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자전거는 바퀴가 얇은 로드 자전거였어요. 색깔은 검은색에…… 뭐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태범은 자전거 프레임에 쓰여 있는 글씨를 떠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그때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이었다.
암기력과 기억력은 깊은 관련이 있었으나 암기력의 능력만큼 기억력이 서로 비례하지는 않는 거로 보였다.
뭔가를 외우려고 두뇌를 능동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이 암기였고 폰 노이만의 암기력 32%수준에서 영단어를 한두 번 정도 보면 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뇌를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기억은 외우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 머리에 잘 남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상황이었다.
“PAIN…….”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단어씩 떠오르더니, 탄력을 받은 기억은 곧이어 모두 떠오르기 시작했다.
“PAINKILLER 였어요. 자전거에 프레임에 ‘페인킬러’라고 쓰여 있었어요.”
“페인킬러요?”
“네.”
경찰은 조끼 가슴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수첩에 태범이 말해주는 걸 적었다.
“얼굴 같은 건 기억 안 나나요?”
“머리는 짧았어요. 옆머리랑 뒷머리는 짧게 쳐져 있었고 약간 상고스타일의 머리였거든요. 얼굴은 갸름했고…….”
“아니, 이럴 게 아니라 경찰서 가서 몽타주 그리는 거 도와주시죠.”
“몽타주요?”
몽타주하면 현상금이 내걸린 흉악한 범죄자들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흔히 쓰이는 기법인 듯하다.
“네, 죄송하지만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다른 경찰은 근처 CCTV를 확인하러 나갔고 나와 한 명의 경찰은 몽타주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 * *
경찰차를 타고 도착한 중랑 경찰서에 도착한 태범은 ‘수사과’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분명 범인을 잡기 위해 도와주러 온 거지만 태범은 괜히 마음이 찔리는 것이 범죄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생각보다 안은 조용했다.
태범은 영화를 떠올리며 범인들이 의자에 앉아 형사들에게 서류철로 머리통을 맞거나 흉악한 범죄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과장된 게 있었나 보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수사과 안의 조그만 방에는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자. 생각나는 범인 외모 말해주세요.”
RPG게임 시작 전 캐릭터의 외모를 꾸미기 위한 창과 비슷한 것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손으로 작성하는 건 줄 알았는데 역시 발달된 기술답게 몽타주도 컴퓨터로 그리는 시대였다.
“더. 갸름했고요. 볼 살이 들어가서 광대가 좀 보였거든요. 네, 그렇게요.”
태범은 범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볼 때 잠깐 봤기에 자신의 기억에 긴가민가했지만 생각나는 느낌을 그대로 형사에게 말해주었다.
“머리카락은 상고머리요. 옆머리는 더 바짝 자르고요. 아니요. 더요, 더!”
태범의 너무나도 자세한 설명에 경찰은 진땀을 흘리며 몽타주를 만들어 나갔다. 태범은 머리털 한 개까지 신경 쓸 기세였으니 경찰은 이를 악물고 손을 움직였다.
“네, 그렇게요. 음. 그리고 입술아래 왼쪽 턱에 점이 있었어요.”
“이렇게요?”
“아니요. 좀 더 작게요.”
“아니, 이걸 기억하신다고요? 확실한 거 맞죠?”
몽타주에 점을 찍던 형사는 작은 점의 크기까지 기억하는 태범에게 의심 섞인 말을 내뱉었다.
“제 기억이 맞다 면요.”
태범은 분명 기억하고는 있었으나 자신의 기억이 확실한가는 스스로에게도 의심이 가는 상태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억의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눈은 쌍꺼풀이 없었고 몽고 주름이 좀 크게 있었어요.”
몽타주가 거의 완성 될 때쯤이었다.
한 남성이 수사과에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외치고 있다.
“어떤 놈이 우리 아들을 다치게 했습니까? 네?”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우렁찬 소리를 내는 남성, 곧이어 그가 몽타주를 작성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누굽니까! 형사님.”
“아직 범인은 잡은 게 아니고요, 목격자가 있으셔서 몽타주 작성하고 있거든요.”
