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85화 (185/200)

185화 52장.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꿈꾸는가?

1.

특수 변이체를 처단한 건 창수였다. 주위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창수는 투명 상태를 풀고 R5T001에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이 뽑히고, 두 다리가 부러진 안드로이드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사막에서 오신 분입니까?”

“뭐, 그런 셈이지.”

“이상하군요. 척박한 사막 사람들은 물욕이 강합니다. 유독한 폐기물도 서로 가져가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죠.”

R5T001의 반응이 까칠하다. 조금 전 시미언에게 버림받은 영향으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해양도시 출신이 그렇듯, 사막에 터전을 잡은 인간을 낮잡아 보는 것일까?

어떤 쪽이 됐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R5T001이 창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물욕에 찌든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가당치 않다. 이 말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방어 능력이 떨어진 안드로이드를 발견하면, 다짜고짜 수거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부품만 팔아도 큰돈이 될 겁니다.”

“아주 속이 배배 꼬였구나. 좋아. 네가 내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냥 떠나마.”

창수는 기본적으로 ‘팃포탯’ 대응을 한다. 처음 만난 상대가 적이 아니라면, 먼저 선의를 보여 준다.

만약, 상대방이 선의를 호의로 갚으면, 좋은 관계가 맺어진다. 반대로 선의를 악으로 갚으면, 적이 되는 것이고, 지금처럼 선의를 무시하면,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군요.”

“뭐가 또 이상한데?”

“저를 인간으로 여기고 대화하는 건가요?”

R5T001이 놀란 것은 창수가 자신을 물건으로 여기지 않고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해양도시에서 볼 수 없는 사고방식.

“인간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거야?”

매도우 시티에도 안드로이드가 있다. 대부분 지능이 떨어지고 단순 노동에 종사하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춘 안드로이드도 존재한다.

이들은 중앙사무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인간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 창수는 안드로이드를 대하는 매도우 시티의 자세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이니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적 능력? 그게 정확히 무얼 말하는 거지? 동물도 기억이 있고, 판단하고, 각자 언어로 의사소통하고 있어. 인간 이외에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동물도 여럿이야.”

“그래도 축적된 용량이 차이가 나지 않나요? 사용하는 수준도 다르고요.”

“용량과 질을 따지면, 안드로이드가 인간보다 앞서는 것 아니야?”

“아…….”

지적 능력은 기억 능력, 추론 능력 그리고 언어 능력으로 구분된다. R5T001은 이 3가지 영역에서 인간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뇌 회로가 꼬이는 듯한 느낌을 받은 R5T001은 대답을 못 하고 침묵해야 했다.

이렇게 1분이 흐르고.

“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거야? 확실히 말해. 나 바쁜 사람이야.”

“제 팔을 모아 주십시오.”

창수는 R5T001이 까칠하게 나오지만, 자신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마지막 기회를 줬다.

R5T001은 창수의 마음을 아는 듯,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척!

“오른팔을 테이프로 감고, 그 안에 이걸 주입하면 되는 거야?”

“예.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오른팔을 쓸 수 있게 됩니다.”

R5T001은 응급 복구 키트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키트를 사용할 수 있는 양팔이 없다는 것.

안드로이드는 임시방편으로 테이핑을 선택했다. 테이프로 오른팔을 고정한 후에 전류가 통하는 기능성 실리콘을 채워 넣으면, 팔을 2~3시간 사용할 수 있다.

- 툭!

- 치지직!

창수의 도움으로 오른팔을 사용하게 된 R5T001은 응급 복구 키트를 이용해 왼팔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창수가 왼팔을 들어 주고, R5T001이 도구를 사용해 끊어진 선들과 관을 이었다. 왼팔을 수리한 뒤 같은 방식으로 오른팔을 수리했다.

양팔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다음 부러진 양발을 고치는 건 수월한 일이었다.

전투 안드로이드 R5T001은 창수의 도움을 받아 30분 만에 응급 복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군. 그러면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뒷정리는 알아서 해.”

“아니요. 저 멀쩡하지 않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응급 복구 한 거라 변이체 한 마리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땜빵은 땜빵일 뿐이다. 응급 복구를 통해 박살 난 팔다리를 복구했으나, 정상적인 전투력이 나오지 않는다.

현재 R5T001의 전투력은 정상일 때와 비교해 20%에 불과하다. 전투력이 1/5로 줄어든 상태에서 변이체들이 득실거리는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양도시로 데려가 달라는 거야?”

“주인님이 살아 계신다면, 여기로 수송선을 호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제가 해양도시로 돌아가면, 폐기 처분 당할 확률이 99.97%입니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야?”

“제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주인님을 지키는 데 실패한 안드로이드에게 자금을 투입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허허……. 그것참. 난감한 상황이구나.”

창수는 R5T001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도 실패한 프로젝트에 투자한 자금을 ‘매몰비용’이라고 여기고 포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안드로이드가 부족한 매도우 시티라면, 어떻게 해서든 R5T001을 활용하려 할 거다. 그러나 안드로이드가 흔한 해양도시는 굳이 추가 비용을 들여 가며, 실패한 안드로이드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저를 돕는 유일한 길은 소유권을 인도받고 저의 새로운 주인님이 되시는 겁니다.”

“소유권 인도?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인도받아?”

