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이거 진짜 맞아? 아직 올라올 시간이 아닌데.”
현수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사실인지 의심스러운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정부 발표도 안했잖아? 뭐지?”
태범과 현수가 보고 있는 글은 정부의 가상 화폐 규제와 관련된 대책정보였다.
아직 정부의 공식 발표도 안 나왔는데 정보가 커뮤니티 사이트에 떠버린 것이다.
사실인지는 아직 공식 발표 전이기에 확인은 안 되지만 글과 함께 올라온 문서는 분명 정부의 공식 문서로 보였다.
“야. 너네끼리만 놀지 말고. 같이 놀지?”
희준은 자기만 모르는 이야기를 태범과 현수 둘이서만 스마트 폰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소외감을 느끼고는 짜증을 냈다.
“아? 쏘리.”
태범은 그제야 고기를 굽고 있던 희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시선을 희준에게로 돌렸다. 현수도 스마트 폰을 끄더니 주머니 속에 넣었지만, 뭔가 불안한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요! 소주 2병 주세요.”
“대낮부터 술 마시게?”
희준이 술을 주문하려 하자 태범은 희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고기 집에 와서 고기만 먹으려고 했어?”
“하긴 너 말이 맞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늘은 마시자.”
생각해보니 고기를 먹는데 술이 빠질 수 없었다. 태범은 희준의 팔을 놓고 오늘은 그냥 즐기자는 마인드로 생각을 고쳤다.
“현수야, 너 태범이 여자 친구 봤냐?”
“아니.”
“겁나 예뻐. 태범아 네 여자 친구 사진 한번 보여 줘봐.”
역시 희준은 오늘도 어김없이 여자 이야기를 꺼냈다.
항상 희준을 만날 때면 여자 이야기는 대화의 기본이라 할 정도로, 이성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으니 태범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태범이 이 자식. 나 없었으면 지금 여자 친구 못 만났을 걸? 하하.”
희준은 자기 덕에 캐서린을 만난 거라며 캐서린과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동안 세 남자의 대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
“회계사 합격하면……음…… 음.”
희준은 쌈을 크게 싼 뒤 입속에 넣어 오물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야. 네 입속에 있는 것 다 씹고 좀 말해라.”
태범은 경멸스럽다는 표정으로 희준의 오물거리는 입을 바라봤다.
“아니, 회계사 합격하면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고. 자퇴? 아니면 휴학?”
“계속 다녀야지. 그래도 졸업은 해야 돼.”
희준에 질문에 태범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을 했다.
회계사로 회계 법인에서 정식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학업 문제는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하긴 대학은 나와야겠지. 사짜 직업도 그 안에서 학벌로 가르면서 계급을 나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그래도 능력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능력이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가족 감싸주는 게 어느 정도는 있겠지”
“하하하.”
태범과 희준의 대화를 듣던 현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직 1차도 합격 안 한 애한테 뭔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게 하냐.”
현수에게 태범에 대한 기억은 고등학교 때 자신과 신나게 놀던 친구라는 것 밖에 없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게임을 좋아하던 태범에게 벌써부터 합격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 현수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뭐가 태범이 요즘 잘나가는 거 모르냐?
“응?”
아무것도 모르는 현수의 웃음에 희준은 표정 하나 안변하고 모든 걸 말해주었다.
교수한테 스카웃 되서 고시반에 들어간 이야기부터 회계학과에 떠오르는 유망주라는 이야기까지 모두 말이다.
같은 대학교를 다니던 희준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현수는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희준아 현수 말이 맞아. 나한테 너무 기대 하지 마.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김칫국을 마시면 안 되지.”
태범은 대놓고 내 뱉는 희준에 입바른 소리에 괜히 쑥스러워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냈다.
“태범아, 너 나중에 잘 되면 우리 버리기 없기다. 약속해라.”
하지만 이에 질세라 희준의 말을 들은 현수는 태범의 어깨를 감싸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태범을 치켜세웠다.
술잔을 기울이며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이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넌 신이 능력을 준다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싶냐?”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니 생각은 걸러지지 않고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만약 친구들이 능력을 주는 스캐너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능력을 바랄까 궁금해 진 것이다.
“아니, 그냥 한번 말해봐.”
“흠……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
희준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태범은 희준이 무슨 말 하려는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아. 그런 거 말고. 현실성 있는 능력으로.”
“음…….”
“나는 내 능력보다 부모님이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
태범의 질문에 희준은 손으로 턱을 잡으며 고민하고 있었고 그 틈을 타 현수가 대신 대답했다.
“응?”
“애초에 부모님이 능력 있으면 일단 인생의 반은 거저먹는 거잖아.”
현수는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꼬듯 자신의 대답을 설명했다.
“아휴…….”
태범은 한편으로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친구의 대답에 마음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 그들만의 세상 아니야? 이미 태어날 때부터 세상은 정해져 있잖아. 잘난 애들은 계속 잘 나갈 테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죽어라 해야 겨우 한발자국 위로 올라갈 뿐인데.”
태범의 반응에 현수는 더욱 열을 내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맞아. 초등학교 때는 꿈이 대통령이었다가 이제는 9급 공무원만 되도 허리를 굽히며 감사할 판이니…… 현실을 알면 알수록 슬퍼지는 것 같아.”
