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어디서 유입된 거지?’
갑자기 늘어난 홈페이지 접속자 수는 분명 어디선가에서 사이트 주소가 좌표로 찍혔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태범은 학교 SNS 커뮤니티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몇 번 소개한 것 외에는 별다른 홍보 활동은 한 적이 없었다.
사랑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 차 한두 번 학교 SNS에 올린 것뿐이었다.
학구열만큼이나 열정으로 가득한 게 캠퍼스 내 사랑이었으니 학생들의 사랑을 찾아주고자 실험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남학생들은 옆에 아름다운 여학생의 모습을 보고 힐끔힐끔 쳐다본 적 있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캠퍼스 내에서 길을 걷다가 혹은 버스 안에서 이성을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니 혈기왕성한 나이인 만큼 사랑에 금세 빠지곤 했다.
태범은 그런 경험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것이다.
사용자가 자기 소개와 함께 자기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성을 찾는 글을 올리고 만약 당사자가 글을 보고 마음에 들면 익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솔직히 별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이용자가 없는 사이트에서 자신의 글을 사랑의 대상인 당사자가 보는 건 희박한 확률이니 말이다. 결국 이용자는 0명이었다.
그래도 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태범은 어차피 공부할 겸 재미차원에서 만든 것뿐이지 정말 이걸로 뭘 해보자는 속셈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접속자 수가 늘어난 것일까? 혹시 디도스(DDoS)공격이 아닐까 싶었지만 자신의 프로그램을 한 번씩 점검해 볼 필요는 있었다.
“음…….”
역시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누구도 이용한 흔적이 없었다. 그저 몇몇 사람이 호기심에 한 번 클릭해본 것 외에는 말이다.
‘어? 글이 많이 올라왔네.’
그렇게 프로그램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학생들이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수강과목을 추천하는 프로그램에 데이터가 많이 쌓인 것이다.
[세계 역사의 이해]
발표 수업: 5
토론 수업: 5
시험 난이도: 3
과제 난이도: 3
수업 재미: 3
평가: 역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수업보다는 발표와 토론이 섞인 수업이며 개인전으로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많은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과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있었다. 원래는 태범이 올린 몇 가지의 글밖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100여개가 넘는 평가 글이 올라와있었다.
수강 과목 추천 프로그램에 사용자가 갑자기 폭주한 이유가 무엇일까. 태범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혹시 수강 신청 정정기간 때문에?’
생각해보니 8월 말 현재, 우리 대학교의 수강 신청 정정 기간이었다. 8월 초에 했던 수강 신청 내역을 정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날이었다.
추측하기로는 사람들이 과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수업을 신청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학교 내에서도 자신이 수강한 수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있지만 결과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공유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주거와 문화]
평가: 수업 지루하고 재미없습니다. 교수님 목소리 톤이 낮고 강의는 그냥 책 읽어주는 수준입니다. 낮잠이 필요하신 분에게는 추천합니다!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져서 그런지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냉정한 면은 있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직설적인 수업 평가가 있으니 평가 글을 보고 있는 태범도 흥미롭게 글들을 읽어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주니 태범은 기뻤다. 좋든 나쁘든 사람이 몰렸다는 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니 태범의 프로그램은 나름 인정받은 셈이었다.
이런 반응은 태범에게 하여금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었다. 보상은 하나의 동기가 되어 열심히 할 수 있게끔 추진력을 주는 역할을 했다.
‘드디어 오늘 암기력, 넌 끝이다!’
태범은 한참동안 홈페이지 점검에 몰두를 하다가, 12시가 되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98%)
-암산 능력(15%)
-수리 이해력(87%)
-언어 이해력(85%)
오늘 태범은 암기력을 100%까지 올릴 생각이었다. 효율적으로 진행률을 올리기 위해 능력들을 배분하며 스캔을 해왔고 그 덕분에 시너지효과로 빠르게 스캔을 진행 시킬 수 있었다.
암산 능력은 계산기가 있는 이상 별 효율성을 느끼지 못해 굳이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 암기력이 2% 이상만 오른다면 100%가 찍히는 것이다.
약 3달간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제 다른 인물로 넘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는 태범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었다.
[암기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98%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99% 진행되었습니다.]
태범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모니터에 나타난 스캔 진행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스캔이 99.7% 진행되었습니다.]
[스캔이 99.8% 진행되었습니다.]
[스캔이 99.9% 진행되었습니다.]
1% 단위로 올라가던 스캔 진행률이 갑자기 소수점 단위로 바뀌더니 오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태범은 가슴이 내려앉는 줄만 알았다.
항상 그래왔든 낯선 것은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 위한 전조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또 다른 스캐너의 시스템이 나타날까 태범은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왜 안 올라가!”
[스캔이 99.9% 진행되었습니다.]
99.9%, 사람을 애태우게 하는 것도 아니고 0.1%를 남겨두고 스캔 진행이 멈추었다. 태범은 초초하게 계속해서 기다려보지만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스캐너가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태범은 답답한 마음에 모니터에 펀치를 가하려 했으나 감정을 꾹 누르며 애써 흥분을 참았다.
“하…….”
