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정말, 정말이니?”
시무룩해져 있던 태범의 표정이 180도 바뀌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합격을 예고했지만 부모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장난이 심했나?’
태범은 들뜬 마음에 평소 하지 않는 장난은 한 건데, 부모님이 반응이 이럴 줄은 몰랐다.
아직 장난인지, 진실인지 구별이 잘 안 가는 모양이었다.
“응, 정말이야. 그냥 장난친 거야. 흣.”
“장난? 아우! 깜짝 놀랐잖아.”
퍽!
“아!”
어머니는 괘씸한 아들의 장난에 발끈하여 태범의 팔뚝을 손으로 내려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호호. 엄마를 놀리면 되니.”
하지만 놀란 가슴도 잠시 오히려 어머니는 본인이 속았구나 하는 게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수고 많았다.”
아버지는 굳이 감정표현을 크게 하고 있지 않지만 방금까지 미간이 좁혀있던 얼굴이 지금은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듯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형, 시험 잘 봤어?”
방에 있던 동생 태인은 소란스러운 바깥소리에 방문을 열고 형에게로 다가왔다.
태인은 방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손에는 타블렛 펜을 들고 있었다.
“그래, 네 형 시험 잘 봤던 데. 합격할 것 같대!”
태인의 질문에 태범이 입을 떼려던 쯤 어머니가 낚아채듯 빠르게 대답했다.
어머니의 들뜬 말투만 들어봐도 지금 감정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아직 점수도 안 나왔을 거 아니야. 회계사 시험은 합격이 바로 나와?”
태인은 의심하듯 형에게 말했다.
“그야 문제가 쉬웠으니까.”
태인의 질문에 태범은 전혀 뜸들임 없이 대답했다.
굳이 정답을 맞춰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몸은 합격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를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고, 그저 자신감으로서 합격에 대한 확신을 대답해 줄 뿐이었다.
“그럼 다른 사람도 다 쉬운 거 아니야?”
“형이 합격할 것 같다 하면 그런 거지. 뭘 자꾸 따지니.”
어머니는 태범을 대변해 자꾸 꼬치꼬치 묻는 태인에게 말을 가로막았다.
어머니의 호통에 순간 태인의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태범은 혹시나 태인이 질투감을 느끼지 않을지 걱정했다.
생각해보니 스캐너를 얻은 이후로부터 부모님의 관심은 모두 본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관심은 올해 고3을 올라가던 태인에게 있었지만 동생은 스스로 관심을 걷어차 버렸고 부모님은 결국 포기 선언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빠져있는 태범에게 관심이 돌아왔는데 동생 입장에서는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자 그러지 말고 시험도 잘 봤다고 하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래, 태범아. 뭐 먹고 싶니?”
아버지는 외식을 하자며 외투를 입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평소였으면 츄리닝 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을 아버지가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렇게 태범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식을 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뭐 먹을래, 태범아?”
“음…….”
“소고기 어때? 이런 날에 좋은 거 먹어야지.”
태범이 대답을 뜸들이자, 아버지가 미리 생각을 해두셨는지 가족을 차에 태우고 고급 한우점으로 갔다.
“여기 비싸겠네.”
가게 앞에 도착해 외부를 본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현대식 건물과 목조의 조합은 한 눈에 봐도 고풍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나게 하는 건 가격이었다.
“그래도 태범이가 힘든 일을 하고 왔는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아버지 태연하게 가족을 이끌며 앞장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인테리어부터가 남다른 게 마치 고급한옥의 내부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눌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이다.
“태범아, 오늘은 너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라. 아빠가 다 사줄 테니까.”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상상초월, 평소 먹던 고기보다 가격이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뜯어말렸을 가격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회계사 자격증 따면 뭐할지 계획은 세워놨니?”
고기를 주문하고, 음식이 테이블에 올라오기 전 아버지는 태범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먼저 회계법인에 들어가서 일해야지. 그 후 일은 일단 사회와 부딪쳐봐야 알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그래, 사회에 나가서도 기죽지 말고. 어떨 땐 남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지만 어떨 때는 누가 뭐라 해도 강단 있게 밀고 나갈 줄 알아야 해.”
아버지는 미래의 회계사를 앞에 두고 사회에 대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언젠가 아버지에게 몇 번 들어본 말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태범에게 와 닿는 말로써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일 날이 온 것 같았다.
“나도 더 이상 예전 바보처럼 살지 않으려고 나도 다 생각 있으니까 걱정은 크게 안했으면 좋겠어.”
“그래, 태범아. 그런 태도 맘에 들어.”
평소와 다른 태범의 진지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범의 모든 자신감은 스캐너로부터 나왔다.
이미 능력을 통해 많은 걸 얻었고 성과는 눈앞에 나타났다.
보이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다고 이미 나타난 성과에 태범은 앞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였다.
‘기대하세요. 제가 무엇이 될지.’
태범은 속으로 한 번 더 다짐을 하며 미소를 띠였다.
아버지는 태범의 마음속 다짐과 함께 미소가 전달됐는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종업원은 마블링 꽃이 핀 소고기가 올려진 나무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태범의 가족은 하던 말들을 모두 멈추고 시선을 고기로 향하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 * *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50%)-기업 분석력(55%)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워렌버핏의 능력을 얻은 지 3달쯤 지났을 때였다.
