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51장. 업그레이드는 이렇게
1.
“이 장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된 외골격 슈트로 보이지만, 제가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창수는 로스토프 민병대로부터 강화 외골격(Powered Exoskeleton)을 구매한 이후, 효용성을 알아보고 계속해서 최첨단 외골격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착용하고 있는 신제품은 100억 원을 들여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마커스는 골동품 취급하고 있다.
더구나 외골격 대부분은 옷 안쪽에 갈무리돼 있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착용 여부도 알기 어렵다.
대충 보고 업그레이드를 말하는 사람을 믿어야 할까?
“단번에 알아보기 어려운데, 눈썰미가 좋군요.”
“비슷한 걸 몇 번 수리해 봐서 알아봤습니다.”
“외골격 전문가인가요?”
“전문가는 아닙니다. 고장 난 장비들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부품 이것저것 모아서 그럭저럭 쓸 만한 장비를 만들기도 하고요.”
“혹시, 저 밑에 있는 소형 트레일러도 직접 만든 건가요?”
“예. 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겁니다.”
마커스의 능력을 의심하던 창수의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봉우리 아래 방치된 운송 장비를 마커스가 만들었다면, 능력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매도우 시티에서 사용하는 운송 장비는 예외 없이 바퀴가 달려 있지 않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플라잉카에 바퀴가 없는 건 물론이고, 도로에서 운행하는 차량도 바퀴 없이 50cm 정도 떠서 이동한다.
마커스가 소형 트레일러를 직접 만든 것이 사실이라면, 지구 엔지니어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다.
“좋습니다. 제 외골격을 업그레이드해 주십시오.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에게 대가를 받다니요?”
실력자가 자신 있게 업그레이드를 말하는데 믿어 주는 것이 옳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창수가 입는 손해는 미미하다. 반면, 외골격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면, 예상하지 못한 전력 상승을 하게 되는 거다.
“은혜는 은혜고 거래는 거래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일을 맡길 겁니다. 그때마다 공짜로 한다면, 작업 진행이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요.”
마법자루 안에 금원보 999개가 보관돼 있다. 375g 금원보 하나를 팔아서 32,130실링을 받았다. 다 팔면 3,209만 실링(한국 돈 37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만들 수 있다.
돈이 아쉽지 않은 상황에서 인색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창수는 평소에 검소하게 생활하지만, 돈을 써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귀중한 장비 외골격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수전노처럼 처신할 이유가 없다.
마커스는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으려 했으나, 장기적인 거래를 원한다는 창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변이체를 마저 제거하겠습니다. 그리고 물을 수확한 뒤에 복귀하시죠.”
“목숨만 건져도 다행입니다. 굳이 수고하실 필요 없을 거라 봅니다.”
“3명이 사망했습니다. 유족에게 무언가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물을 모으게 도와주십시오.”
죽기 직전에 창수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마커스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딸 헤라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창수의 말을 듣고 자기 생각이 무책임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죽은 팀원 3명 중에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애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변이체가 출몰하는 곳으로 오지 않았을 테니.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가족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변이체를 손쉽게 처단하는 창수가 곁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물을 수거해, 위로금이라도 전해야 한다.
마커스는 창수의 혜안과 마음 씀씀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써걱!
- 화르르!
- 키에에엑!
창수가 산봉우리 인근에 있는 변이체를 모두 제거하자, 마커스와 애쉬가 본격적인 물 수확을 시작했다.
물 1톤을 확보한 그들은 산을 넘어 강 쪽으로 진출했다. 그곳은 변이체가 빈번하게 출몰하는 곳으로 중무장한 중앙사무국 특작부대도 진입을 꺼리는 장소다.
그러나 변이체를 날파리 정도로 여기는 창수가 호위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돌아가야 해 뜨기 전에 땅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물은 얼마나 모은 건가요?”
“5톤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목표를 채운 건가요?”
“다섯 배를 모았습니다. 유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금을 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돌아가죠.”
물 수집은 밤새도록 이어졌고, 일출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받은 뒤에야 멈추게 됐다. 이 과정에서 창수가 추가로 처단한 변이체 수가 140마리에 이른다.
매도우 시티에서 팔리는 물 가격은 리터당 30실링. 5톤이면, 15만 실링의 가치가 있다. 암시장에 파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12만 실링을 받을 수 있다.
창수를 팀원으로 포함해 6명분으로 나누면, 개인당 2만 실링이 돌아간다. 한 가족이 1년을 버틸 수 있는 금액.
팀원 3명의 목숨을 잃은 것이 안타깝지만, 유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2.
매도우 시티에 도착한 창수는 착용하고 있던 강화 외골격을 마커스에게 맡기고, 메이커 지역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 하나 주세요.”
“혼자 묵으실 건가요?”
“예. 30일간 머무를 겁니다. 전망이 좋은 방이면 좋겠군요.”
