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9화 (19/188)

# 19

태범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현찬아.”

친구인 현찬의 얼굴을 보고는 반가워 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

“쉿.”

현찬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태범에게 조용히 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듣고 있던 탓에 태범은 자기 목소리의 음량을 조절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이름을 외쳐 버린 것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들 신경이 예민한지라 소리에 조심해야만 했다.

현찬은 주변을 의식하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태범은 잠시 보고 있던 강의 영상을 일시정지해둔 채 현찬을 따라나섰다.

“어, 현찬아 반갑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설마 회계사 시험 보려고?”

“응, 나도 고시반에 들어와서 회계사 공부하기로 했어. 교수님이 권유하셨거든.”

현찬은 태범의 고시반 입성이 흥미로운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들어왔는데? 나한테는 아무 말 안 했잖아.”

“아니, 갑작스럽게 들어오게 됐어. 나도 교수님한테 권유받은 지 얼마 안 됐거든.”

“음, 그렇구나.”

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복도 커피자판기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넣더니 밀크 커피를 뽑아 태범에게 건넸다.

“아, 근데 너 아까 뭐 하던 거야?”

“뭐가?”

“너 공부할 때 잠깐 옆에서 봤는데 강의 영상을 두 배로 돌려 보드라? 책에는 밑줄을 미친 듯이 치고 있고.”

태범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아까 전 공부했던 방법은 태범이 고안해낸 암기력을 이용한 공부 기법 중 하나였다.

암기력과 이해력은 다른 성질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암기만 해서는 응용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한 문장이나 단어에는 밑줄을 치며 복습을 할 수 있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인 건 영상 속 선생이 설명을 느리게 하는 바람에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어…… 그냥 한번 빠르게 대충 봐서 일독은 해보려 했지.”

태범은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뱉고 봤다. 그러자 현찬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 그렇게 공부하면 안 돼. 너 보니까 기초 수업 듣는 것 같은데 대충 들었다가 나중에 기초가 부실해서 문제 풀기 힘들어질 수 있어.”

현찬은 태범의 공부방법을 못마땅해 하며 충고를 건네고 있다. 굳이 인상을 쓰면서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친구 잘되라고 해주는 충고라고 좋게 생각하며 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너한테 제대로 다시 배워야겠네.”

“일단 기초는 확실히 잡고 가야 돼. 무조건 이해 중심으로 가. 다른 선배한테 물어봐도 다 같은 대답 해줄걸?”

현찬은 같은 수험생 입장이었지만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정보를 많이 안다는 이유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사람 심리상 자신보다 초보자나 못한 사람이 있으면 뭐든 설명해주고 싶은 법이다. 남이 싫어하는데 억지로 설명하면 선생질한다고 손가락 받겠지만 친한 친구니 참기로 했다.

현찬은 침을 튀기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1차, 2차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부터 시간 관리법, 컨디션 조절 방법 등 많은 걸 설명해 줬다.

물론 현찬이 역시 1차도 합격 못 한 많아야 4개월 빠른 같은 수험생 입장이었지만 생각보다 유용한 정보도 있었고 그만큼 잡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현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입에서는 인스턴트커피와 담배 냄새가 섞인 일명 ‘커담’ 이라고 불리는 극악의 입 냄새가 태범의 코를 찔렀다.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니 꾹 참고 말을 모두 들어주었다.

‘참 이러다가 내가 먼저 합격해버리면 어떡하지.’

같이 시험에 합격하고 손잡고 이곳을 나가면 좋겠다만 혹여나 태범이 먼저 합격이라도 한다면 현찬의 자존심은 짓밟히고 말 것이다.

자신의 친구가 새로 왔다니 이렇게 들떠서 자존감을 높게 세우고 선생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뒤늦게 들어온 친구가 먼저 합격하면 묘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저러다 현찬이 자신보다 늦게 합격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걱정됐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나불대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중 뭔가 그림자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감독 실장님이 저 멀리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표정은 잔뜩 굳은 무표정의 얼굴을 한 채 태범과 현찬에게 다가왔다.

