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5화 (5/188)

# 5

탈칵.

스크린의 다음 화면에는 삿대질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타났다. 눈썹을 잔뜩 세운 채 화를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사람들. 태범은 사진과 함께 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에 따라 사는 것이지 타인의 생각이나 견해에 내면을 빼앗기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스티브잡스는 항상 용기를 내며 자신의 진실 된 내면을 따랐습니다.”

“타인이 화를 낸다고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서 절대 기죽고 스스로를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그 한정되고 귀한 시간동안 남의 인생을 살 것인지 스스로의 인생을 살다 죽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이 될 겁니다.”

태범을 팔을 활짝 펼쳐 청중의 몰입을 고조시켰다. 남이 보기엔 오버해서 발표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자신감으로 가득 찬 태범에게는 더 이상 남의 눈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용해 최고의 발표만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탈칵.

ppt의 마지막 장에는  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상 7조의 강태범…….”

탈칵.

ppt의 마지막 장인 줄 알았던 스크린에 강태범이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성하연의 이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게임을 하듯 성하연 이름 세자는 스크린 이곳저곳을 움직이더니 유리가 깨지는 파열음과 비슷한 사운드를 내며 이름이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이였습니다. 아쉽게도 제 조원이 연락을 받지 않는 탓에 발표를 혼자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태범이의 마무리 인사에 옆에 서 있던 성하연의 얼굴은 곧 터질 것 같은 화산마냥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이름이 많은 사람 앞에서 농락을 당하니 수치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하하하.”

순간 강의실은 학생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조용히 태범이의 발표에 몰입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예상치 못한 마무리는 웃음을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발표한 내용과 일맥상통하게 태범은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해낸 것이다.

발표 마지막에 조원 이름을 지워버리는 과감한 행동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간혼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에피소드가 올라오긴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태범이 얻은 자신감에 취해 결국 일을 저질러 버렸다.

짝짝짝.

발표의 만족도는 청중의 박수 소리로 나타났다. 태범이 자리로 돌아오자 강한 박수 소리가 강의실 안을 채웠다.

“자. 7조 학생 잘했죠?”

교수도 만족스러운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7조의 강태범 학생이랬지? 어디서 발표 많이 해본 솜씨네. 지금 2학년?”

“네, 군대 갔다 와서 이번 년도에 복학했습니다.”

“음. 그래? 자신감도 있고 잘했네.”

“감사합니다.”

교수 역시 태범이의 발표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6조가 발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태범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태범은 애써 웃으며 교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혹시 마지막 장면에 관해서 혼을 낼까 내심 걱정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걸 보아 큰일은 아닌가 싶었다.

“야. 뭐냐.”

자리에 앉자 태범의 바로 옆자리에 있는 하연이 두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것 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있다가 이야기 하지?”

괜히 수업 중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태범은 하연에게 속삭였다.

“자. 수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책 피세요.”

교수가 책장을 넘기자 태범은 시선을 책으로 돌리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하연은 책을 굳게 닫아놓은 채 사늘한 시선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의 논리학은 존재론과 인식론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태범은 교수의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하연이에게 무슨 말을 할지 혹은 저 매서운 기운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잠깐 괜한 짓을 한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태범에게는 자신감을 증명하는 행동이었고 통쾌한 복수이기도 했다. 전혀 후회할만한 짓은 아니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하연이는 매서운 눈으로 인상을 찌푸린 채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어딨어? 네가 사람이야? 화나는 게 있으면 개인적으로 말하면 되잖아.”

“뭐? 약속을 먼저 깬 건 너잖아.”

빠른 속도로 입을 조잘거리며 맹렬하게 공격을 하는 하연에 맞서 태범도 전혀 밀릴 기세는 아니었다.

“아니, 사람이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 넌 학생이고 난 일하는 사람이잖아.”

“그럼 연락을 미리 하던가. 발표하는 날에서야 나타났으면서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태범은 일을 핑계로 같은 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끼리 저런 변명을 한다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일을 하는 건 자기 사정일 텐데 말이다.

“정말…….”

하연은 분을 못 이겼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그대로 자리를 벅차며 강의실 밖을 뛰어나갔다.

1년 전 하연이었다면 태범은 조금이나마 미안한 감정을 가졌을 테지만, 지금은 전혀 후회가 없었다.

오히려 하연의 태도가 자업자득의 결과라 생각했다.

* * *

월요일 모든 수업이 마치고 태범은 기분 좋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만에 느끼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인지 모르겠다. 뭔가 특출함이 없었던 태범에게서 오늘의 성공적인 발표는 자신감을 더욱 불어 넣어주었다.

하연이와의 트러블로 좀 찝찝한 면은 있긴 하나 그것만 빼면 오늘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휘~휘~휘.”

태범은 기쁨을 만끽한 채 휘파람을 부르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기분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도보 옆에 자라난 토끼풀 꽃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태범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방은 바닥에 내팽개치고 빠르게 발가락을 이용해 컴퓨터 본체의 전원버튼을 누르며 동시에 손가락으로는 스캐너를 켰다.

오늘의 성공적인 발표는 모두 스캐너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번 발표로 마법 같은 스캐너가 준 능력을 확인한 태범은 다시 한번 스캐너의 힘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무슨 사진으로 하지?’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태범은 생각했다.

분명 사진을 올리니 그에 맞는 능력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원하는 사진에 맞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태범은 자신감, 언변이 아닌 더욱 눈에 띄는 화끈한 능력을 원했다.

물론 자신감과 같은 내면적인 능력도 중요하다는 걸 태범도 알고 있지만 가장 빠르게 눈에 띄는 능력을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었다.

‘폰 노이만!’

머리가 너무 좋은 나머지 화성인 혹은 악마의 두뇌라고 불리던 남자였다.

수학, 물리학, 공학, 경제학, 심리학 등의 많은 학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고 알려진 사람으로 특히 핵무기와 컴퓨터의 기본적 구조를 정립한 업적으로 더욱 유명했다.

태범은 심심풀이로 자주 ‘오늘의 웃음’ 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가벼운 글들을 보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읽은 지상 최강의 천재라고 알려진 폰 노이만에 대한 내용이 떠오른 것이다.

공부를 하는 대학생 신분으로서 천재적 두뇌보다 이끌릴 만한 능력은 없었다.

태범은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검색 사이트 고글(gogle)에 폰 노이만의 이미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미지에는 탈모에 머리가 빠진 모습의 ‘폰 노이만’의 사진이 나타났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아인슈타인과 종이를 보며 문제를 논의하는 모습의 사진도 있었다.

“와. 저 정도 능력이 있다면 나한테 있다면…… 크.”

태범은 잠시 상상을 하며 실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폰 노이만과 같이 엄청난 암기력에 책을 통째로 외워버리고 숫자를 머릿속으로 모두 암산해버리는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회계학과를 다니고 있는 태범에게 있어 이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금상첨화였다.

태범은 들뜬 마음에 스캔할 폰 노이만의 이미지를 인쇄했다.

찌지직.

폰 노이만 사진이 인쇄되고 태범은 바로 인쇄한 사진을 스캐너 유리판 위에 올려놓았다.

[스캔.]

태범은 스캔 버튼을 힘차게 누른 뒤 양손을 모으며 입술에 가져다 댔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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