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아인슈타인 하면 지나가던 코흘리개 꼬맹이도 모두 알 것이다.
헝클어진 하얀 머리에 콧수염 그리고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 하면 수많은 이미지가 한 번에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같은 시대 아인슈타인과 같은 직장에서 20년이나 일했던 폰 노이만은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못 미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의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요즘 그의 천재성이 그가 낳은 컴퓨터 속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의 역사는 2차 세계 대전으로 올라간다.
폰 노이만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군사용으로 쓰이는 초대형 계산기 애니악(ENIAC)을 보게 된다.
애니악은 컴퓨터의 시초이자 아주 오래된 조상님인 셈이다.
애니악은 미사일의 궤적이나 비행거리, 폭발력 등 군사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계산기이자 컴퓨터였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수천 개에 달하는 배선을 일일이 다시 세팅해야 했고 기억 장치가 없는 그저 계산만 하는 대형 계산기뿐이었다.
컴퓨터와 전혀 관련 없는 수학자에 불과한 폰 노이만은 저장 장치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계산기를 지금의 컴퓨터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1세대 컴퓨터 애드박(EDVAC)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폰 노이만 방식이라 불리며 그의 성과가 담겨져 있었다.
폰 노이만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였다.
* * *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태범은 인물의 능력에만 관심을 가졌지 그 인물이 뭘 했고 무슨 성과를 얻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능력을 갖췄다고 그 사람처럼 똑같이 인생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사는 환경과 시간 그리고 성격 등 많은 것이 다른데 오직 능력만으로 그 인물이 성취한 성과를 따라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능력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인물의 이력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 같았다.
태범은 캐서린에게 프로그래밍에 관해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그 언어라는 건 어디에 쓰는 거예요?”
“뭐. 메모장에다 작성해도 되긴 하는데 그러면 컴파일러랑 링커 뭐 그런 게 따로 있어야 해서 보통은 언어를 작성하는 툴이 따로 있죠.”
“툴이요? 그럼 그건 돈 내고 구입해하는 건가요?”
“무료 버전도 있고 유료 버전도 있긴 한데 아무래도 유로 버전이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겠죠?”
“그럼 언어는 뭐부터 배워야 해요?”
“관심 있으시구나. 독학으로 배우시려고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보통 C나 C++ 먼저 배우는데 딱히 순서가 있다기보다는 문제해결방식으로 먼저 풀어 보시는 게 좋을까 싶네요…….”
“아~ 그렇구나.”
태범은 애써 이해한다는 듯 말하곤 있지만 사실 캐서린의 입에서 나온 낯선 용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태범은 프로그래밍 작성방법부터 종류,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자세히 물어봤고 캐서린은 친절하게도 모든 질문을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와 맛있겠다.”
질답이 오가고 어느새 닭갈비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닭고기, 양배추, 떡, 고구마 등 많은 재료들이 빨갛게 물들어 입속의 침을 고이게 만들고 있다.
“정말 괜찮죠? 이거 꽤 매울 텐데.”
“제가 말했잖아요. 제 간식이 매운 볶음면이라고요.”
“그럼 입맛에 딱 맞을 거예요. 한번 먹어봐요.”
캐서린은 서툰 젓가락질로 다 익은 닭고기를 집기 시작했다. 불편하면 포크를 사용하라고 했으나 그 나라에 왔으면 그 문화를 따라야 한다며 끝까지 젓가락을 이용했다.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꽤 한고집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태범에게는 오히려 좋았다. 너무 고분고분한 것보다는 할 말 다 하는 톡 튀는 여성이 태범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닭고기에 고추장 양념이 잘 스며들어 입에서 녹고 있었다. 캐서린도 만족스러운 맛인지 힘겨운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경복궁이었다. 캐서린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어 하기에 궁을 찾았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지긋지긋하게 간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외국 여성이랑 오니 색다른 면이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궁을 구경을 하고 있다.
특히나 많은 여성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셀카를 찍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무늬가 있는 여성 한복은 현대적인 의상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예전에는 궁에서 한복 입은 여성들을 많이 못 본 것 같은데. 요즘 한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유행으로 번진 듯 했다.
“저 여자들이 입은 한국 옷 정말 예뻐요.”
역시나 푸른 눈의 외국인 입장에서 한복이 눈에 띄는 건 당연했다. 캐서린은 여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를 보며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었다.
“Korean traditional clothes(한국 전통 의상), 한국에서는 한복이라고 불러요.”
“황복?”
“네, 한. 복! 한번 입어 볼래요?”
“어떻게요?”
“자기 한복입고 다니는 사람 없어요. 대부분 빌리는 거죠. 이 근처에 한복 대여점이 있을 거예요.”
“정말요?”
한복을 입을 수 있다하니 캐서린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내심 한복을 입어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난 스마트 폰을 지도 앱을 통해 근처 한복 대여점을 검색했다. 그리고 경복궁역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한 한복 매장, 태범과 캐서린은 그곳으로 향했다.
