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51장. 업그레이드는 이렇게
3.
“사용에 불편함이 있으신 건가요?”
업그레이드 작업을 마친 외골격을 사용한 창수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마커스가 바짝 긴장했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한 업그레이드 작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면목이 없을 거니까.
“아닙니다! 예상보다 성능이 너무 좋아서 놀란 겁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창수가 100억 원을 들여 주문 제작한 강화 외골격보다 최소 2배는 성능이 향상됐다. 부품 구입과 공임으로 지불한 금액이 8만 실링(한화 9,200만 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100배 이상 가성비가 좋은 거다.
사실 이건 단순 계산이고 실제 효과는 100배를 훨씬 넘는다. 지구에서 1,000억 원을 투입해도 향상할 수 있는 외골격 성능이 5%에 불과하다.
업그레이드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창수가 기대한 건 20% 기능 상승이었다. 200% 이상이 나오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마커스는 창수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편안한 마음이 됐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피를 줄이면서 어떻게 성능을 향상한 건가요?”
“강도와 탄성이 높은 고급 소재로 부피가 큰 부품을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셀을 신형으로 교체해 전체적으로 콤팩트하게 만들고, 출력을 높였습니다.”
‘고급 재료와 에너지셀? 이 양반이 그걸 어떻게 구한 거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신소재를 너무나 쉽게 손에 넣게 됐다. 창수는 마커스와 인연을 맺은 것이 행운이라 생각하면서도 황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왜냐하면, 성능이 좋은 재료를 매도우 시티에서 구하지 못했고, 행방을 아는 것조차 실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앙사무국 집행관 드와이트 커티스에게 정보를 알아봤으나, 쓸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매도우 시티에 고급 소재와 에너지셀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버려진 고물을 모아서 재활용하는 겁니다.”
“재활용 공장은 중앙사무국에서 운영하지 않나요?”
버려진 휴대폰과 컴퓨터에서 금, 은, 구리, 주석, 니켈, 리튬 등을 추출해 내는 과정을 ‘도시광산’이라 부른다.
광산에서 자원을 캐는 것처럼, 재활용이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 그리고 매도우 시티에선 도시광산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발달해 있다.
고급 재료와 에너지셀이 포함된 제품은 생산 과정에서 인식칩이 집어넣어지고, 수명이 다하면, 코어 지역에 있는 재활용 공장으로 보내진다. 제품을 허가 없이 분해하거나 빼돌리면, 당장 추적이 들어온다.
현물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고급 재료와 에너지셀을 확보하기 어렵다.
다른 방법은 창수가 재활용 공장에 침투해 필요한 재료를 탈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 100g만 없어져도 코어 전체에 비상이 걸리는 시스템이기에, 손을 못 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커스가 핵심 소재와 전기 동력원 에너지셀을 구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매도우 시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해양도시에서 버리는 고물입니다.”
“해양도시는 적도 근처에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허리케인을 피해 적도에 있습니다. 하지만 폐기물을 선박에 싣고 육지까지 옵니다. 그중에 고급 소재와 에너지셀이 포함된 고물이 있습니다.”
변이체를 피해 인류가 선택한 또 다른 도피처가 바다다.
수영할 수 있는 변이체가 있으나, 먼 바다까지 갈 수 없다. 비행 능력을 갖춘 변이체도 해안선에서 100km 이상 날아가기 어렵기에, 바다가 인류에게 안전한 생활 터전이 됐다.
문제는 태풍이 몰아치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 태풍은 남북위 5°~25°지역에서 열대성 저기압이 전향력의 영향을 받을 때 만들어진다.
남북위 5°이하, 적도 부근에서 태풍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양도시 대부분은 적도 부근에 있다.
“해양도시는 재활용 기술이 없나요?”
“있기는 하지만,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재처리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육지에 버리고 있습니다.”
해양도시는 지구보다 월등히 발전한 과학기술을 사용해, 바닷물에서 식수와 각종 광물을 뽑아낸다.
재활용 기술도 많이 발전했으나, 매도우 시티와 비교하면, 절박함이 덜하기에 적지 않은 폐기물이 나온다.
이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극악한 범죄로 취급받는다. 주기적으로 폐기물 처리선을 육지로 보내야 하는 상황.
마커스는 그 안에 귀물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해양도시에서 고물을 버리는 곳이 어디인가요?”
“서쪽 해안으로 간 뒤,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합니다. 적어도 1,700km 정도는 이동해야 합니다.”
“소형 트레일러를 타고 이동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가는 데만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없을까요?”
“정찰에 사용하는 바이크가 있습니다. 고물이 쌓여 있는 곳에 이틀이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을 수 있는 중량이 300kg밖에 안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해양도시가 고물을 버리는 곳은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 남쪽으로 길게 형성된 반도의 끝에 있다.
시속 20km 속도로 이동하는 소형 트레일러를 사용하면 꼬박 7일이 걸리지만, 시속 100km 속도로 움직이는 바이크를 타고 2일이면 갈 수 있다.
걸림돌은 바이크가 나를 수 있는 중량이 300kg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창수는 마법자루를 가지고 있다.
“그러시다면, 5일만 여유를 주십시오. 제가 바이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고물을 가지고 오면, 여기서 고급 소재와 에너지셀을 추출할 수 있나요?”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설비가 낡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설비는 새로 갖추면 되죠. 100톤 정도 처리하는 데 설비가 얼마나 필요한가요?”
