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98화 (198/200)

198화 55장. Only the beginning

1.

“나름대로 보안에 신경 썼는데, 시장님께서 많은 것을 아시는군요.”

“사실 애먹었습니다. 은인께서 전투력 못지않게 보안도 아주 철저하더군요. 오백세건강 정면에서 변이체를 막았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작은 실마리도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가드너 론벨러가 시장 자리에 오른 건 1월 26일, 그동안 변이체 웨이브를 막은 진짜 영웅을 찾기 위해 중앙사무국과 보안군 첩보 조직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창수가 정보를 차단하고 애쉬가 교란 작전을 편 탓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임 시장의 고민을 해결해 준 조언자는 1여단장 허슬리였다. 창수가 1대대 관할 지역 중앙에서 변이체를 막은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한 것.

그리고 찾아낸 것이 오백세건강 연구소였다.

“제가 가명을 쓴 것까지 파악하신 걸 보면, 단순히 칭찬하려고 부른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말 돌리지 않고 질문하겠습니다. 지구에서 건너온 분인가요?”

“맞습니다. 지구에서 왔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물음이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창수가 이 질문을 유도한 것일 수 있다.

“매도우 시티로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구에서 이곳은 51구역이라고 불리는 군사기밀 지역입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죠. 저는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찰력이 대단하시군요.”

“합리적인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30년 전에 Earth의 과학기술이 지구보다 200년은 앞선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정확한 측정은 어렵지만, 지금도 어림잡아 200년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200년 앞선 과학기술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건가요?”

“그건 개인적인 비밀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훅 치고 들어오기 있기, 없기?

창수는 가드너 론벨러의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했다. 하지만 골렘을 강화할 목적으로 Earth에 왔다는 걸 털어놓을 수는 없는 일.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답변을 거부했다.

“제가 민감한 질문을 한 것 같군요. 사과드립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시장님과 매도우 시티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그런데 지구에 있는 우리 가문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Earth 과학기술로 경쟁을 벌일 건가요?”

“저와 론벨러 가문은 불편한 관계가 아니고, 사업적으로 경쟁하는 부분도 없습니다. 제가 주로 아시아에 투자하니까요. 미래에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는 충돌이 없는 중립적인 관계입니다.”

신임 시장이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지구에 있는 론벨러 일족의 안위.

창수에게 적대적인 세력은 빅벤과 레드실드다. 론벨러 가문과 악연이 없기에 자신 있는 말투로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음……. 현재 지구에서 우리 가문의 위상은 어떤가요? 혹시… 망한 건가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부호 가문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은 지구로 이동 안 하시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당대 가주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지구를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론벨러 가문은 정보 독점을 위해, 가주 한 명에게만 평행우주를 오갈 수 있는 권한을 준다.

가문 분열을 막는 효과적인 방안이지만, 가문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통행권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통행권 활성화에 필요한 감정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전임 시장 그레고리 론벨러가 서민 거주 지역 주민 50만 명을 죽이려고 계획한 근본 원인에 빈번한 통행권 사용이 자리하고 있다.

“지구에서 론벨러 가문은 뿌리가 튼튼합니다. 다시 30년이 지난다고 해도 가문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덕담 감사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가문의 많은 원로님도 저와 같은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30년간 소통이 안 되니, 서로 안부가 궁금하긴 하겠군요.”

일가친척과 30년간 연락이 안 되면, 누구라도 걱정이 될 거다. 창수는 가드너 론벨러의 우려를 이해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의뢰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지구 론벨러 가문에 서신을 전달하는 건가요?”

“서신과 함께 CD-ROM 20장을 전달해 주십시오.”

“그 안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30년 전 마지막으로 전달한 것보다 80년 앞서는 과학기술을 담을 예정입니다.”

“제가 그걸 복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Earth에서 공개적으로 알려진 내용이니까요. 서신과 CD-ROM을 지구에 있는 부가주님에게 전달하면, 증표와 답신을 줄 겁니다. 그걸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평행우주를 넘어갈 수 없다면, 넘어갈 수 있는 인물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

가드너 론벨러는 매도우 시티를 구한 영웅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창수가 Earth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건은 ‘넘어온 세계가 매도우 시티 통로와 연결된 지구인가?’

아니면 ‘어딘가 모를 통로와 연결된 다른 세상인가?’라는 문제였다.

이제 창수가 지구에서 왔다는 걸 인정한 상황에서, 황금의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다.

“시장님과 론벨러 가문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의뢰를 맡으면, 제가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큽니다.”

서신과 과학기술이 담긴 CD-ROM을 지구 론벨러 일족에 전달하면, 창수가 평행우주를 넘나든다는 것이 지구에서 드러날 수 있다.

물론, 창수가 용모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기에 정체가 들통날 일은 없다. 하지만 부담이 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합당한 대가를 받기 전에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납득하실 만한 보상을 드리려 합니다. 우선 변이체 퇴치에 공헌한 포상금으로 20억 실링을 드리겠습니다.”

“의뢰를 받지 않아도 지급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매도우 시티를 구원한 영웅에게 드리는 정당한 보상입니다. 그리고 의뢰를 맡아 주신다면, 매도우 시티에서 오백세건강의 활동을 보장하겠습니다. 또한, 은인께서 통로를 자유롭게 이용하실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가드너 론벨러는 한화 2조 3,0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창수에게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Earth에서 돈이 궁할 일은 없을 듯하다.

