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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97화 (197/200)

197화 54장. 무명 영웅의 서사시

8.

창수가 팜 지역에 침투한 B급 변이체 5마리를 처단하자, 숨죽이고 있던 보안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승사자가 사라지니 숨통이 트인 것.

보안군은 4시간에 걸쳐 소탕 작전을 펼치며, 매도우 시티를 공격했던 모든 일반 변이체를 제거했다.

이로써 매도우 시티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변이체 웨이브가 종결됐다.

중앙사무국과 보안군은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를 수습했다. 공식 집계된 민간인 사망자는 125,151명, 보안군 전사자는 3,712명에 달했다.

“예상보다 사망자가 너무 적군. 가드너, 어찌 된 일이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나타나 특수 변이체를 효과적으로 처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보안군도 사력을 다해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 쾅!

“지금 네 자랑 할 때야!?”

“자랑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시장님.”

“헛소리! 영웅 대접 받는 그놈도 네가 준비한 거지!?”

“아닙니다.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입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군! 사령관인 네가 돕지 않으면, 어떻게 특수 변이체를 학살하고 다녀!?”

“저도 그 점이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보안군 사령관의 보고를 받은 시장 그레고리 론벨러가 불같은 성정을 드러냈다.

성벽 방어에 투입한 보안군 4개 여단 2만 명 중, 18.5%에 해당하는 병력을 잃었다. 민간인 사망자도 전체 인구의 8.3%에 달한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에, 군 총책임자를 질타하는 건 언뜻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인명 피해가 많은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적은 것을 탓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창수의 영웅적 업적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마치 큰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취급하면서, 엉뚱하게 사령관을 윽박질렀다.

이것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티켓에 절망 에너지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단 말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저도 론벨러 가문의 일원입니다.”

“아는 놈이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거야!? 지구로 가지 못한 것이 벌써 30년이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매도우 시티를 세운 건 미국 정계와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론벨러 가문이다.

지구에서 석유 왕국을 세워 세계적인 대부호가 된 가문의 비밀이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능력에 있었다.

매도우 시티 시장이자 가문의 수장 그레고리 론벨러가 분노한 것은, 변이체 웨이브에서 예상보다 적은 주민이 사망해 통행권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적게 죽어, 통행권에 절망의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것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거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악랄한 언행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티켓에 절망 에너지를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님이 예상하신 대로, 5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우리 론벨러 가문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가문이 왜 무너져!?”

“경고 없이 팜 지역으로 연결된 문을 닫은 것에 서민 거주 지역 주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플라즈마 폭탄 공급을 제한한 것에 보안군도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피해가 더 커졌다면, 반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콜로라도강 지류 동쪽에 대규모 초원이 형성되고, 변이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보안군 소속 장교 상당수가 알고 있었다.

심각한 위협을 느낀 장교 여러 명이 사령부에 토벌을 건의한 건 당연한 일. 하지만 합당한 작전을 수립하고 토벌을 제안해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변이체 웨이브가 시작됐음에도 강력한 대항 수단인 플라즈마 폭탄을 적게 공급해, 많은 보안군 병력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만약, 창수가 나서지 않았다면, 매도우 시티는 보안군의 무장봉기를 경험해야 했을 거다.

동요하던 보안군을 간신히 다독인 가드너 론벨러가 시장에게 위험한 상황을 사실 그대로 알리며 경고했다.

“그깟 보안군 놈들이 날뛰어 봐야 소용없어! 기동타격대가 모두 제거할 수 있어!”

“보안군과 기동타격대는 별개가 아닙니다. 순환 보직으로 경험과 소속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병사뿐만 아니라 장교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 쾅!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너는 뭐 하고 있었어!? 사령관이라는 놈이 반란의 씨앗을 보고도 모른 척한 거야!?”

“보안군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니, 우리가 시정해야 하는 겁니다!”

매도우 시티 최고 권력자와 군권을 쥔 사령관이 강하게 충돌했다.

그레고리 론벨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행권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 반대로 가드너 론벨러는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네가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사령관 직위에서 해임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

“저를 해임할 권한은 시장님이 아니라, 원로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원로회에 시장님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겠습니다.”

“빌어먹을 놈! 끝까지 나에게 대항하겠다는 거냐!?”

“시장님. 아니, 백부님. 세상일은 순리에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 가문이 매도우 시티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여기에 사는 주민의 생명을 마음대로 다룰 권리는 없는 겁니다.”

“어이구! 인권 운동가 나셨네! 좋아! 원로회에서 네놈의 궤변이 통할지 보자!”

역사가 깊은 가문은 가주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는 시스템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론벨러 가문도 마찬가지. 가주가 일반적인 일을 관장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국면에 원로회가 나선다.

원로회는 은퇴한 론벨러 가문 사람 중에서 현역 시절 국장급 이상 중책을 담당했던 인물로 구성된다.

가주보다 연배가 높은 집안 어른이 대부분이기에, 원로회의 결정을 가주도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며 굳게 믿고 있는 그레고리 론벨러는 원로회가 가드너 론벨러를 축출할 거라고 확신했다.

9.

변이체가 사라진 뒤, 매도우 시티는 놀랍도록 빠른 대응력을 보여 줬다.

변이체가 파괴한 성벽에 장비와 인력을 대거 투입해 2일 만에 복구했고, 부서진 거주지를 대체할 임시 거주지를 4일 만에 완비했다.

