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3장 이소룡
“너, 고시반 들어갔다며?”
“응, 내년에 회계사 준비하려고. 왜 관심 있어?”
“어? 아니, 그걸 어떻게 해. 내가”
성혜준, 그는 태범이 군대 가기 전 자주 어울리던 친구였다.
점심을 같이 먹던지 공강 시간에 당구장이나 PC방에 가서 같이 게임을 하곤 했었다.
군대 다녀온 후 혜준은 다른 친구 무리와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태범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 상태였다.
“야, 너 외국인 여자 친구 생겼다며. 진짜야?”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태범은 아무에게도 여자 친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지만 이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캠퍼스 내에 소문이 퍼져있었다.
서양인 여자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가 흔치 않을 테니 애초에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재인이 형이 커피숍에서 자주 봤다는데 진짜 맞는 거야?”
“뭐 그렇게 됐어.”
“이야 너 진짜 많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혜준은 태범에게 많은 변화가 느꼈다.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기랑 놀러 다니기 좋아했던 친구가 고시반에 들어가 회계사 공부라니 게다가 지금껏 여자 친구가 없었던 태범이 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는 건 친구 입장에서 보통 변화가 아니었다.
“변하긴 뭘,”
“아니야. 너 확실히 군대 갔다 오기 전이랑 많이 바뀐 것 같은데.”
태범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친구의 말을 받아치며 대충 넘어갔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첫 수업인 ‘원가회계’는 물론 회계사 시험 과목에 포함되는 과목이었지만 첫 단원이 시작되는 현재 태범에게는 낮은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회계, 경영학 교수님들은 태범을 배려해주며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단지 책상 위에 펴있는 책만 다를 뿐 모든 건 다를 학생과 별다를 바 없었다.
태범이 역시 출석이나, 시험, 과제 모두 다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적용하여 학점을 주기 때문이다.
태범은 수업이 끝나고 공간시간에는 고시반에 들어가 회계사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저녁에 되고 고시반을 나설 때면 항상 캐서린을 만나 헬스장 데이트를 즐겼다.
수업이 끝나고 고시반 그리고 운동 마치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태범의 하루는 매일 이와 같은 식으로 굴러갔다.
* * *
저녁시간대 헬스장은 출근 후 찾아오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뒤섞여 항상 사람으로 붐볐다.
“하나, 둘, 하나, 둘, 핫, 핫!”
헬스장 웨이트 장소와 유리벽으로 분리된 에어로빅실에는 아주머니들이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태범이 물병에 물을 담으러 정수기 앞으로 갔는데 몸에 짝 붙어 화려하게 장식 된 에어로빅 복장을 한 아주머니들과 눈이 마주치니 당황스러웠다.
“으앗!”
남자들은 기합 소리와 거친 숨을 들이 내쉬며 자신의 힘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헬스장에는 알게 모르게 남자들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벌어지곤 했고 이곳에서만큼은 사회적 지위, 명성, 재산 모든 것보다 힘이 세고 근육이 많은 사람이 인정받는 곳이었다.
‘오…….’
트레이너는 그냥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몸이 거대한 나머지 옷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상체와 하체의 두께가 상당했고 액션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보는듯한 몸매에 태범은 감탄을 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앞 거울에 보이는 태범의 몸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허수아비에 옷을 업혀 논 마냥 티셔츠와 반바지는 펄럭이고 있었고 멸치가 따로 없었다.
태범은 180되는 키에 다리도 어느 정도 길어, 비율만큼은 부족할 거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성미가 넘치는 사람들과 비교를 하자니 볼품없어 보였다.
태범이 마른 체형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살 안 찌는 체질을 가지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똥배가 나온다던가 갈비뼈가 사라지는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수영장에서 찍어준 사진을 보면 얼굴은 젖살이 올라 통통한데 몸은 뼈다귀가 드러나 있을 정도로 말랐었다.
살찌우겠다고 과식하며 별짓을 다 해봤어도 살은 쉽게 찌지 않았다. 소화 기간이 약해서 그런지 많이 먹는다고 모든 음식이 몸으로 흡수되지 않고 똥으로 나올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가 쪽이 대부분 마른 체형으로 아마도 유전인 것 같았다.
“몸 풀자.”
태범과 캐서린은 거울 앞에 서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이라 해서 따로 대단한 건 없었고 자신이 오늘 할 부위를 위주로 몸만 풀어주면 됐었다.
