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54장. 무명 영웅의 서사시
4.
B급 이상 변이체는 평소 홀로 움직인다. 특별한 이유나 매개체가 있지 않으면, 좀처럼 두 마리가 함께 이동하지 않는다.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를 죽이고 잡아먹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B급 변이체 두 마리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레이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 이거!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왜 두 마리가 같이 나타나는 건데!?
- 특수 변이체 중에서 형제가 같이 다닌다는 말이 있어.
- 미쳤다! 이건 누가 와도 못 막아!
- 하!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동문에 배치된 병력들이 경악했다. 특별 훈련과 중장비를 완비한 5개 전문 타격팀이 나서야 B급 변이체 한 마리를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B급 변이체 두 마리가 함께 행동하면, 10개 전문 타격팀을 동원해도 막을 수 없다. 둘 사이가 적대적이지 않고, 친숙하기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레이나가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레이나 다음 몬스터들이 노릴 대상이 동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순식간에 동문 전체에 공포가 퍼지기 시작했다.
- 타다닥!
- 우르르!
하지만 레이나와 산업 안드로이드들은 위축되거나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무기를 빼 들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중급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산업 안드로이드 5대는 레이나처럼 전신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력 여섯이 검, 도끼, 메이스, 해머와 같이 평범한 무기를 들고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상대하려는 거다.
- 저 사람들 뭐 하자는 거야!? 저런 허접한 무기로 특수 변이체를 상대한다는 거야!?
- 용기는 대단한데 자살이나 다를 바 없지.
- 죽음을 무릅쓸 용기가 있다면, 우리와 연합해서 싸우는 게 좋잖아!?
- 내 말이 그 말이야. 하지만 결정은 저 사람들이 내린 거야.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레이나 일행이 착용한 전신 아머가 우수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B급 변이체에 돌격하는 용기로 미루어 생각하면, 뛰어난 전투 자원이 분명하다.
동문에 배치된 병력은 레이나 일행이 자신들과 힘을 합하지 않고, 무모한 돌격을 감행한 걸 안타까워했다.
- 쿠에에엑!
- 쿠에에엑!
지능이 높은 B급 변이체 두 마리도 레이나 일행이 달려오자, 어이없다는 듯 연신 괴성을 질러 댔다.
나약한 인간들이 겁 없이 달려든다고 여긴 것.
마침 활동을 많이 해서 배가 출출한 차에, 먹잇감이 저절로 굴러 오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가지게 됐다.
- 획!
- 스슥!
- 휘청!
그러나 레이나와 산업 안드로이드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왼쪽에 위치한 B급 변이체가 리더로 보이는 레이나를 공격했으나, 전투 경험이 풍부한 레이나가 가볍게 중급 몬스터의 주먹을 피했다.
첫 번째 공격부터 상대를 잘못 고른 것.
- 쾅! 팍! 쿵!
- 키에에엑!
가뜩이나 균형 감각이 엉망인 변이체가 헛손질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산업 안드로이드 다섯이 떼거리 공격을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들의 파워는 인간보다 수십 배 강하다. 그리고 보유한 무기는 모두 중급 마법무기다.
A급 변이체와 전투를 벌일 때 사용한 리신이 묻은 공구보다 월등히 강한 무기를 사용하는 거다.
B급 변이체가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한 일.
- 쿠에에엑!
- 획! 획!
- 쾅! 쾅!
- 우당탕! 콰당탕!
형제가 조무래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오른쪽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연이어 강력한 펀치를 먹였다.
분노의 일격에 당한 비루한 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10m 이상 날아갔다. 아마도 내장이 터져 죽었으리라. 설령, 요행히 목숨을 건져도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이제 건방진 나머지 놈들을 공격해 형제가 당한 굴욕을 되갚아 줄 테다.
- 벌떡! 벌떡!
- 타다닥! 투다닥!
하지만 그건 판단 착오였다. 쓰러진 적은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듯 곧바로 일어나, 오른쪽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자, 흉포한 B급 변이체도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베테랑 레이나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 슈악!
- 써걱!
- 지지직!
- 키이이익!
레이나의 벽력검이 오른쪽 B급 변이체의 허벅지를 갈랐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기에,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으나, 강력한 전격 마법이 발동하면서 중급 몬스터의 몸에 스턴을 걸었다.
온몸이 굳어 버린 몬스터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어서 산업 안드로이드 둘이 마법 메이스와 마법 도끼로 몬스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 팍! 팍! 쿵!
- 버둥! 버둥!
- 키이이익!
안드로이드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은 B급 변이체의 생명력이 급속히 감소했다. 산업 안드로이드의 조폭 방식 폭행은 A급 변이체를 죽음의 문턱으로 몬 적이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당하는 몬스터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이지만, 논리적인 측면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형제가 죽음의 위기에 몰렸다는 걸 알아차린 왼쪽 몬스터가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안드로이드 3대의 집요한 공격에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 촥!
- 써걱!
- 찌지직!
- 키이이익!
그리고 레이나가 벽력검을 휘둘러 왼쪽 몬스터를 공격했다. 어느덧 형제와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된 B급 변이체.
스턴에 걸린 중급 몬스터 두 마리를 산업 안드로이드 다섯이 쉬지 않고 두들겨 팼다. 레이나는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벽력검으로 번갈아 공격하며, 스턴을 계속해서 걸어 줬다.
- 헐! 뭐야! 이거!? 특수 변이체가 저렇게 약한 놈이야!?
- 약할 리가 있어? 우리가 모두 덤벼도 한 마리도 상대하지 못하는 몬스터야.
- 하지만, 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잡고 있잖아?
