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3화 (13/188)

# 13

“일정 시점에서 회사장 부상의 잔액과 은행 측의 당좌 구좌의 잔액이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원인, 은행이나 회사에서 미기입한 계정 때문에 발생하는데 불일치 유형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범의 두뇌는 블랙홀이라도 된 듯 그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흡수하고 있었다.

암기력이 올라갈수록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외우려는 의지 없이도 기억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태범아, 혹시 시간 있으면 나 좀 볼 수 있을까?”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쏜살같이 강의실을 나가기 시작했고 김영석 교수는 가방을 챙기고 있는 태범에게 다가와 물었다.

“네, 시간 있어요.”

태범은 다음 수업까지 1시간 여유가 있었고 교수의 요청에 시간을 내기로 했다.

교수를 따라 교수실로 향하는 태범의 발걸음은 잔뜩 긴장돼있었다.

말이 담당 교수였지 사실 1 : 1 면담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중, 고등학교 때 교무실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자. 앉지.”

교수는 태범에게 자리를 권유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미소를 천천히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요즘 너무 잘하고 있어. 항상 앞에서 열심히 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하고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교수의 칭찬에 태범은 긴장되던 마음은 눈 녹듯 사그라지며 괜히 어깨가 우쭐해졌다.

“이번에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것 맞지?”

“네.”

“1학년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자네한테 재능이 보여. 좀만 열심히 하면 회계사도 문제없겠는데 말이야.”

이쯤 와서 태범은 교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회계사 준비를 권해보려는 것으로 보였다.

고시급은 아니더라도 준 고시급은 되는 공인회계사는 우리 대학에서 1년에 5~6명 정도의 배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공인회계사는 대부분 싹수를 알아본 교수들이 제안을 하며 이뤄진다고 들었다. 태범과 동기인 현찬이도 마찬가지로 1학년 성적이 좋아 제대하자마자 교수의 권유를 받고 고시반에 들어간 것이었다.

“음…….”

태범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 없이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강요하는 건 아니고 허허, 내가 이래 봐도 눈썰미는 좋거든. 교수생활 25년 하면서 누가 될지, 안 될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학생은 분명 될 거야.”

교수의 달콤한 유혹에 태범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해볼 만하지…….’

원래 태범은 회계학과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점수에 맞춰 학교를 고르다 보니 나름 사무직이라고 생각한 회계학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 어렵다는 공인회계사(CPA)에 도전할 생각도 없었으며 그저 회계 자격증이나 따서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태범이 요즘 공부를 하다 보니 느낀 건데 폰 노이만의 능력만 있으면 회계사가 아니라 사법고시도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번년도를 마지막으로 사법고시가 폐지되지만 말이다.

“어때 생각이 있나?”

“네, 해보겠습니다.”

폰 노이만의 능력으로 가득 찬 자신감에 태범은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공인회계사(CPA)를 도전하기로 말이다.

* * *

“또 다 맞추셨네요.”

“와.”

학원의 조그마한 교실에 앉아 있는 선생과 학생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태범은 일주일 째 쪽지시험 점수가 만점이었다.

800점 토익 반에서는 매 수업마다 숙제를 주고 쪽지 시험을 봤다.

전날 배운 수업을 얼마나 잘 복습했는지 테스트하기 위함이었고 집중반답게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에서 내주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괜히 등록했나? 35만원이면 치킨이 20마리인데…….’

생각보다 너무 쉬운 학원 수준에 태범은 학원비를 아까워하고 있었다.

혹시 수업을 못 쫓아갈까, 이틀 연속 언어 이해력을 추가적으로 올렸고 현재 23%의 진행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능력은 강했고 얼마 있지 않아 머릿속 영어 지식은 강의 내용을 능가해버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듯 태범의 언어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처음 언어를 배울 때 문법을 따지면서 배우는가 그러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에 가깝다.

언어 이해력은 문법이나 단어를 외워서 이해시키는 능력이 아닌, 언어의 패턴을 읽어내고 자연스럽게 소화시키는 능력이었다.

태범이 역시 그저 보이는 걸 보고 들리는 걸 들었을 뿐인데 영어가 자연스럽게 익혀진 것이다.

“진짜 780점 맞으세요? 장난치시는 거죠.”

“저 780점 맞아요. 제가 왜 점수가지고 거짓말 하겠어요?”

“하하. 그럼 대단하신 거네.”

옆에 같이 수업을 듣던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번 수업에 태범이 마지막 나온 점수가 780점이라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전혀 못 믿는 눈치로 태범을 바라봤다.

“혹시 공부하는 방법 좀 나한테 알려줄 수 없을까요? 내가 이번에 미국발령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서 900점을 요구하더라고.”

아저씨는 태범에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유명 IT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태범의 옆자리 아저씨는 근무지가 학원 근처였기에 퇴근 후 바로 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곤 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학습을 멈추지 않는 걸 보고 태범은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어때? 원하면 과외비도 줄 수 있고.”

“하하. 제도 학생인데 아저씨를 어떻게…….”

“에이, 그래도 혹시 알아? 유능한 선생님이 될지도?”

“하하하…….”

아저씨는 태범에게서 대단한 공부비법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만 알고 있다. 물론 그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하지만 마법 같은 스캐너를 남에게 공개한다는 건 태범에게서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태범은 그저 별거 없다는 듯 웃음으로 상황을 넘길 뿐이었다.

* * *

“엄마, 이게 뭐야?”

태범이 집에 돌아오니 방 한구석에 낯선 택배 상자 한 개가 놓여있었다.

“응, 그거 너 학원 갔을 때 온 건데? 인터넷으로 뭐 시킨 거 아니야?”

“아니, 나 시킨 거 없는데.”

분명 수취인에는 강태범이라 적혀있다. 시킨 적 없는 택배가 와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뭔가 당첨된 게 아닌가 싶었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태범은 기대에 찬 눈으로 택배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찌익.

커터 칼로 박스 테이프를 긁어내고 박스를 열자 보이는 건 각종 각색의 사탕이었다.

“웬 사탕이지?”

태범은 뭔가 싶어 박스의 가득 찬 사탕을 손으로 훑으며 확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보이는 빨간색 편지봉투.

누군가 자신을 흠모하고 보낸 러브레터인가 태범은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저씨에게.

저를 구해준 아저씨에게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없었으면 저는 더 아팠을 거예요.

아저씨 때문에 나쁜 사람도 잡을 수 있었어요.

제가 선물로 사탕을 넣어놨어요.

엄마, 아빠랑 나눠 먹고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안녕

아쉽게도 러브레터가 아닌, 골목길에서 사고를 당한 아이의 편지였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진 편지에는 순수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리고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편지를 쓰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여움이 느껴져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태범은 아이가 쓴 편지를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했고 박스에 있는 오렌지 사탕 한 개를 꺼내 입에 넣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곧 시작될 기말 고사 태범은 올 A+을 맞겠다는 심정으로 공부에 몰두했다.

암기력을 통해 책의 내용을 미친 듯이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니, 시계 바늘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태범은 12시까지 눈을 뜨고 있다가 습관처럼 스캔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스캔 시작.

[암기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38%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40% 진행되었습니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40%)

-언어 이해력(23%)

─뭐…… 뭐지?

진행이 더뎌지며 이제는 1%씩 오르던 암기력이 갑자기 2%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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