“11층과 25층에 시가지가 잘 보이는 방이 있습니다. 11층은 하루에 120실링이고, 25층은 150실링입니다. 어떤 방이 좋으실까요?”
“25층으로 하죠.”
창수가 방문한 곳은 메이커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숙박 시설을 보유한 마일로 호텔이다. 4성급 호텔이지만, 3성급 숙박료를 받는 곳으로 상인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한 곳.
창수는 4,500실링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전망 좋은 25층 방을 잡았다.
‘확실히 시설이 다르군.’
지구에서 ‘스마트 호텔’이라고 불리는 곳을 여러 번 이용했다. 하지만 마일로 호텔과 비교하면,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이곳 모든 시설을 음성 명령으로 이용할 수 있고, 객실 안에서 매도우 시티의 정보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네트워크 시스템이 완비돼 있어, 주거지와 사무실 역할을 동시에 하는 곳이다.
창수는 샤워와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네트워크에 접속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핵융합 발전이라……. 매도우 시티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이거군.’
변이체를 피해 사막에 세운 인류의 피난처 매도우 시티에는 에너지를 잡아먹는 하마들이 존재한다.
코어 지역을 방어하는 에너지 실드, 메이커 지역 공장과 유흥 시설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팜 지역 식물 공장에서 광원 등… 이 그것이다.
창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이 도시의 에너지원이 무엇인지 탐색했고, 코어 지역에 핵융합 발전소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핵융합은 플라즈마 상태에서 원자핵들이 뭉쳐 더 큰 원자핵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뭉치지 못한 조각이 발생하고, 질량에너지 등가(E=mc²) 원리에 따라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핵융합 발전은 핵융합 과정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군. 여기서 핵융합 발전이 성공했다면, 왜 지구에서 상용화가 안 된 거지?’
핵융합 발전은 핵분열 발전보다 10배 효율이 높고, 화석연료보다 100만 배 뛰어나다. 게다가 환경오염 물질 발생률과 핵물질 유출 가능성도 매우 낮아, 꿈의 에너지원이라 불리고 있다.
매도우 시티 중심에 중앙사무국 건물이 있고, 그 기반에 지구와 연결된 평행우주 통로가 있다.
이건 매도우 시티를 건설한 인물이 지구로 이동할 수 있거나, 이동할 수 있는 인물의 측근이라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지구가 당면한 에너지 문제와 환경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핵융합 발전이 지구에 도입되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의문이 이어졌다.
‘생산 활동이 활발하기는 한데, 어디서 고급 원자재를 구하는 거지?’
메이커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장에서 생필품부터 무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산업의 중심이 되는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거 빛 좋은 개살구인가? 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골렘 강화할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
창수가 통행권에 담긴 감정을 모두 소진하면서 Earth로 이동한 것은, 보다 강력한 골렘을 만들기 위함이다.
매도우 시티 전반에 나타난 과학기술이 지구와 비교해 170년 이상 앞서기에, 창수의 모험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지구에서 구한 재료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물질을 확보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정보 제한이 걸린 지역에 내가 찾는 것이 있을지 몰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보자.’
매도우 시티 전체가 뛰어난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연결됐으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사무국을 포함해, 코어 지역 절반 이상이 정보 제한에 걸려 있다. 자체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매도우 시티가 핵심 시설을 보호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창수는 실망하지 않고 대안을 생각했다.
* * *
1월 11일, 오후 2시, 정보 취득에 전념하던 창수가 작업을 잠시 중지하고, 빈민가에 있는 마커스의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 치이익!
마커스의 작업실은 가로 10m, 세로 5m로 작은 크기. 그나마 공간 대부분이 여러 가지 부품으로 덮여 있어, 언뜻 보면 고물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어지러움 속에서 마커스는 묵묵히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창수는 마커스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장인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
- 슥.
“아! 오셨군요!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급할 것 없는데 작업을 방해해서는 안 되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외골격 슈트 업그레이드 끝났습니다. 착용해 보십시오.”
“업그레이드가 벌써 끝났어요? 최소 열흘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요?”
창수가 마커스를 방문한 이유는 개선 작업을 맡긴 외골격을 중간 점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벌써 업그레이드가 끝났다고 한다. 결과물이 빨리 나와서 좋기는 하지만, 너무 빠르면 문제가 있는 가능성이 있다.
창수의 목소리에 약간의 우려가 담겨 있다.
“자금을 넉넉하게 주셔서 부품을 빨리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시험해 보십시오. 미흡한 점이 있으면, 다시 손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착용해 보겠습니다.”
마커스도 창수의 우려를 알아차린 듯,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테스트한다는 셈 치고 착용해 보라는 것.
창수는 마커스의 말이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강화 외골격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 척! 착!
- 슥!
개선 작업을 거친 외골격은 이전보다 부피가 대폭 줄어들었다. 위에 옷을 입으니, 외골격 착용 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외향은 일단 합격. 만족한 창수는 곧바로 성능 확인에 들어갔다.
- 획! 획!
- 사사삭!
“헐!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