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53장. 변이체 웨이브
5.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휘두른 팔에 변이체들이 나가떨어졌다. 머리에 주먹을 맞은 변이체는 머리통이 터져 즉사했고, 가슴에 주먹을 맞은 변이체는 구멍이 뚫린 채 비명 지르면서 죽어 갔다.
- 획! 획!
- 쾅! 쾅!
- 키에에엑!
대량 학살. 변이체의 집중 공격으로 버티지 못할 거라 예상했던 1대대 관할 지역 중앙에서, 역으로 변이체들이 도살당하고 있다.
변이체를 공격하는 괴물체는 지치지도 않는지, 연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분노한 변이체들이 적을 둘러싸고 집단 공격을 펼쳤지만,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공격력 못지않게 괴물체의 방어력도 뛰어나다.
<디킨슨 대대장,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중갑을 착용한 안드로이드가 변이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단장님께서 투입한 비밀 병기 아니었나요?>
<무슨 소리야!? 여단에는 비밀 병기가 없어!>
1대대로 변이체들이 몰려간다는 보고를 받은 1여단장 허슬리는 보안군 사령부에 예비 병력을 요청했다. 1대대 병력으로 버티지 못할 거라 판단한 것.
사령부는 동문뿐만 아니라 북문과 남문도 공격받는 상황이기에, 1여단에 병력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어쩔 수 없이 허슬리는 1대대 병력을 성벽에서 빼고, 시가전에 돌입하라고 지시하려 했다.
그런데 1대대 관할 지역 성벽 밖에서 무언가가 변이체를 학살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여단장으로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
그리고 1대대장의 황당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대대장 디킨슨은 여단에서 비밀 병기를 투입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여단은 중갑을 착용한 안드로이드를 제작하거나 배속받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누가 파견한 겁니까? 제가 비밀 병기를 동원할 리 없지 않습니까?>
<흠……. 하긴 그렇군. 알았다. 1대대는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 비밀 병기에 대한 것은 내가 알아볼 거니까.>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디킨슨의 말이 옳다. 여단장도 엄두가 나지 않은 비밀 병기를 대대장이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허슬리는 정보 부족으로 마음이 불편하지만,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비밀 병기를 누가 보내면 어떠랴? 변이체만 제거한다면, 누가 보내든 쌍수를 들고 환영이다.
- 사사삭!
- 촥!
- 화르르!
- 키에에엑!
1대대를 돕는 건 중갑 안드로이드만이 아니었다. 스텔스 모드에 들어간 누군가가 성벽으로 다가오는 변이체를 처단했다.
특이한 것은 변이체의 몸이 일격에 갈라지면서, 불꽃이 타올랐다는 점이다.
- 저게 뭐지?
- 사령부에서 파견한 비밀 병기라는 말이 있어.
- 아니. 안드로이드 말고, 지금 스텔스 모드로 변이체 썰고 있는 사람 말이야.
- 사령부 직속 특작부대원 아닐까?
- 글쎄? 우리 매도우 시티에 저런 능력자가 있을까?
성벽에 배치된 1대대 병력은 자기 눈앞에 펼쳐진 일방적인 학살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다.
1차 변이체 공격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면, 지금 보이는 광경이 3D 영상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 일단 지켜보자. 우리를 위해 싸우는데, 굳이 정체를 알아야 할 필요 없잖아.
- 그건 그렇지. 저 친구들이 멈출 때까지, 휴식이라고 생각하자.
- 맞아. 지금 서문만 빼고 난리라고 하잖아.
매도우 시티를 둘러싼 성벽 대부분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자신들은 한가롭게 전투를 구경할 여유를 가지게 됐다.
어찌 됐든, 이 상황을 지켜보며, 체력을 보충하면 될 일이다.
* * *
변이체를 처단하고 있는 건, 창수와 돌쇠였다.
폐기물 재처리 공장으로 이동하던 창수는 정찰 드론이 변이체 웨이브를 알리자, 급히 방향을 바꿔 매도우 시티로 돌아왔다.