또한, 비축한 비상식량을 풀어, 서민 거주 지역 주민이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조치했다. 식량 사정만 보면, 변이체 웨이브 이전보다 지금이 좋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주민들은 새롭게 권좌에 오른 시장이 집권 초기에 선심성 정책을 편다고 여겼다.

창수는 매도우 시티 지도부가 늦게라도 정신을 차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백세건강 업무에 집중했다.

“대표님, 벌써 오신 거예요?”

“마커스 이사님이 바이크 성능을 향상해 빨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창수가 매도우 시티에서 1,200km 떨어진 폐기물 재처리 공장을 하루 만에 왕복하자, 애쉬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인은 바이크 업그레이드. 기존 바이크는 100km/h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재처리 공장으로 가는 데 편도 12시간이 걸리고, 왕복하는 데 꼬박 2일이 걸렸다. 중간에 휴식을 취해야 하기에.

최근 마커스는 재처리 공장에서 가져온 첨단 부품과 에너지셀을 사용해, 바이크 속도를 150km/h까지 올리도록 업그레이드를 마쳤다.

이제 편도로 8시간이면, 재처리 공장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조금 피곤한 것을 견디면, 하루 만에 왕복할 수 있다.

“마커스가 오랜만에 쓸 만한 일을 했군요.”

“마커스 이사님은 항상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애쉬 이사님도 좀 더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호호호. 그런가요? 물 수거 작업에서 말썽만 부려서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아요.”

“마커스 이사님의 천직은 물건을 만들고 수리하는 겁니다. 이제 잘하는 일에 전념하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마커스는 애쉬 앞에서 항상 주눅이 들었다. 과거 생계를 위해 물 수거 작업을 나갈 때마다, 애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쉬도 마커스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창수는 오백세건강 핵심 구성원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바랐다. 조만간 지구로 복귀한 뒤, 혼원구로 이동해 송연희를 만나야 한다. 부재중에 내부 갈등이 발생하면 수습이 어렵다.

“알겠습니다. 생각을 바꿔 보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매물로 내놓은 고급 부품과 에너지셀이 모두 팔렸어요.”

“그래요? 높은 가격을 불렀는데도 잘 팔리는군요.”

애쉬가 창수의 의중을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멋쩍은 애쉬는 급하게 화제를 바꿔, 암시장 판매 실적을 보고했다.

변이체 웨이브 이후, 창수는 돈벌이 방법을 변경했다.

매도우 시티 인근에 서식하는 변이체가 대부분 사라지고, 변이체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자, 너도나도 물 수집에 나서는 상황.

적당히 장비를 갖춘 팀은 콜로라도강 지류에서 물을 조달하고, 중무장한 팀은 아예 콜로라도강 본류에서 물을 대량으로 퍼 올리고 있다.

한때 리터당 물 시세가 30실링이었던 것이 3실링으로 추락했고, 수수료를 제외하고 받는 돈은 2실링이 됐다.

창수는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물장사를 그만두고, 재처리 공장에서 가져온 고급 부품과 에너지셀을 판매하고 있다.

“수요가 아주 높으니까요. 총 판매 금액이 7천만 실링이에요.”

“2~3번 더 다녀오면, 사업 자금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예. 2번만 더 수고하시면, 필요한 설비를 갖추고 1년간 운영하는 데 이상이 없을 거예요.”

7천만 실링은 한국 돈 805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이제까지 벌어들인 자금과 오늘 가져온 수량을 제외하고, 재처리 공장에 2번만 더 다녀오면, 창수가 1년간 자리를 비워도 오백세건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거다.

그리고 고급 부품과 에너지셀은 마진이 매우 높다. 재처리 공장에서 구매한 가격보다 14배 비싸게 팔 수 있다.

변이체 웨이브 전에는 마진이 5배 정도였는데, 최근 매도우 시티 당국에서 집중 매입하는 바람에 암시장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이다.

순수한 사업 측면만 봐도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한꺼번에 물량이 많이 풀리면, 중앙사무국에서 조사를 시작하지 않을까요?”

“분산해서 판매하니 우리를 추적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중앙사무국에서 고급 부품과 에너지셀을 관리 제외 품목으로 지정했어요.”

“그렇다면, 문제없겠군요. 계속해서 수고해 주십시오.”

일이 너무 잘 풀리면,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창수는 고급 부품과 에너지셀 판매를 중앙사무국이 추적할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암시장 판매 전문가 애쉬는 걱정 없다고 말했다.

창수는 애쉬의 말을 믿고 맡겼다.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때 가서 대처하면 될 일이기에.

* * *

2024년 2월 4일 일요일, 창수는 예상하지 못한 인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매도우 시티 신임 시장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것.

시장이 창수를 어떻게 알고 만나자는 것일까?

그리고 장소도 이상하다. 고급 음식점이 위치한 코어 지역이 아니고, 다양한 음식으로 유명한 메이커 지역도 아니다.

중앙사무국 말단 직원도 오기를 꺼리는 빈민가 인근 음식점으로 창수를 초대한 것이다.

‘이거 함정인가?’

창수로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짜 시장을 내세워 창수를 유인한 뒤 기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함정이든 뭐든, 일단 부딪쳐 보자. 그래야 나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으니까.’

음식점에 나올 인물이 진짜 시장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창수는 만반의 대비를 마친 뒤, 허름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가드너 론벨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임 시장은 보안군 사령관이었던 가드너 론벨러. 가문 원로회가 12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 책임을 물어 그레고리 론벨러를 경질하고, 변이체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은 사령관을 시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발터 스톰입니다. 시장님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하하.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매도우 시티를 구하신 영웅을 직접 만나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이름은 가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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