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토요일 아침.
태범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세안도 하지 않고 떡진 머리에 눈곱을 떼며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1학기 기말 고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보통학생이라면 시험 1, 2주전 시험공부를 했겠지만 태범은 능력을 믿고 토익 공부와 병행하며 태평한 마음으로 시험 기간을 보내왔다.
이 모든 게 능력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이틀이 남은 기간.
세상에 완벽함이라는 것 없기에 태범도 여전히 학습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며 얼마 남지 않는 기간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조기 상환…… 조기 상환…….”
태범은 책의 문제를 보며 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풀이 방법을 떠올리고 있다.
사채를 상환했을 경우 조기 상환과 관련된 회계 처리를 하는 문제인데 생각보다 정답이 빠르게 떠오르지 않았다.
회계학은 화폐의 금액을 계산하는 과목이며 암기만으로는 답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수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돈이라는 건 사람의 마음과도 같아서 이곳에 붙었다가 저곳에 붙었다하며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하니, 이 모든 움직임을 화폐라는 기호를 통해 수학적으로 풀어내야만 했다.
물론 대부분 답은 암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응용을 해서 문제를 내버린다면 암기만으로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액면 금액 \200,000에 미지급 이자 \200,000x0.15x6/12 그리고…… 음…….
태범의 손은 계산기 위에서 바삐 움직였다. 계산기 화면에는 숫자들이 춤을 추듯 요리조리 바뀌고 있다.
사채 조기 상환 이익 \12,000.
계산기에는 12,000원의 금액이 나타났고 태범은 바로 책 뒷장의 정답을 확인했다.
답을 본 태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안지에는 계산했던 12,000원 보다 2,543원이 작은 9,457원이 적혀있었다.
암기력만 믿고 여유를 부리던 태범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놈의 멍청한 새끼!’
태범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탄식을 했다. 그렇게 좋은 능력들을 얻었음에도 문제를 틀렸다는 건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다.
태범은 모든 공식은 다 암기하고 있었지만 이를 응용할 줄 몰랐던 것이다.
‘역시 수리 이해력이 필요해.’
태범은 빨리 12시가 되어 다음날이 오길 기다리며 공부를 이어나갔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공책에는 숫자로 가득 차 있었고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
얼마나 고심이 많았는지 갈색 나무 책상위에는 눈이 내린 듯 흰색 가루들이 쌓여있었다.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머리를 박박 긁어대는 태범의 습관으로 인해 비듬이 떨어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범이 요즘 시험 기간이지?”
“응, 태범이가 군대 갔다 와서 철들었나 봐. 호호.”
아버지의 동생인 고모가 집에 놀러 온 것이다. 주말이면 가끔 아침등산을 마치고 산 근처인 태범의 집에 놀러 왔다.
그러고는 인스턴트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별의별 사건과 소문 그리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즉 수다 파트너인 셈이었다.
“윤호는 공부 잘 돼가고?”
“모르겠어. 경찰 공무원을 한다는데 요즘 공무원이 경쟁률이 예전 같지 않으니…….”
윤호는 고모의 아들, 태범의 1살 어린 사촌 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의경)에 입대하더니 경찰에 꽂혔는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잘 되겠지.”
“근데 요즘 윤호가 여자 친구가 생겨서…….”
“여자 친구?”
“응. 그것도 고등학생 여자앤데 에휴. 모르겠어. 공부나 제대로 할런지.”
‘고…… 고등학생?’
태범의 눈은 책에 있었지만 귀는 어느새 문밖 두 아줌마의 대화 사이에 껴들어있었다.
고등학생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22살 윤호의 이야기는 태범의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충분했다.
그 외 옆집 여자가 바람핀 이야기, 남편 뒷담화, 속사정 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태범은 재밌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만 같았다.
시험 기간에는 지뢰 찾기도 재밌게 느껴질 만큼 공부 빼고는 다 재밌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문제가 암기로만 안 풀리다 보니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머리만 아프고 공부하다가 핸드폰을 보다가를 반복하다가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12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 시간에 눈이 떠있다면 태범은 스캐너와 컴퓨터를 켰다.
문을 잠그고 조용히 스캔을 실행.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40%)
-암산능력(0%)
-수리 이해력(0%)
-언어 이해력(23%)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수리 이해력을 선택했다.
진행률에 대해 확인할 것도 있고, 시험에 꼭 필요한 능력이기에 무조건 있어야만 했다.