이전 인물들의 능력에 비하면 워렌버핏의 능력은 천천히 증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은 하루에 1%씩이니 모두 채우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쌓인 능력 덕에 지금은 좋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워렌버핏의 능력과 폰 노이만의 능력이 합쳐지니 시너지는 상당했다.
기업의 재무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폰 노이만의 수리 능력은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 평가 방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타타타탁.
탈칵, 탈칵.
방안에 울려 퍼지는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가 태범의 몰입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태범은 투자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속을 탐험하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기사, 뉴스, 카페, 댓글 심지어 찌라시까지 모두 정보로 흡수했다.
특히 ‘가치 투자 클럽’이라고 가치 투자를 즐겨하는 투자자들이 활동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주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오늘 태범은 그 카페의 우수회원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었다.
-가치 투자 클럽 채팅방-
태범은 자신의 성을 따 워렌버핏과 합성시켜 ‘강버핏’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입으로 말하긴 오글거리는 닉네임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은 뭐든 가능케 했다.
[강버핏: 우수회원 등업 감사합니다.]
[운영자: 네,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 다음 어디서 활동하시는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강버핏: 개인 투자자입니다.]
[운영자: 혹시 관련 계통에서 일하시나요? 올리신 글의 수준이 상당한 것 같네요.]
[강버핏: 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드리기가 힘들 것 같아요. 저도 하고 있는 일이 있어요.]
[운영자: 아 물론 그러실 수도 있죠. 불편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최근 태범이 분석한 투자 보고서가 이 사이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고, 그 글을 운영진이 보고 등급을 올려 준 것이었다.
최근 IT나 4차 산업 관련 전체 자산대비 연구 개발비가 많이 포함되어있는 혁신기업에 가치투자 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올린 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보통 가치 투자에 혁신 기업을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워렌버핏 또한 알리바바와 애플, 구글 같은 기업에 투자를 못 한 것이 후회된다고 할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기업에 가치투자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가치 투자라 할지라도 운이 적용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누가 9.11테러가 일어날 것을 예측했을까 천재지변은 어떻고 심지어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이 생각하지 못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걸 예견할 수는 없다.
가치 투자의 분석은 단지 운을 최대한 줄이고 확신을 늘려가는 행위일 뿐이었다.
그리고 태범은 이 확신을 늘리기 위해 스캐너를 통해 얻은 능력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강버핏: 제가 잠시 일이 있어서 카페 활동은 잠시 쉴 것 같아요.]
[운영자: 오랫동안 가시는 건 아니죠?]
[강버핏: 금방 돌아올 겁니다.]
다음 회계사 2차 시험을 위해 잠시 투자 활동은 접기로 했다.
장기간 보유할 주식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매도 처리를 했으며 다음 주식 거래는 2차 시험 이후에 할 계획이었다.
끝이 다가온 만큼 태범은 한 곳에만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3학년 1학기.
태범은 우리 대학의 조기 졸업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학교를 빠르게 졸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기 졸업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점수와 이수 학점이 필요했는데 아마도 이번 학기 역시 모두 A이상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빽빽한 수업과 회계사 2차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 교수와 친구들은 태범을 만류했다가 그들의 걱정은 한방에 해소됐다.
2학년 2학기 때 올 A+를 맞은 것과 그 이후 회계사1차 까지 모두 합격했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입에 본드칠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4월 7일, 1차 시험 기다리던 발표날이 다가왔다.
고시반 회계사 반 사무실에서 현찬 그리고 몇몇의 수험생들이 발표를 확인하기 위해 모였다. 태범도 수업이 없는 휴강 시간을 틈타 자신의 합격을 확인하러 왔다.
“후. 떨린다. 떨려. 태범이 넌 안 떨리냐?”
현찬은 긴장된 나머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파리마냥 손을 비비고 있었다.
태범은 입술을 물며 애써 표정 유지를 하고 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일단 부모님에게 먼저 말했듯이 합격할 확률이 가장 높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신의 장난으로 운명이 뒤바뀔지.
태범이 항상 생각해왔듯 세상에는 완벽함인 100%는 존재하지 않고 0.0001%라도 가능성이 있는 한 세상일은 확정 지을 수 없다는 게 태범의 생각이었다.
두 눈으로 합격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긴장감을 모두 털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야, 내 가슴에 손 얹어봐. 장난 아니지?”
“너 그러다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니냐?”
옆에 다른 수험생들은 서로의 심장소리를 들어보라며 별의별 짓까지 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이 얼마나 떨리는지 표현하고 싶은 거였다.
평균 점수 85점.
“점수 봐봐. 장난 아니다.”
“축하해요.”
“축하한다. 태범아.”
태범의 점수가 모니터에 나타나자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수험생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부터 현찬이 그리고 감독 실장님까지 말이다.
주변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이 느껴졌고 태범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내꺼 확인 해볼게. 후…… 후…….”
다음은 현찬이 차례,
현찬은 숨을 깊게 들이 내쉬더니 합격확인을 위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태범은 그런 현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기운을 불어다 넣어주고 있었다.
‘꼭 합격해라.’
현찬의 지독하고도 피 말리는 노력을 옆에서 지켜본 태범은 현찬에게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