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월요일 시험과목인 ‘인물로 배우는 삶의 지혜’에 이어 ‘세계 문화의 이해’ 역시 순조롭게 문제를 풀며 맞힐 수 있었다.
첫 시작이 중요하다고 태범은 스타트를 잘 끊은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뭐 어렵지 않게 풀 거라고는 예상을 했지만 직접 시험장에서 터져 나오는 정보를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쾌감을 모를 것이다.
“음…… 태범아 시험 잘 봤니?”
TV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지, 어머니는 소파 위에서 낮잠을 자다가 태범이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뜨며 말했다.
“어. 잘 본 것 같긴 한데 점수가 나와 봐야 알지.”
“열심히 했으니깐 잘 봤겠지. 배 안 고파? 점심 먹었지?”
“먹었어. 배 안고파.”
“그러면 과일이라도 먹을래? 참외 깎아줄까?”
“아니, 됐어. 그냥 엄마 피곤해 보이는데 낮잠 자던 거 계속 주무셔.”
예전이었다면 그저 시험을 봤겠구나 생각하던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태범이게 기대가 큰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태범은 혹시나 어머니의 과잉 관심을 받다가 스캐너의 정체에 대해 들킬까 우려 하에 관심을 한사코 사양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자 확인 한 번 해볼까?’
태범은 방문을 닫자마자 책상 앞에 달려가 스캐너를 실행시켰다.
오늘은 두 번째 추측이었던 능력 간의 시너지 효과를 실험해볼 생각이다.
갑자기 상승한 스캔 진행률이 다른 능력의 상승과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추측이었다.
[암기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제발 이번 추측이 들어맞길 바랐다. 2%이상만 오르면 추측이 맞는 것이다. 제발. 제발.
[스캔이 4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44% 진행되었습니다.]
“오예!”
또 다시 오른 스캔 진행률에 태범은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혹시 어머니가 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올까 입 밖으로 나오는 탄성을 겨우 삼키며 속으로 기뻐하고 있다.
태범은 다른 능력이 시너지 효과로 스캔 진행률을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언어 이해력과 수리 이해력을 올림으로써 암기력의 스캔 진행률이 높아 진 것이다.
이로써 태범은 스캔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능력을 적절히 섞으며 스캔을 해야겠네.’
* * *
시험 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다 생각이 들 정도로 태범에게 시험 기간 아주 짧게만 느껴졌다.
과거 태범이었다면 시험 일주 전부터 시작해 필기 노트를 정리부터 선배나 친구들에게 시험 관련 정보를 얻어야 했으며 과제와 공부에 휩싸여 하루 종일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단지 스캐너만을 이용했을 뿐 별 준비한 것도 없이 시험은 순조롭게 치를 수 있었다.
손을 안 대고 코를 푼 기분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시험으로 태범은 마지막 시험인 ‘결혼과 가족의 이해’를 끝으로 기말 고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50%)
-수리 이해력(18%)
-언어 이해력(30%)
* * *
[It's only after we've lost everything that we're free to do anything 모든 걸 잃어야, 어느 것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와. 멋지다…….”
시험도 끝났고 태범은 여유롭게 소파를 침대 삼아 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시험 끝나고 느끼는 그 여유로움은 마치 이 순간만큼은 천국이라 해도 될 만큼 좋은 시간이다.
TV속 영화 주인공인 브래드 피트가 턱을 괴고 멋지게 대사를 내뱉는데 같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카리스마에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it's only after…… 아우 씨!”
태범은 괜히 브래드 피트를 따라 손을 턱에 괴며 대사를 흉내 내봤지만 TV옆 찬장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영화 주인공의 오뚝한 코에 우수에 깊은 눈 그리고 조각해 놓은 듯한 턱에 비하면 자신의 외모는 형편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범의 외모가 못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름 스스로 잘생긴 편이라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남자라면 한 번쯤 겪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래도 평범 보다 살짝 위에 단계라고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왔다.
길 가다가 번호 따이거나 사랑 고백을 받아 본 적은 없어도 만나는 어른들마다 잘생겼다며 칭찬을 해주곤 했으니 50년 전에 태어났으면 여자 좀 울리고 다녔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위안을 한들 저 TV속 헐리우드 미남 배우와는 견줄 수가 없었다.
‘외모도 능력이겠지?’
태범은 문뜩 외모에 대한 능력이 궁금해졌다.
분명 잘생긴 외모도 능력 중 하나일 텐데 과연 그게 스캐너를 통해 이뤄질까 말이다.
‘실시간으로 코가 오뚝해지고 그럴까?’
