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좀 더 해야겠네. 그래도 800점은 넘어야지?”
“네, 그래야죠.”
아버지는 별 만족스러운 표정은 짓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태범의 어깨를 두들기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토익에 관련해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어디서 들은 이야기로 점수의 높고 낮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점수가 낮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점수를 입 밖으로 안 꺼낼 테니 자연스럽게 높은 점수를 딴 사람의 이야기만 대화 속에서 흐를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듣고 800, 900점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나름 아버지의 칭찬을 기대했던 태범은 아버지의 반응에 아쉬웠다.
“잘해라.”
아버지는 다시 한번 태범의 어깨를 두들기며 한마디를 건넨 채 방에서 나갔다.
순간 태범은 아버지의 한마디와 따뜻한 손길과 더해져 어깨를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아버지가 싫을 때가 많았지만 간혹 이런 식의 툭 던지는 한마디는 태범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방법은 잘못됐지만 분명 아버지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일 테니 말이다. 태범은 아버지의 진실 된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꼭 성공해야겠다.’
태범은 다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는 성공한 삶. 꼭 보여주고 말 것이다. 마법 같은 스캐너도 가지고 있겠다, 꿈을 이루는데 두려울 것이 없었다.
태범은 마음속에 성공에 대한 오기를 가득 품은 채,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겠다며 다짐했다.
* * *
[강태범 님의 소유 능력]
[폰 노이만]
-암기력(31%)
월요일 아침, 오늘의 스캔은 겨우 2%밖에 진행을 시키지 못했다.
스캔의 진행이 날이 갈수록 더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10%씩 팍팍 올랐기에 100%를 금방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던 태범은 아쉬움이 많았다.
태범은 빠르게 100%를 채우고 다른 인물의 능력을 스캔하려던 계획이었다.
어떤 능력을 스캔할까 고민하면서 상상을 즐기곤 했다. 빌게이츠의 능력을 얻어 부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워렌버핏의 투자 능력으로 주식왕이 되고, 펠프스의 수영 능력으로 바다를 누비는 상상까지 무궁무진한 계획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정도 스캔 진행 속도면 늙어 죽어서도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
태범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 미친 수준의 암기력만 해도 태범에게는 감지덕지한 아주 바닥에 머리를 박고 감사의 기도를 해도 모자랄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참 웃겼다.
태범도 잠깐 과거 모습을 생각 못 하고 욕심을 부렸던 자신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 * *
“여보세요?”
“어, 현찬아.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
“뭔데?”
“네가 말한 토익 학원. 거기 어디야?”
태범은 월요일 수업이 모두 마치고 현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익이 생각보다 높은 점수인 780점이 나왔고 더 이상 태범이 외울만한 영어 단어는 남지 않았다. 토익 단어책 한 권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황.
이제 필요한 건 문법적인 문제와 시험에서 필요한 테크닉이었다.
아무리 암기력이 좋다 한들 이해력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학원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저번 현찬이 말했던 학원을 가볼 생각이었다.
“너, 시험 봤다고 했지? 몇 점 나왔냐?”
“나? 780점.”
“오! 괜찮게 나왔네.”
현찬은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했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짧게 문법이나 테크닉 같은 거만 배울 수 없어? 한 달 정도?”
“있지. 700~800점 한 달 집중반이라고 있을걸. 근데 지금부터 다니게? 이제 학교 기말고사 기간인데.”
“뭐, 둘 다 하면 되지.”
“뭐 하긴 나도 회계사 시험이랑 병행하고 있는데…….”
태범은 빠르게 자신의 스펙을 쌓고 싶었다.
스캐너의 능력이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기회가 있을 때 빠르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만 했다.
항상 평범 그 자체로 살아왔던 태범에게는 신이 주신 기회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태범은 학교 시험기간인대도 불구하고 6월 한 달간 현찬이가 추천해준 토익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태범의 학원비를 흔쾌히 주었다. 평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머니의 신뢰를 쌓았고 이제 어머니의 관심은 온통 태범에게 있었다.
