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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96화 (196/200)

196화 54장. 무명 영웅의 서사시

6.

매도우 시티는 모두 1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코어가 1구역, 메이커 지역이 2~5구역, 팜 지역이 6~9구역이다.

서민 거주 지역은 동문과 남문 사이가 10구역, 남문과 서문 사이가 11구역, 서문과 북분 사이가 12구역, 그리고 북문과 동문 사이가 13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매도우 시티 중앙사무국이 방송한 내용은, 서문 인근에 살아남은 주민에게 성벽 인근으로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 빈민가로 가서 다 죽으라는 소리야!?

- 미친놈들! 우리를 내팽개치더니, 이제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 쳐 죽일 놈들! 내가 여기서 살아가면, 반드시 보복할 거다!

변이체를 피해 간신히 목숨을 붙이고 있는 주민에게 빈민가로 이동하라는 방송은, 휘발유에 담뱃불을 던진 것처럼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팜 지역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안전한 중심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위험한 성벽 인근으로 가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

평소 매도우 시티 행정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은 물론이고, 순순히 협조했던 주민도 무책임한 방송이라 여기며 분통을 터트렸다.

[빈민가의 길이 좁아 특수 변이체……. 치지직……. 보안군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빈민가를 따라 10구역과 13구역으로 이동……. 치지직…….]

이어서 중앙사무국이 구체적인 설명에 들어갔다. 하지만 변이체 침입 여파로 방송 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중요한 대목에 잡음이 섞이면서, 발표문 내용이 서문 인근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특수 변이체에게 몰살당한 보안군 놈들이 퍽이나 처리하겠다!?

- 그냥 무시해!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이 헛소리하는 거야!

- 맞아! 우리가 죽어 나가는 걸, 저놈들은 장난으로 여기고 있어!

생존한 주민들은 방송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중앙사무국을 비난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버려진 것에 대한 원망이 깊다는 걸 나타낸 것이리라.

- 아니에요! 방송이 맞아요! 살려면 빈민가로 가야 해요!

- 너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 네트워크에 올라와 있어요! 빈민가에 들어서면, 몸집이 큰 특수 변이체가 따라오지 못한대요!

- 빈민가 길이 복잡하지만, 일반 변이체는 따라올 수 있어!

- 일반 변이체가 따라오면, 보안군이 처리하는 거죠!

고립된 생존자 대부분이 이성을 잃은 상태지만, 그중에도 정신 차린 사람이 있었다.

평소 정보 검색을 생활화하던 캐서린은 애쉬가 업데이트한 네트워크 정보를 바탕으로, 중앙사무국이 방송한 내용을 생존자들에게 정확히 알렸다.

서문 인근 지역이 변이체에게 점령당했으나, 30m 높이에 있는 전술 기동로는 사정이 다르다. 빈민가 천장 인근에 보안군을 배치하는 건 허황한 일이 아니다.

- 어!? 보안군이 처리한다는 것이 일반 변이체였어!?

- 그래요! 방송 상태가 나빠서 잘 못 알아들은 거예요!

-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중앙사무국에 대한 불신의 골이 여전히 깊었으나, 삶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 주고 탈출할 가능성을 제시하자, 방송에 품었던 의구심이 급격히 옅어졌다.

- 가능성이 커요! 빈민가 길을 따라서 동문 쪽으로 가야 해요! 저는 지금 갈 거예요!

- 자… 잠깐만! 생각을 더 해 보자고!

- 저는 결심했어요. 같이 갈지 말지 알아서 결정하세요!

정보 전달을 마친 캐서린은 미련 없이 생존자 무리를 떠나 빈민가로 이동했다. 말로 더 설득해 봐야 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 실행에 옮긴 것.

- 사사삭!

한 명이 조용히 일어나, 50m쯤 멀어진 캐서린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명이 일어나고,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캐서린이 200m 떨어진 빈민가로 진입했을 때, 7명이 빈민가로 이동을 시작한 상태가 됐다.

- 쿠에엑! 쿠에엑!

- 파바박! 타다닥!

빈민가로 진입한 캐서린 일행이 미로처럼 얽힌 길을 따라 동문 쪽으로 이동하자, 변이체들이 추격을 시작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은 캐서린 일행이 중앙사무국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 푸슝! 푸슝!

- 치익! 치익!

- 키에에엑!

하지만 중앙사무국의 방송 내용은 사실이었다. 빈민가 전술 기동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안군이, 캐서린 일행을 공격하려던 일반 변이체를 사살했다.

B급 변이체가 아니라면, 플라즈마 총으로 변이체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빈민가에 펼쳐진 미로는 B급 변이체의 진입을 늦추는 방벽 역할을 한다.

B급 변이체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하나, 벽과 건물을 단번에 부술 수 없다. 10m 전진에 2분 이상 걸린다. 그사이 생존자와 보안군 병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안전하다.

빈민가 미로가 B급 변이체의 시가지 진입을 막진 못했지만, 지금도 높은 전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 타다닥!

- 우르르!

생존자들이 앞다퉈 빈민가로 몰려갔다. 보안군이 지금처럼 엄호해 준다면, 동문까지 이동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이동은 변이체들이 점령한 지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창수와 레이나가 만든 안전 지역, 그리고 애쉬의 정보 업데이트가 수많은 생명을 추가로 구하게 된 것이다.

* * *

- 촥!

- 써걱!

- 화르르!

- 키에에엑!

고립된 생존자들이 빈민가 미로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동안 창수는 돌쇠를 이끌고 변이체를 처단하고 있었다.

서민 거주지 중앙을 유유히 활보하는 돌쇠에게 변이체들이 본능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며 달려들었지만, 일반 변이체는 물론이고 B급 변이체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A급 변이체와 격전을 벌이던 돌쇠뿐만 아니라, 투명망토를 가동한 창수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야 했으니까.