“제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5톤 정도입니다. 설비가 지금보다 20배는 많아야 할 듯합니다.”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이참에 저와 회사 하나 세워 보는 것이 어떨까요?”
“예? 회사라면…….”
“제가 작업 공간 확보 자금과 설비 자금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물도 가지고 오겠습니다. 추출만 맡아 주십시오.”
고물 처리는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 골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고급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2차 전지보다 50배 용량이 큰 에너지셀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창수는 마커스의 능력을 믿고 본격적으로 투자할 요량이다. 창수는 눈치 안 보고 귀물을 얻을 수 있고, 마커스는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게 된다. 서로에게 좋은 윈윈 거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본이 없는 마커스는 회사 설립이라는 말에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모든 자금을 창수가 댄다는 말에 쌍수 들고 환영했다.
4.
마커스가 중고 바이크를 구한 뒤 장거리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돌입한 동안, 창수는 사업 자금을 만들기 위해 물 수집에 나섰다.
보유한 금을 매각하면,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앙사무국에 행적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
집행관 드와이트 커티스의 말에 따르면, 주 단위로 물가를 관리 하는 부서가 있고, 특정 물품의 거래가 폭등할 때, 정밀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규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밀 조사에서의 예외가 있으니, 그중의 하나가 물이다. 매도우 시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에, 웬만한 편법은 중앙사무국에서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창수는 마법자루를 이용해 물을 운반했다. 물 포집기에 담긴 물이 고갈되자, 강으로 이동해 물을 퍼 담았다. 이 과정에서 변이체 수백 마리를 처단한 건 자연스러운 일.
하루에도 몇 차례 강과 매도우 시티를 오간 창수는, 5일간 800톤에 달하는 물을 확보해 판매했다.
여기서 얻은 총 수입이 1,600만 실링(한화 184억 원)에 달한다.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막대한 이득을 올렸다.
이 자금으로 작업실을 확충하고 각종 설비를 구매했다.
“대표님의 실력을 믿지만,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기 때 변이체의 힘이 강해지고, 특수 변이체도 등장합니다.”
“우두머리 변이체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활동이 활발해지면, 지능이 뛰어나고 몸집이 큰 변이체가 나타납니다. 일반 변이체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합니다. 중앙사무국 특작부대 3개 팀이 특수 변이체 한 마리에게 몰살당한 적도 있습니다.”
창수가 이동해야 할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은 연간 강수량이 400mm 미만으로 매우 건조한 곳이다.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여름에 거의 비가 오지 않아, 사막과 다를 바 없다. 매도우 시티에서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까지 이동하는 원정 팀은 이때를 노린다.
반면, 1월에서 3월까지 3개월간 평균 강수량이 90mm에 이르고, 월평균 강우 일수가 7일에 달한다.
변이체가 번성하고 강해지는 시기로, 중무장한 병력도 이동을 꺼린다.
마커스가 창수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면,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로 가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만류했을 거다.
“업그레이드한 정찰 드론이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우두머리 변이체가 나타나면, 피해 가면 되니까요.”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무사히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마커스는 바이크를 만드는 짬짬이 정찰 드론 기능도 개선했다. 에너지셀을 동력원으로 채용해, 운용 시간을 수십 배 늘리고 이동 속도와 정찰 범위를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100km 밖에서 특수 변이체를 발견한 뒤, 바이크로 우회하면, 정면 대결 해야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창수의 목적은 해양도시에서 버린 고물을 수거해 고급 재료와 에너지셀을 얻는 것이다. 일부러 강한 변이체와 싸울 이유가 없기에 순순히 마커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 * *
- 위이잉!
- 슈웅!
‘성능이 대단하구나. 혼원구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길이 2m, 높이 1m, 폭, 0.7m 크기를 가진 바이크가 지상에서 50cm 상승한 상태에서 100km/h 속도로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지구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100km/h 속도를 가뿐히 넘기에 별거 아닐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포장도로와 평지에 국한한 것이다.
바이크는 돌무더기가 깔린 장소와 얕은 개울을 무시하고 한결같은 속도로 이동했다. 활용도에서 지구 운송 수단과 비교가 안 된다.
창수는 바이크를 마법자루에 갈무리한 뒤 평행우주 너머 지구와 혼원구에서도 사용하려 했다.
특히, 어중간한 거리의 이동이 불편한 혼원구에서 바이크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두머리 변이체군. 확실히 덩치가 장난이 아닌데.’
마커스의 경고가 틀리지 않았다. 네바다 사막과 데스밸리를 거쳐 지구에서 로스앤젤레스라고 불리는 지역에 도착하자, 일반 변이체보다 신장이 2배는 커 보이는 우람한 체구를 가진 특수 변이체를 발견했다.
‘피해 가자. 저놈과 싸워 봐야 얻는 게 없어.’
창수와 특수 변이체의 거리는 90km 남짓. 정찰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만 봐도 대단히 강한 상대라는 걸 알 수 있다.
절정 경지에 오른 무도인으로서, 은근히 호승심을 느꼈으나, 이내 이성으로 억눌렀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골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재료를 충분히 모으고 난 후에 싸워도 늦지 않는다.
창수는 냉철하게 머리를 식히고,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 저 사람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