[수리 이해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40%)
-수리 이해력(10%)
-언어 이해력(25%)
아직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태범은 스캔이 끝나자마자 책을 펴며 회계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액면 \1,500,000 표시 이자율 8%의 사채를 발행했으며 사채의 원금은 20X1년과 20X2년에 각각 \300,000을 분할 상환하고 잔액 \900,000을 20X3년에 상환한다. 이자 지급일은 매년 12월 31일 발행시점 이자율은 10%이다. 이를 회계처리 하시오. (10% 현가 계수) 1년 0.90909 2년 0.82644 3년 0.75131]
태범은 일부로 숫자가 가득 찬 문제를 선택했다. 한눈에 봐도 최면을 걸 것만 같은 숫자들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원금의 현가부터 계산해서 이자의 현가…….’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숫자만 보면 혼돈 상태에 빠지던 두뇌가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전혀 성급해 하지 않고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는 듯이 식이 차근차근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르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문제를 푸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다니.’
어느새 노트 위에는 공식들이 하나둘 적혀지더니 답을 도출해냈다.
그리고 답안을 확인.
단 1의 차이도 없이 정확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식을 거쳐 답을 적은 것이다.
역시나 능력의 첫 경험만큼 짜릿한 건 없었다.
처음 시작하는 능력은 몸에게 가장 큰 변화를 느끼도록 해줬으니 말이다.
태범은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니 다시 공부에 흥미를 찾았다.
그리고 재능(능력)과 노력을 더하면 아무것도 자신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태범의 다짐과 함께 주말 내내 공부를 이어나갔다.
* * *
일요일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에 월요일치 스캔을 하지 못했다.
월요일부터 시험이기에 컨디션 조절은 필수로 간단한 월요일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스캔을 할 계획이었다.
월요일 시험은 교양과목 ‘인물로 배우는 삶의 지혜’와 ‘세계문화의 이해’였다.
모두 암기력으로만 커버가 가능한 시험이었다.
학생들은 제각각 준비해온 노트를 가지고 수업의 내용을 암기하고 있었다.
시험이 시작하기 이전까지 한글자라도 더 보려는 노력은 학생들의 열정과 점수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고 있다.
“공부 열심히 했냐?”
회계학과 선배인 재인은 강의실 내 태범의 옆자리에 앉더니 말을 걸었다.
“형, 왔어?”
“아. 난 이번 시험 망친 것 같다. 공부 하나도 못했어. 너는?”
항상 그랬든 낡은 츄리닝을 입고 있는 재인은 이번 시험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다. 습관인지, 견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공부를 못했다며 한탄을 하는 사람은 존재했다.
“나도…… 뭐 그럭저럭.”
“에이! 딱 보니깐 열심히 했네.”
재인은 태범의 말을 전혀 못 믿는 눈치였다.
한국인은 겸손한 국민인지라 열심히 했어도 ‘나 공부 많이 했어’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다.
그럭저럭, 평균 정도를 했다는 말은 열심히 했다는 말의 간접적인 말이라고 재인은 생각했다.
“정말. 공부 얼마 안 했는데.”
하지만 태범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정말 교양 과목에는 공부 시간을 많이 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외우기만 하는 거, 태범은 수업 당일 날 배운 것 모두 그 수업 시간 내에 암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책상 위에 펜을 제외하고 모두 가방 속에 넣어주세요.”
시험이 시작되고 조교가 시험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교수는 걸어 다니며 매의 눈으로 학생들이 커닝하는 가 확인하고 있었다.
‘오! 오!’
태범은 책상 위에 펼쳐진 문제를 보자마자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문제가 너무 쉽다.
그저 수업에서 배운 인물들의 이력을 나열하고 자기 생각만 적어내면 됐다.
태범은 문제를 보기 시작하자마자 단 한 번도 펜을 멈추지 않고 글씨를 써 내려 나갔다.
미친 듯이 답을 써 내려가는 태범의 모습에 교수는 의심을 사며 한번 힐끔 쳐다보지만 태범의 눈은 오직 시험지 위에만 있었다.
태범은 강의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중도 퇴실이 가능했기에 문제를 풀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태범은 시험지를 앞에 있는 조교에게 가져다주었다.
“다 푸신 거예요?”
“네”
시험지를 받아든 조교 그리고 옆에 있는 교수는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시험이 시작한 지 겨우 10분 만에 시험지에 빼곡히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놈 천재인가.’
발표 때 현란한 모습을 보여 준 것도 그렇고 이번 시험까지 확인한 교수는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