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52장.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꿈꾸는가?
3.
황당해서 어이가 가출할 정도다. 조용히 폐기물 재처리에 집중하며, 견실한 수입을 올리던 폐기물 재처리 공장 인근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 블리츠 전투단이다.
무력만 뒷받침된다면, 당장 쫓아 버리고 싶지만, 공장 경비대 병력으로 트리플건을 보유한 전투단을 축출하는 건 비현실적인 일.
어쩔 수 없이 잠시 머무르는 걸 허용했는데, 재앙과 같은 A급 변이체를 남겨 놓고 자기들만 도주한단다.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목구멍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당장 통신 연결해! 내가 직접 따져야겠다!”
“통보만 하고, 우리 연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 쾅!
“개쓰레기 같은 놈들! 당국에 고발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
블리츠 전투단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조차 안 되고 있다.
재처리 공장을 총괄하는 마테이스는 불청객의 무책임한 행각에 진심으로 분노했다.
블리츠 전투단이 이대로 도망가면, A급 변이체가 인근 생명체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막 지형에서 제대로 된 생명체 거주지는 재처리 공장뿐이다.
도주하더라도 공장 관계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마테이스는 블리츠 전투단의 황당한 짓거리를 해상도시 사법 당국에 고발하리라 다짐했다.
“고발도 생존한 이후에 가능합니다. 탈출을 서둘러야 합니다.”
“빌어먹을! 최소한 한 명은 남겨야 해! 누구를 남긴다는 거야!?”
재처리 공장에 산업 안드로이드 500대와 전투 안드로이드 50대가 있다. 인간 직원은 40명뿐이다.
8명이 탑승하는 플라잉카가 12대 있기에, 직원은 물론이고 귀중한 자산인 전투 안드로이드도 모두 대피할 수 있다.
문제는 비상 대피 하더라도 공장 규정상, 설비와 안드로이드를 관리하는 인원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탈출하지 않으면, 죽음이 뻔한 상황에서 누가 남을 것인가? 제비뽑기라도 해야 할까?
“야닉을 남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야닉? 그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놈이 우리를 위해 희생할 거라 보는 거야?”
“희생할 리가 없죠. 하지만 지위를 주면 외면하지 못할 겁니다. 야닉의 평생소원이 공장장이 되는 거니까요.”
“커험! 쓰레기 같은 놈이 야무진 꿈을 꾸고 자빠졌구만! 안 돼, 내 지위를 그런 놈에게 넘겨줄 수 없어!”
“정식 지위가 아니라, 임시 공장장 지위를 주면 됩니다. 어차피 죽을 몸이니, 나중에 질척거리지도 못할 겁니다.”
“흠……. 알았다. 일단 안전하게 탈출하는 게 우선이지.”
야닉은 올해 나이 49세로, 평직원 중에서 가장 선임이다. 그러나 어수룩하고 소극적인 업무 처리로 동료로부터 외면당하며, 짐짝 취급받고 있다.
재처리 공장에서 평직원의 정년은 50세. 승진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야닉은 내년에 퇴사해야 한다.
야닉의 실력으로 여기보다 더 좋은 직장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 더구나 공장장은 꿈에서나 얻을 수 있는 영광이다.
부공장장은 야닉의 처지를 파악한 뒤, 독이 든 성배를 넘기려 했다.
공장장 마테이스는 자신의 지위를 야닉에게 넘기는 것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야비한 술수에 동의했다.
블리츠 전투단에 당한 걸 야닉에게 떠넘긴 셈. 따지고 보면 마테이스와 아인돌프 사이에 도덕적 우열은 없다.
* * *
- 슈욱!
- 슈우웅!
야닉은 임시 공장장 직위를 받아들였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공장장 마테이스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야닉을 제외한 직원 전부와 전투 안드로이드 50대 모두 플라잉카 12대에 타고 도주했다.
커다란 공장에 홀로 남은 야닉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모두 조준 잘하고, 발사해!”
블리츠 전투단이 예고한 시간에 철수하자, 공격 목표를 잃은 A급 변이체가 재처리 공장으로 다가왔다.
야닉은 공장 외곽에 설치한 레이저포에 산업 안드로이드를 배치했다. 10MJ급 레이저포 5대로 접근을 막으려 한 것.
- 지잉! 지잉! 지잉!
- 휙! 획! 휙!
“조준 좀 잘해 봐! 맞히지도 못하면 어떻게 해?”
별명이 ‘깡통’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 안드로이드는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체와 실용적 외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한 외양을 가진 전투 안드로이드와 완전히 다른 모습.
그리고 인공지능 성능도 큰 차이가 난다. 산업용의 생산 단가가 전투용의 1/20에 불과하다는 걸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더구나 레이저포를 사용해 본 경험이 전혀 없기에, 사격 솜씨도 형편없었다. 5발 중 하나가 맞은 정도.
5발을 동시에 타격해도 A급 변이체의 접근을 막기 어려운 판에 계속해서 조준이 빗나가니, 야닉의 속이 검게 타들어 갔다.
- 쾅! 쾅!
- 지잉! 지이익!
재처리 공장에 도착한 A급 변이체가 에너지 실드에 주먹질을 시작했다.
공장 내부에 자체 핵융합 발전기가 있기에, 웬만한 공격으로 에너지 실드에 타격을 주기 어렵다.
하지만 보스급 몬스터의 파괴력은 차원이 달랐다. 연이어 주먹 10방을 맞자, 에너지 실드가 과부하에 걸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시바……. 나 죽게 생겼어! 어떻게 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감언이설에 넘어가 임시 공장장직을 덥석 문 것이 호구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야닉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머리를 굴리며 생존할 방법을 찾았다.
“모든 안드로이드, 연장 들어! 나가서 A급 변이체와 싸우는 거다!”