남성은 키는 180 후반으로 보이고, 몸무게는 100㎏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체형이었다.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 같은데 딱 보자마자 든 생각은 ‘범인은 이제 죽었다’였다.
“여기요.”
경찰이 남성에게 모니터 속 몽타주를 가리켰다.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지만 남성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르는 눈치, 그는 잠시 핸드폰을 꺼내 몽타주 사진을 찍더니 어디론가 보냈다. 그리곤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이거 몽타주라는데 누군지 알겠어?”
“이거, 우리 동네 남자잖아!”
아이의 엄마는 전송 된 몽타주를 보자마자 단박에 범인을 알아냈다. 아주 가까이 살고 있었기에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야, 나가자!”
범인은 밝혀졌고 이제 잡으러만 가면 되는 일이었다. 경찰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제 가 봐도 될까요?”
“아.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 * *
일이 마무리되고 다음날 저녁 태범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덕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경황이 없어 인사를 제대로 못 올렸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정말, 학생이 거기 있어서 다행이지. 어쩌면 범인도 못 잡고 우리 아이도 더 고통스러워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어떻게 보상을 해드려야 할지?”
“아니에요. 그것보다 얘는 괜찮나요?”
“손목이 골절되긴 했는데 그래도 어린아이라서 금방 뼈가 붙으니 괜찮을 겁니다.”
“아이고.”
아이가 괜찮길 바랐지만 골절이라니 태범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에이.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범인 그 자식은 형사 입건될 겁니다. 괜히 바보 같은 짓해서 콩밥만 먹는 거죠.”
“아…… 네.”
범인은 처음에 자신의 범죄를 한사코 부인하다가, 집 보일러실에서 페인킬러 자전거가 발견되었고 결국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고 했다.
자전거는 도로 교통법상 차로 구분되었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골목길에서 타는 것부터가 법에 어긋난 행위였고 심지어 사고를 내고 도망가는 건 도로 교통법의 조치 불이행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아니, 근데 범인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 정확히 기억하셨습니까?”
“네?”
“몽타주랑 범인 얼굴을 보는데 무슨 사진을 찍어 놓은 줄 알았습니다. 경찰에서도 놀라더라고요. 허허.”
아이 아빠의 반응에 태범 역시 놀라워했다. 사실 자기 스스로도 기억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사진과 비교 할 정도라니 생각보다 기억은 정확한 듯했다.
“아! 그리고 우리 대학교에 다니신다면서요?”
“네, 그걸 어떻게.”
“형사님이 말씀해주셨어요. 저희도 어떻게 보면 인연이네요. 우리 대학 이사장님이 저희 큰 아버지거든요.”
“아, 정말요?”
“학생, 그날 학교 못 갔다면서요. 경찰한테 들었어요. 제가 다 처리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올 A+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태범은 출석에 흠이 나면 안 됐기에 병원에 있는 걸 머뭇거렸고 그 모습을 본 경찰에 물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아이 아빠에게 전한 듯하다.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사고 당일 빠진 수업의 교수님들에게 일일이 상황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에 있었던 태범에게는 걱정을 덜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학생, 그럼 내가 식사라도 대접해도 될까요?”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아쉽네요. 그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 * *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태범이 범인을 잡은 소식은 학교 내에 순식간에 퍼졌다.
처음 아이 아빠로부터 시작해 이사장, 교수 그리고 자연스럽게 학생들 까지 이제 태범의 학과 학생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태범아, 투자 부동산에 해당되지 않는 예는 뭐가 있을까?”
재무회계 수업을 듣고 있는 태범은 교수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이제 교수가 질문 했을 때 누구도 답을 안 하려 하면 항상 태범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태범은 항상 교수의 질문에 답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사용 부동산, 금융리스로 제공한 부동산, 제3자를 위한 건설, 개발하고 있는 부동산 그리고…… 영업 과정에서 판매하기 위한 부동산이요.”
“역시 히어로답게 모든 걸 아는구먼, 하하하.”
이번에도 역시 태범은 교수의 질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답했다.
태범의 담당 교수인 재무 회계 김영석 교수는 태범에게 장난삼아 히어로라 부르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학생들도 태범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에서 공부 잘하는 놈으로 인식이 바뀌며 태범을 부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38%)
-언어 이해력(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