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22화 (22/188)

# 22

컴퓨터는 생각해보면 어렵고도 간단한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의 근본적인 모습은 전류가 흐르면 1 그렇지 않으면 0으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그게 끝이다.

단지 0과 1 이 두 가지 숫자를 통해 패턴의 의미를 담고 언어를 구성하니 우리가 한글의 자음19개 모음 21개를 가지고 무궁무진한 말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

태범은 무료 강의 영상에 따라 가장 먼저 웹 문서를 만들기 위한 html 작성을 따라 해봤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대부분은 html이라는 언어로 작성되었고, 이는 웹 문서를 만들기 위한 필수언어라고 볼 수 있었다.

‘아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태범은 단 메모장에 html언어로 ‘안녕하세요.’ 이 한 문장을 작성했다.

그리고 웹을 통해 띄우니 인터넷 창에는 하얀색 배경에 ‘안녕하세요.’라는 단 한 마디에 말이 적혀있었다.

태범 인생의 첫 번째 프로그래밍이자 언어를 통한 컴퓨터와의 대화였다.

겨우 인사 한마디이지만 왠지 컴퓨터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똑같이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태범은 또 다시 영상에 따라 html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웹 페이지의 머리말을 작성하고 리스트를 만들고 링크까지 거는 html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을 시행했다.

그렇게 따라하다 보니 그럴싸한 웹페이지 한 개가 완성되었다.

마치 90년대 초에나 볼 듯한 오직 html로만 작성된 고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와 그럼 네이벌 같은 사이트는 얼마나 복잡하게 돼 있는 거야?’

문뜩 자주 사용하는 포털사이트의 구성을 생각하니 수많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걸 느껴졌다. 가볍게 여기는 웹 한 페이지조차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 * *

“그래, 대전은 잘 갔다 왔고?”

“네, 잘 다녀왔습니다.”

다음 날 고시반으로 들어서는 태범은 괜히 심장이 콩알만 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감독 실장이 아침 인사를 건네는데 혹시나 거짓말한 게 얼굴과 행동에 나타날까 걱정이었다.

태범은 억지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려 평소와 다름없는 척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래, 어제는 쉬었으니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해야지?”

“네.”

감독 실장의 태도를 보니 다행히도 아무런 의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번은 그냥 보내줬는데 웬만하면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는 게 좋을 거야. 할 거 다 하고 시험 붙으려는 건 욕심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독 실장 유혜경은 시험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냉정할 정도로 대했다.

시험공부 동안에는 자기를 내려놓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합격 문턱에 가까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휴.”

태범은 의자에 앉고 가방을 내려놓고서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다. 역시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따랐다.

태범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패드로 영상 강의를 2배속으로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암기력으로 강의 내용은 모두 머릿속에 저장되며 손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체크하고 있다.

‘뭐였지.’

그렇게 30분정도 공부를 했을까, 태범은 방금 전 본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강의 영상을 뒤로 넘겨 다시보기를 시작했다.

‘후속 사건 중 재무 제표의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는…… 네이벌의 실시간 검색어는 어떻게 프로그래밍했을까?’

태범은 공부를 하던 도중 자꾸만 프로그래밍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집중을 방해하고 있었다.

눈은 분명 아이패드 속 강의 영상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그저 고전적인 웹문서 한 장을 만들었을 뿐인데 마음속은 벌써 유능한 프로그래머라도 된 것 마냥 자신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원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집중하자. 태범아!’

다시 강의를 집중하기 위해 태범은 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면서까지 각오를 다짐하며 다시 펜을 잡았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한 생각을 감추려고 해도 자꾸 쥐새끼처럼 머릿속에 하나둘 튀어나오는 것이 호기심은 말릴 수 없는 것 같았다.

태범은 도저히 공부를 집중해서 이어나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로 이동했다.

후루룩.

태범은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밀크커피를 한 개 뽑아 마시며 생각하고 있다.

‘하. 어떻게 해야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어쩌면 능력이 과도하게 많아짐에 따라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 능력이 서서히 성장했다면 어느 정도 목표에 대한 기둥이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태범은 갑자기 엄청난 능력들을 얻게 됨으로써 성장통을 겪고 있던 것이다.

능력은 욕망이라는 감정과 함께 버무려져 뭐든 보면 흥미가 가기 시작했고 뭐든 다 하고 싶어졌다.

태범이 얻은 능력으로 세상에는 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했으니 거기에 대한 관심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갑자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런 이치였다.

‘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태범은 토익 공부를 위해 봤던 미국 드라마가 떠올랐다.

다빈치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였는데 극 중에서 다빈치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일을 금방 바꾸는 끈기 없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빈치의 성격은 사실을 근거로 만든 이야기였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학, 물리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지도학, 건축, 회화, 철학, 조각, 요리, 육상 등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IQ가 200대라 하니 상상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끈기가 부족했다고 한다.

대형 기마상을 만들다가 새로운 대포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 일을 바꾸더니 또 금세 플랑드르 물감보다 좋은 물감을 만들겠다는 유혹에 빠질 정도였다.

그런 성격 탓에 심지어 완성된 회화 그림은 20작품도 안됐고 일각에서는 그가 성인 주의력 결핍증(ADHD)이었다는 주장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그는 풍부한 지식과 능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것저것을 다 찔러 본 게 분명했다.

‘그 당시에 스캐너가 있지는 않았을 테고 혹시 능력을 주는 붓이나 그런 게 있었을까?’

태범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갔고, 이제는 별의별 상상까지 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마치고 손에 든 종이컵에 커피가 비어지자 태범은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 * *

오늘 하루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호기심과 회계 공부에 대한 의지가 서로 싸운 날이었다.

태범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이라면 방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라면 이제는 보물이 담긴 보물창고였다.

태범은 책상 앞 의자에 앉자마자 엄지발가락을 이용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들어간 프로그래밍 무료 강의사이트. 오늘 역시 이곳에서 프로그래밍을 알아갈 생각이었다.

어제 HTML에 이어 CSS, PHP 그리고 JavaScipt의 강의를 볼 차례다.

HTML이 웹상의 정보라면 PHP로 코딩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며 CSS는 정보를 디자인하고 JavaScript는 웹페이지의 동작을 나타냈다.

탁. 탁. 탁.

태범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영어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를 치고 있다.

한때 학창시절 컴퓨터 중독이라고 할 만큼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곤 했는데 그 덕에 영어 타자 역시 한글 못지않게 빨랐다.

매우 빠르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하고 있었다.

언어도 영어 공부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패턴의 양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패턴을 어떻게 응용할지는 창의적인 문제였고 분명한 건 컴퓨터가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가 인공 지능이라도 된 듯 실제로 말을 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툴에 보이는 일련의 언어들이 마치 자신에게 대화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강의 영상을 따라서 하나둘 작성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럴싸한 웹 사이트 한 개가 완성됐다.

사이트의 머리말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였다.

그렇게 한참을 프로그래밍에 빠져 있다가 12시가 되자 이제는 항상 의식을 치르듯 스캐너의 전원을 켰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82%)

-암산 능력(0%)

-수리 이해력(57%)

-언어 이해력(45%)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언어 이해력을 높였었다. 암기력을 올리기에는 수치가 적게 올라 시너지를 위해 다른 능력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능력을 선택해볼 생각이었다. 아직 0%인 암산 능력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암산 능력을 스캔하겠습니다.]

태범은 암산 능력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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