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52장.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꿈꾸는가?
2.
“무슨 소리야? 폐기물 처리장에선 B급 변이체도 보기 어렵다며?”
“그랬었지요.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영상을 봐 주십시오.”
- 슥!
“헐……. 전쟁이 난 건가? 저 거미처럼 생긴 건 뭐야?”
폐기물 재처리 공장에 100km까지 접근했을 때, 정찰 드론이 보내온 영상에 거대한 몸체를 가진 A급 변이체가 나타났다.
창수는 ‘재처리 공장 인근에 강한 변이체가 드물다’는 레이나의 정보가 틀렸다고 타박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A급 변이체가 해양도시 병력과 충돌했다. 중무장한 인간과 전투 안드로이드 그리고 거미처럼 8개의 발이 달린 전차가 신장 7m에 달하는 몬스터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창수의 관심을 끈 건 길이 10m 정도 돼 보이는 거미형 전차였다.
“트리플건입니다. 재처리 공장에 배치되지 않은 중전차인데, 다른 작전을 하다가 A급 변이체와 전투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트리플건? 포신이 3개라서 트리플건이라고 하는 거야?”
“맞습니다. 가운데 주포가 레이저를 발사합니다. 좌측에 있는 것이 레일건이고, 우측에 있는 것이 화염방사기입니다.”
해양도시 과학기술의 정수를 모아 만든 MBT(주력전차)가 트리플건이다. 길이 10m, 넓이, 7m, 높이 5m, 무게 120톤에 달하는 육중한 몸체를 가지고 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8개의 발과 반중력 장치를 사용해, 험한 지역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특수합금장갑, 복합장갑, 에너지 실드로 보호받고 있다.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는다 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가운데 배치된 주포는 100MJ급 레이저, 좌측 부포는 50MJ급 레일건이다. 이것도 모자라 사거리 200m에 달하는 대형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있다.
32MJ급 레일건이 중량 10kg 탄두를 마하 8의 속도로 250km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트리플건이 보유한 화력 수준을 알 수 있을 거다.
“몬스터급 전차구만. 그런데 저런 괴물이 왜 폐기물 처리장에 나타난 거야? 그것도 2대씩이나?”
“A급 몬스터 생포 작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화면 왼쪽의 파괴된 박스카가 변이체를 운반하는 호송차입니다.”
변이체 사냥 경험이 많은 레이나는 파괴된 호송차를 보고,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 냈다.
A급 변이체가 끔찍한 전투력을 가진 몬스터지만, 트리플건 2대라면, 제압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과거 2번 성공한 사냥 기록을 고려할 때 그렇다.
해양도시 병력이 A급 변이체를 제압해 폐기물 재처리 공장 인근으로 왔으나, 관리 소홀로 탈출한 것이 분명하다.
“저 병력으로 다시 제압할 수 있을까?”
“A급 변이체는 지능이 뛰어납니다. 함정을 파거나 기습해야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저곳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는 제압이 쉽지 않을 겁니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되겠군. 적당한 자리로 이동해서 상황을 보는 게 좋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투에 말려들어 득 될 것이 없습니다.”
해양도시 병력이 소수였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달려가 도왔을 거다. 하지만 충분히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지구에 사용하는 주력전차보다 월등히 뛰어난 방어력과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트리플건이 2대나 버티고 있다.
창수는 초대받지 않은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거리를 둔 뒤, 전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 *
“사격 개시!”
- 푸슝! 푸슝!
플라즈마 총으로 무장한 전투 안드로이드들이 A급 변이체를 향해 플라즈마탄을 발사했다.
플라즈마는 전기장이나 열에 의해 가열된 물질이 기체 상태를 넘어, 이온 입자로 나뉘는 현상을 말한다.
뛰어난 절삭력을 가지고 있어, 산업용 절단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플라즈마를 탄두나 검의 형태로 만들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
- 츠악! 츠악!
그러나 A급 변이체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체내에 쌓인 마나로 플라즈마의 파괴력을 막은 것일 터.
그래도 약간의 아픔이 있는 것일까?
A급 변이체가 괴성을 지르며, 전투 안드로이드에게 달려들었다.
- 쿠에에에!
- 휘릭!
- 콰직!
- 우당탕!
A급 변이체가 휘두른 팔에 전투 안드로이드가 맞아 나가떨어졌다. 전투 양상이 B급 변이체와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파괴력. B급 변이체에 가격당한 전투 안드로이드는 멀쩡한 상태에서 전투에 복귀했으나, A급 변이체에 가격당한 전투 안드로이드는 단 한 방에 전투 불능에 빠졌다.
- 콰직! 콰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A급 변이체가 전투 안드로이드를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팔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전투 안드로이드의 몸체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파괴됐다.
“단장님! 전투병을 뒤로 빼야 합니다!”
“빌어먹을! 한 번 잡은 놈인데, 왜 이렇게 애를 먹어!?”
“그때는 독가스로 마비시켜서 상대하기 수월했던 겁니다. 여기는 사막이라 독가스가 제대로 먹히지 않습니다.”
레이나의 예측이 맞았다. 첫 번째는 맹독을 사용해 비교적 쉽게 A급 변이체를 제압했지만, 두 번째는 지형이 달라 고전하고 있는 상황.
“어쩔 수 없군! 병력을 트리플건 뒤로 빼고, 레이저포 발사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 지이잉! 지이잉!
- 파앙! 투앙!
- 키에에엑!
1MJ 출력을 가진 레이저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다. 트리플건에 장착된 레이저는 그 100배 출력을 가지고 있다.