“한복 입으니까 어때요?”
“너무 예뻐요.”
빨간 치마의 하얀색 저고리, 그리고 그 위에는 한국 특유의 전통 문양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원래 그 나라 의상은 그 나라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법인데 서양 사람인 캐서린은 한복의 미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100% 주관적인 시선이었지만 태범의 눈에는 완벽하게 보였다.
그렇게 한복을 입고 밖으로 나간 캐서린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고 있었다.
백인이 한복을 입고 길을 활보하니 눈에 띄는 건 당연했지만 캐서린의 뛰어난 외모도 한 몫 하고 있다.
괜히 그 옆에 서있는 태범은 남자친구라도 된 마냥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태범은 사진기사가 된 듯 캐서린의 가는 곳마다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찍어요!”
캐서린은 사진을 찍고 있는 태범에게 옆으로 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하트.”
캐서린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자세를 취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교차해서 하트 모양을 만드는 건데 이건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 문화는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다.
“하트해요! 하트!”
“하트?”
“이거 몰라요?”
캐서린은 태범의 어깨를 툭 툭 치며 손가락 하트를 요구했다. 하지만 손가락 V는 했어도 하트는 괜히 쑥스러운 게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캐서린의 요구의 태범은 손을 들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찰칵.
캐서린이 셀카봉을 들어 올려 사진을 찍었다.
누가 봐도 연인의 사진. 사진 속 태범과 캐서린은 몸을 서로 밀착한 채 손 하트를 하고 있었다.
* * *
“다녀왔습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태범은 조심스럽게 부모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TV앞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말을 건넸다.
“친구 잘 만나고 왔어?”
“응.”
“저녁은?”
“먹고 왔어.”
사실 태범은 어머니에게 부산에 있는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다고 거짓말하고 나간 것이었다.
괜히 여자 만나러 간다는 말을 해봤자 안 좋게 볼 것만 같아 서울과 극단적으로 위치한 지역인 부산을 선택해 그곳에서 친구가 왔다고 한 것이다.
부산에서 온 친구정도면 어머니도 반대하기 힘들 테니 나름 머리를 쓴다고 한 거짓말이었다.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고시반과 어머니 양쪽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다니 역시 사랑은 고달픈 감정이었다.
태범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태범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침대에 철퍼덕하고 쓰러져 버렸다.
즐거운 데이트였긴 하지만 경복궁에 아쿠아리움 그리고 가로수길 쇼핑까지 오랜만에 오랫동안 걸어서 그런지 몸에 기운이 없었다.
태범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바라보며 캐서린에게 잘 들어갔냐며 메시지를 보냈다.
캐서린: 오늘 재밌었어요. 우리 자주 만나요. :)
돌아온 답변에 뉘앙스는 확실했다. 밀고 당기며 사랑에 간을 보는 것보다 캐서린은 확실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심지어 웃는 이모티콘까지 이건 말 다 했다.
태범은 침대에 누워 발을 구르며 기쁨을 표출했다.
한동안 기쁨과 함께 캐서린과의 앞으로 날들을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입가에는 실없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 언어! 프로그래밍!’
오늘의 데이트를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떠올리다가 캐서린의 전공인 컴퓨터공학이 뇌리를 스쳤다.
태범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서 프로그래밍에 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독학.]
[프로그래밍 언어.]
[코딩 하는 법.]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로망을 가져 봤을 거다. 태범도 그 중 한명이었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이제는 TV, 냉장고까지 여러 사물에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프로그래밍은 태범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역시나 21세기답게 프로그래밍은 인기가 많은 학문이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련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줄을 지었고, 그만큼 정보 또한 많았다.
‘코딩이라…….’
그렇게 정보의 바다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정보를 얻던 태범에게 한 사이트가 눈에 띄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주는 무료 프로그래밍 수업이었다.
‘웹 애플리케이션 만들기?’
이 사이트는 프로그래밍이란 학문을 낯설어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초보자를 위한 교육 사이트였다.
처음부터 C언어가 아닌 실습을 통해 대략적인 지식을 쌓아 갈 수 있도록 교육 동영상까지 제작돼있었다.
태범은 자연스럽게 손이 이끌려 교육영상을 클릭했고 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영상은 기존의 다른 교육 영상들과는 다르게 선생이 칠판 앞에 서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오직 간단한 이미지로서 초보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이런 게 강의지…….’
주절이 설명만 하는 강의가 아닌, 정말 친한 선배가 옆에서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무료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성의가 잔뜩 들어가 있는 영상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우리가 외국인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 나라 언어를 배우죠?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언어를 배우시면 됩니다.]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그저 0 그리고 1 이 두 가지 숫자일 뿐이었다.
0과 1로 이뤄진 이진수를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가가 컴퓨터의 언어.
태범은 대단하게 생각했던 프로그래밍이 사람의 언어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자 눈앞에는 새로운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