혹시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경고를 주러 오는 게 아닐까 태범은 걱정 어린 마음에 입은 꾹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같은 학과 친구지?”

“네.”

“흠…… 친구 좋긴 한데. 공부할 때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안 좋거든? 잘 생각해봐.”

소음 때문은 아니었지만 실장은 친구끼리 대화하는 걸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녀가 10년 동안 봐온바 공부는 고독한 것이었고 특히 친구랑 같이 붙어 다니며 공부를 할수록 합격률이 낮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처음에는 서로 뭐 물어본다고 만나겠지만 말이 길어지면 잡담이 되거든? 그러니까 웬만하면 여기서 너무 자주 만나지 않을 게 좋을 거야.”

태범과 현찬은 납득이 간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았으면 공부하러 들어 가 봐.”

“네.”

“전 잠깐, 담배 좀…….”

태범은 다시 공부하러 자리로 돌아갔고 현찬은 실장에게 멋쩍은 미소를 보내며 담배 타임을 위해 건물 밖으로 향했다.

* * *

태범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와 간단한 세안을 마치고 고시반으로 향했고 저녁 8시까지 공부를 했다.

다른 학생들은 심지어 저녁 10시, 11시까지 공부를 하곤 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기는 마냥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 왼쪽 엉덩이에는 커다란 종기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가끔 종기를 잊고 쿵하고 앉았다가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지만 공부하던 도중 사용하는 걸 감독 실장님에게 걸려서 이제는 아예 집에 두고 다녔다.

점심을 먹으면 잠이 쏟아지는 식곤증 때문에 식사량을 줄이기도 했고 잠깐의 낮잠이 좋다는 말에 책상에 엎드려 자보기도 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위액이 역류하는 바람에 속이 쓰려 엎드려 자는 건 포기했고 그저 정신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고시반에 들러 온 지 2주 생각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래도 태범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티며 시험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82%)

-수리 이해력(57%)

-언어 이해력(35%)

2주 동안 여러 능력을 스캔해 본 결과, 스캔 진행률은 최대 5%까지 가능한 걸로 추측이 됐다.

0%에서 시작해 처음에는 10% 이상이 상승하지만 어느 순간 계속 하락하다가 결국 다시 올려봤자 하루 5%이상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도 다른 능력과 시너지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가능한 수치였다.

선택하려는 능력의 진행률보다 이미 소유한 다른 능력의 진행률이 %가 높으면 선택한 능력은 그 다른 능력의 시너지를 받아 최대 5%가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원하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올려야만 했다.

* * *

토익 학원은 고시반 다닌 후부터 안 나간 지 오래였다.

학원에서 여러 번 연락은 오긴 했으나 더 이상 배울게 없어 그만 다니기로 한 거였다.

비싼 돈 주고 학원에 등록해 놓고 일주일만 다녔으니 어머니는 웬 돈지랄이냐며 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 이해력에 대한 능력을 습득한 이후로는 굳이 문법이니 시험 비법이니 따지며 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학원을 가는 것보다 재밌는 미국 영화 한 편 보는 게 태범에게는 더욱 학습적이었다.

난 어머니에게 차마 능력을 밝힐 수는 없었고 고시반을 핑계로 토익학원을 그만둔다고 말을 둘러댔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토익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태범아 오늘은 고시반 안 가니?”

매일 아침 8시면 학교를 향하던 태범이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걸 보고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요리를 하다말고 태범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 토익 시험 보러 갈 거야.”

아직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태범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스마트 폰 속에 저장된 영어 문제를 듣고 있던 태범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토익 또 봐?”

“응, 끝장을 봐야지.”

태범은 인생의 세 번째 토익 시험이자 마지막 시험이 되길 바랐다.

토익 만점인 990점. 태범은 오늘 이후로 토익을 졸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태범은 겨우 이 까짓게 자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만 같아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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