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55장. Only the beginning
3.
[선배님, 급히 알아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보안 메신저까지 사용하고?]
론벨러 재단을 나온 창수는 곧바로 태국에 있는 김근홍에게 연락했다.
3월 중순은 돼야 소식이 올 거로 생각했는데, 2월 초에 왔다. 그것도 가장 비밀 등급이 높은 보안 메신저를 통한 연락이다.
김근홍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관련된 정보를 모두 모아 주십시오.]
[나 원 참……. 그런 소문은 연례행사처럼 나오는 거잖아. 큰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김근홍의 반응이 시니컬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거라는 소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남북한은 전쟁을 끝내지 않고 휴전한 상태로 71년을 보내고 있다. 248km에 달하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중무장 병력이 오늘도 대치하는 것이 현실. 단위 면적당 병력 배치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한반도다.
김근홍은 창수가 남북 관계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 하나를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정보 소스가 제프리 론벨러 전 상원의원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주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걸 기정사실화했습니다.]
[헐! 뭐라고!? 그 양반이 핵전쟁이 난다고 말했다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그렇습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자금을 아끼지 말고 정보를 모으세요.]
[알았어! 전력을 다해 정보를 모을게!]
김근홍의 자세가 급격히 변했다. 제프리 론벨러가 어떤 사람인지를 창수보다 김근홍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0년간 미국 상원의원직을 유지했고, 상원 정보위원장까지 역임한 제프리 론벨러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싱크탱크와 론벨러 재단을 활용해 최고급 정보를 주무르고 있다.
김근홍은 설령 한국에서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고, 자신이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체 파악에 들어갔다.
* * *
김근홍과 연락을 마친 창수는 곧바로 라스베가스행 비행기를 탄 뒤, 51구역을 거쳐 매도우 시티로 이동했다.
창수가 태국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평행우주를 넘은 이유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정보를 분석할 레이나가 필요해서다.
창수와 김근홍이 긁어모은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할 거지만, 한국인이기에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장착한 인간형 안드로이드라면, 잘못된 결정을 막아 줄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 터.
“대표님, 제가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잘해 낼 거야. 레이나보다 더 적임자가 없어.”
“알겠습니다, 대표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저하는 레이나를 설득한 창수는 매도우 시티 시장 가드너 론벨러를 만나 답장과 펜던트를 전달하고, 외교관 지위를 받았다.
지구 론벨러 일족이 도약할 기회를 잡은 것에 고무된 가드너 론벨러가 창수에게 성대한 만찬회를 열어 주려 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에서 핵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만찬을 즐길 여유가 없다.
창수는 레이나와 산업 안드로이드 10대, 그리고 고급 소재를 마법자루에 갈무리한 뒤, 태국으로 이동했다.
* * *
“창수야!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가능한 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해!”
“그리해야죠. 트레이딩 룸으로 가시죠.”
창수가 김근홍에게 핵전쟁과 관련한 정보를 알아보라고 연락한 것이 28시간 전이다.
김근홍은 하루가 조금 넘은 기간에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11억 달러에 달하는 돈의 힘과 뛰어난 정보력이 있어 가능한 일.
김근홍은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완벽한 미모를 가진 레이나가 창수의 곁에 있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
“어!? 이분도 트레이딩 룸에 같이 들어갈 거야?”
“인사가 늦었군요. 이번에 영입한 레이나 이사입니다. 데이터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단 내려야 하는 상황에 큰 도움이 되어 줄 겁니다.”
“아! 그런 인재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지금까지 트레이딩 룸에 출입한 사람은 창수와 김근홍 두 명뿐이다. 김근홍은 트레이딩 룸 입구에서 돌아가지 않고, 같이 들어가려는 레이나를 이상한 눈으로 봤으나, 창수의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창수가 중요한 국면에서 허튼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지금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조만간 북한이 하와이 인근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아. 미국은 북한의 행위를 미국 본토를 노리는 도발로 여기고, 무력 응징을 준비하고 있어.”
“암담한 일이군요. 그런데 왜 한국에서 핵전쟁에 일어난다는 건가요?”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완충지대로 여기는 국가다. 미국 본토를 직접 노리는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철저히 분쇄한다.
진주만을 기습한 제국주의 일본이 끊임없이 협상을 애걸했음에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고 멸망시킨 것이 좋은 예.
북한이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하와이 인근으로 발사하면, 미국이 보복에 나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핵폭탄이 터지는 곳이 한국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한국 정부가 선제공격을 감행할 거야. 그렇게 되면, 북한이 한국에 핵 공격 할 가능성이 높아.”
“그 이야기, 실현성이 있는 겁니까? 한국 정부가 선제공격한다는 전제부터 잘못된 시나리오입니다.”
김근홍의 설명을 들은 창수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생하면, 한국 국력이 급속히 추락할 것이 뻔하다.
