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어이구야. 학생 어제 가슴 운동해서 그런지 팔에 펌핑 좀 된 거 같은데? 단단하네.”
“아…… 네.”
태범의 속마음은 아저씨가 옆에서 비켜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상황이었다.
훈수를 둔다고 해도 어쨌든 자신을 생각해서 운동을 알려줬기에 호의를 면전에서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턱걸이하려고? 내가 잡아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저씨는 어제까지 벤치프레스 하나조차 힘들어하는 사람이 턱걸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범에게 다리를 받혀줄까 물었지만 태범은 이를 거절했다.
물론 태범도 본인이 턱걸이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상태였다.
일반 일자로 된 철봉과 달리 헬스장의 철봉은 넓고 손잡이가 대각선으로 되어있어 한 개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소룡의 힘을 얻은 만큼 시도라도 해봐야했다.
태범은 팔을 벌려 봉을 쥐었다.
“읍!”
그리고 팔과 광배근을 이용해 몸을 천천히 올리기 시작했다.
‘어?’
몸이 부드럽게 쭉 올라가더니 턱은 봉을 찍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올라간 자신의 몸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한번이 아닌 여러 번도 가능할 게 분명했다.
태범은 턱걸이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평소 가벼운 몸무게에 근육만 더해지니 체조 같은 운동은 다른 운동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오 학생 나보다 잘하네. 역시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이런 건 잘하네.”
태범이 생각보다 쉽게 턱걸이를 하니 놀란 표정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턱걸이는 체중이 적게 나가는 사람이 유리했고 아무리 높은 중량으로 운동을 해도 체중이 높으면 턱걸이는 힘든 법이었다.
아저씨는 벤치프레스 1rm(한번 반복)로 80㎏는 들지만 턱걸이는 5개조차 못하는 사람이었다.
“후…… 후…….”
태범은 총 7개를 하고 철봉에서 내려왔다.
태범에게 7개는 엄청난 발전이었다. 1개도 못했던 사람이 이소룡의 힘 10%만으로 7개를 했다는 건, 앞으로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였다.
태범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근육은 늘었지만 안타깝게도 피부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아직 부드러운 손바닥 피부는 철봉에 쓸려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통증조차 해냈다는 만족감에 쾌감으로 바뀌었다.
운동 좀 한다는 사람은 손바닥에 굳은살을 달고 다니니, 이 또한 운동인으로서 하나의 훈장으로 생각했다.
태범은 잠깐 30초정도 쉬고 다시 철봉을 잡고 턱걸이를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도 태범을 잠깐 지켜보다가 자기 할 운동을 위해 다른 기구로 이동했다.
그렇게 태범은 턱걸이 5세트를 했고, 다음은 바벨로우를 실시했다.
바벨로우는 허리를 굽히고 봉을 잡은 채 등을 이용해 몸 쪽으로 끌어당기는 운동이었다. 이 역시 등 근육을 위한 운동. 태범은 머릿속에 저장해둔 운동법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학생, 허리가 너무 굽었다. 허리를 좀 세워봐.”
어느새 아저씨는 또 다시 태범에게 와서 잘못된 자세를 지적하고 있었다. 마치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운동이 끝날 때마다 태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조금 더 허리를 곡선으로 만들어봐. 이렇게.”
아저씨는 옆에서 시범까지 보여주며 열성적으로 설명해주었다. 태범은 어쩌면 트레이너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 아저씨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는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몸에 붙은 근육 덩어리를 보니 꽤나 경력은 있어 보였다.
태범은 아저씨의 시범 동작을 보며 따라 해보았다.
“오 좋아 그렇게.”
“허리가 좀 아픈 것 같은데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너무 허리에 힘주지 말고 긴장 풀어.”
태범은 힘이 생기다 보니 잘못된 자세정도는 금방 고쳐졌고 이제 운동하는 사람 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바벨로우에 이어 로우덤벨, 벤트오버 등 등 운동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등 운동이란 운동은 한 번씩 해봤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아저씨의 날카로운 시선은 태범에게 고정돼있었다.