- 장비가 보통이 아니야. 특수 변이체를 상대할 신무기가 분명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레이나 일행이 너무도 수월하게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때려잡는 광경을 목격한 동문 병력이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B급 변이체가 생각 이하로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고, 일부는 레이나 일행이 사용한 무기와 아머가 강력하다고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 아무려면 어때? 저 사람들이 특수 변이체를 제거하면, 우리는 좋은 거야.
- 그렇지. 덕분에 우리가 몬스터 놈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 게 다행이지.
- 맞아. 쉰 소리 그만들 하고, 응원이나 하자고.
의문이 많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서민 거주 지역에 침입한 B급 변이체를 제거하는 일이다.
동문에 배치된 병력 중 베테랑들은 지엽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후임들을 질타하며, 레이나 일행의 전투를 지켜봤다.
- 키이이익!
- 키이이익!
약 15분간 일방적인 공격을 당한 B급 변이체 두 마리가 쌓인 대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절명했다.
스턴을 일으키는 벽력검이 큰 역할을 한 것.
“모두 훌륭했어! 이렇게 하면, B급 변이체는 우리 상대가 아니야!”
예상을 넘는 성과에 고무된 레이나가 산업 안드로이드를 격려했다. 비록 초보적인 인공지능을 탑재했으나, 사고 능력을 갖춘 동료이기에 기쁨을 함께한 것.
- 번쩍! 번쩍!
- 꽈아아!
산업 안드로이드들은 레이나의 격려에 화답하듯 양손을 하늘 높이 올리고, 기계음을 냈다.
어느새 레이나를 중심으로 강력한 힘을 갖춘 타격팀이 형성된 것이다.
“이동하자! 나머지 B급 변이체도 제거하는 거야!”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처단함으로써 동문 지역의 안전을 확보했으나,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레이나가 타격팀을 이끌고 세 번째 B급 변이체 사냥에 나섰다.
5.
<스펜서 대대장. 전황이 어떻게 되고 있나?>
<의용군 6명이 특수 변이체 3마리를 처치하고, 남문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1여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수와 레이나 일행을 ‘의용군’이라 명명했다. 개성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작명이지만, 보안군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변이체와 전투를 벌이기에, 적절한 이름이라 볼 수 있다.
4대대와 6대대 지역을 거쳐, 2대대 관할 지역으로 들어온 B급 변이체는 모두 4마리.
그중의 한 마리는 2대대가 보유한 플라즈마 폭탄을 사용해 제거했고, 나머지 3마리를 레이나 일행이 처단했다.
2대대장 스펜서는 기쁨이 가득한 모습으로 희소식을 여단장 허슬리에게 보고했다.
<의용군 활약이 대단하군!>
<그렇습니다! 의용군이 아니었다면, 우리 대대는 물론이고 동문도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좋아! 4대대와 6대대 잔존 병력을 규합해서 의용군을 서포트하도록!>
<의용군과 합동작전 하라는 말씀인가요?>
<맞아! 의용군이 특수 변이체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해. 우리가 일반 변이체를 제때 정리하면, 시가지로 들어온 변이체를 빨리 소탕할 수 있어!>
레이나 일행의 실력을 파악한 허슬리가 스펜서에게 효과적인 변이체 제거 방안을 지시했다. 강한 변이체를 의용군에게 맡기고, 약한 변이체를 보안군이 상대하는 전술.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동문 방면 방어를 담당하는 장군으로서 의용군에 기대는 것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변이체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심을 세우는 건 승리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남문 방향으로 병력을 집중하면, 북쪽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북문 쪽은 걱정하지 마! 그쪽 의용군이 처치한 특수 변이체가 10마리가 넘으니까!>
<헉! 대단하군요!>
<북쪽은 1대대가 주축이 되어 작전 진행 중이다. 남쪽은 2대대가 담당하도록!>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창수와 돌쇠의 활약으로 북문 인근으로 침입한 변이체 무리가 빠르게 제거되고 있다. 그리고 성벽 외부에 남은 변이체가 소수에 불과한 상황.
2대대가 1개 소대 병력만 남기고 남쪽으로 이동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대대장 스펜서는 허슬리가 명령하는 요지를 알아듣고, 즉시 작전을 실행했다.
* * *
동문을 중심으로 창수와 레이나가 시가지로 침입한 변이체를 정리하며, 안전 지역을 넓혀 갔으나, 서문 쪽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변이체의 공격이 약한 탓에 방심한 것이 컸다. 4차 웨이브부터 변이체가 매도우 시티 성벽 전체를 균등하게 공격하자, 서문 인근 방어에 파탄이 나기 시작한 것.
그리고 B급 변이체가 포함된 5차 웨이브에서 서문 쪽 방어가 완전히 무너졌다.
변이체가 빈민가 미로를 가볍게 뚫고 서문 인근 거주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온 건 물론이고, 팜 지역까지 노리고 있다.
- 키에엑!
- 크아악!
- 우걱! 우걱!
서문 인근을 방어하던 4여단 병력이 와해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의지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 냄새를 맡은 변이체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살육을 일삼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 동문으로 가야 해요! 거기는 침입한 변이체를 모두 제거했대요!
- 동문까지 어떻게 가!? 사방에 변이체들이 깔려 있잖아!?
-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죠!
- 그것참……. 하나 마나 한 소리 하지 마! 머리 아프니까!
창수와 레이나의 활약을 파악한 애쉬가 네트워크에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서민 거주 지역에 남은 사람들이 안전한 동문으로 이동하는 상황.
하지만 서문 인근에서 고립된 채 생존한 사람들에게는 번뇌만 증가하는 정보였다. 서문 인근에 퍼진 변이체를 뚫고 동문 방향으로 이동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중앙사무국에서 긴급 공지 사항을 발표했다.
[11구역과 12구역에 거주하는 시민 여러분! 즉시 빈민가로 이동하십시오! 치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