그걸 한국 정부가 모르고 있을까?
“아니야. 선제공격할 확률이 높아.”
“이유가 뭡니까?”
“일본이 북한 김판은과 한국 고위층에 동시 공작을 벌이고 있어.”
“예!? 일본이 수작을 벌인다고요!?”
“일본이 김판은 비밀계좌로 100억 달러를 송금했어. 북한이 하와이 인근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조건이야. 그리고 한국에서 암약하는 친일파에게 20억 달러를 뿌려 선제공격 여론을 조성하고 있어.”
“간악한 일본 놈들이 또 장난질하는 거군요. 하지만 친일파가 돈에 환장했다고 해도, 북한에 무모한 선제공격을 감행하려 할까요?”
“정치적 문제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한국 정치 상황이 여소야대잖아.”
“그렇죠. 야당 의원 수가 압도적으로 많죠.”
“맞아. 그래서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2년 동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어.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이겨야 하는데, 지지율이 30%에 머물러서 지금 상태로는 과반수 확보가 어려워.”
“아무리 그래도 선제공격하면, 남북이 공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보유한 탄도미사일이 3,000발이 넘어, 북한 미사일보다 3배 이상 많은 거지. 그리고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정밀 타격 폭탄도 수천 발을 보유하고 있어. 선제공격하면, 북한 전력을 완파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거야.”
한국은 3축 체계를 구축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조짐이 보일 때 선제타격하는 킬체인,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때 실행하는 대량응징보복이 그것이다.
3축 체계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2019년 용어 사용을 중단했으나, 기본 체계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2년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시 부활했다.
김근홍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 내의 강경파가 3축 체계를 믿고, 선제공격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한국에 떨어지면, 한민족 전체가 회생 불능의 나락에 빠질 수 있습니다.”
“네 말이 맞아. 우리가 가진 미사일 전력이 북한을 압도하지만, 북한이 가진 모든 미사일을 제거한다는 보장이 없어. 지금 가장 위협적인 것이 북한이 개발을 마친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이야. 현재 이걸 제거할 방법이 없어.”
바다 속에서 활동하는 잠수함을 발견하고 사전에 타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잠수함에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수중에서 발사하면, 실질적으로 방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잠수함 탄도미사일이 ‘궁극의 보복 전력’이라 불린다.
북한은 2019년 잠수함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고, 한국은 2021년에 성공했다.
북한은 실험에는 성공했으나,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잠수함이 준비되지 않아, 종이호랑이 전력이라 불렸다.
그러나 2023년 11월, 탄도미사일 6발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건조해 실전에 배치하면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지만, 잠수함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언론과 야당에 알려서 무모한 선제공격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어째서요?”
“언론에 친일파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경고해도 제대로 기사화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야당 국회의원 숫자가 많지만, 정부가 나서서 선제타격하는 걸 막을 순 없어. 추후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이미 전쟁이 발발한 이후라 소용없는 거지.”
“그것참! 황당한 일이로군요!”
창수는 정치 개입을 가능한 한 자제하고 있다.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대리인이 정치를 도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이 나락에 빠질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에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난감한 일은 미국이 선제공격 움직임을 방관하고 있다는 거야. 미국 정계에도 일본 자금이 50억 달러 이상 투입됐어.”
“일본 놈들이 왜 이렇게 설치는 건가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부활한 계기가,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수공장 역할을 한 이후야. IMF 사태에 빠진 일본이 또다시 기사회생할 방법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것 이외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일본 놈들은 상종할 수 없는 악질이군요! 한반도를 침탈한 것도 모자라, 전쟁터로 만들려 하다니요!”
“맞아. 일본 같은 쓰레기 놈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6.25 전쟁이 발발할 당시, 그때 나왔던 일본 총리의 뻔뻔한 언행이 유명하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하늘이 일본을 도운 것이다.’
남북이 전면전에 들어가 수백만 명이 죽고, 국토가 파괴되는 참상을 겪고 있을 때, 한민족이 흘린 피를 양분 삼아 성장한 것이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은 한술 더 떠 병참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을 마치 6.25 전쟁에서 한국을 도운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저열한 태도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증가할 때마다,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비열한 작태를 돕는 것이 한국 내 친일파다.
“선배님, 일본을 2차 IMF로 몰아가면, 선제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영향을 미칠 거야. 지금 정부에서 선제타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3인방이 전부 친일파니까.”
“정확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레이나 이사에게 관련 정보를 모두 주세요.”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을 획책하는 원흉이 일본이다. 일본은 북한 독재자 김판은에게 100억 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먹였고, 한국 친일파와 미국 친일파에 수십억 달러를 살포해, 전쟁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이 내용을 파악했던 제프리 론벨러가 한국에서 핵전쟁이 날 것이라고 경고한 거다.
창수는 핵전쟁을 막을 최선의 방안이 일본을 공략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레이나의 판단을 알아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