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4장 워렌버핏
12월 말, 2학기 수업이 모두 종강을 알렸고 태범의 대학교는 겨울 방학에 돌입했다.
여전히 고시반은 다니고 있었지만 이제는 자유 학습으로 바꿔 원하는 시간대 공부하기로 했다.
운동도 꾸준히 다니고 있고 스캐너로 생긴 능력 덕분에 태범은 알찬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읍! 읍!”
태범은 바닥에 있는 150㎏짜리 바벨을 가지고 데드리프트(허리를 굽혀 바닥에 놓인 바벨을 잡고 일어서는 동작의 운동)를 하며 준비 운동을 했다.
“와. 형 데드 몇 까지 찍을 수 있어요?”
“최고로 220㎏까지 찍어봤지.”
“220㎏요? 미쳤다.”
옆에는 3명의 고등학생 무리가 태범의 운동을 구경하고 있었다. 애들은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듯 모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너넨 운동 안 하냐?”
이 애들은 태범이 운동하는 시간에 자주 보곤 했는데 실질적으로 운동하는 시간보다 잡담하고 핸드폰 만지는 시간이 더 많아 보였다.
“저희요? 하고 있는데요.”
“그게 하는 거냐. 너희들 옷 봐봐. 땀 하나도 안 났네.”
“여기 너무 추워서 그래요. 히히.”
“맞아. 여기 헬스장 난방 안 해주나 봐요.”
옆에서 조잘거리는 모습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귀엽게만 느껴졌다.
오락실에 가면 꼭 게임을 잘하는 형이 있었는데 그때 태범도 이와 같이 행동했으니 말이다.
“저희가 형처럼 몸 만들려면 얼마나 걸려요?”
“음…… 너희가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지금부터 빡세게 하면요?”
“왜? 지금부터 빡세게 하려고?”
“네, 내일부터 꾸준히 하면 형처럼 몸 만들 수 있겠죠?”
“그래. 열심히 한다면야…….”
꼭 아무것도 안 하는 애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하곤 했다.
수능이 한 달 남았는데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하면 1등급 가능한가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루에 2시간씩 운동하면 권상우 몸 가능한가요?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저 마음의 위안을 위한 질문일 뿐 대부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태범은 잘 알고 있었다. 저 위에 말하는 사람이 과거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어쩜 이 아이들은 태범을 꼭 닮아있었다.
‘스캐너가 없었다면 난 아직도…….’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없었다면 태범은 아직도 일명 ‘내일병’(항상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에 갇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애들아! 운동하자! 내년 여름에는 식스팩으로 수영장도 가고 그래야지.”
헬스장에 와놓고 운동은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애들에게 태범은 어깨를 두들기며 운동을 독려했다.
애들은 다른 기구로 이동했고 충분히 쉰 태범은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읍! 읍!”
가벼운 무게부터 시작해 천천히 몸을 풀어나가며 무게를 늘려나갔다.
이소룡의 능력을 가졌다고 이소룡과 똑같이 운동하라는 법은 없었다.
사용하는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니 같은 능력을 이라도 사용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했다.
이소룡은 주로 무도를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지만 태범은 고중량 반복으로 스트렝스를 중심으로 운동을 했다.
무조건 우락부락 근육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근원섬유와 근신경과 같은 힘을 위한 부분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번에는 200㎏!
단 1rm(1회 반복)을 통해 중량의 기록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읍!”
이를 악물고 하체와 허리힘을 이용해 바벨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힘과 중력의 싸움이었다.
온몸이 땅으로 파고 들어갈 것처럼 엄청난 무게감이 몸을 지배하고 있지만, 태범은 이를 견뎌내며 허리를 들어 올렸다.
단 한 번의 반복이라 할지라도 스트렝스 운동이기 때문에 큰 에너지가 소모됐다.
태범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중량을 준비했다.
마지막 230㎏, 75㎏의 체중을 가지고 있는 태범에게는 자신의 몸무게에 거의 3배가 달하는 무게였다.