희준도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현수의 말에 힘을 더해주었다.
소주 2병으로 시작해 지금은 다 마신 소주 6명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몸속에 알코올이 차오르니 대화 거리는 점점 가벼운 이야기에서 무거운 이야기로 바뀌어 갔다.
어려운 인생살이부터 시작해 사회에 대한 불만까지 이제 20대에 불과한 세 사람은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야,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그 자리 올라가게 해줄게. 걱정 마. 우리 다 같이 높은 곳 까지 올라가서 만나자! 짠!”
태범의 눈에 친구들은 벌써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보였다.
그러고는 술기운에 안타까운 감정이 고조되더니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용기를 내며 외쳤다.
제정신으로 말하기에는 손발이 오글거리는 말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가슴 찡한 우정이 느껴졌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는 빨리 지며 어둠은 금방 찾아왔고 밖은 벌써 어두워져있었다.
태범과 친구들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고 슬슬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날.
“으…….”
오랜만에 술을 먹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일어난 태범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일찍 자는 바람에 못했던 스캔 작업을 하기위해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기업 분석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5%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9%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워렌버핏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시장 통찰력(5%) -수리 이해력(100%)
-기업 분석력(9%) -언어 이해력(100%)
[이소룡 능력] -암기력(100%)
-힘(100%)
-유연성(100%)
“후…… 이제는 오를 생각을 안 하네.”
이번에도 쥐꼬리만큼 오른 스캔 진행에 태범은 안타까워했다.
역시나 설명에는 야박한 스캐너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범이 추측하기로는 아마 소유하고 있는 능력이 많아짐에 따라 과부하(?) 비슷한 것이 걸린 것 같았다.
“아우.”
스캔 작업을 마치고 다시 침대 위에 올라가 대자로 뻗었다.
아직 주식장이 열리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전 까지 좀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여전히 머릿속 골이 흔들리듯 두통이 태범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암.”
언제 잠에 빠진 건지 눈을 뜨며, 하품을 한 번 크게 한 뒤 벽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주식 시장 개장 시간인 9시를 넘은 9시 반이었다.
태범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켰다.
HTS를 켜자 태범에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붉은색 숫자였다.
붉은색은 주가 상승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가상 화폐 규제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태범이 매수했던 가상화폐 테마주의 주가는 상승한 것이었다.
정부 규제 소식이 들려왔을 때 잠깐 주가가 내려가며 주춤했던 시기 태범은 그 타이밍을 이용해 주식을 매입했고 지금은 오히려 이전의 평균치보다 주가가 더 뛴 상황이었다.
태범의 생각대로 정부의 규제는 생각보다 약하게 발표되었다.
‘오, 생각보다 엄청난데.’
굿 평가 정보는 무려 전날 보다 29%가 상승했다.
미친 수익률이라고 불릴만한 수치였다.
그리고 솔루션 테크놀로지도 8%나 상승했으니 두 개 모두 투자에 성공한 셈이었다.
가상 화폐 테마주도 가상 화폐와 마찬가지로 급등락의 변화폭이 컸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팔아야 되나?’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한번 질주를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다.
과연 이 주식을 더 가지고 있을 까 아니면 빠르게 손을 뺄까 고민이 생긴 것이다.
태범은 돈은 본인의 주머니 속에 들어올 때까지는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수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번 투자는 정부의 움직임이라는 변수를 예측하며 했지만 지금은 어떤 변수를 봐야할지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었다.
“음…….”
여러 번의 고민을 해도 예측할 변수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전량 매도.]
가상 화폐 테마주를 모두 매도한 태범은 하루만에 약 40만 원의 수익을 내고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 은행은 아직 큰 변화가 없었고 좀 더 보유하고 있을 계획이었다.
일단 지금까지는 첫 투자 치고 잘한 셈이었다.
벌써부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태범에게 자신감이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1시간도 되지 않아 깨져버렸다.
시간이 지나도 도통 태범의 눈에는 투자할만한 주식 종목이 보이지 않았다.
첫날은 그저 운 좋게 타이밍을 잘 잡아서 그런가 아니면 초심자의 행운?
‘내가 워렌버핏이 아니라 그런가?’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어떤 사람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붓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의 손에서는 명작의 그림이 탄생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벽 위에 그려진 낙서가 될 수 도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워렌버핏의 능력을 가지고 ‘강태범’ 본인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이소룡의 능력을 가지고 무술을 위한 운동이 아닌, 스트랭스 운동(무게 중심의 운동)에 사용 했던 것처럼 주식 또한 워렌버핏이 아닌 태범의 입맛에 맞게 하려 했던 것이다.
워렌버핏은 투기가 아닌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시장과 기업을 분석하고 10년, 20년 후에도 충분히 건재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기업에 투자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태범은 주식 투자방법은 순간적으로 바뀌는 경제흐름의 변화를 이용해 단기투자를 하고 있던 것이다.
‘워렌버핏처럼 투자를 해야 되는 건가?’
능력은 사람마다 사용방법이 다르다 생각했고 태범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자만감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태범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투자할 때만큼은 강태범이 아닌 워렌버핏이 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