300km 떨어진 거리이기에 1차 공격을 막지 못했으나, 2차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해, 변이체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창수가 지키려는 것은 오백세건강 연구실. 웬만하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는데, 2차 공격에 나선 변이체 무리가 노리는 곳이 연구실이 위치한 성벽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거다.
‘아놔! 저놈들! 성벽 위에서 늘어지고 자빠졌네! 여기서 그냥 돌쇠를 빼 버릴까?’
매도우 시티 성벽의 높이는 30m, 그리고 그 위는 천장으로 덮여 있다. 비행 변이체의 공격을 막기 위한 조치.
1대대 병력은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서 다가오는 변이체에게 플라즈마 총과 플라즈마 폭탄을 발사하며, 1차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창수와 돌쇠가 변이체를 처단한 덕분에 총 한 방 안 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창수 입장에서 다시는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대상. 그렇다고 여기서 돌쇠와 자신이 물러나면, 오백세건강 연구소가 위험해진다.
‘일단 가볍게 경고를 날리자.’
- 쿠에에!
- 쾅!
- 푸석!
창수가 택한 대응은 자신이 행하던 공격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현재 변이체 주력을 돌쇠가 막고 있고, 돌쇠를 지나쳐 오는 변이체를 창수가 처단하고 있다.
1차 웨이브보다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창수가 공격을 멈추자 적지 않은 변이체들이 성벽에 도달한 뒤, 구멍을 내려고 시도했다.
- 푸슝! 푸슝!
- 키에에엑!
성벽이 공격받자, 그제야 정신 차린 1대대 병력이 변이체에게 플라즈마 총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대대장 디킨슨이 불호령을 내린 건 당연한 일.
‘이제야, 자기 역할을 하는군. 다른 사람이 도와줘도 자기 할 일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변이체가 날뛰는 곳에서 한눈파는 게 말이 돼?’
창수는 1대대 병력의 나태함을 비난하며, 대응 방법을 바꿨다. 돌쇠를 스쳐 지나가는 변이체를 공격하는 대신, 돌쇠 인근에서 변이체를 제거하는 방식.
- 촥!
- 화르르!
- 키에에엑!
돌쇠 옆 50m 부근에 또 다른 변이체 학살 장소가 생겼다.
6.
<스펜서 대대장, 성벽에 난 구멍은 어떻게 됐나?>
<1개 소대를 파견해 긴급 복구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좋아. 플라즈마 폭탄 재고는 어떤가?>
<2차 공격을 막는 데 한 발만 사용했습니다. 재고는 충분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계속 그렇게 하면, 우리의 승리야! 3차 공격도 잘 막아 내자!>
창수와 돌쇠의 눈부신 활약 여파로, 2대대는 변이체 2차 웨이브를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 중에 여유가 생기자, 소대 하나를 빼내 성벽에 난 구멍을 메우고 있다.
여단장 허슬리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전황이 양호한 것에 고무된 듯, 연신 ‘좋아’를 연발했다.
<그런데 여단장님, 1대대를 돕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령부에 문의했지만, 거기서도 모른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전투가 치열하니, 정보 전달이 느린 것 같아.>
<우리가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변이체가 기만술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변이체는 우리 쪽 성벽에 구멍을 내고, 플라즈마 폭탄 소모량을 늘린 뒤에, 1대대 쪽으로 밀어닥쳤습니다. 어떤 술수를 쓸지 모릅니다.>
<어허! 이 사람! 그건 우연이야! 괜히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3차 공격에 집중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과유불급. 무슨 일이든 과도하게 몰두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스펜서가 지휘관으로서 정보를 중요시하고, 상황 판단에 힘쓰는 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해, 실체 없는 망상을 만들어 낸다면, 2대대뿐만 아니라 자칫 1여단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
허슬리는 그 점을 우려했다.
상관의 질책을 받은 스펜서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다.
