 너무 큰 것 같아서.”

태범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특정주식의 매도를 권유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주한식품 주식이 이번 적용되는 최저 시급 인상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매도해.”

아버지의 상당수 자금이 태범이 추천한 주식에 투자돼있었다.

아무리 금리가 미국 금리와 맞춰 다시 올라가는 추세라 할지라도 여전히 과거에 비하면 저금리 수준이며 예금이자에는 메리트가 없었다.

가치투자를 공부, 연구하다 보니 저금리의 예금에 묶여 있는 아버지의 돈이 아깝게만 느껴졌고, 태범은 그보다 단 0.01%라도 높은 쪽에 투자하자는 마음으로 예금 계좌의 돈을 주식으로 옮긴 것이었다.

물론 주식이라 여전히 불확실성은 존재했지만 워렌버핏과 폰 노이만의 능력을 통해 얻은 지식이 빗나갈 정도면 차라리 길가다 벼락 맞아 죽는 확률이 높을지도 몰랐다.

“네 큰아버지가 나랑 똑같이 투자하고 싶다는데, 내가 너 공부한다고 바빠서 안 된다고 했어.”

‘금세 큰 아버지에게 말하셨나.’

태범은 아버지가 아들자랑에 입이 간지럽다 못해 사방팔방에 소문을 퍼뜨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소문이라는 게 항상 그럴 듯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뜬금없이 들려오기 마련이었다.

“아빠, 커미션을 받고 하는 게 아니면 웬만하면 주식이나 이런 투자 쪽으로 사람들과 안 엮기는 게 좋아. 처음에는 호의로 다가오겠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모두 덤탱이 쓸 수도 있어.”

“그런 건 이 아빠도 그런 건 잘 아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남은 공부에 집중해.”

“알았어. 그럼 아빠꺼 주식 정리해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그래, 알았다.”

태범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아버지의 주식계좌에 이어 본인의 주식계좌에 들어가 주식평가액을 확인했다.

태범의 주식가치는 500만원에서 시작해 600만원대를 진입하고 있었다.

물론 초반 단타를 이용한 수익이 대부분의 수익을 차지하고 있지만, 꾸준히 주가는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가치투자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는 상황에 3달간 약 3%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저평가와 성장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다업종의 주식을 매수한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직 전초단계에 불과했고, 소액이기 때문에 3%가 아닌 5% 10%라도 남을 놀라게 할만한 큰 금액은 아니였다.

하지만 태범은 수익금액을 보는 게 아니라 수익률을 목적으로 투자안목과 기술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즉 아직은 돈보다는 정보와 지식을 구축하는 단계였다.

21세기 정보화 사회 정보가 곧 돈이었다.

태범은 스캐너의 능력과 정보를 이용해 큰돈을 벌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전공을 회계로 선택한 것이 운이 좋은 셈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점수에 맞춰 학교를 들어오기 위해 선택한 ‘회계학과’였지만 지금은 본인이 가고자 하는 꿈과 맞아 떨어진 상황이었다.

회계사라는 직업이 자본주의의 파수꾼답게 기업과 경제적인 정보를 가장 쉽게 얻으며, 배울 수 있는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범에게 회계사라는 직업도 단지 큰 목적을 향해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다리 역할일 뿐이었다.

꿈이라는 건 언제 바뀔지 모르고 셀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그중에 지금 당장 태범이 가장 원하는 건 부를 이루는 꿈이었다.

누군가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 하면 어쩌면 인간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고 그저 자본주의에 찌든 돈의 노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범은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숨긴 채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이 원하는 꿈을 그대로 좇을 뿐이었다.

* * *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

태범은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며 말했다.

“그러게.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지?”

캐서린은 평소 털털하고 활발하게 있곤 했으나 오늘만큼은 아쉬움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캐서린과 태범이 첫 데이트를 했던 학교 앞 커피숍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데이트 장소가 될 것 같았다.

캐서린은 교환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영국에 가서 계속 학교 다녀야 하는 거지?”

“응, 이제 1달 반만 하면 졸업이니까, 그때까지는 계속 공부해야지.”

“영국가도 연락 자주 하고 웬만하면 연락 오는 거 다 받을 테니까.”

“아니야, 태범이 공부하느라 바쁘잖아. 그때까지 참을 게. 먼저 연락해주면 그때 받을 게.”

캐서린은 태범의 곁에 있었기에 태범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계사 시험부터 시작해 주식, 프로그래밍, 운동까지 능력이 허용하는 모든 일에 손을 뻗치며 했으니 말이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정말 언제든 연락해도 돼. 국제 전화로 걸어도 받아줄게, 알겠지?”

“알았어.”

“다음에는 내가 영국으로 갈게. 그때 다시 봤으면 좋겠다.”

“영국으로 오려고?”

“왠지 한 번쯤은 갈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사람 바뀌었다고 못 알아보면 안 된다?”

태범은 미래에 바뀌었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캐서린과 다시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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