지금까지의 능력은 모두 내면적인 능력이라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나지만 외형이 바뀐다면 그보다 신기하고 마법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태범은 호기심에 당장이라도 잘생긴 유명 배우 사진을 스캐너에 올려놓고 싶었지만 아직 100%를 채우지 못한 이상 지금껏 올린 능력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형, 자막 왜 안 켜고 봐?”
동생 태인은 수능 공부를 한다며 방에 틀어 박혀 있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던 중이었다.
근데 태범이 TV속에 빨려들 것처럼 몰입해서 뭔가를 보고 있기에, 뭐를 보는가 싶어 한번 흘겨봤는데 자막이 없는 미국영화였던 것이다.
자막이 없는데도 알아듣고 있다 듯이 몰두해서 보는 형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꼭 키고 봐야 돼? 이 정도 영어는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니야? 하하.”
태범은 스스로에게 너무 도취된 듯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동생의 냉담한 대답이었다.
“뭔 개소리야.”
“형처럼 되고 싶으면 들어가서 공부나 해라!”
태범은 소파에 누운 상태로 묘기를 부리듯 손의 추진력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며 태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 차려했다.
하지만 한번 평소 많이 당했던 기술이었기에 태인이 역시 쉽게 당하지 않고 빠른 반응 속도로 간단하게 발차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응, 너나 공부해.”
발차기를 피한 태인은 한마디 말로 반격을 하더니, 소파 옆 수납장 위에 있는 곽 티슈를 태범에게 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향해 후다닥 들어갔다.
태범은 쫓아가서 머리통을 한 대 칠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소파에 찰싹 붙어서 일어나기 귀찮아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태평하게 영화 관람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
고함수준의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 뒤 태범은 방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자막 없이 봐서 그런지 영어 듣기에 뇌가 피곤한 듯 수면을 요구하고 있다.
태범은 방 불을 끈 뒤 침대에 엎드려 낮잠을 취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찰나에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김영석 교수.’
태범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어, 태범이지? 나, 김영석 교수야.”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래, 시험은 다 끝났고?”
“네, 다 끝났어요.”
“그래, 시험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번 주말은 쉬고 다음 주에 고시반으로 들어오렴.”
“다음 주요?”
태범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고시반에서 호출을 하니 당황스러웠다. 적어도 방학은 끝나고 2학기 때쯤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 다음주.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지?”
“그게…….”
“왜 무슨 일 있나?”
“아! 아니요. 하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태범은 결국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마터면 나태해질 뻔한 걸 태범은 마음을 굳게 잡고 이야기 한 것이다.
매번 그래왔듯이 항상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가졌던 태범은 이번 기회에 능력을 이용해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 그럼 월요일 점심식사나 같이하면서 이야기하지.”
“네, 알겠습니다.”
* * *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비경제 활동 인구 중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인원이 17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3%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청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요.]
“요즘 문제야, 문제. 돈은 다 윗대가리 놈들만 가져가고 있으니 말이야. 요즘은 돈이 돈을 낳는 시대라서 서민들만 힘들어지지.”
가족끼리 TV를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항상 저녁밥을 먹을 때면 뉴스가 할 시간이라 SBC 저녁 뉴스를 보곤 했다.
청년 실업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니 아버지는 툴툴거리며 사회 문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아버지 입장에서 저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두 아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다 커서 곧 사회에 나갈 아들들인데 세상은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아빠, 나 회계사 준비나 해볼까 생각하는데…….”
아버지가 뉴스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 태범은 회계사를 준비해보겠다고 슬쩍 말을 건네 보았다.
“뭐?!”
‘회계사’ 그 한 단어에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아니, 교수님이 고시반에 들어올 생각 있냐고 물어 보기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럼 되겠지. 들어가 봐.”
생선 가시를 바르고 있던 어머니는 젓가락질을 멈추더니 태범이 당연히 합격할 거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게 얼굴에는 신중함이 가득했다.
“정말 가능하겠어? 공인 회계사 그거 어려운 시험 아니냐? 그거 쉽게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닐 텐데. 마음을 굳게 먹고 해야 되는데 자신 있어?”
아버지는 태범에게 마음가짐을 확인하려 했다. 어머니는 그저 무조건 태범이 원하는 데로 시키자는 눈치였지만 아버지는 신중히 몇 번이나 태범의 마음을 확인했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버지의 심각한 말투에 태범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마음으로는 안 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야지.”
“에이, 그걸 왜 자꾸 물어봐. 태범이가 하고 싶다잖아. 다른 건 몰라도 공부하고 싶다는 건 시켜야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옆에서 한마디를 건넸다.
“아니, 그래도…….”
괜히 자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다툼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항상 부부싸움은 사소한 곳에서 생겨나는 법. 태범은 괜한 부모님의 말싸움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대답했다.
“응, 당연히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