옆에 있는 기구의 덤벨까지 끌어다 가져와 한 바벨에 모두 끼워 맞췄다.
“후…… 후.”
1rm에는 호흡과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자신이 한번 들 수 있는 최대 무게를 드는 것이기에 집중하지 않고 대충하다가는 부상의 위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넓게 벌리는 스모데드리프트 자세를 취하며 바를 잡았다.
‘내 앞에 있는 바벨은 솜으로 만든 바벨이다. 가볍다. 가볍다.’
태범은 바벨을 손으로 쥔 뒤 속마음으로 자기 최면을 걸며 온몸의 근육을 집중시켰다.
“흡…….”
마음의 준비가 끝나고 강한 호흡과 함께 하체와 허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모든 혈액이 머리에 쏠리기라도 한듯 얼굴은 완전 새빨개져 홍당무가 돼버렸다.
실제로 고중량을 치다가 기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호흡 또한 중요했다.
“으…….”
들어올렸다. 태범의 데드리프트 1rm 최고 신기록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와…….”
“이거 몇 ㎏이야? 하나, 둘, 서이, 너이…….”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원판의 무게를 새고 있었다.
하지만 새기도 어려울 만큼 많이 꽂혀있어 금세 새는 걸 포기했다.
주변 운동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태범에게 옮겨졌고, 심지어 옆에서 운동을 가르치던 트레이너도 태범을 구경하고 있었다.
“후…… 후…….”
태범은 바닥에 주저앉아 수건으로 머리에 맺힌 땀을 닦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보는 척 은근슬쩍 태범을 바라보고 있었고, 태범은 이 시선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태범은 운동을 하면서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본인에게 모이면 식은땀이 저절로 나고 심장이 쿵쾅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정도였지만 운동은 이러한 성격을 바꿔주고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 쏟아 오르는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지금은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즐기고 있었다.
이는 굳이 스티브잡스의 자신감이 필요 없게끔 능력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보너스 같은 개념으로 느껴졌다.
* * *
오늘은 드디어 다른 인물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소룡의 힘과 유연성을 모두 100%까지 올렸고 12시가 지나면 새로운 인물의 사진이 스캐너 위에 올라가는 날이었다.
태범은 항상 그래왔듯 새로운 인물의 능력을 접하는 날이면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워렌버핏.’
워렌버핏은 기업 분석을 통해 기업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주가가 형성돼 있는 저평가 기업에 투자하는 ‘가치 투자’의 달인이었다.
지금까지 수익을 계산하자면 연평균 21.6%의 수익을 낸 샘이었고 이를 복리로 계산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이는 그가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태범은 미리 준비해놨던 백발의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워렌버핏의 사진을 책꽂이의 책 사이에서 꺼냈다.
그리고 스캐너의 유리판 위에 올려놓았다.
스캔이 실행되고 스캐너에서는 강한 빛이 발산됐다.
이제는 스캐너 사용에 꽤 적응된 태범은 강한 빛을 얼굴에 그대로 받아드렸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워렌버핏 능력]
-시장 통찰력(0%)
-기업 분석력(0%)
-도전 정신(0%)
워렌버핏의 능력이 나타나자 태범은 이마에 손을 얹고 고민에 빠졌다.
뭔가 추상적인 느낌의 능력이라 저 능력이 뭘 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도전 정신을 빼기로 했다. 너무 추상적인 능력이고 굳이 워렌버핏의 능력을 통해 얻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일단 시장 통찰력과 기업 분석력이 제일 그럴싸해 보이니 목록 가장 위에 있는 시장 통찰력을 선택했다.
[스캔 진행 중인 작업이 있습니다.]
[스캔이 100% 진행되어야 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물을 스캔할 시 기존 진행 중인 스캔을 취소됩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확인/취소)]
이소룡의 연기(10%)와 무술 감각(15%)이 모두 사라진다.
연기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술인이 되려는 것도 아니기에 태범은 미련 없이 진행 중에 있는 능력을 취소시켰다.