* * *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태범은 현찬이 소개시켜준 학원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폰 노이만 능력]
-암기력(31%)
-암산능력(0%)
-수리 이해력(0%)
-언어 이해력(0%)
그전에 오늘 하지 않았던 스캔을 하고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 당연히 평소처럼 암기력을 클릭하려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댔지만 태범은 순간 망설였다.
갑자기 다른 능력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한눈에 봐도 끌리는 다른 능력들은 그냥 무시하고 암기력에만 몰두하자니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어차피 암기력을 클릭해봤자 1%나 2% 오를 게 뻔했다. 하지만 처음 스캔하는 다른 능력들은 아마 10%정도 오를 것이다.
‘오늘만 언어 이해력을 스캔해볼까?’
태범은 언어 이해력 위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대며 고민했다. 어차피 같은 인물의 능력 스캔은 취소 없이 가능했다. 하루 다른 것 스캔한다고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없다.
[언어 이해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언어 이해력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태범은 결국 암기력이 아닌 다른 능력을 선택했다. 역시 첫 스캔은 퍼센트(%)가 시원하게 상승했다.
‘모르겠는데…….’
언어 이해력을 스캔하긴 했지만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다.
물론 언어 이해력 같은 경우는 두뇌의 능력이니 근육이 빵빵 해진다던가 그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능력은 그저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냥 암기력이나 선택할걸.’
별 변화를 못 느낀 태범은 아쉬워하며 학원을 방문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 *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해커드 토익 학원.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건물들의 간판이 요란스럽게 빛을 내뿜고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대부분 불 켜진 간판은 술집과 학원들이었다. 유흥가와 학원가가 한 공간에 공존해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태범은 학원 건물에 들어가 카운터 앞에 섰다. 비슷한 나이대의 귀엽게 생긴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고 태범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저기 학원 등록하러 왔는데요.”
“혹시 수강 반은 알아보고 오신 건가요?”
“제 친구가 여기 다녔었는데 700점대 한 달 집중반이 있다고 들었어요.”
카운터의 여성은 스케줄 표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수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700점 집중반은 내일모레 1일부터 개설되고요. 1달 안에 800점대가 되는 걸 목표로 하는 수업이에요. 기초가 어느 정도 있으셔야 들을 수 있는데 혹시 지금 점수가 어떻게 되시죠?”
“아직 나온 점수는 아닌데 이번에 본 시험 가채점 해보니 780점정도 나온 것 같아요.”
“그러면 어느 정도 기초는 있으시겠네요. 혹시 레벨 테스트 받아보시겠어요?”
“레벨 테스트요?”
카운터의 여성은 태범을 데리고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있었고 50개의 문제를 풀고 대략적으로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수준을 테스트 하는 것이었다.
“START 버튼 누르시고 시작하시면 되요.”
여성은 방에서 나가고 혼자 남은 태범은 모니터에 나타난 [START] 버튼을 누르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토익의 각 파트별로 엄선된 문제들이 화면에 나타났고 듣기부터 시작해 문제를 풀었다.
실제 토익 문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태범에게는 모르는 단어는 없었고 독해 문제는 손쉽게 풀어 나갔다.
문제도 50문제밖에 없었기에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기요. 다 풀었는데요?”
문제를 다 푼 후 태범은 밖으로 나가 카운터의 여성을 불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성의 말에 태범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문이 열리고 카운터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이 여성은 자신을 상담선생 소개했다. 그리곤 바로 내가 푼 문제를 확인하더니 분석에 나섰다.
“토익 몇 점이라고 하셨죠?”
“네? 엊그제 본 시험에서 가채점 해보니까 대략 780점정도 나왔는데요.”
“780점이요? 900점은 나오실 것 같은데요?”
“900점이요?”
상담 선생이 초짜인가 말도 안 되는 점수를 태범에게 들이밀고 있다.
혹시나 선생이 잘못 확인 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네, 만점을 목표로 다녀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