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암산능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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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15%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82%)
-암산 능력(15%)
-수리 이해력(57%)
-언어 이해력(45%)
운이 좋게 암산 능력의 첫 시작은 15%였다.
태범은 암기력, 수리와 언어 이해력은 끝까지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암산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태범의 전공과목인 회계에서 계산처리는 대부분 계산기를 통해서 이뤄졌다. 충분히 암산 능력을 대체할 만 했고 굳이 암산 능력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다른 능력을 얻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 스캔을 진행하면 10%이상이 오르니 한번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암산능력을 선택한 것이다.
‘12357+34569=?’
능력을 스캔한 뒤 바로 확인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트를 폈다. 그러고는 종이 위에 펜으로 임의의 숫자를 적은 후 답을 떠올렸다.
‘46926.’
문제를 보자마자 답을 떠올렸고 그대로 노트 위에 적어 놨다.
이번에는 계산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답을 확인할 차례. 회계학과 학생이라면 계산기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태범은 빠른 손놀림으로 계산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12357+34569=46926.
계산기에 나타난 숫자와 떠올린 정답이 일치했다.
확실히 암산 능력이 좋아진 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답이 5자리가 넘어가지 않은 덧셈은 사실 암산 좀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할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재능을 뽐내는 TV 예능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보면 암기 천재들이 하는 걸 보자면 이는 정말 새 발의 피 수준 덧셈은 진정한 암산능력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난이도를 높여 곱셈을 해보기로 했다.
‘629X437=?’
이번에는 덧셈처럼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미간을 좁히고 생각을 집중하며 답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274873.”
태범은 뒷자리 숫자부터 하나씩 계산하고 답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계산기로 확인해본 결과
[274873.]
맞았다. 분명 1도 틀림없이 모두 맞긴 했지만 암산 능력을 사용하기에는 별 실용적이지 않았다.
물론 3자리 수끼리 곱셈을 암산으로 한 건 대단한 일이긴 하나 차라리 계산기로 하는 게 나았다. 계산기는 버튼을 누르는 시간 2초면 충분했지만 암산은 시간이 그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암산 능력은 100%가 아니면 별로인 것 같은데…….
계산기의 능력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스캔이 꽤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폰 노이만의 암산능력은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소 폭탄을 공동 연구할 때 페르미는 대형 계산자 그리고 파인먼은 탁상 계산기 노이만은 그저 천정을 보고 암산을 했지만, 노이만의 계산이 가장 빠르고 정확했다는 일화까지 있으니 말이다.
“넌 대학 안 갈 거니? 아니면 미대 가려고?”
“아! 내가 알아서 할게.”
열심히 암산 능력을 테스트하던 도중 문밖에서 어머니와 동생 태인이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시작이구나.”
태범은 늘 있는 일이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책상 위 서랍에서 귀마개를 꺼내 귓구멍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태인은 고3이 되면서 부모님과 크게 갈등이 생기곤 했다. 특히 게임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요즘은 공부는 뒷전에 항상 자기 좋아하는 것들만 하고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애초에 공부를 못한 자식이면 금방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2까지 잘하다가 갑자기 늦바람이 들었는지 공부를 버린 것이다. 어머니도 그런 점이 아쉬워서 그런지 동생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뭘 알아서 해? 혼자 할 줄 아는 게 뭔데.”
“아. 좀! 나가라고!”
반발심이 더욱 커졌다. 태인에게 사춘기가 또 찾아온 건지, 어머니의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다.
“어휴.”
어머니의 불호령에도 태인은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싸우다 지쳐 백기를 들었고 한숨을 크게 내쉬며 방문을 나섰다.
“태범아 네가 좀 어떻게 해봐. 네가 형이잖아.”
동생에 대한 책임은 태범에게 까지 미쳤다. 어머니는 태범의 방에 들어오더니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태범은 끼고 있던 귀마개를 빼고 어머니의 말을 들어줬다.
“쟤 도대체 왜 그러니 2학년 때까지 열심히 하다가 말이야. 태범아 혹시 왜 저러는지 아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대학 안 가려나보지. 몰라 나도.”
“그래도 네가 형이니까 말 좀 해봐.”
“아…….”
부모말도 안 듣는데 형의 말을 들을 일은 없다는 걸 태범은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동생에게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싸우기만 할 뿐 아무 소득 없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태범도 한때 스스로가 나태해져 학업을 놓은 적 있었는데 그때 깨달은 게 주변에서 아무리 뭔 말을 해도 자기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이상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해봤자 제대로 듣기나 하겠어?”