[시장 통찰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5% 진행되었습니다.]
“뭐. 뭐야? 5%가 끝이야?”
보통 첫 능력을 스캔 할 때 10~15%사이가 오르곤 했었으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5%만 상승하고 스캔이 멈췄다.
혹시나 컴퓨터가 렉이 걸린 가 싶어 기다려봤지만, 스캔 진행이 5%에서 멈춘 게 분명했다.
능력을 과도하게 얻어서 그런 걸까 생각이 좀 필요해 보이는 문제였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워렌버핏 능력] -시장 통찰력(5%)
[폰 노이만 능력] -수리 이해력(100%) -언어 이해력(100%) -암기력(100%)
[이소룡 능력]
-힘(100%) -유연성(100%)
‘시장 통찰력으로 뭘 해야 돼는 거지?’
일단 워렌버핏의 능력을 얻었고 이를 통해 뭘 해야 할지 생각을 해야 했다.
워렌버핏이 투자자니 분명 주식투자에 사용되는 능력이긴 하겠지만 그 전에 능력을 테스트해야만 했다. 그 능력이 뭐에 쓰이고 어떤 힘을 발휘할지 말이다.
시장 통찰력이니 말 그대로 경제시장을 알아보면 될 것 같았다.
딸칵.
태범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경제부분 뉴스에 들어가 요즘 경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음…… 뭐지?”
턱을 괴며 모니터를 한참 들여 보고 있지만 평소보다 나아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장에 대한 아이디어나 반짝이는 생각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 느낌에 태범은 의아해하고 있었다.
‘5%밖에 안 돼서 그런가?’
태범은 꽤 오랜 시간 포털 사이트의 경제면을 바라보다가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다음날 태범은 워렌버핏의 시장 통찰력(5%)에 이어서 기업 분석력(5%)을 얻으며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태범아.”
이른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머니는 우편봉투 한 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현다 증권에서 네 이름으로 우편 왔는데 이게 뭐냐?”
“어, 벌써 왔네. 주식 계좌 만들려고 신청한 거야.”
태범은 주식을 하기 위해 현다 증권에서 비대면으로 계좌 개설을 신청했었다.
시대가 좋아진 탓에 직접 증권 회사에 가지 안 가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주식 계좌를 신청할 수 있었다.
“뭐 주식?”
“응.”
“주식 그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잘못 하면 돈 다 날린다. 네 삼촌을 봐라.”
외삼촌이 주식한다고 할아버지 돈을 끌어 쓰다가 쪽박이 난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이모들이 야단법석을 떤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머리에는 주식이 도박이라는 개념으로 박혔다.
“난 그냥 경제 공부하려고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태범은 그런 어머니를 잘 알기에 공부라는 명분으로 어머니를 설득시키려 했다.
“주식하는 게 공부야?
“공부지. 내가 공부하는 회계학도 주식하고 같은 범주에 있는데 모두 경제랑 관련된 거라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그래.”
“그래? 그러면 해봐. 대신에 잘못하면 또 삼촌 꼴 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빠져들지 말고.”
“알았어.”
어머니는 신신당부하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태범은 우편을 받아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증권 계좌를 만들기 시작했다.
봉투 안에 있는 보안 카드만 있으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공인 인증서부터 시작해 계좌까지 모두 인터넷을 통해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인 HTS(홈트레이딩 시스템)을 설치하여 모든 준비를 마쳤다.
[계좌 잔액: 5,000,000]
태범의 증권 계좌에는 500만원이 들어있었다. 프로그램 팔아서 받은 돈의 일부를 넣은 것이었다.
회계학과라 기업 재무제표는 실컷 봐왔어도 이렇게 주식창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 상품도 있지만 태범은 주식 초심자이기 때문에 일단 체험한다는 느낌으로 개별주식만을 거래해보기로 했다.
‘음…….’
일단 투자할 기업을 선택하기 위해 기업과 시장을 알아야만 했다.
태범은 워렌버핏의 능력을 테스트할 겸 주식 시장의 동태 파악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