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34화 (34/188)

# 34

[유연성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5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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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53%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이소룡 능력]

-힘(70%)

-유연성(53%)

-연기(10%)

-무술 감각(15%)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100%)

-수리 이해력(100%)

-언어 이해력(100%)

이틀뿐이었지만 스캐너와의 만남은 마치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이산가족과의 상봉 같은 기분이었다.

“읍!”

태범은 다리를 책장 위에 올려 쭉쭉 찢으며 가랑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즐기고 있었다.

이어서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해보았다.

어렸을 적 배웠던 태권도가 전부였지만 쭉쭉 펴지는 다리 덕분에 나름 자세 잡힌 발차기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킥이면 웬만한 성인 남성의 얼굴을 가까스로 가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일단 유연성을 힘과 비슷한 수준까지 채워야겠다.’

능력을 다양하게 동시에 올릴수록 스캔 속도가 빨라지긴 하나 원하지 않는 능력을 선택할 바에는 시너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치만 올리고 포기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태범은 이제 스캔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떤 선택이 효율적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가끔 예외적인 수치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건 일정한 패턴이 보이지 않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두 가지(힘, 유연성)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이틀 쉬었으니 이틀 치를 한 번에 스캔이 가능할까?’

혹시나 사용 가능 횟수가 축적이 될까 다시 한번 스캔을 해봤지만 스캐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역시 하루 한번 이상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 * *

주말인 오늘 고시반 내에서 자체 모의고사를 보기로 했다.

시험 과목과 시간 모두 실제 시험 규칙과 맞춰 일어지는 모의고사로 지금까지 학습해온 지식을 점검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문제는 교수님들이 선정하고 기존의 일부 문제를 변형시켜 만든 문제로 실제 시험 문제와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졌다.

쉬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1차 합격자들을 제외한 37명의 학생이 모두 참가할 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회계사 같은 경우는 모의고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없고 해봤자 시험 전 회계사 학원에서 대규모로 실시하는 모의고사가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 실전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좋은 경험을 어떤 수험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태범아 넌 별로 안 걱정 안 되겠다. 어차피 합격은 따 논 당상이잖아.”

현찬은 태범의 옆자리에 앉더니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태범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항상 예외라는 게 있잖아.”

“너한테는 예외가 없어 보이는데?”

태범도 자기가 합격할 거라곤 확신하고 있었으나 예의상 자신을 낮추며 말했다.

하지만 현찬도 태범이 합격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태범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모의고사인데 왜 이렇게 떨리냐, 진짜 시험 때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니야?”

현찬은 긴장이 된 듯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막상 시작하면 괜찮을 걸? 수능 볼 때 기억 안 나냐?”

태범은 긴장하고 있는 현찬에게 수능날 이야기를 꺼냈다.

수능 고시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얼마나 떨리던지 심장이 몸 밖으로 떨어지는 줄 만 알았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1교시 언어 문제를 푼 뒤 그 긴장감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점심이 지나곤 식곤증과 따듯한 교실의 온도로 몸이 나른해 질 정도였다. 괜히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수능 때는 솔직히 별 긴장 안 했어. 그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어느 대학을 가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다르잖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하긴 노력하면 너만 한 사람이 없지.”

현찬이는 뒤늦게 깨닫고 공부에 노력한 케이스였다.

태범과 마찬가지로 서울 하위권 대학에 들어온 현찬은 고등학교 때까지 별 노력 없이 지냈다가 대학에 오고 나서 스스로 공부쟁이를 자처하며 노력한 인물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1년을 더 해야 되는 게 진짜 무섭다. 와…… 1년.”

“맞아. 1년이라는 시간은 엄청 긴 건데. 단 한 번에 결정 나니 말이야. 잘못하다가는 세월 버리기 일쑤지.”

현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험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태범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걱정하는 척 했다.

“아직 10분 남았네.”