“그래도 말이라도 해봐. 형 보고 자극받아서 공부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응?”
태범 역시 능력을 갖기 전 동생과 피장파장 같은 격이었다. 그래서 학업에 관해 동생에게 한 번도 쓴 소리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토익 만점에 회계사 공부까지 태범은 부모님의 신뢰와 기대를 등에 업은 상황이었다.
“알았어.”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에 태범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강태인.”
태인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타블렛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또 그림…….’
태인은 확실히 그림그리기에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을 개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그림에 재주가 있어 취미로 만화를 그리곤 했다.
취미 생활을 못하게 말리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의 본분을 저버린 채 딴 짓만 하는 것이 어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태인아. 너도 이제 고3인데 수험생활 해야지.”
“아. 형, 엄마가 시켰지? 아…….”
“아니, 너 대학 안갈 거야? 안 갈 거면 딱 말해. 그냥”
“아. 몰라. 내가 알아서 해.”
이도 저도 아닌 태인의 행동에 태범 역시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전혀 계획이라곤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애가 알아서 한다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너…… 아니다…….”
태범은 동생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말을 거두었다.
자기 스스로도 노력이 아닌 재능(능력)을 스캐너로부터 선물 받아 쉽게 공부를 한 것이기 때문에 양심에 찔린 것이다.
자신도 이루지 못한 노력을 동생에게 강요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모습이니 말이다.
* * *
고시반에 들어 온 지 1달도 되지 않은 태범은 이미 1차 시험에 대한 모든 과목을 1회독한 상황이었다.
물론 1회독을 한 상황이라고 공부가 끝난 건 아니었다.
공부의 신이라고 불리며 고시3관왕을 이룬 전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인 고승득 씨는 시험을 위해 한 과목을 10회독까지 했다고 하니 1회독은 그에 비하면 아직 출발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사람과 다른 능력을 지닌 태범은 1회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과 정보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태범아, 잠깐 나와 볼래?”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태범은 자신의 어깨를 치며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영석 교수였다.
대학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가끔 고시반에 나와 상황을 지켜보거나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태범은 교수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독서실 밖으로 나갔다.
“태범아, 혹시 고시반에서 알려준 커리큘럼대로 하고 있는 거 맞니?”
“네,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요즘 보니까 회계 감사를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벌써 그거 공부하는 건 아니지?”
태범이 보고 있던 회계 감사는 회계사 2차 시험에 속하는 과목이었다. 보통 1차 합격하는 것도 잘해야 1~2년 걸리는 기간인데 벌써부터 2차 과목을 보고 있다는 건 수험 계획에 뭔가 잘못된다는 걸 의미했다.
“아…… 머리 좀 식힐 겸 해서요.”
사실 태범은 1차에 필요한 과목에 대한 지식은 거의 습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말을 여기서 자랑스럽게 내뱉자니 너무 자기자랑 하는 것 같아 말을 돌려 최대한 예의를 보이고자 했다.
“에이. 그래도 일단 1차에 집중해야지.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중요한데,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할 줄 알고 거기에만 집중해야지 괜히 이곳저곳 박쥐처럼 붙으면 결국은 아무것도 못 이뤄.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야! 그리고 벌써 김칫국 마시면 안 되지? 허허.”
태범의 변명에 돌아오는 건 교수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리고는 역시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답게 선택과 집중에 관해 장대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결국 하나인데 그걸 얼마나 풀어서 이야기하는 지 끝없이 말을 내뱉었다.
“저 사실은 1차 과목 다 공부해서 지금 2차 과목 예습하고 있는 거예요.”
멈추지 않고 태범의 고막을 때리는 교수의 소리에 결국 참다못해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뭐?”
교수는 태범의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가 싶어 다시 물었다.
“저 1차 과목 마무리했습니다.”
“1차 과목을 끝냈다고? 하하하하.”
태범의 말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교수는 어이없는 나머지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 * *
“네 동생 좀 어떻게 해봐라. 에휴.”
태범의 밥상을 차려주고 있는 어머니는 하소연을 하더니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마도 또 동생과 어머니가 한바탕 한 모양이다.
“왜? 또 PC방 갔어?”
“글쎄 방학에 공부 좀 하라니까 뭐라고 하는 줄 아니? 대학 안 간단다. 도대체 뭐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건지..”
“뭐, 알아서 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만날 게임만하고 그림 그리기나 하고 앞으로의 계획이 없잖니. 어느 정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지.”
어머니의 말에 태범은 밥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