자그마치 2시간 동안 운동을 했고 마지막 덤벨컬(이두운동, 아령을 손으로 들어 올리는 운동)을 끝으로 운동을 마쳤다.
“아니, 며칠 전만 해도 뼈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몸 많이 좋아졌네.”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또 다시 태범과 마주친 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져 태범의 몸을 바라봤다.
아까 팔을 만져서 대충 근육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체를 보니 온몸에 붙은 근육은 더 생생하게 보인 것이었다.
“에이 뭘요.”
태범은 괜히 자신의 나체를 평가하는 아저씨의 눈빛에 민망한 나머지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학생 이름이 뭐야?”
“강태범이요.”
“우리 대학교 대학생?”
“네, 맞아요.”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아저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었는지, 태범에게 신상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오! 그래? 내 아들도 우리 대학교 다니는데. 화학공학과에 지금 4학년 졸업반인데 유현진이라고 알아?”
“모르겠는데요. 다른 학과 학생은 거의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요.”
“그렇긴 하지.”
“졸업반이면 많이 바쁘겠네요. 논문도 써야 하고 할 게 많잖아요…….”
“그렇지. 근데 아들이 뭘 하는지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도통 나랑 말을 안 하려 하니, 집에 오면 방에만 들어가서 나오질 않거든.”
“아…….”
태범은 아저씨의 말에 괜히 양심에 찔렸다. 자신도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방에 틀어박혀 살았고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의 대화가 끊겼었다.
식사를 할 때를 빼고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곧 사회에 나갈 자신에게 충고를 하기 시작했고 그게 태범에게는 압박과 잔소리로 들려와 아버지와 대화나누길 꺼려했다.
“학생은 아버지랑 잘 지내지?”
“뭐 사실 저도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아요. 하하.”
“에이, 그러지 말고 아버지랑 가깝게 지내. 알고 보면 가족이 제일 소중한 거야.”
“그렇긴 한데 저희 아버지랑 있다 보면 꼭 잔소리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가깝게 지내고야 싶죠.”
“학생도 나중에 나이 먹어서 가족이 생기면 알게 될 거야. 아버지도 분명 가깝게 지내고 싶을 텐데 자식하고 할 이야기는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이라도 꺼내는 거지. 그리고 다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니까 섭섭하게 듣지 마.”
“그렇죠. 근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요.”
“원래 다 그런 거야. 아버지의 아버지도 똑같았을걸? 원래 부자간에는 대부분 그런 게 있어. 어머니는 항상 옆에 있다 보니까 편하고 아버지는 보통 엄하고 불편한 법이지.”
“아…….”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너무 멀게 느끼지는 마. 단지 세대차이 때문에 표현이 다를 뿐이지 속마음은 학생이랑 크게 다를 바 없을 거야.”
태범은 아저씨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녀왔습니다.”
“왔냐.”
항상 집에 들어오면 퇴근하신 아버지는 혼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주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TV가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TV조차 없었다면 대화가 없는 집안은 정적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태범은 평소와 같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아까 헬스장에서 아저씨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태범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TV보는 척했지만 단둘이 소파에 앉아있는 게 어색한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자연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옛 추억이 담긴 고향이 그리워서 인가 아버지는 간혹 귀농을 가고 싶다 했었고 TV도 시골 풍경이나 자연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시곤 했다.
태범이 이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보려고 소파에 않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한 장면이었다.
“요즘 공부는 잘 되냐?”
태범은 소파에 앉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버지와 태범은 잠깐의 침묵이 있었고, 잠시 후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응. 열심히 하고 있어.”
“그래,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거 같더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그 이상을 노력 해야지.”
“응, 그래야지”
잘하라고 응원만 해주면 될 것을 아버지의 말끝에는 항상 충고와 훈계가 들어있었다.
물론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말 인 건 알겠지만 태범이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말을 반복하는 아버지가 싫기도 했고 잔소리로만 들려 자리를 피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아버지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고시반은 계속 다니는 거고?”
“응.”