태범은 연이은 한숨만 내뱉은 채 기다리고 있지만, 30분째 99.9%에서 미동을 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진행률에 참다못해 태범은 창 위에 X표시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스캔이 100% 진행되었습니다.]
99,9%에서 오르지 않을 것 같은 진행률이 100%을 가리켰다.
“으…….”
태범의 몸에서 엄청난 전율이 일어났다. 마치 전기의자에 앉은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육체를 주체하지 못했다.
“하…… 하…… 하…….”
잠깐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고, 태범은 깊은 숨을 들이 내쉬며 안정을 찾으려 했다.
어느 정도 고통의 여파로부터 진정이 되자 태범은 느껴지기 시작했다.
폰 노이만의 암기력이 온몸으로 들어와 온전히 본인의 것임을 됐음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기 힘들지만 애초에 자신의 능력이었던 것처럼 완전히 흡수된 느낌이었다.
‘이게 스캔 됐다는 건가?’
태범은 왼쪽 가슴위에 손을 얹고 빨라진 심장박동을 느끼고 있었다. 100%라는 충만함에서 느껴지는 능력의 기운에 감격한 상태였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100%)
-암산 능력(15%)
-수리 이해력(87%)
-언어 이해력(85%)
* * *
010-2922-232X 최가연
010-2351-227X 최지민
010-4388-707X 최현욱
.
.
태범은 암기력에 대해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이전까지는 능력이 필요할 때만 남에게 능력을 빌려 쓰는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본인의 것이었다.
암기력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 때문인지 태범은 학교를 가는데 스마트 폰 속 연락처를 암기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
고시반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같은 회계사 공부를 하는 태범의 선배 오현택이 말을 걸어왔다.
태범을 멀리서부터 지켜본 현택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혼자 중얼거리며 이동하는 걸 보고는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역시 엄청난 노력파야. 괜히 1년도 안 돼서 회계사반 기대주가 된 게 아니겠지.’
태범은 그저 핸드폰 속 연락처를 외우고 있던 것 뿐인데 현택은 태범이 기대주답게 걸으면서까지 공부하는 노력파라고 오해를 했다.
“너, 설마 걸으면서 까지 공부하는 거야? 대단하네.”
“하하. 열심히 해야죠.”
“역시 강태범!”
오현택은 태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고 있었다. 웃음과 함께 그의 눈에는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현택은 졸업 이후 3년 동안 여전히 고시반에 묶여 사는 신세였다.
원래는 졸업 후 3년이면 고시반을 이용하기 힘들지만 다행히도 교수의 아량덕분에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현택은 요즘 태범의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고 있었다. 자기보다 4살 어린 까마득한 후배가 고시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으려 하니 이는 강한 자극제가 되었다.
“아, 지금 졸려 미칠 것 같아요. 어제 집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했거든요.”
“좀 쉬면서 해. 그러다 시험 보기 전에 병원 실려 가는 거 아니냐?”
태범은 괜히 졸린 척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열심히 공부했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현택을 위한 하나의 배려였다. 태범이 요즘 깨달은 게 있다면 능력과 재능을 너무 드러내면 주위의 노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처음 현택은 태범의 모습에 자신의 재능을 비관하곤 했다. 자기는 졸업하고도 3년 동안 1차 시험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4년 늦게 공부를 시작한 후배가 자신을 뛰어넘으려 하니, 이는 당연히 자신에 대한 재능을 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택은 자기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바보로 태어났다며 천재로 태어난 태범이 부럽다며 스스로를 욕하기까지 했다.
현택은 태범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태범의 칭찬과 동시에 자기 비하를 하니 이게 자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 나름 머리를 썼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노력파 인척 모습을 보여주며 누구나 자기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 했다.
“그래도 시험 때까지는 죽도록 해야죠.”
“너, 말이 맞다. 죽도록 해야지.”
현택은 태범의 말에 모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택은 학년으로 선배이지만 태범을 마음속 혼자만의 스승으로 삼고 있었다.
“자 다들 왔지?”
김영석 교수은 회계사반 출석부를 보며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회계사에 합격한 선배들이 특강을 해주는 날이었고 특히 시험에 합격한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합격자들이 해주는 강의였다.
“1차 준비생들은 여기에 남고 2차 준비생은 현수 따라가고.”
“네!”
교수는 이번 특강을 맡을 회계사 중 한명인 김현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 깔끔한 흰색셔츠 차림의 김현수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회계사라는 타이틀이 붙자 아우라가 느껴지고 있었다.
회계사 수험생들 눈에는 꿈이자 멀고도 먼 길처럼 보였다.
“저 따라오세요.”
1차를 합격하고 2차를 준비하는 학생은 40명중 4명밖에 없었다.
그 4명은 공인회계사 김현수를 따라 강의실로 이동했고 태범과 다른 학생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태범아, 너도 따라가!”
“네? 저요?”
“그래, 2차 준비생들하고 같이 강의 들어.”
교수는 가만히 있는 태범에게 김현수를 따라가라며 바깥으로 손을 저었다.
태범은 아직 1차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2차 준비생으로 취급을 받는 학생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