트리플건 두 대에서 발사한 강력한 레이저가 연이어 A급 변이체의 몸통을 타격하니, 살점이 터지면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체내에 마나를 보유한 보스급 몬스터도 과학기술 앞에 무력한 것일까?
- 쿵쾅! 쿵쾅!
큰 타격을 받았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레이저에 맞아 갈비뼈와 어깨뼈가 드러났으나, A급 변이체는 굴하지 않고 좌측에 배치된 트리플건 한 대를 향해 달려왔다.
- 따앙! 따앙!
A급 변이체와 좌측 트리플건의 거리는 500m. 몬스터가 빠르게 다가오자, 레일건을 발사했다. 50MJ급 레일건에서 발사한 탄두는 100cm 두께의 강철도 뚫을 수 있다.
- 툭! 툭!
- 쿠에에에!
하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단순한 물리공격으로 A급 변이체의 마나 방어를 뚫지 못한 것.
인간이 사용한 무기가 맥을 못 추자 몬스터가 포효했다. 마치 승리를 한 것처럼 구는 거만한 외침.
경험으로 아는 거다. 자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레이저포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A급 변이체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트리플건을 향해 달렸다.
- 슈아아아!
- 화르르!
- 케에에엑!
그러나 해양도시의 주력전차 트리플건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A급 변이체가 200m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화염방사기를 발사한 것.
30만℃에 달하는 불길이 덮쳐 오자, 몬스터가 째지는 비명을 질러 댄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군사용 화염방사기 온도가 2,000℃다. 이 정도만 해도 화염이 지나가는 자리를 불지옥으로 만든다.
150배 높은 온도에 직격당한 A급 변이체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 슈아아아!
- 화르르!
이어서 오른쪽에 있던 트리플건이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자, 몬스터의 몸 전체가 화염에 싸이게 됐다.
트리플건의 강점이 바로 이것. 레이저, 레일건, 화염방사기 3종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특수한 방어력을 가진 적이라도 공략할 수 있다.
- 파박!
- 확!
- 투쾅!
“크아악!”
화염을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A급 변이체가 화염방사기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후퇴하는 해양도시 병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전투 안드로이드였으나, 지휘하는 인간도 포함돼 있었다.
특수 소재로 만든 안드로이드도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전투 불능에 빠진다. 비록 지휘관이 튼튼한 방어구를 착용했다고 하지만, 보스급 몬스터의 공격을 버텨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투단의 핵심 인력이 변변한 대응도 못 해 보고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단장님! 심장이 정지한 장교들을 구하고 퇴각해야 합니다!”
“허둥대지 마! 아직 시간이 있어!”
“A급 변이체는 이미 우리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습니다! 한 시간 이내에 제압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칫 장교들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해! 빈손으로 돌아가면, 우리 블리츠 전투단 명성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될 거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부관 프라이만이 단장 아인돌프에게 후퇴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돈이 걸림돌이다. A급 변이체를 사냥하기 위해, 블리츠 전투단이 3년간 사용할 예산을 투입했다.
이무런 소득 없이 해양도시로 귀환하면, 알거지 신세가 기다리고 있다.
“장교 중에 갤러헌 대위가 있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큭……. 빌어먹을! 평소에도 도움이 안 되던 짐 덩이가 끝까지 말썽이군!”
갤러헌 가문은 해양도시에서 5위권의 힘을 가진 거대 세력이다. 대위 유스프 갤러헌은 현 갤러헌 가주의 3남.
갤러헌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될 가능성은 낮지만, 권력자가 아끼는 친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빈사 상태에 빠진 유스프 갤러헌을 구해내지 않는다면, 블리츠 전투단과 단장 아인돌프에게 상상도 하기 싫은 보복이 가해질 거다.
파산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자의 보복에 노출될 것인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아인돌프.
“단장님, 우리 블리츠 전투단은 A급 변이체 포획에 성공한 실적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그걸 놓쳐서 이 고생 하고 있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놓친 건 우리가 아니고, 조악한 성능을 보인 호송차입니다.”
“응? 책임을 호송차 제조사에 돌리자는 거야?”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추궁하는 거죠. 갤러헌 가문의 도움을 받으면, 두둑한 보상금을 받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오! 바로 그거야! 즉시! 소중한 장교들을 구해! 어서!”
잔머리가 팍팍 돌아간다. 아인돌프는 부관의 야비한 수작이 잘 먹힐 거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사실 호송차 자체로 A급 변이체를 구금할 수 없다. 블리츠 전투단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충분히 해야 했다.
법정으로 끌고 가서 블리츠 전투단이 이길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갤러헌 가문이 개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인돌프는 프라이만의 방안이 골치 아픈 일을 동시에 해결하는 묘안이라 생각하고,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 지이잉!
- 슈아아아!
- 화르르!
트리플건 2대가 병력이 쓰러진 중앙에 자리 잡고, 레이저와 화염을 발사했다. 반경 200m 안으로 A급 몬스터가 들어올 수 없는 상황.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무병과 안드로이드들이 쓰러진 장교들의 신체를 냉동한 뒤 수습했다. 이제 해양도시로 이송하면, 심장이 정지한 상태라도 부활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전투 안드로이드들이 전투 불능에 빠진 자매들을 수거했다.
일사불란한 일 처리를 보면, 블리츠 전투단이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것이 확실하다.
* * *
“공장장님, 블리츠 전투단에서의 전언입니다.”
“뭐라고 하는데?”
“10분 후에 철수할 테니, 알아서 대비하라고 합니다.”
“뭐야!? 이런 미친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