- 타다닥!
- 우르르!
야닉은 500대에 달하는 산업 안드로이드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탈출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비록 작업용으로 특화된 안드로이드지만, 인간과 비교해 수십 배 이상의 파워를 가지고 있고,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체는 튼튼한 내구력으로 유명하다.
전투 안드로이드와 비교해 고장 날 확률이 2%에 불과할 정도로 단단한 몸체를 가지고 있다.
야닉은 산업 안드로이드들이 A급 변이체와 싸우는 동안, 비상 탈출 규정을 활용해 공장을 벗어날 계획이다.
공장을 감싸고 있는 에너지 실드가 사라지고, 외벽이 무너지면, 탈출해도 무방하다는 규정을 이용하려는 것.
- 쾅! 쾅! 쾅!
- 팍! 퍽! 팍!
전투 안드로이드가 사용했던 플라즈마 총과 플라즈마 검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소량에 불과해 500대에 달하는 산업 안드로이드 중 일부만 무장할 수 있다.
설령, 무기를 쥐여 준다고 해도, 사용해 본 경험이 없기에 효과도 크지 않을 거다.
야닉은 차라리 익숙한 공구가 산업 안드로이드의 무기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먹혀들었고,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 키에에엑!
작업 공구는 해상도시 과학기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합금 중 5위에 랭크될 정도로 강도가 높다. 게다가 피마자를 통째로 짜낸 기름을 관리용으로 사용하기에 맹독성 물질 리신이 상당량 묻어 있다.
다시 말하면, 독성을 가진 강력한 둔기가 A급 변이체를 둘러싸며 두드려 패고 있는 거다.
A급 변이체의 방어력이 높은 것은 체내 마나로 물리공격을 막아 내기 때문이다. 독성 공격이 마나 방어를 약화하고, 공구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니, 저절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 휘익! 휘익!
- 쾅! 쾅!
고통에 분노한 A급 몬스터가 양팔을 휘두르며, 자신을 공격하는 산업 안드로이드를 응징했다. 전투 안드로이드를 원샷원킬한 실력을 과시할 요량.
- 우당탕! 쿠당탕!
- 벌떡!
- 타다닥!
하지만 단단한 몸에 단순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산업 안드로이드를 단번에 파괴할 수 없었다.
30m 이상 날아갔던 안드로이드가 곧바로 몸을 추스르고, A급 변이체를 향해 달려갔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리신이 잔뜩 묻은 둔기에 당한 데미지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하긴 숫자에는 못 당하지.”
탈출을 준비하던 야닉의 생각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방패막이로 동원한 산업 안드로이드가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는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A급 변이체의 공격이 여전히 무섭지만, 산업 안드로이드의 단단한 몸체를 부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산업 안드로이드의 집단 연장질에 A급 변이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서 도주하면, 전황 파악을 못 하는 멍청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야닉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산업 안드로이드의 활약을 지켜보기로 했다.
* * *
- 풀썩!
치열한 전투가 한 시간가량 진행된 뒤, 근근이 버티던 보스급 몬스터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변이체라고 하지만 생명체이기에, 누적된 대미지를 버티지 못한 것.
반면, 산업 안드로이드는 한 시간 정도의 전투로는 지칠 일이 전혀 없다.
- 쾅! 쾅! 쾅!
- 팍! 팍! 팍!
쓰러진 적에게 자비는 없다. 연장을 든 안드로이드들이 A급 변이체를 둘러싼 상태에서 개떼 공격을 이어 갔다.
“좋아! 잘하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저놈을 잡는 거야!”
평생 찾아볼 수 없었던 행운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다. 비록 임시라는 꼬리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공장장의 직위를 가지게 됐다.
게다가 해상도시 역사상 단 두 마리만 사냥했던 A급 몬스터를 흔해 빠진 산업 안드로이드로 때려잡고 있다.
해상도시에서 영웅이 되는 건 물론이고, 역사에 길이 남는 위인 반열에 오를 거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환희를 느낀 야낙은, 공장장 마테이스가 아끼던 고급 술을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며, 산업 안드로이드를 응원했다.
그러나 이건 A급 변이체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가 만든 착각이었다.
- 번쩍!
- 쿠오오오!
- 파파직!
A급 변이체의 생명력이 바닥을 보인 순간, 눈에서 붉은 안광이 폭사하더니, 괴성과 함께 몸이 부풀어 올랐다.
보스급 몬스터에게 종종 나타나는 2페이즈 광폭화가 발동된 것이다.
블리츠 전투단은 A급 변이체가 죽음에 이를 때, 광폭화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나오는 영웅담이 지식의 전부인 야닉은 광폭화의 두려움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산업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다.
- 휘익!
- 쾅!
- 콰직!
전황이 바뀌었다. A급 변이체의 공격을 버티던 산업 안드로이드의 단단한 몸체가 단 한 방에 파괴돼 버렸다.
그리고 산업 안드로이드의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게 됐다.
광폭화 이후, A급 변이체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급격히 향상된 상황. 500대에 달하는 산업 안드로이드들은 더 이상 보스급 몬스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 쾅! 쾅!
- 후두득!
- 쿠에에에!
A급 변이체는 이제 모기급 공격력에 불과한 산업 안드로이드를 무시하고, 공장 외벽을 부숴 버렸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야닉이 있는 상황실 건물로 다가왔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원흉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한 움직임.
순간 야닉은 패닉에 빠졌다. 지금 도주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은 거다.
- 슈욱!
A급 변이체가 양팔을 높이 들고 내려칠 준비를 마쳤다. 두 주먹으로 상황실을 가격하면, 야닉이 살아남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요동치는 순간.
- 쒜에엑!
- 팍!
- 화르르!
- 키에에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