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태범은 인쇄한 이소룡 사진을 전공서적 사이에 껴놓고 폰 노이만과의 작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100%)
-암산 능력(15%)
-수리 이해력(100%)
-언어 이해력(100%)
오늘 새벽을 끝으로 암산 능력을 제외한 폰 노이만의 모든 능력이 100%인 상황, 이제 저녁 12시가 지나면 그의 사진은 스캐너 속에서 볼 필요가 없었다.
‘이소룡이면 능력에 힘은 무조건 있겠지?’
아직 이소룡에게 무슨 능력이 나올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대충 무술이나 힘과 관련된 능력이 나올 거라는 예측하지만 결과는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태범이 알고 있는 이소룡에 대한 이미지는 괴상한 함성과 함께 코를 쓱 만지며 상대를 쓰러트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노란색의 검은 줄이 새겨진 트레이닝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실 이소룡은 영화배우로 유명했지만 어린 나이의 태범은 그가 무슨 영화를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이소룡.]
태범은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으로 이소룡을 검색하며 그의 일생과 능력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40년생의 그는 지금 살아있었다면 곧 팔순이 되는 할아버지 나이였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까. 그가 남기고 간 이미지는 건강하고 젊은 남자의 모습뿐이었다.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했으며 몸을 단련하는데 관심을 가진 그는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근력훈련을 통해 완벽한 육체를 완성했었다.
지금이야 단백질 보충제, 영양제 그리고 심하면 스테로이드까지 근육발달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는 많은 정보가 없었기에 생고기와 계란을 갈아 마시기까지 자신의 근육을 위해서라면 실험적인 태도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 덕에 우리가 알고 있는 완벽한 몸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크…… 큭”
이소룡에 대한 정보를 알았겠다, 태범은 베개를 껴안고 이소룡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골목길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깡패는 주먹 한 방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길을 지나던 행인의 가방을 소매치기한 범인을 쫓아가 하늘을 가르며 킥을 꽂아 버리는 모습.
물론 아무리 능력을 얻었다 한들 현실성 없는 상상이긴 하나 상상은 자유라고 이소룡의 능력을 얻은 태범은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또 그림 그리니! 태인아 공부 좀 해라.”
“아 방금까지 공부하고, 잠깐 그림 그리는 건데 왜 그래.”
오늘도 마찬가지로 동생 태인이와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는 들려왔다. 매일 그러니 이제는 안 들리면 집안이 어색할 정도였다.
‘11시 58분!’
12시가 다가오자 태범은 자리에서 번뜩 일어나 책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소룡의 사진을 꺼내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12시.’
드디어 12시다. 기대에 찬 태범은 스캔 버튼을 눌렀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이소룡 능력]
-힘(0%)
-유연성(0%)
-연기(0%)
-무술 감각(0%)
‘역시…….’
이소룡의 능력은 태범이 대충 생각한 대로 나타났다.
무술인이자 배우였으니 당연히 이와 관련된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일단 태범이 가장 원한 건 힘이었다. 체조를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우가 될 것도 아닌데 연기나 유연성은 아직 크게 필요 없었다.
딸칵.
가장 먼저 남성미를 뽐내고 싶은 마음에 태범은 힘을 선택했다.
[스캔 진행 중인 작업이 있습니다.]
[스캔이 100% 진행되어야 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물을 스캔할 시 기존 진행 중인 스캔을 취소됩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확인/취소)]
설명에 따르면 아직 100%를 채우지 못한 암산 능력은 사라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머지 3개 능력은 유지되니 태범은 과감히 (확인)을 눌렀다.
딸칵.
[암산 능력(15%) 스캔을 취소했습니다.]
.
[힘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이소룡의 능력]
-힘(10%)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100%)
-수리 이해력(100%)
-언어 이해력(100%)
폰 노이만의 두뇌 능력과는 달랐다. 태범의 육체는 변화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피부 안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듯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
에일리언이 몸속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기괴한 상황에 태범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도 간지러움이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다.
“윽.”
태범은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혹시나 가족들이 들을까 이를 악물고 버티지만 입술 사이로 신음이 세어 나올 정도로 통증은 심했다.
짧은 시간의 통증이 끝나고 태범은 정신을 차려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분명 달라졌다.
삐쩍 말라 뼈만 보였던 몸에는 단단한 근육이 차올라 있었다.
물론 10%밖에 스캔이 되지 않았지만 태범은 원래 마른 몸매였기 때문에 근육이 조금만 붙어도 눈에 띄었다.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장 방안에서 힘을 확인할 만한 건 팔 굽혀 펴기, 윗몸 일으키기 정도였다.
이소룡은 전성기에 한 팔을 이용해 오직 두 손가락으로 윗몸 일으키기를 할 정도였으니 기대가 되는 힘이었다.
“흡! 후!”
몸이 가벼웠다.
원래는 팔 굽혀 펴기를 하면 가슴을 바닥까지 찍고 올라오는 게 힘들어 팔만 깔짝거렸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슴을 거의 바닥까지 내리면서 팔을 90도로 굽혀 정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스프링이 달린 듯 팔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확실히 평소 가벼웠던 몸무게에 근육이 더해지니 팔 굽혀 펴기는 한결 쉬워졌다.
“운동 안하던 놈이 갑자기 무슨 달밤에 체조를 하고 그러냐?”
열심히 팔 굽혀 펴기를 하던 태범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동작을 멈췄다.
항상 태범에게 뭔가 할 말이 있을 때면 방에 불쑥 들어오던 아버지였다.
“그냥 요즘 너무 앉아만 있었더니 몸이 굳은 거 같아서…….”
