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54장. 무명 영웅의 서사시
1.
B급 변이체의 목을 자른 창수의 위용이 1대대 병력에 큰 충격을 줬다.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초월한 전투력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일반 변이체를 상대하기 위해 무장한 병력 5명이 필요하다. B급 변이체는 5개 타격팀이 있어야 한다.
1개 타격팀은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매도우 시티에서 만들 수 있는 최상 방어력을 보유한 아머와 최강 무기로 중무장한다.
타격팀 대원 한 명 한 명이 ‘슈퍼솔저’라고 불린다. 창수는 슈퍼솔저 50명이 간신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홀로 해낸 거다.
1대대 병력은 창수가 인간이 아니라 중갑 안드로이드일 가능성마저 생각하게 됐다.
- 촥!
- 화르르!
- 키에에엑!
창수는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변이체를 처단해 나갔다.
거듭된 전투로 변이체를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요령을 익힌 창수가 돌쇠를 능가하는 학살 속도를 보였다.
1대대 관할 지역을 노리던 변이체들이 창수와 돌쇠의 막강한 전투력에 짓눌리며 속절없이 죽어 갔다.
- 푸슝!
- 파지직!
- 키에에엑!
창수와 돌쇠를 피해 외벽 인근에 도착한 소수 변이체는 1대대 병력이 발사한 플라즈마 총에 가볍게 제거됐다.
B급 변이체까지 등장한 5차 변이체 웨이브가 예상보다 쉽게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 * *
하지만 다른 지역 전투 상황은 1대대 관할 지역과 완전히 달랐다.
- 푸슝! 푸슝!
- 츠악! 츠악!
“대대장님! 특수 변이체에게 플라즈마 총이 통하지 않습니다!”
“젠장! 얘기가 다르잖아! 정보부 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던 거야!?”
1대대 바로 위쪽 지역을 담당한 3대대장 커닝은 플라즈마 탄을 무시하며 외벽으로 다가오는 B급 변이체를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사령부에서 교육받은 내용과 완벽히 달랐기 때문이다.
대대장급 교육을 담당한 수석 정보관은 출력을 강화한 플라즈마 탄이 B급 변이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3대대 관할 지역으로 접근하는 B급 변이체에게 강화 플라즈마 탄을 집중적으로 발사했으나, 20발 이상 맞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변이체 숫자가 늘어나면, 변종이 발생할 확률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저놈들이 진화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본거지를 먼저 쳐야 한다고 말한 거야! 염병할 늙다리들이 주저하다 이 꼴이 된 거라고!”
3대대 작전장교 보이드는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원인을 정확히 유추해 냈다.
커닝은 보이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령부 수뇌부를 비난했다.
콜로라도강 지류 동쪽에 초원이 형성되고 변이체가 늘어나자, 커닝을 포함한 대대장 상당수가 토벌에 나서야 한다고 보안군 사령부에 건의했었다.
그러나 사령부는 작전 도중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비축 물자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대대장들의 건의를 묵살했다.
커닝은 플라즈마 탄이 통하지 않는 B급 변이체가 발생한 책임을 사령부 수뇌부가 져야 한다고 여겼다.
“대대장님,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플라즈마 폭탄을 발사해 특수 변이체를 막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교활한 놈이 혼자 움직이고 있다. 지금 플라즈마 폭탄을 사용하는 건 낭비야.”
플라즈마 폭탄은 매우 귀한 전술 무기다. 야전교범에 피해 반경 30m 안에 최소 수십 마리가 있을 때, 사용하라고 명시돼 있다.
B급 변이체는 마치 보안군의 교전 지침을 알고 있는 듯, 일반 변이체와 따로 움직였다. 지금 플라즈마 폭탄을 발사하면, B급 변이체 하나만 타격할 수 있다.
“3차 웨이브 이후에 보급받은 것이 있습니다. 여유분을 지금 사용해야 합니다.”
“아니야. 특수 변이체가 성벽에 도달하면, 다른 변이체도 달라붙을 거야. 그때를 노려야 해.”
“하지만, 단번에 성벽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약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해. 변이체를 몰아 잡는 것이 방어에 훨씬 더 효과적이야.”
