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태범이 부모님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은 건 식사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기도 하고 이 시간이 그나마 가족끼리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뤄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말까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말 안 하고 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돈 때문에 가족을 버린 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숨길만한 거액도 아니니 그냥 모두에게 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국내 비트코인 거래량 한때 전 세계 거래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아빠, 내가 프로그램을 한 개 개발해서 팔았거든?”
식사를 하며 TV속 뉴스에 눈을 떼지 못하던 아버지가 잠시 반찬을 집기 위해 시선을 돌렸을 틈을 타 태범은 말을 꺼냈다.
“프로그램? 네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냐?”
태범의 말에 아버지는 별 관심 없는 듯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그냥 가끔 취미 겸 공부하는 느낌으로?”
태범은 일상을 가족과 잘 공유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부모님은 태범이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고,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걸 누구한테 팔았는데? 뭐 게임 아이템 파는 것처럼 그러는 거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교수님이 소개시켜줘서 내 프로그램을 원하는 기업에 팔았어.”
“교수님이? 무슨 기업인데?”
태범의 말에 그저 애들 장난인 줄만 않았던 아버지는 교수와 기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져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관심을 가졌다.
“응, 컴퓨터 공학과 교수님이 추천해주셨는데 다존이라고 기업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인데 내 프로그램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얼마에 팔았는데?”
“3천만 원.”
“얼마라고?”
아버지의 질문에 태범은 판매가를 말해줬지만 아버지는 잘못 들었는가 싶어 태범에게 귀를 가져다 대며 다시 한 번 물었다.
“3천만 원.”
순간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 그리고 동생 태인이까지 모든 시선이 태범에게로 쏠리더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형, 구라치지마.”
옆에 있던 태인이 웃음기 가득 먹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태인의 장난에 태범의 얼굴에는 어느 미동도 없었다.
“내가 아빠한테 왜 거짓말을 해.”
평소 거짓말을 할 때면 얼굴에 장난기가 나타나 티가 났겠지만 거짓이 전혀 없어 보이는 태범의 당당한 태도에 태인은 웃음을 잃고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뭘 팔았기에 3천만 원을 벌어?”
아버지는 식사시간인 걸 잊은 듯 숟가락과 젓가락을 잡고 있어야 할 손은 비어있고 밥을 먹어야 할 입은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재무 컨설팅 프로그램인데.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그걸 네가 만들었다고? 어떻게? 아무리 운이 좋다한들 그게 가능하니?”
“캐서린이 컴공이잖아. 그래서 가끔 도와준다고 취미로 배웠는데 우연치 않게 아이디어가 좋아서 그런지 비싸게 팔린 거야.”
태범이 어떤 말을 한들 가족을 완전히 납득시키기에는 어려웠다.
평소 프로그래밍 관련 이야기를 가족에게 한 번도 한 적 없고 태범이 이와 관련된 재능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스캐너가 내게 능력을 줘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게 사실이지만 차마 이는 말할 수 없었고 태범은 대충 캐서린을 이용해 어물쩍 납득시키려 했다.
“그래도 3천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돈은 받았어?”
어머니는 혹시 사기가 아닌지 의심하고 돈부터 확인에 나섰다.
요즘 다단계니 투자니 하면서 대학생이나 실업자들을 상대로 하는 사기가 많으니 혹시 태범도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의심을 한 것이었다.
“응, 지금 내 통장에 들어있어.”
태범은 스마트 폰에 찍힌 통장 잔액을 보여주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 만, 백 만…… 천 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마트 폰 속 계좌 금액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금액을 샜다.
“와…….”
3천만 원이 찍힌 계좌를 보고서는 다들 입이 벌어져 차마 아직 삼키지 못한 음식물이 입안에 보일 정도였다.
“태범아 이 돈 어떻게 할 거니?”
“필요한 게 있으면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려고.”
“음…… 그래, 어쨌든 태범이가 네가 번거니 아빠가 터치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돈은 항상 아껴 써. 갑자기 돈 생겼다고 막 쓰지 말고. 알겠지?”
아버지는 혹시 태범이 갑자기 갖게 된 큰돈을 잘못 쓸까 걱정하는 마음에 조언을 건넸다.
“필요한 데만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마.”
* * *
‘독립을 할까, 아니면 저축?’
세법 수업을 듣고 있는 태범은 교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펜을 돌리며 통장에 들어온 3천만 원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에 빠져있었다.
‘보증금 2000정도니까…….’
태범은 복학 이후 집을 나와 따로 살아볼까도 생각했었다.
부모 보호 아래에 있다는 건 여전히 하나의 독립체로써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일단 집에서 나와 따로 살고 싶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 많았다.
태범은 학교 모든 수업을 마치고 캐서린과의 데이트를 위해 연락했다.
쇼핑 데이트!
번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필요한데 쓰기로 했다.
소비가 있어야 내수 시장이 살고 경제가 좋아지니 태범은 돈을 쓰는 것이 애국하는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며 오늘만큼 캐서린과 쇼핑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갑자기 웬 쇼핑이야? 태범이 너 원래 쇼핑하기 싫어했잖아.”
캐서린과 만나기로 한 학교 근처 지하철 정거장 캐서린은 태범을 보자마자 인사가 아닌 질문을 던졌다.
태범은 캐서린과 데이트를 즐기다가 간혹 쇼핑을 하곤 했었다.
물론 쇼핑을 싫어하는 태범은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것에 가까웠으니 캐서린도 이를 모르는 것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쇼핑을 먼저 제안하다니 캐서린에게는 의아한 상황이었다.