이어서 론벨러 가문의 가주는, 의뢰 보상으로 제법 파격적인 특혜를 제시했다.

“추가로 저와 오백세건강에 외교관 지위를 주십시오.”

“치외법권 지역을 만드신다는 건가요? 그건 좀…….”

“오백세건강은 서민 거주 지역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대지 면적도 2만m²를 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매도우 시티를 위기에서 구해 주신 영웅의 말씀을 믿습니다.”

가드너 론벨러가 제안한 보상만으로도 매도우 시티에서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창수에게 우호적인 가드너 론벨러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시장에 오른다면, 약속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창수는 외교관 지위를 확보해, 활동의 안전성을 강화하려 했다.

신임 시장은 처음 난색을 보였지만, 창수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창수를 믿는 마음이 컸고, 지구 론벨러 일족에 과학기술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2.

2024년 2월 8일 오후 10시, 뉴욕에 있는 론벨러 재단 이사장실에서 80대 노인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80대 나이면 현역에서 은퇴해, 우아한 노년을 보내야 하지만, 지구 론벨러 가문을 이끌고 있는 제프리 론벨러에게 그런 여유는 호사에 불과했다.

정글 같은 재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오늘도 밤잠을 줄여 가며, 세계 곳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야 한다.

과거에는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 아등바등 안 해도 앞서가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편하게 재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 전 갑자기 본가와 연락이 끊긴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옛날이 너무 그립다. 하지만 언제 다시 그때가 올지 알 수 없다.

“안녕하십니까, 제프리 론벨러 이사장님.”

“누… 누구냐!?”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제프리 론벨러는 자신의 집무실에 비서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건네니, 너무 놀라 심장에 충격받을 정도가 됐다.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매도우 시티 본가에서 왔으니까요.”

“Earth에서 온 거요?”

“그렇습니다. 매도우 시티 시장이자, 론벨러 가문의 가주이신 가드너 론벨러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가드너? 고작 40대 나이에 가주가 됐다는 말이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오?”

제프리 론벨러는 본가 인척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으나, 영상 기록을 통해 외모를 파악하고, 가주 승계 순위를 꿰차고 있다.

30년 전 가드너 론벨러는 16세 청소년에 불과했다. 매도우 시티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46세의 나이에 가주가 됐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가주님이 보내신 서신과 CD-ROM입니다. 보시고 판단하십시오.”

- 척!

“아… 알겠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당황하기는 했으나, 노련한 베테랑답게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제프리 론벨러는 창수가 건네준 서신을 재빨리 읽고, CD-ROM에 담긴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호, 어르신. 정정하시군요.’

사냥감을 노려보는 표범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CD-ROM 내용을 살펴보는 80대 노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창수는 앞으로 제프리 론벨러가 최소 10년은 현역으로 활동할 거라 확신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덕분에 우리 론벨러 가문이 되살아날 길이 열렸소!”

“저야 심부름할 뿐입니다. CD-ROM에 담긴 내용이 도움된다니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다마다! 자! 우리 한잔합시다! 150년 숙성한 와인이 있소!”

현재 창수는 전형적인 백인 얼굴로 변신한 상태. 그리고 론벨러 가문 남자들과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일까? 제프리 론벨러는 조금 전의 경계하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창수를 친근하게 대했다.

평소 자손들에게도 내놓지 않는 진귀한 와인을 권유할 정도.

“마음만 받겠습니다. 업무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요.”

“오! 젊은이가 심지가 굳구려! 그렇소! 업무에 집중해야지!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가 답장을 써 줄 테니!”

창수는 제프리 론벨러와 오랜 시간을 보낼 마음이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프리 론벨러는 이런 창수를 업무에 집중하는 건실한 인물로 여겼다.

믿음의 수치가 지속해서 상승하는 상황.

“여기 있소! 답장과 펜던트를 가주에게 전달하면, 임무가 끝날 거요. 젊은이의 성실함을 자세히 적어 놨으니, 도움이 될 거요.”

- 척!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80대 노인답지 않은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보인 제프리 론벨러는 10분 만에 자필 편지를 완성한 뒤, 창수에게 건네줬다.

그 안에 창수를 칭찬한 내용도 섞여 있다고 하니, 창수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창수는 노인의 마음 씀씀이에 진정성이 담긴 걸 알아보고, 감사 인사와 덕담을 남기며, 이사장 집무실을 나오려 했다.

“예의가 바른 젊은이로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 주겠소. 개인적인 선물로 생각하시오.”

“중요한 정보라면…….”

“가주의 편지를 보면, 주로 아시아에 투자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혹시 한국에 투자한 것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하시오.”

“한국 정정이 불안한 건가요?”

“그 정도가 아니오. 조만간 한국에서 핵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소.”

“예!? 핵전쟁이요!?”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적인 내용이다.

만약, 이 정보를 말한 사람이 제프리 론벨러가 아니었다면, 헛소문 퍼트리지 말라고 힐난했을 거다.

하지만 이 노인은 지구 론벨러 가문의 수장일뿐더러, 하원의원, 주지사, 상원의원을 역임한 미국 정계의 거물이기도 하다.

창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제프리 론벨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