태범은 학교 다닐 때 했던 국민 체조와 군대에서 배운 국군 도수 체조를 일부 변형시켜 대충 스트레칭 흉내 내는 정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오빠, 오늘은 어디 운동할 거야?”
스트레칭을 마치고 캐서린이 태범에게 물었다.
“오늘은 가슴하고 삼두(팔 뒷부분)”
태범은 헬스장에 오기 전 운동에 관련된 정보를 암기하고 왔었다. 초보자들은 보통 3분할(1.가슴과 삼두, 2.등과 이두, 3.하체와 어깨)로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은 가슴을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었다.
“넌 어디 할 건데?”
“난 스쿼트 하려고.”
“스쿼트 좋지!”
스쿼트는 바벨을 어깨에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다리 운동의 핵심이었다.
태범은 여자의 얇은 다리보다는 건강미 넘치는 일명 ‘꿀벅지’가 취향이었다.
간혹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자신의 다리가 두껍다며 하소연하더니 어느 날 해골 다리가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태범은 그걸 보고 안타까워하고 했으나 캐서린은 태범의 취향대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오빠, 오늘은 이걸로 하게?”
“어, 만날 기계로 할 수는 없잖아.”
태범은 벤치프레스 받침대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초보자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머신으로 해왔다면, 오늘부터 중량원판(플레이트)을 꼽아서 하는 바벨로 벤치프레스를 할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머신으로 운동을 하긴 하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뽐내기에는 머신보다는 기다란 바를 잡고 하는 게 나았다.
태범은 5㎏짜리 원판을 꺼낸 뒤 바벨의 양쪽에 꼈다.
마음 같아서는 옆자리 아저씨처럼 양쪽에 20㎏씩 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저승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태범은 동영상 속 자세를 천천히 떠올리며 등 받침대 위에 누웠다.
‘허리를 아치형으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치형의 허리모양을 만들면 가슴근육을 고립시킬 수 있고 가슴하부를 이용해 중량을 안정적으로 다루는데 도움을 주었다.
‘바를 가슴 중앙에 그리고 어깨너비 보다 좀 넓게.’
당연히 양 사이드 중량을 맞추기 위해 바를 가슴 가운데에 맞춰야 했다.
‘바를 손바닥 두툼한 부분을 이용해 잡고, 손과 손목은 일직선.’
손목이 돌아가며 생기는 통증을 막고, 무게가 분산되는 걸 막는다.
‘견갑골을 바닥에 밀착시키고.’
오늘 암기해온 벤치 프레스 사용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자세를 하나하나 맞췄다.
그리고.
“후후. 읍!”
태범 인생의 첫 번째 벤치 프레스였다.
천천히 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바벨을 들어 올렸다.
바벨은 받침대에서 벗어나 위로 뜨기 시작했다.
태범은 천천히 바벨을 가슴으로 내렸다.
“윽.”
순간 태범은 문제가 생겼음을 느꼈다. 바벨을 잡고 내리는 손이 균형이 맞지 않고 흔들리더니 기울어 져버린 것이다.
태범은 화들짝 놀라 내리던 바벨을 급하게 다시 들어 올려 받침대 위에 얹었다.
“왜 오빠? 힘들어?”
“그게 아니라 처음이라 그런지 균형이 안 잡히네.”
손바닥만한 5㎏짜리 원판조차 1번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쩔쩔매니 태범은 자존심이 상했다.
심지어 옆자리 아저씨는 양쪽에 20㎏짜리 원판을 끼고, 표정변화 없이 쉽게 들어 올리고 있으니 확연히 비교되고 있었다.
문제는 무게가 아니라 균형에 대한 적응 문제였다.
캐서린과 헬스를 다닌 이후 머신으로만 운동을 했기 때문에 프리웨이트(덤벨, 바벨을 사용한 운동)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결국 오늘 헬스장 오기 전 동영상으로 열심히 봤던 운동 자세는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균형이 흐트러지니 모든 자세가 흐트러졌다.
“오빠, 그냥 원판 다 빼고 해봐.”
“빈 봉으로 하라고?”
“응, 어쩔 수 없잖아. 아니면 2.5㎏ 끼고 할까?”
“아니, 빈 봉으로 해볼게.”