“아니, 오랜만에 쇼핑하면서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갑자기 무슨 일이래. 만날 쇼핑하면 집에 가자고 그렇게 졸라댔으면서”
“사람이 기분이라는 게 있잖아.”
캐서린은 보통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쇼핑하는 걸 좋아했다.
보통 여자들은 진열돼 있는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로 여겨져 쇼핑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남자 같은 경우는 여자와 달랐다. 남자의 쇼핑 성향은 목적성이 강하고 그저 쇼핑이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특히 사지 못하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물건을 둘러보는 건 더욱 고역이었다.
소유욕과 현실의 차이는 고통으로 다가오니 애초에 쇼핑이라는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태범도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니 쇼핑에 대한 기분이 달라졌다.
더 이상 그림의 떡이 아닌 소유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고 자신이 직접 가지고 사용할 수 있다는 흥분감과 호기심에 쇼핑은 충분히 즐거울 것만 같았다.
“저기 가보자.”
오늘만큼은 캐서린이 이끄는 쇼핑이 아닌 태범이 주도하고 있었다.
태범과 캐서린이 백화점에 들어서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전자 제품관이였다.
“캐서린, 이거 어때?”
“왜 노트북 사려고?”
“응, 노트북 한 개쯤 필요할 것 같아서.”
태범은 노트북이 진열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사양 표를 보며 쓸 만한 노트북을 찾아 캐서린에게 보여주었다.
“근데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야?”
[\2,300,000]
태범이 고른 건 요즘 나온 최신 모델의 노트북이었다.
“이왕 살 거면 오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거 사야지. 괜히 싸구려 사서 골머리 앓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긴 한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돈은 있고?”
“돈이 없으면 쇼핑을 왔겠어?”
“그건 그렇지. 훗.”
태범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재벌이 쇼핑하러 온 줄만 알 것 같은 태범의 자신감에 캐서린은 살짝 웃음을 내뱉었다.
샘성전자의 스캐너!
태범은 가전기기를 둘러보다 눈에 띄는 상품이 있었다.
능력을 주는 스캐너 그 또한 샘성에서 나온 스캐너였으니 혹시나 눈앞에 있는 저 스캐너들도 그런 기능을 가졌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모든 스캐너가 능력을 준다면 세상 사람들이 힘겹게 노력하며 살고 있지 않을 테니 모든 스캐너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세상에서 단 하나라는 법은 또 없었다.
태범은 잠시 스캐너를 바라보며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옷 사러 가자.”
노트북 쇼핑을 마치고 이제는 옷을 사러 이동했다.
평소 가성비 좋은 보세옷을 즐겨 입었던 태범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지금까지 수고한 본인한테 선물을 주고 싶었다.
태범은 캐서린의 손을 잡고 명품의류매장 앞에 멈춰 섰다.
* * *
“다녀왔습니다.”
“왔니,”
“엄마, 선물.”
“이게 뭐니?”
“내가 처음 번 돈인데 그래도 가족 선물은 사야 할 것 같아서. 아빠 것도 사 왔어.”
어머니는 태범이 건넨 조그마한 선물 박스를 열어봤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갑이 들어있었다.
“이런 걸 왜 사니. 비싼 거 아니야?”
“비싼 거 아니니까. 그냥 써. 그래도 내가 처음 돈 벌어서 산 건데.”
부모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품이나 치장 같은 건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태범이 부모님과 23년이나 같이 살면서 이를 모를 일은 없었다. 괜히 명품, 좋은 걸 사 와봤자 환불하라는 소리를 할 게 뻔하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값싼 지갑을 선물했다.
대신에 그 지갑 안에는 부모님들이 가장 원하는 선물 1위!, 현찰이 들어있었다.
그저 싸구려 지갑은 또 다른 포장지였던 셈이었다.
태범은 방에 들어와 두 손 가득한 쇼핑 짐을 풀기 시작했다.
새 노트북에 갖갖이 옷들이 있었고,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노트북을 펼치자 새 기계 냄새가 올라오더니 태범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항상 새것에서 나오는 냄새는 오묘한 게 은근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흔히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지만 태범에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틀린 말이었다.
돈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 구매한 물건들을 처음 사용할 때 그 설렘, 모든 게 태범에게는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속세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간이라면 나이, 성별 불문하고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모두 소유욕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동물과 과거에 살았던 원시인들까지 소유욕은 자기 보존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욕구였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욕을 극대화 시키는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태범도 마찬가지 소유에 대한 욕구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없는 용돈을 쪼개 5천 원짜리 로또 복권을 사고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현실은 5등조차 되기 힘들었으니 꿈과 상상은 현실과 멀고도 먼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스캐너만 있으면 말이다.
[세계 부자 순위.]
태범은 새로 산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하고, 포털사이트에 [세계 부자 순위.]를 검색했다.
아직은 아니었지만 다음 인물로 스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태범은 벌써부터 기대에 차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1위 제프 베조스.
2위 빌게이츠.
3위 워렌버핏.
역시 사람들의 돈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듯 세계 부자들에 대한 정보는 아주 쉽게 나타났다.
‘어? 1위가 빌게이츠 아니었나.’
항상 1위 자리에는 빌게이츠가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 있었다.
세계부자 순위는 대부분 기업 주가상황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하곤 했다.
태범은 세계부자들의 이력은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한 노인.
미국의 기업가이자 투자자. 워렌버핏이다.
워렌버핏은 기업의 가치를 읽는데 탁월한 사람이었고 기업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읽는 것이 취미일 정도로 기업과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부까지.
태범이 전공하는 회계학이랑 가장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 이 사람이야…….’
태범은 본인의 전공을 살리면서 부까지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분명 워렌버핏에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