커닝의 말은 야전교범을 충실히 따른 것이지만, 동시에 모순이다. 수동적인 성벽 방어전보다 사전 토벌이 낫다고 주장하더니, 막상 효과적으로 공격할 타이밍에서 주저하고 있는 거다.
이래서야 자신이 비난하던 소위 ‘늙다리’들과 다른 게 무엇인가?
보이드는 상관의 말이 아귀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조언을 하는 참모에 불과하다. 지휘관의 결정이 확고하다면, 부당해도 따를 수밖에 없다.
- 쿠에에엑!
- 쾅!
- 와르르!
3대대 관할 지역 외벽에 도달한 B급 변이체가 주먹 한 방으로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일반 변이체와 차원이 다른 폭력성을 보여 준 것.
“대대장님! 성벽이 뚫렸습니다! 지금 플라즈마 폭탄을 사용해야 합니다!”
“빌어먹을! 저놈은 아직도 혼자 움직이고 있어!”
“더 늦으면 발사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알았다! 어서 발사해!”
B급 변이체는 3대대장 커닝이 예상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단독으로 움직이며 성벽을 파괴했다.
변이체를 한 번에 몰아서 잡겠다는 커닝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 상황. 게다가 B급 변이체가 성벽 안으로 파고들어 오면, 직접 타격하기도 어려워진다.
커닝은 보이드의 조언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플라즈마 폭탄 발사를 지시했다.
- 슝!
- 빠앙!
- 츠츠즉!
- 키에에엑!
귀하고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 플라즈마 폭탄이 터지자, 강력한 플라즈마 폭풍이 반경 30m를 덮치면서, B급 변이체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신체 일부가 일시에 날아가 뼈가 드문드문 보일 정도.
- 키에에엑!
- 빠각!
- 팍!
그러나 B급 변이체의 생명력은 놀랄 정도로 질겼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파괴된 성벽에 몸을 바짝 붙인 뒤, 파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지독한 놈이야!”
“성벽이 특수 변이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마리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알았다! 플라즈마 폭탄을 발사해!”
커닝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했다. B급 변이체가 성벽을 뚫기 전에 공격했다면, 저지할 수 있었다.
3대대장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직 성벽을 뚫지 못한 B급 변이체에 플라즈마 폭탄 사용을 승인했다.
- 빠앙!
- 츠츠즉!
- 키에에엑!
- 쿵!
효과가 있었다. 플라즈마 폭탄을 정면으로 맞은 B급 변이체가 치명상을 입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신체 타격은 앞선 B급 변이체와 유사했으나, 성벽을 파고들 수 없기에, 그대로 쓰러져 버둥거렸다.
- 푸슝! 푸슝!
- 치익! 치익!
- 키에에엑!
그리고 벌어진 상처에 3대대 병력이 발사한 플라즈마탄이 쏟아지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B급 변이체의 재생력보다 3대대 병력의 공격력이 앞서기에 발생한 일.
“아쉽군. 첫 번째 놈들 저렇게 처리해야 했는데 말이야.”
“저놈이 시가지로 진입할 때, 마지막 남은 플라즈마 폭탄을 사용하면 됩니다.”
“맞아.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해. 그나저나 플라즈마 폭탄을 비축해 놔서 다행이야.”
“1대대에서 변이체 일부를 끌어간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변이체가 온전하게 들이닥쳤다면, 플라즈마 폭탄을 비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웅들이 우리도 도와준 거군.”
“그렇습니다. 전투가 정리되면, 반드시 공적을 인정하고 사례를 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두 번째 B급 변이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면서, 3대대는 한숨 돌리게 됐다.
3대대가 그나마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은, 창수와 돌쇠가 1대대 관할 지역 중앙에서 변이체를 학살했기 때문이다.
3대대 방면으로 이동할 예정이던 변이체 일부가, 공백을 메우려고 1대대 쪽으로 이동했고, 그 덕분에 플라즈마 폭탄을 남겨 둘 수 있었다.
3대대장 커닝과 작전장교 보이드는 창수와 돌쇠를 영웅이라 부르며, 도움을 높이 평가했다.
