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무슨 소리야 발표할 건데?”
태범은 인상을 찌푸린 채 대본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하연이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뭐…… 뭐? 발표한다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태범의 태도에 하연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마도 하연은 태범이 어차피 발표를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자신이 준비하지 못한 발표를 정당화시키려 하는 듯 보였다.
“자 봐봐.”
태범은 자신이 준비한 발표 자료를 하연이 책상 위에 올리고 보여주었다. PPT내용과 대본이 적힌 A4용지 위에는 이곳저곳 펜으로 체크한 한 흔적이 있었고 태범이 열심히 발표를 준비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진짜 할 수 있겠어?”
하연은 태범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의심했다. 1년이 넘도록 봐오던 친구였으니 하연은 태범이 발표를 쉽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기죽은 모습이 아닌 기세등등한 태범의 태도에 하연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이제 발표 시작하니까. 거기 학생 조용히 하세요.”
교수는 단상 위를 손으로 치며 떠드는 태범과 하연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 오늘은 6조랑 7조가 발표하는 날이죠? 6조 나오세요.”
교수의 부름에 두 명의 학생이 나와 한 명은 컴퓨터에 USB를 연결해 준비한 PPT를 켜고 다른 한 명은 발표 대본을 바라보며 한 번 더 숙지하고 있었다.
태범은 그런 6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곧 자기가 서야 할 자리라니 긴장이 살짝 몰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발표를 맡게 된 17학번 장한수, 유민석 이라고 합니다.”
6조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17학번이라니 파릇파릇한 신입생답게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저희가 발표할 인물은 다들 아시는 이론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6조의 장한수는 PPT를 가리키며 아인슈타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아이작 뉴턴이 있다면 20세기 과학에는 아인슈타인이 있다고 할 정도로 물리학의 아버지이자 큰 공을 세운 분이십니다.”
“특수상대성 이론, 일반상대성 이론을 비롯해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등을 발표하며 물리학의 새로운 기초를 세웠으며 그 덕에 현대 과학의 많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 대학에 입학했고 그 후 특허국에서 물리학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발표자는 그저 PPT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 발표라기보다는 글을 낭독하는 거에 가까웠다. 스크린에는 아인슈타인의 일생과 업적이 작은 글씨로 나열돼 있는데 그걸 읽고 있자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루한 발표였다.
태범은 다른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저 멍하게 앞을 바라보는 학생부터 몰래 핸드폰을 만지는 학생, 옆 사람과 대화하는 학생, 눈꺼풀 깜빡이며 조는 학생까지 확실히 발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발표 순서인 태범은 긴장감 탓에 발표를 보는 것이지 그냥 청중의 입장이었으면 태범 역시 눈을 깜빡이며 졸 것이 분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자신이 똑똑한 게 아니라 단지 문제를 더 오래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원하는 것에 몰입하며 노력을 한다면 아인슈타인 못지않은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6조의 발표가 끝나자 학생들은 드디어 끝났다 싶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 6조에게 질문 있는 학생은 손들어서 질문하세요.”
지루했던 발표가 끝나자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하지만 썰렁한 강의실 분위기에 누구도 질문을 하려하지 않았다.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며 질문을 할 학생을 찾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교수와의 눈 맞춤을 피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었다.
“학생,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아…… 네? 음…… 그럼 아인슈타인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말인가요?”
지목당한 학생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더니 겨우 생각을 짜내 질문을 건넸다.
“아인슈타인이 재능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가 말하긴 노력의 힘이 더 컸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강제적인 질답이 끝나고 6조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 다음 7조!”
태범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자리에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하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하연은 당당하게 7조의 이름으로 발표대를 향해 나갔다.
하지만 하연은 그냥 병풍에 불과했다. PPT를 켜는 것부터 시작해 발표까지 모두 태범의 몫이었다.
“후…….”
책상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앞에 나오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약 40명이 되는 시선이 모두 태범에게 쏠렸다. 시선의 중압감은 대단했다. 마치 자신을 심장을 꽉 조이듯 입 밖으로 한마디 꺼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안…… 녕하십니까. 7조에 강태범, 성하연입니다. 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태범이 인사를 건넸고 학생들은 무미건조한 박수를 쳐주었다.
얼마만의 발표인가 매번 발표 있는 수업을 피해 다녔기에 태범이 발표를 한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장면이었다.
“제가 발표할 인물은 애플사의 스티브잡스입니다. 평가가 갈리긴 하지만 저는 학생이라면 이분에게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브잡스의 평소 행동과 말을 살펴보며 그에게 본받을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첫마디는 암기하다시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딸칵.
태범은 리모콘으로 PPT를 넘기며 이야기를 했다.
스크린에는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친구 워즈니악과 자기 집 창고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어떠한 설명글도 없이 오직 사진만 있을 뿐이다.
“지금 걸…… 작 제품들을 만들어낸 스티브잡스 역시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음…… 여러분과 크게 다른 게 없었죠.”
처음보단 낫지만 여전히 긴장감에 사로잡힌 태범은 말을 더듬거나 길게 늘어트리며 부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말이 있지 않습니까? 스티브잡스 역시 결국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며 창대한 끝을 이뤄냈죠. 그럼 과연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일까요?”
태범의 긴장감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막상 발표를 시작하니 별거 아니었다.
“스티브잡스가 창대한 끝을 이룰 수 있던 것은 자신을 완벽히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심지어 태범은 손동작을 이용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의도된 손동작은 아니었지만 태범의 마음속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집게손가락을 세우며 강한 제스처를 만들어냈다. 마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제스처와 비슷했다.
“여러분들도 분명 하고 싶은 일, 가고자 하는 길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방 포기하고 그저 사회에 억압되어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곤 하죠.”
딸깍.
태범이 PPT를 다음 장으로 넘기자 스크린에는 애플사의 각종 제품들의 사진이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나은 제품들이었다. 아이팟부터 시작해 아이폰까지 감히 혁명적인 제품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가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평범하게 살았다면 이 혁명적인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만약 스티브잡스가 평범하고 평탄한 길을 선택했다면 우린 아직도 스마트 폰이 아닌 피처 폰을 사용하고 있었을 겁니다.”
태범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발표하는 목소리에 높낮이가 확실했고 학생들은 모두 태범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추진력은 그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이었죠.”
태범은 앞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유치원생과 같은 어린아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중에 대한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어린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여러분이라면 안정을 선택하고 답이 정해진 길을 걷겠습니까? 아니면 도전을 선택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겠습니까?”
태범은 강한 어조에 뚜렷한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건네는 동시에 그들을 사로잡았다.
‘뭐지? 너무 재밌는데?’
태범은 질문을 한 뒤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싫던 발표가 재밌어진 것이다. 자신의 발표를 듣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필 정도로 여유가 넘쳐났고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태범의 옆에 서있는 하연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만해도 무대 공포증으로 발표를 거부하던 태범이 지금은 관중을 사로잡고 있으니 말이다.
“스티브잡스가 말했습니다.”
태범은 미소를 감추고 다시 비장한 표정으로 발표를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