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2화 (2/188)

# 2

[스캔이 실패됐습니다. 종이의 정렬을 확인해주세요.]

“어 뭐야?”

분명 스캔이 되는 소리는 들렸지만 모니터에는 스캔이 실패됐다는 창이 떴다. 아마도 종이를 잘못 올린 듯하다.

태범은 종이를 확인하기 위해 스캐너 뚜껑을 열었다.

“악!”

뚜껑을 열자 엄청난 빛이 스캔 유리에 반사되어 태범이의 눈을 강타했다.

해를 바라보는 정도의 빛이 눈에 들어오자 태범은 반사적으로 손을 올리며 눈을 찌푸렸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스티브잡스 능력]

-자신감(0%)

-언변(0%)

-디자인 예술(0%)

모니터에는 뭔지 모를 창이 나타났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느닷없이 능력이라니 태범은 스캔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태범은 뭔가 싶어 마우스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클릭, 갑자기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언변을 스캔하겠습니다.]

“언변을 스캔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알 수 없는 창이 자꾸 나타났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린 건가? 아니면 오류 난 건가?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20% 진행되었습니다.]

스캔이 진행되는가 싶더니 20%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태범은 컴퓨터가 잘못된 건가 싶어 전원 버튼을 눌러 재부팅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티브잡스의 사진을 스캔 유리위에 정렬한 뒤 [스캔] 버튼을 눌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윙 소리와 함께 스캔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곧이어 모니터에는 스캔 실패를 알리는 창이 나타났다.

[스캔이 실패되었습니다.]

[스캔은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뭔 이런 기계가 다 있지?”

화면에 나타난 창에 태범은 어이가 없었다. 스캔을 하루에 한 번만 할 수 있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알 수 없는 창이 자꾸 나타나자 고장이 났다고 생각한 태범은 스캐너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샘성 전자 서비스 센터입니다.”

“네, 저희 집에 스캐너가 있는데 스캔을 하려 하니까 자꾸 이상한 창이 떠가지고요.”

“제품명이 어떻게 되시죠?”

“BSK-008이요.”

“어떤 문제가 있으신데요?”

“스캔을 하니까 자꾸 이상한 창이 뜨더니 사라지거든요. 스캔이 실패했다고 뜨면서요.”

“혹시 드라이버 재설치 해보셨어요?”

“아니요.”

“보통 스캔이 안 될 시에는 드라이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드라이버 재설치 하셔서 확인해보시고 안 되시면 근처 샘성 전자 A/S센터에 물건을 맡기시면 됩니다.”

“아. 일단 알겠습니다.”

자꾸 귀찮은 일이 생겨났다. 그저 사진 한 장 스캔하려 했을 뿐인데. 태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일모레 있을 발표이기에 스캔 문제는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스티브잡스 사진은 인터넷의 다른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으아.”

태범은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크게 펴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태범이 혼자서 발표 자료를 모두 준비한 것이다.

태범은 어쩌면 이 기회가 신이 준 기회라 생각했다. 연락을 거부한 건 하연이였으니 자신이 자료를 준비한 대가로 하연이에게 발표를 요구하면 됐으니 말이다. 명분이 생겼으니 태범이에게는 발표를 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 * *

“태범아 밥 안 먹니?”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범은 하연이에게 불이 나도록 전화를 걸어댔다. 어제 토요일부터 해서 오늘까지 아마 100번은 넘게 건 듯하다.

주말이라 어디서 미치도록 놀고 있는 건지 하연이에게서 소식은 깜깜무소식 발표가 바로 내일인데 하연이는 천하 태평한 것 같았다.

하연이와 반대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태범은 자존심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아니, 누구는 내일 있을 발표에 걱정하고 있는데 누구는 뭐 하는지 잠수를 타다니 말이다.

“태범아 밥 먹으라니까!”

주방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태범이는 잠깐 움찔하더니 주방 식탁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엄마가 몇 번을 불러야 오니?”

엄마의 호통에 대범은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키킥.”

강태범의 4살 어린 동생 강태인.

동생이라는 놈은 옆에서 실실 웃고 있다. 확 머리를 한 대 칠까 생각도 했지만 엄마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는 바람에 태범을 화를 반찬 삼아 삼키고 있었다.

“형? 롤 접었어?”

“안 접었어. 왜.”

“원래 주말이면 매일 게임만 했잖아. 근데 이번 주는 한 번도 안 한 거 같아서.”

고3이라는 애가 허구한 날 게임이야기만 한다. 그런 동생이 태범에게는 신경이 쓰였지만 동생에게 자신의 과거가 보였기에 훈계할 처지는 아니었다.

“학교 과제 때문에 신경 쓸 게 있어서 그래.”

“형, 원래 공부 안 하잖아?”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을 태범이었지만 발표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이번만큼은 동생의 장난끼를 받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동생이 맞은 지 오래돼서 형의 무서움을 모르나 보다.

짝!

태범이는 손바닥으로 태인이의 이마를 강하게 내리쳤다.

“아! 왜 때려.”

형에게 맞은 태인이는 숟가락을 식탁에 강하게 내려놓더니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나이가 몇인데 싸워?”

태인의 고함과 동시에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그제야 태범은 아차 싶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밥을 먹는 척했다.

“에휴. 도대체 군대를 갔다 온 놈이나, 공부해야 될 고3놈이나 다 똑같네. 똑같아.”