“회계사 시험은 언제 보냐?”
“1차는 2월에 보고, 2차는 6월에.”
“얼마 안 남았네. 시험 보기 전까지는 시험에만 집중하고. 큰 시험이니까 죽기살고로 해야 합격할 수 있을 거야. 항상 시험 볼 때는 대충한다는 마인드를 버려야 해.”
“알았어.”
“그렇다고 힘든 게 있을 때 혼자 앓지 말고 아빠한테 말해. 해줄 수 있는 건 해줄 테니까.”
“사람이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 너무 힘들면 공부하나 마나 아무 소용없는 거잖아?”
아버지는 충고와 훈계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말들이 기억에 잘 남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안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이지, 사실 힘이 돼주는 말도 간혹 하셨다.
“알았어. 나도 빨리 회계사 합격해서 아빠가 원하는 거 보여줄게.”
오글거리지만 태범은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 * *
이소룡의 능력을 얻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이소룡 능력]
-힘(70%)
-유연성(40%)
-연기(10%)
-무술 감각(15%)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100%)
-수리 이해력(100%)
-언어 이해력(100%)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10월이 왔고, 후덥지근했던 날씨도 지나가, 이제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시기였다.
“흡! 흡! 흡!”
태범의 강한 호흡소리가 헬스장을 울리고 있었다.
“와. 저건 무슨 운동이야?”
“저거 머슬업이라고. 철봉 마니아들이 하는 건데 생각보다 힘들어.”
“근데 저 사람 몸은 진짜 좋다. 등 봐봐. 무슨 날개 달린 것 같네.”
두 명의 고등학생이 태범이 운동하는 걸 보고 감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대놓고 보지는 않지만 곁눈질로 태범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곤 했었다.
“흡! 흡! 흡!”
태범은 턱걸이를 넘어서 머슬업(철봉에 매달려 상체를 들어 올리는 기술)을 손쉽게 하고 있었다.
보통 턱을 봉에 대기는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지만 태범은 턱을 넘어서 상체가 봉 위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이는 철봉에 대해 어느 정도 테크닉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쉴 새 없이 이어서 하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프론트 레버!
철봉에 매달린 상태에서 상태와 하체를 수평으로 일직선으로 만드는 기술로 등과 복근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이 운동은 전신 운동에 속했다.
주로 체조 선수들이 하는 기술을 헬스장에서 하고 있으니 이는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태범의 넓은 등판은 원숭이라도 된 듯 철봉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저기 회원님 물어볼 것 좀 있는데,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뭐 때문에 그러시죠?”
“잠깐 사무실에서 좀…….”
트레이너는 철봉에서 내려와 잠시 쉬고 있는 태범에게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실없는 미소를 보이며 물어볼 것이 있다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평소 개인 트레이닝(PT)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트레이너는 웬일로 먼저 말을 거는 건지 태범은 의아해 하고 있었다.
“몸이 되게 자연스러우시네요. 운동하신지 이제 한 달 좀 넘으셨는데 이렇게 성장하시는 분은 처음 봤어요.”
트레이너는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태범에게 칭찬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근데 저한테 물어보실 게 뭔지?”
“아…… 저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이런 말하기 죄송한데 혹시 약 쓰시고 계세요?”
“네? 약이요?”
“그…… 스테로이드 같은 거요. 갑자기 몸이 좋아지시고 요즘 중량도 어마어마하게 드시던데 혹시 무슨 약물 쓰고 케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서요.”
태범은 올게 왔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갑작스러운 근육증가와 운동능력의 상승은 약물이 아닌 이상 설명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저 아무 약물도 안 써요. 네츄럴(natural) 이에요.”
“아…… 알려주기 힘드실 텐데 그래도 저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 정말 약물 안 썼어요. 약물 하는 법도 모르고 뭔지로 잘 모르는데요.”
“그럼…… 어떻게 몸을 그렇게 빨리 키우세요?”
“그냥 열심히 운동한 것뿐인데요.”
태범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능력 중에 연기가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 써먹을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