모의고사 시작 전 현찬은 시험에 나올만한 중요 내용이 요약된 노트를 펴고 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단권으로 된 자신만의 노트를 가지고 모의고사를 위한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단권 노트는 시험 준비생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험의 중요 내용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압축되어있는 노트는 모든 과목을 빠르게 점검하기 좋았다.

하지만 태범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케팅, 인사 관리, 조직 행위, 생산 관리…….’

태범은 머릿속으로 경영학을 시작으로 재무회계까지 모든 단원들을 한 번씩 상기하고 있었다.

기억술의 한 방법으로 기억의 궁전이라는 것이 있다.

기억을 하고자 하는 대상을 이미지화시켜 자신의 만의 공간(궁전)속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를 외운다 하면 큰 주제부터 시작해 명사면 강아지, 동사면 고양이, 형용사면 물고기와 같이 이미지화를 시킨 후 자신의 궁전이 집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옷에 c,c,h,m,m(조동사 can, could, have, may, might)이라고 적혀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상상 속 궁전에 넣으면 기억이 수월해 진다.

조동사를 잊어먹었다면 머릿속에 있는 궁전의 고양이를 찾으면 된다.

그렇게 머릿속에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를 이루며 기억의 공간을 형성하면 암기를 하는데 효율적이었다.

태범은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기억의 궁전이 아닌, 기억의 백과사전을 이용해서 말이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큰 단원을 머릿속 백과사전에서 펼치면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남들이 노트에 적어 놓지만 태범은 머릿속으로 단권화를 이뤄낸 것이었다.

폰 노이만의 암기력을 기억술을 통해 한 단계 성장을 이룬 셈이었다.

“뭐해? 어디 아파?”

“어?”

태범은 눈을 감고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머릿속에 든 백과사전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찬이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왜 그래? 공부 많이 해서 피곤한가 보네.”

“피곤하긴 그냥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너 기절한 줄 알았잖아. 너도 은근 긴장 했나 본데?”

“긴장은 무슨.”

태범은 빠르게 머릿속 쌓여있는 책을 점검하며 모의고사 준비를 마쳤다.

“자 자리에 모두 앉고 조용히! 모의고사라고 설렁설렁하지 말고 최대한 시험 날처럼 집중에서 풀어줬으면 좋겠다. 알겠지?”

“네.”

시간이 되고 교수가 문제지를 들고 강의실에 등장했다.

모의고사지만 다들 실전처럼 생각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대강 내 경험으로 보면 모의고사에서 대충 합격자가 보이거든? 그 만큼 오늘 모의고사는 중요한 거야. 시험이 얼마 안 남았잖아. 모의고사에서 점수 못 받으면 실제 시험에서도 힘들거든.”

회계사 1차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4개월이었다.

사실 4개월이면 긴 시간이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4개월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시험 시간만 총 310분, 과목은 총 5개, 경영학, 경제원론, 상법, 세법개론, 회계학

이론형 문제와 계산형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오며 모두 객관식으로 나온다.

슥슥슥.

타타탁.

시험 시작과 동시에 종이 위에서 펜이 움직이는 소리와 계산기 소리가 강의실을 뒤덮었다.

태범도 손가락에 펜을 끼고 계산기를 두들기며 빠르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실제 시험과 난이도는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는 가정 하에 모의고사는 생각보다 쉬웠다.

일단 이론 문제는 웬만한 암기력을 통해 모두 커버가 가능했다. 단지 계산형 문제와 섞여 응용된 문제가 나온다면 살짝 고민은 필요했지만 이도 얼마 가지 않아 풀리게 되는 문제였다.

감독관 역할을 하는 교수의 시선은 주로 태범에게 집중돼 있었다.

과연 모의고사에서도 좋은 결과를 나타낼지가 그의 관심사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구하라…… 통화 450,000+ 당좌 예금 720,000+ 타인 발행 수표 250.000…….

이게 문제인가 할 정도로 초반 문제들은 태범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였다.