어머니의 꾸중이 점점 커지자 태범과 태인은 싸움을 멈추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한바탕 있고 나서 태범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방으로 들어온 태범은 다시 하연이에게 연락을 취해보지만 감감무소식. 심지어 전화가 꺼져있었다. 이건 분명 고의적으로 연락을 피하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하연은 이번 발표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하연의 무소식에 태범 역시 발표를 포기할까 고민했다.

“포기할까? 말까? 할까?”

포기를 하자니 자존심이 너무 상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사회에 나아가야만 할 텐데 언제까지 두려움에 포기할 수만은 없을 노릇.

혹시 모르는 마음에 태범은 자신이 만든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발표연습을 해보았다.

눈을 감고 앞에 관중들이 있다고 상상을 하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회계학과 14학번 강태범 이라 합니다. 제가 오늘 발표할 인물은 다들 아시는 유명한 전자 기업 애플사의 스티브잡스입니다.”

상상이라 그런가 태범은 생각했던 것보다 능숙히 자신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에 놀랐다.

“저와 여기 앉아있는 학생 여러분들은 스티브잡스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큰 주제는 ‘스스로를 믿는 데에서 나오는 자신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남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남의 눈치를 잘 보는 국가 중 한 곳이죠.”

태범은 아무런 대본이 없는 상황에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내뱉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말이 입에 착착 붙는다.

‘뭐지 이게?’

태범은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얼떨떨해하다가 다시 말을 내뱉었다.

“여러분 남의 인생이 아닌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진실 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스티브잡스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지침이었습니다.”

“크.”

태범은 자기가 뱉은 말에 감탄하고 말았다.

감탄도 잠시 태범은 갑자기 향상된 자신의 언변 능력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고 아까 스캔을 할 때 나타난 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분명 언변을 스캔한다고 그랬지?’

태범은 갑자기 청산유수처럼 말하게 된 게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시 한번 컴퓨터 앞에 앉아 스티브잡스의 사진을 스캔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스캔은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라는 메시지만 뜰뿐이다.

태범은 결국 괜한 망상을 하는 것 같아 의심을 접었다. 그리고 워드를 킨 후 발표에 대한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괜히 즉흥적으로 발표를 하는 것보다 대본을 어느 정도 외워서 말하는 것이 실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 * *

태범은 새벽 일찍부터 눈을 떴다.

평소라면 월요일 첫 수업이 11시에 있었기에 넉넉히 10시쯤까지 늦잠을 자다 부랴부랴 학교를 갔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너무 긴장된 나머지 뜬눈을 지새우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잠깐 눈을 붙였을 때 악몽을 꾸고 말았다.

발표를 하는데 벌벌 떨며 울먹이는 자신의 모습과 그를 지켜보며 비웃는 학생들, 태범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듯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하…… 그냥 가지 말까.”

태범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며 고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이나마 작은 용기가 있었지만 오늘은 자신감이 제로(0) 상태였다.

작은 용기마저 사라진 태범의 마음은 점점 발표를 포기할 것으로 기울여지고 있었다.

그래, 딱 오늘만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

태범은 자기합리화로 포기에 대한 결정에 정점을 찍었다.

자기 자신에게 발표 포기를 선언한 태범은 그대로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지려 하지만 마음속이 저려왔다.

포기를 하니 마음속 자책감과 자괴감 태범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에휴, 겁쟁이 자식. 나 같은 겁쟁이는 죽어야지.’

바닥난 자신감에 태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떠오른 어제의 일. 태범은 이불을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로 앞으로 향했다.

“하루에 한번이랬지…….”

이불 속에서 별의별 생각을 하던 태범은 정말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망상이라고 생각한 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 했다.

“먼저 사진을 넣고…….”

어제 일을 떠올리며 똑같은 방식으로 스티브잡스의 사진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스캔이 실패됐습니다. 종이의 정렬을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또 다시 스캔 실패창이 떴다.

“음…… 여기서 뚜껑을 열었지?”

스캔 뚜껑을 열자 강한 빛이 태범의 시야를 가렸다.

곧이어 모니터에 나타나는 창은 분명 어제와 같은 창이었다.

[스캔 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스티브잡스 능력]

-자신감(0%)

-언변(20%)

-디자인 예술(0%)

태범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감]을 선택했다.

[자신감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5% 진행되었습니다.]

스캔은 15%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타난 또 다른 창.

[강태범님의 소유 능력]

[스티브잡스]

-언변(20%)

-자신감(15%)

모니터에는 강태범 이름 세자가 적혀있었고, 소유한 능력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거 진짜야?”

그저 컴퓨터가 버그나 바이러스에 걸렸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태범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건 ‘진짜‘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짧은 순간에 태범이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걸 느꼈다. 마치 술에 취해 얻은 묘한 자신감과 같았다.

“뭐…… 뭐야.”

여전히 걱정된 마음에 긴장이 되긴 하지만 태범은 달라졌음을 느꼈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감에 가득 차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언변 20%에 자신감 15%?”

태범은 다시 모니터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왜 스캔이 되다 마는 것일까? 그리고 각각 한 번씩 했던 스캔인데 왜 다른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숫자는 능력의 수치를 말하는 것 같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태범이는 입을 굳게 다물며 생각했다.

‘왠지 오늘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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