손바닥보다 작은 2.5㎏짜리 원판을 끼고 하나, 빈 봉으로 하나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럴 바에 차라리 빈 봉으로 자세연습이나 하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
태범은 최후의 자존심이 담긴 5㎏짜리 원판을 바벨에서 뺀 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벤치프레스에 누워 자세를 잡았다.
‘빈 봉쯤이야.’
역시 원판이 없는 빈 봉은 가벼웠다. 하지만 여전히 양팔의 불균형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5~6번을 반복해서 들고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자세가 엉망이라 그런지 어깨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역시 이론보다 중요한 건 실전이었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한들 몸이 받쳐주지 않으니 아무 소용없었다.
“학생, 팔은 그냥 봉을 받친다고 생각하고 팔보다는 가슴으로 민다고 생각해봐,”
태범이 바벨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자 이를 본 옆 아저씨는 답답한 나머지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요?”
“다시 한번 해봐.”
“후! 하!”
“호흡은 너무 의식해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
태범은 호흡조차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힘을 주기 전에는 숨을 들여 마시고 힘을 줄 땐 뱉고 하는 방식으로 했었다.
하지만 운동을 몸으로 하는 게 아닌, 머리로 하는 탓에 3자 입장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학생 운동 한지 얼마나 됐어?”
“이제 거의 이 주정도 됐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안 해봤고?”
“네.”
“학생 몸이 너무 약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게임하고 공부만 하니 그렇지. 우리 때는 젊었을 때 매일 산에서 운동하고 일상 자체가 운동이었는데 말이야.”
“아…… 그렇죠.”
“아이고 이거 봐. 완전 뼈밖에 없네.”
아저씨는 태범의 팔뚝을 잡더니 정곡을 찌르는 말을 뱉었다.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누는 아저씨의 갑작스런 팩트 폭행에 태범은 가슴이 저려왔다.
이게 가슴 운동을 해서 저려오는 건지 저 아저씨에게 정곡을 찔려서 저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좀 많이 먹고 살 좀 쪄야지. 너무 마르면 못써!”
“네, 캐서린 나 이제 다른 운동할 테니 넌 너 할 것 해.”
태범은 더 이상 아저씨의 훈수를 듣고 싶지 않아 벤치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 * *
오늘 헬스장에서의 경험으로 태범은 육체적은 능력의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21세기는 지식과 정보 사회라고 머릿속에든 게 중요했지만 남자로서 육체적인 능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육체적 능력은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본능을 깨워주기에 남자로서 탐날만한 능력이기도 했다.
태범은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보디빌더로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검색 결과 아놀드 슈워제너거, 로니콜먼, 제이커틀러 등 유명 보디빌더의 이름이 나타났다.
태범은 그들의 이력과 정보를 하나씩 찾아가며 자신에게 알맞은 인물을 찾고 있었다.
‘너무 과해…….’
분명 대단한 몸매이긴 했으나 일반이니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과한 몸이었다.
허벅지 둘레가 웬만한 남자 허리 둘레였으니 이는 근육이 옷을 찢고 나올듯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태범이 원하는 건 강한 힘과 적당한 옷맵시가 살 수 있는 정도의 몸매였다.
마치 이소룡 같은 근육을 말이다.
‘이소룡?’
세상에 이소룡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웬만한 서양 국가에서도 브루스 리(Bruce Lee) 하면 알정도 이니 70년도 최고의 액션스타인 그를 모를 순 없다.
갑자기 떠오른 이소룡에 태범은 포털 사이트에 이미지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오, 이게 뭐야!’
태범이 본 건 배우이자 무술가였던 이소룡의 사진이었다.
마치 박쥐처럼 광배근(등근육)을 날개를 활짝 펴고 있었다. 어깨를 흔들면 금방이라도 날아 갈 것 같이 정말 상상이상의 광배근이 발달해 있었다.
웬만한 몸 좋다 하는 사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말 비정상 적인만큼 등근육은 완벽을 넘어섰다.
그리고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하지 않고, 오밀조밀하게 모인 근육은 일명 ‘압축근육’이라 불렸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이소룡이었다.
‘그래, 이거다.’
태범의 마음에는 다음 스캔에 사용될 인물이 확고히 결정됐다.
결심과 함께 이소룡 사진 한 장을 인쇄했다.
팔을 양쪽으로 벌려 광배근을 날개처럼 펴고 있는 이소룡. 그는 곧 팔을 흔들어 날아 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