다음 문제 역시 큰 차이는 없었다. 폰 노이만의 암기력을 통해 습득한 이론을 가지고 수리 이해력을 더하면 그 어떤 문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는데, 언어 이해력 회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언어 이해력은 다른 말로 패턴이해력이라고 불릴 만했다.

일정한 패턴을 이용해 언어를 분석하는 것처럼 패턴을 통해 회계 문제를 분석을 하니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살짝 변형하며 돌려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 *

긴 시간동안의 모의고사를 마치고 학생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머리싸움이다 보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다.

하지만 시험이 끝났다고 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들은 가방을 챙기며 다시 공부를 위해 독서실로 향했다.

[부재중 전화 아버지 010- 5938-92xx]

“뭐지?”

태범도 가방을 챙기고 나가면서 스마트 폰을 보는데 아버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평소 전화 걸 일이 없을 텐데 태범은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태범아, 아빠가 네 말 들어서 다행이다.”

“왜? 무슨 일 있어?”

대체로 큰일이 생겼을 때나 뭔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하곤 했는데 전화를 하고 다짜고짜 칭찬이라니 태범에게 참 어색한 순간이었다.

“아니, 큰아빠가 명절에 추천해준 주식 있잖아. 영월 식품 그거 투자하려다가 네가 한 말 생각나서 말았는데 지금 주식폭락하고 난리 났더라.”

“정말? 영월 식품이?”

“그래, 네 말대로 일감 몰아주기로 오너 친인척들이 부당 이익을 챙겼나봐.”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그래, 큰아빠도 투자하려다가 네 말 듣고 괜히 찜찜해서 투자액을 줄였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럼 아빠는 영월 식품 안 산 거지?”

“그래, 나도 살까 말까 했다가 태범이 네가 한 말 때문에 그냥 안 샀지. 아무리 그래도 아빠가 아들 말 안 믿으면 되겠어?”

태범은 괜히 마음속이 뿌듯해졌다.

추석 때 아버지의 형제끼리 술을 마시며 주식이야기를 했을 때 태범이 말해준 이야기는 그저 흘려들었을 줄 알았는데 태범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모두 영월 식품에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닌 척 하지만 모두 태범의 말에 신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저 큰 아버지만 약간의 금액을 영월 식품에 투자했을 뿐이었다.

“큰아빠가 한 번 전화해달라니까, 시간 있으면 전화해봐. 혹시 모르잖아. 용돈 줄지?”

용돈이라는 말에 태범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나 잠깐 영월 식품 확인 좀 해볼게.”

“그래, 확인해봐.”

아버지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태범은 영월 식품을 검색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굳이 검색할 필요 없이 메인에 덩그러니 나타나 있었으며 사진에는 검찰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다.

[영월 식품 장원선 회장 구속 영장 청구]

영월 식품이 계열사 주주 현황을 실소유주가 아닌 차명 소유주로 허위 기재한 혐의와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로 회장과 경영진이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대충 짐작은 가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검찰 수사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

그 때문에 영월 식품의 주식은 폭락했고 시가총액만 1조가 증발한 상황이었다.

식품 기업은 신뢰와 고객 충성도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오너 일가의 비도덕적 행위 때문에 고객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게다가 착한 기업이라고 정부의 신뢰와 지원을 받던 기업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신뢰까지 잃어버린 상황 그리고 주가 폭락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몇 년 동안 유지하던 일감 몰아주기였는데 하필 큰아버지가 영월 식품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벌어졌다.

‘설마 사건 터질 줄 알고 누군가 호재에 대한 거짓 소문을 낸 건가?’

하필 큰아버지가 거짓 소문을 듣고 영월 식품에 투자할 뻔한 뒤 얼마 있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타이밍이 기가 막힌 게 미리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퍼트린 소문처럼 보였다. 어쩌면 계획적인 움직임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 태범이니?”

“네,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연락 달라 하셔서.”

태범은 연락을 달라던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큰아버지의 목소리에서 태범을 반기는 듯 들뜬 목소리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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