* * *
<스펜서 대대장! 전투 상황 보고하도록!>
<특수 변이체 두 마리 모두 제거했습니다. 일반 변이체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충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좋아! 잘했어!>
<여단장님께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동문 바로 아래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2대대도 비교적 수월하게 5차 변이체 웨이브를 막아 냈다.
2대대 역시, 변이체를 일부 끌어간 창수와 돌쇠의 활약에 수혜를 받은 것. 하지만 2대대장 스펜서는 그 공은 여단장 허슬리에게 돌렸다.
허슬리가 2대대에 플라즈마 폭탄을 몰아줘, B급 변이체 두 마리를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분히 상관에 대한 아부가 섞여 있으나, 완전히 틀린 평가는 아니다.
<공치사는 나중에 하고, 전투에 집중해야 해. 지금 플라즈마 폭탄 얼마나 남아 있지?>
<한 발 남아 있습니다.>
<흠……. 쉽지가 않겠군…….>
<여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4대대와 6대대 지역이 뚫리고, 특수 변이체 4마리가 서민 거주 지역으로 침투했다. 2대대에서 지원 나가야 해.>
4대대와 6대대는 2대대 아래쪽을 담당하고 있다. 창수와 돌쇠의 활약에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고, 3차 변이체 웨이브까지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 보급품 지원에서 빠졌던 곳이다.
이 지역에 위험이 닥치기 시작한 건, 4차 변이체 공격 때였다. 변이체들이 창수와 돌쇠에 집중하는 전술을 버리고, 성벽 전체에 균등하게 공격하면서 수렁에 빠진 거다.
보유한 플라즈마 폭탄을 전부 사용해 4차 변이체 공격을 막아 낸 4대대와 6대대는, 5차 변이체 웨이브에 등장한 B급 변이체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대로 성벽에 구멍이 뚫리면서 변이체들이 서민 거주 지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
허슬리는 2대대에 플라즈마 폭탄이 다수 남아 있기를 기대했으나, 하나뿐이었다.
<1개 중대를 차출해 4대대와 6대대를 지원하겠습니다. 플라즈마 폭탄으로 우선 한 마리를 제거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지금은 그 방법이 최선이지. 그리고 성벽의 변이체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전 병력을 시가지에 투입하도록.>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시가전에 돌입하는 것이 1차 저지선의 붕괴를 의미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스펜서는 보유한 플라즈마 폭탄으로 B급 변이체 한 마리를 처치하고, 지형을 이용해, 나머지 3마리를 상대하려 했다.
최선의 방안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에서 차선책은 된다.
1여단장 허슬리는 스펜서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분전을 독려했다.
* * *
외벽에서 안으로 100m까지의 구간은 벽과 건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변이체 침입을 대비해 일부러 미로처럼 만든 거다.
- 푸슝! 푸슝!
- 파지직! 치지직!
- 키에에엑!
서민 거주 지역 전체는 30m 높이의 건물이 기둥처럼 서 있고, 그 위를 천장이 덮고 있다. 비행 변이체의 공격을 막기 위한 자구책.
성벽에서 철수한 4대대 병력은 30m 높이에 만들어진 전술 기동로를 통해 공격 지점을 잡은 뒤, 미로에 갇혀 버둥거리는 변이체들을 공격했다.
시가지 안으로 침투하기도 어렵고, 후퇴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변이체들이 4대대 병력이 발사한 플라즈마 총에 속절없이 죽어 갔다.
일종의 ‘킬 존’이 만들어진 셈이다.
- 미련한 변이체 놈들아!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다!
- 맞아! 우리 매도우 시티를 넘본 놈은 단 한 마리도 살아 돌아갈 수 없어!
- 좋아! 계속해서 이렇게 처단하는 거야!
변이체 침공을 대비해 시가전을 준비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 이대로 킬 존에서 변이체를 제거하면, 지긋지긋한 변이체 웨이브도 끝이 날 거다.
성벽을 지키지 못해 사기가 떨어졌던 4대대 병력이, 눈에 보이는 승리를 발판 삼아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변이체가 그렇게 만만한 존재는 아니다.
- 쿠에에엑!
- 쿵!
- 와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