“사망 후 60분까지 생체 데이터가 유지됩니다. 서두르면 소유권 이전이 가능합니다.”

해양도시 거주자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 생체 데이터를 일시적으로 백업하는 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추락 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태로울 때, 즉시 신체를 냉동한 뒤, 부상 부위를 치료하고, 백업한 생체 데이터를 사용해 부활한다.

시미언은 신체를 수습할 장치가 없기에, 이대로 사멸할 운명이지만, 아직 생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좋아. 그렇게 해.”

“저를 따라오십시오.”

횡재를 놓칠 이유가 없다. 안드로이드를 입수하다가 소란을 일으키는 걸 피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처럼 잡음 없이 안드로이드를 소유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다.

* * *

시미언의 백업 생체 데이터를 활용해 R5T001의 소유권을 이전받은 창수는, 내친김에 파괴된 안드로이드들의 소유권도 확보했다.

R5T001을 수리하는 부품과 백업 부품으로 활용하고, 머리 부분을 남겨 추후 부활시킬 계획이다.

창수는 흩어진 안드로이드들을 마법자루에 챙겨 넣은 뒤, 이동을 시작했다.

- 위이잉!

“주인님, 전방 95km 지점에 B급 변이체 2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레이나, 대표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주인님이 뭐냐? 주인님이? 촌스럽게.”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무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뭘 어떻게 해? 시간만 잡아먹는 놈들 피해 가야지.”

바이크를 타고 남쪽으로 150km가량 이동했을 때, 레이나라고 이름 지어 준 안드로이드가 특수 변이체의 등장을 알렸다.

창수는 얻을 게 없는 변이체와 충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시다면, 오른쪽으로 우회하십시오.”

“좋아. 살짝 피해 가자고. 그런데 레이나, 궁금한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너의 전 주인은 무슨 이유로, 저런 쓸모없는 몬스터를 공격한 거지?”

“제압해서 연구 기관에 넘길 예정이었습니다. B급 변이체 몸에 넘치는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산 채로 해부해서 연구한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짓이군. 마나 품은 녀석을 해부해서 뭐 한다고?”

창수는 특수 변이체가 괴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일반 변이체 중에서 마나를 체내에 흡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변이체가 진화한 것이다.

창수가 조금 전 처단한 변이체의 경우 체내 마나량이 일류 무사급이었다. 무사들과 다른 것은 마나를 단전이 아니라 신체 전체에 골고루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해부를 한다고 해서 마나에 대한 지식이 미약한 해양도시 연구진이 특수 변이체가 가진 에너지의 비밀을 파악할 리 없다.

“예? 마나요?”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야. 검에 마나를 집어넣으면, 특수 변이체의 몸도 자를 수 있어.”

“B급 변이체의 목을 자른 것이 마나의 힘인가요?”

“작열검이 가진 자체 마나와 내 마나가 힘을 합한 거지. 그건 그렇고, 특수 변이체를 왜 B급 변이체라고 부르는 거지?”

“4m에서 5m 신장을 가진 변이체를 B급이라고 부릅니다. 5m에서 7m 사이를 B+급 이라고 하고, 7m 이상을 A급 변이체라고 부릅니다.”

“7m 이상이면 엄청난 놈이군. 그런 보스급은 어디에 있어?”

“대규모 숲, 깊숙한 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해양도시 역사상 단 두 마리만 잡았다고 합니다.”

해양도시는 변이체를 등급으로 표시한다. 사막과 같은 척박한 땅에서 서식하는 2m 이하 변이체가 D급이고, 신장 3m 정도의 변이체는 C급으로 분류한다.

생존 환경이 좋을수록, 높은 등급 변이체가 서식할 확률이 높다. 아마도 마나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우기에 초원이 형성되는 지역에 B급 변이체가 존재하고, 대자연의 마나가 넘치는 곳에 A급 변이체가 살고 있다.

“우리가 가는 곳에 A급 변이체가 나타날 일은 없겠군.”

“그렇습니다. 면적이 작지만, 사막이라 B급 변이체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측된 것이 6년 전입니다.”

“거치적거리는 놈도 없고, 물건도 많이 확보할 수 있겠어. 아주 좋아.”

창수가 본래 목표로 삼은 곳은, 지구에서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라 불리는 지방의 동남쪽 끝이었다.

그러나 레이나의 정보를 듣고 목적지를 바꿨다. 서북쪽 사막 지역에 해양도시에서 비밀리에 건설한 폐기물 재처리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해양도시는 바다 오염을 피하려고 육지에 폐기물을 버리고 있다. 그리고 매도우 시티와 같은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것을 보고, 직접 육지에 재처리 시설을 만들었다.

폐기물 중에서 쓸 만한 건 여기서 재처리하고, 정말 처리하기 어려운 건 동남쪽으로 보내고 있다.

창수는 동남쪽보다 거리가 550km 가깝고, 재료의 물량과 질이 뛰어난 재처리 시설에서 고급 소재와 에너지셀을 구하려 했다.

가능하면 보유한 금을 사용해 정상적인 거래를 추진할 예정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투명망토와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빼내 오는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 슈우웅!

창수와 레이나를 태운 바이크가 별다른 충돌 없이 순조롭게 이동해,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 지방에 진입했다.

“대표님, 97km 전방에 A급 변이체가 보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