* * *
3차 공격은 2차 공격과 유사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창수와 돌쇠에게 당한 변이체들이 복수하는 심정으로 달려드는 듯했다. 그리고 결과는 2차 공격과 마찬가지.
4차 공격에 나선 변이체들은 작전을 바꿔, 매도우 시티를 둘러싼 성벽 전체를 균등하게 공격했다.
창수와 돌쇠가 버티고 있는 1대대 관할 지역은 여전히 평온했고, 그 여파로 동문을 관할하는 1여단의 피해가 적았다. 그러나 서문 쪽 성벽이 여러 곳 파괴당했다.
변이체의 공격 강도가 갑자기 올라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
- 타다닥!
- 우르르!
‘B급 변이체까지 몰려오는군. 이번이 마지막인가?’
그리고 이어진 5차 공격에서 신장 4m에 달하는 B급 변이체가 등장했다. 55마리. 창수가 파악한 B급 변이체의 숫자가 59마리라는 걸 고려하면,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쿠워워워!
- 키리리릭!
창수와 돌쇠가 지키는 방향으로 다가온 B급 변이체는 모두 2마리. 몸집이 큰 몬스터는, 신장 2.2m에 불과한 돌쇠가 괴성을 지르자,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징그러운 소리를 냈다.
아마도 ‘너 정도는 단번에 파괴할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 타다닥!
- 휘릭!
- 쾅!
- 키에에엑!
그러나 한 대 쳐 맞으면 현실을 알게 된다. 돌쇠는 광폭화 상태에 들어간 A급 변이체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강자다. B급 변이체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다.
돌쇠가 빠르게 달려가 B급 변이체의 복부에 강력한 일격을 날리자, 충격을 이기지 못한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 휙!
- 쾅!
- 푸석!
승기를 잡은 돌쇠는 B급 변이체가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왼쪽 주먹을 날려 단번에 몬스터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 저 안드로이드 도대체 뭐지!?
- 그러게 말이야! 특수 변이체를 단 두 방에 처치했어!
- 해양도시에서 만든 걸까?
- 그럴 가능성이 높아. 우리 기술로는 저런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못해.
B급 변이체는 매도우 시티에서 죽음의 사신으로 통한다. 최소 5개 전문 타격팀을 동원해야 상대할 수 있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갑 안드로이드가 주먹질 두 방으로 B급 변이체를 처단한 것이다.
성벽 위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1대대 병력은 매도우 시티 능력으로는 돌쇠를 만들 수 없다고 확신했다.
만약, 매도우 시티에 이처럼 강력한 전투 병기를 만들 능력이 있다면, 일찌감치 주위에 떠도는 변이체를 청소했을 터.
변이체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로 매도우 시티가 돌쇠를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 촥! 촥!
- 써걱! 쑹덩!
- 쿵!
돌쇠와 다르게 투명망토를 가동 중인 창수는 B급 변이체에 은밀히 접근했다. 그리고 작열검을 휘둘러 B급 변이체의 양발 아킬레스건을 잘라 버렸다.
가뜩이나 균형 감각이 형편없는 변이체가 아킬레스건이 파괴된 상황에서 버티는 건 매우 어려운 일.
B급 변이체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 촥!
- 써걱!
- 화르륵!
- 키에에엑!
땅바닥에서 버둥거리는 B급 변이체의 목을 작열검으로 내려쳤다. 1/3쯤 잘린 목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몬스터가 견디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너무 구슬퍼 순간 마음이 약해졌으나, 이내 다시 작열검을 내리쳤다. B급 변이체를 살려 둘 경우,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인명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촥!
- 쑹덩!
- 툭!
독한 마음을 먹고 내려친 3번째 칼질에 B급 변이체의 목이 완전히 잘려 나갔다.
- 헐! 뭐야!?
- 사람 맞아!? 어떻게 특수 변이체를 저렇게 간단히 죽이지!?
- 그러게 말이야. 안드로이드가 스텔스 장치를 사용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