창수와 돌쇠는 변이체를 학살하며, 어느덧 북문 인근에 도달했다.

<레이나, 할 만해?>

<예. 보안군과 연합해 변이체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주신 무기가 예상보다 성능이 뛰어나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창수와 돌쇠 못지않게 레이나 일행의 진격 속도도 빨랐다. 현재 위치가 남문에서 1.5km 떨어진 곳.

레이나는 그 원인을 마법무기에서 찾았다. 변이체에게 스턴을 거는 벽력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도끼, 메이스, 헤머 중급마법 무기를 든 산업 안드로이드 다섯도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변이체를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있는 상황.

레이나 없이도 B급 변이체를 능히 처단할 수 있는 폭력배들이 변이체를 학살하고 있으니, 진격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나는 북문을 지나서 서문 쪽으로 이동할 거야. 레이나도 계속 변이체를 제거하면서 서문으로 이동해.>

<작전 지역을 더 넓히는 건가요?>

<맞아. 이왕 개입했으니, 끝을 봐야지.>

<현명한 판단입니다, 대표님.>

본래 창수는 오백세건강 연구소 인근을 지키는 정도로 개입을 최소화 하려 했다. 과도하게 개입하면, 창수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매도우 시티 주민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흉포한 변이체가 수많은 주민을 살해하는 광경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창수는 전투 범위를 확대했다. 남문과 북문을 장악해 서민 거주 지역 동쪽 전체를 안전 지역으로 만들려 한 것.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작전을 바꿔, 서민 거주 지역 전체에서 변이체를 완전히 제거할 계획이다.

4대대와 6대대가 담당하던 지역을 통과하면서, 수많은 주민의 죽음을 목격한 레이나는 창수의 결정에 적극 찬성했다.

아마도 자신의 외향과 유사한 인간을 죽인 변이체에 분노의 감정이 쌓인 듯하다.

- 써걱!

- 지지직!

- 키에에엑!

레이나는 눈앞에 얼쩡거리는 변이체를 학살하며, 빠르게 서문으로 전진했다.

7.

“레이나, 생각보다 빨리 왔군.”

“팜 지역 방어가 무너져서 서둘렀습니다.”

창수와 레이나가 순조롭게 변이체를 제거한 것과 다르게, 매도우 시티 보안군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다.

서문으로 침입한 B급 변이체를 저지하지 못하고 팜 지역까지 내주게 된 것.

정찰 드론으로 이 과정을 지켜본 레이나는 이동 속도를 더욱 높여, 창수와 비슷한 시간에 서문 인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레이나는 당장에라도 팜 지역으로 들어가 변이체를 처단하려는 적극성을 보였다.

“산업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팜 지역 입구를 지키고 있어. 안에 있는 B급 변이체는 내가 처리할 거니까.”

“대표님, 저도 전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네가 팜 지역으로 들어가면, 우리 행적이 드러날 수 있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도주하는 놈이 있으면 제거해.”

창수도 레이나가 전투를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팜 지역에는 중앙사무국과 보안군이 설치한 감시 장비가 깔려 있다.

창수 힘만으로 충분히 팜 지역에 침투한 B급 변이체를 제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레이나의 정체가 알려질 수 있는 행위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팜 지역에는 민간인이 남아 있지 않아, 서두를 이유도 크지 않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입구를 확실하게 지키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내가 신호를 보내면, 빈민가로 이동해.”

빈민가에 설치된 감시 장비는 소수에 불과하다. 핵심 지역에만 감시 장비가 있기에,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빈민가 위 기동로에서 생존자 탈출을 엄호하던 보안군도 모두 팜 지역으로 이동한 상태.

빈민가라면, 정체가 드러날 위험 없이 마법자루 안으로 레이나와 산업 안드로이드를 갈무리할 수 있다. 돌쇠는 레이나와 만나기 전에 이미 빈민가에 들러 마법자루 안에 집어넣었다.

준비를 마친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채 단독으로 팜 지역에 진입했다.

* * *

팜 지역에 침투한 B급 변이체는 모두 5마리. 육류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장을 하나씩 차지하고, 게걸스럽게 배를 채우고 있었다.

여기서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면, 4m 크기의 몸집이 단기간에 5m 이상으로 자라나, B+급 변이체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창수의 존재가 없을 때 가능한 일.

- 쫙!

- 쑹덩!

- 화르르!

- 키에에엑!

반복된 사냥으로 요령을 익힌 창수가 작열검을 사용해 간단히 B급 변이체 한 마리를 처단했다. 나머지 B급 변이체 4마리를 모두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40여 분.

목표를 달성한 창수는 일반 변이체 처리를 보안군에 맡기고, 팜 지역을 빠져나갔다.

“대표님! 정말 큰일을 하셨어요!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구했어요!”

“애쉬의 말이 맞습니다! 대표님은 매도우 시티의 영웅이십니다!”

오백세건강 연구실로 돌아온 창수를 애쉬와 마커스가 환호로 맞이했다.

창수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강자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으나, 70년 만에 찾아온 대재앙을 막을 거라 기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창수는 강력한 무력과 효과적인 전술을 사용해, 5차까지 이어진 변이체 웨이브를 막아 냈다.

창수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를 영웅이라 칭할 수 있을까?

“애쉬 이사님과 마커스 이사님 그리고 돌쇠, 레이나 이사, 산업 안드로이드들이 힘을 합해서 만든 성과입니다. 영웅이라면, 우리 모두가 영웅이죠.”

“저희가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미흡하죠. 하지만 대표님과 같은 영웅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창수가 겸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애쉬와 마커스의 찬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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