“그래, 너무 앉아만 있지 말고 운동 좀 하고 그래. 그건 그렇고 태범아.”
“왜?”
“아빠가 비트코인[Bitcoin]에 투자해보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회계사 공부하니까 그런 거 잘 알겠지?”
“그게 회계사랑 뭔 상관인데.”
“아니, 같은 경제나 투자 분야 아니야?”
“그건 아니지…… 하여튼 근데 갑자기 왜?”
“아니, 아빠 아는 사람이 비트코인으로 이번에 돈을 벌었다고 해서 지금 TV에도 나오고 하는데 난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온 목적은 비트코인이었다.
요즘 갑작스럽게 폭등한 비트코인 가격으로 사람들 사이에 투자광풍이 열더니 결국 아버지 귓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그거 그냥 돈 먹고, 돈 먹기 게임이야. 사실 아무 가치도 없는 건데, 가격이 오른다는 심리가 쌓여서 지금 오르고 있는 거지 분명 언젠가는 터질걸?”
“아니, 아빠 아는 사람 그걸로 대박 났다면서 만날 자랑하던데.”
“그 아저씨도 거기서 멈추면 대박 난 걸로 끝나겠지만 사람 심리가 한 번 하면 계속한다고 분명 한계치가 오면 거품은 언젠가 터질기 마련이야. 물론 그 한계치가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아니면 일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럼 안 하는 게 낫다는 거지?”
“응.”
아버지는 태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고 방을 나섰다.
평소 주식 투자 잘못하면 집안 말아먹는다고 하던 아버지가 비트코인 이야기를 꺼내다니 확실히 비트코인 열풍이긴 하나 보다.
태범은 아버지가 나가자 팔 굽혀 펴기에 이어서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후. 후.”
태범은 여유롭게 호흡을 들이 내쉬며 상체를 움직였다. 마치 모터달린 기계가 된 것 마냥 상체를 빠르게 내렸다 올렸다.
운동이라면 지극히 싫어했던 태범이었지만 저번 공부와 마찬가지로 능력이 생기니 동기가 생기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금세 온 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힘을 얻고 신이 난 태범은 한동안 운동을 계속이어 나갔다.
* * *
자기 전 팔 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신나게 했었다. 그래서 분명 아침에 알이 배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근육량이 늘어서 그런지 그 정도 운동량 가지고는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지거나 뻐근함 같은 건 없었다.
“태범이 요즘 헬스 다닌다 하더니, 몸 좋아졌네.”
아침에 세안을 하기 위해 윗옷을 벗었는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어머니가 태범의 몸을 보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헬스 다닌 지 2주도 안 돼서 눈에 띄게 몸이 좋아진다는 건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운동에 관해 잘 모르는 어머니가 보기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태범은 어머니의 말에 쑥스러워 무심한 듯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
몸을 비추는 화장실 노란색 백열등은 근육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했다.
물론 이게 말라서 보이는 근육인가 헷갈릴 정도로 아직은 체격이 좋지 않지만 분명 근육이라는 것이 붙어있다.
태범은 괜히 팔을 굽히며 자세를 취해봤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격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태범은 세안을 마치고 아침 식사 후 집을 나섰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힘의 상승 때문일까 태범은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만 같았고 지금 당장 뛰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 컨디션이었다.
심지어 아침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졌으며 이전과 다른 몸이 되었다는 걸 뭔지 모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이 UP되어 기대에 들뜬 채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태범은 2학기만큼은 장학금을 목표로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스캐너의 덕분에 1학기 기말 고사는 올 A+이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에 봤던 중간고사는 4.5만점에 평점 3점이 나왔기 때문에 1학기 장학금을 물 건너갔었다.
하지만 폰 노이만의 능력을 통해 올A+를 받는 것쯤이야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이상 그 이후부터는 충분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회계사 공부와 학교 공부의 과목이 겹치는 것도 많았고 충분히 회계사와 학점을 둘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오늘도 마찬가지로 수업과 공부를 마치고 헬스장을 찾았다
캐서린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일이 있어 혼자 오게 되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여전히 이곳은 근육맨 천지였다. 물론 그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한참 부족한 몸이지만 나름 마른 근육(?)이라고 자기 위안을 할 정도의 근육은 생겼다.
단지 이소룡의 힘 10%만으로 근육이라는 게 눈앞에 보였으니 그전까지는 얼마나 볼품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3분할 중 두 번째 운동인 등과 이두를 할 차례였다.
먼저 어깨를 돌리고 꺾으며 오늘 할 부위를 미리 풀어주었다. 그리고 허리를 앞으로 푹 숙이며 허리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윽.”
비명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강한 스트레칭은 항상 고통을 유발했다. 이 또한 이소룡의 유연성을 통해 극복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이소룡은 다리를 머리 위까지 찢으며 발차기를 선보이곤 했었고 그가 선보인 절권도는 유연성과 순발력을 강조하며 순간적 힘을 발산하는 무술이었기에 이소룡 하면 힘과 유연성이라 말할 수 있었다.
“오늘은 혼자 왔나 보네?”
어제 봤던 그 아저씨가 태범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운동 열심히 해서 빨리 몸을 키워야지.”
아저씨는 버릇처럼 태범의 팔을 만지며 말했다.
“네, 매일 와서 하려고요.”
“어? 팔에 근육 좀 붙었네?”
태범의 알통을 쥔 손에 어제와 다른 묵직함이 느껴졌고 아저씨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을까 혹시 자기가 착각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하며 한 번 더 태범의 알통을 손으로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