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80화 (180/200)

180화 50장. 또 다른 세상 Earth

3.

“이틀 전에 사막에 나갔다가 찬바람 맞고 기침이 심하세요. 의사 선생님이 급성폐렴이라고 하는데, 주사를 맞지 못하면, 아주 위험하다고 해요.”

“그렇구나.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돈 빌려줄게.”

북명신공으로 미세한 기세의 흐름을 감지하는 창수는, 웬만한 거짓말을 집어낼 수 있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약, 아이가 거짓말하는 거라면, 영화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을 수준이 될 거다. 아니면 완전히 사이코든가.

- 척!

“이거 현금으로 바꿔 주십시오.”

“맡기는 겁니까? 아니면 파는 겁니까?”

“팔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감정하겠습니다.”

창수가 전당포 주인에게 내민 것은 10냥짜리 금원보였다. 드와이트 커티스가 알려 준 정보와 시장 상인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할 때, 지구보다 유리한 가격에 팔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매물로 내놓은 거다.

전당포 주인은 예상보다 큰 건수에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도 96%, 중량 357g입니다. 순금 시세가 g당 100실링입니다. 중량 감소분하고, 수수료를 빼면 g당 90실링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총 금액이…….”

“32,130실링입니다.”

“좋습니다. 거래하죠.”

지구에서 99.9% 금 시세가 g당 50달러에서 70달러 사이를 오가고 있다. 순도 96% 금을 g당 90실링에 팔 수 있다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급 장사라 할 수 있다.

창수는 전당포 주인이 양심적이라 생각하며, 흔쾌히 거래를 받아들였다.

“같이 병원에 가 보자.”

“그냥, 10실링만 빌려주셔도 되는데…….”

“아니야. 할아버지 폐렴은 주사 한 방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 전문가에게 확실한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하는 거야.”

“정말 그렇게 해 주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폐렴은 한국에서 사망 원인 3위 안에 들 정도로 위험한 병이다. 특히 저항력이 떨어지는 노인에게 치명적. 여기가 평행우주 너머 Earth라고 하지만, 위험성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창수는 의사가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미루어, 아이의 할아버지에게 좀 더 확실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수가 생면부지의 아이를 위해 나서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절박한 아이를 돕기 위한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평행우주 통행권에 감정을 채우기 위함이다.

Earth로 오면서 통행권에 쌓였던 감사와 신뢰의 감정을 모두 소비했다. 테라로 가려면 3배 많은 감정을 축적해야 한다.

창수는 일부러 선행 하는 것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확실하게 돕는 방안이 좋다 생각하고 있다.

* * *

<항생제를 7일간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분 나이가 80세가 넘습니다. 체력 보충제를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메이커 지역에서 개업한 의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비대면 진료를 한다. 의료 단말기를 통해 할아버지의 병세를 파악하고 있던 의사는,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0실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창수는 의사의 권고대로 항생제와 체력 보충제를 구매했다. 들어간 비용은 총 500실링. 예상보다 지출이 많이 커졌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흑흑흑.”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지. 디온, 어서 집으로 가자. 늦어지면 할아버지가 위험해.”

“예. 어서 가요.”

아이의 이름은 디온. 올해 12살이고 매도우 시티 서민 거주 지역에 살고 있다.

생산 시설과 유통 시설이 몰려 있는 메이커 외곽에 농작물을 생산하는 ‘팜’ 지역이 있다. 폭 2km에 달하는 고리 형태로 메이커 지역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서민 거주 지역은 팜 바깥쪽에 있다. 폭 500m, 면적 14.9km²로 전체 면적의 19%에 불과하지만, 인구 70%가 모여 사는 곳이다.

매도우 시티는 코어를 중심으로 메이커 > 팜 > 서민 거주 지역이 둘러싼 형태로 구성돼 있다.

병원이 위치한 메이커 지역에서 디온의 집에 가려면, 직선거리로 3km 이상 이동해야 한다.

특히, 디온의 집은 매도우 시티 외벽과 접한 최외곽이기에,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 터벅! 터벅!

“헉! 헉!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이에요.”

매도우 시티의 대중교통은 지구보다 훌륭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코어 지역과 메이커 지역 일부에 국한한 이야기.

팜 지역과 서민 거주 지역은 무빙워크가 없을뿐더러,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택시와 버스도 없다.

창수와 디온은 빠른 걸음으로 30분을 이동해 디온의 집 인근에 도착했다.

“디온, 먼저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께 항생제하고 보충제 드려.”

“아저씨는 우리 집에 안 오시는 거예요?”

“아니. 곧바로 갈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이쪽으로 쭉 가서 맨 끝에 있는 집이에요. 꼭 오셔야 해요.”

“그래. 걱정 마라. 꼭 갈 거니까.”

서민 거주 지역에도 차별이 있다. 팜 지역에 가까운 곳은 길도 반듯하고 제법 번화하다. 그러나 외벽에 가까이 갈수록 길이 복잡해지며, 삭막한 기운이 든다.

외벽을 뚫고 들어오는 변이체가 중심부로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해 이렇게 만든 거다.

창수는 디온의 집에서 70m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 섰다. 디온은 ‘빈민굴’이라 손가락질받는 자신의 집으로 창수가 오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건 오해. 창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쥐새끼처럼 뒤를 졸졸 따라오지 말고, 대가리 내밀지그래?”

- 슥!

“뭐야!? 이 새끼! 겁도 없이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

디온을 보낸 창수가 뒤를 향해 소리치자, 건장한 남자 5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수의 도발에 꼭지가 돈 모양이다.

“시비는 누가 걸었지? 네놈이 전당포부터 쫓아왔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흥! 눈치가 빠른 놈이군! 좋은 말 할 때, 가진 돈 다 내놔. 특별히 목숨은 살려 줄 테니까.”

“목숨을 살려 준다는 놈이 무기를 들고 설치나? 거짓말도 사람 봐 가면서 해, 멍청한 놈아.”

“이런 쳐 죽일 놈! 주둥이만 살아 있구나! 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어! 여기는 너 같은 놈 하나 죽어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 빈민굴이야!”

서민 거주 지역 중에서 외벽 100m 이내 지역을 ‘빈민가’라 부른다. 매도우 시티에서 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법과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이다.

창수의 뒤를 밟은 자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기습할 계획이었다. 창수에게 속셈이 들켰지만, 달라질 것이 없다고 믿었다.

“쯔쯔쯔, 어리석은 놈. 대가리가 이렇게 나쁘니까, 3류 양아치 짓이나 하다가 뒈지는 거지.”

“뭐… 뭐라고!? 3류!?”

“멍청한 놈아. 처음부터 네놈이 졸졸 따라오는 걸 내가 알고도, 여기서 불러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호… 혹시, 패거리가 있는 거냐!?”

양아치는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창수가 자신의 추적을 미리 알았다면, 팜 지역이나 서민 거주 지역 초입에서 반응을 보였어야 했다.

거기서 시비가 붙었다면, 창수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수는 뒤를 밟힌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빈민가까지 이동했다.

이건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창수가 허풍 치고 있거나, 병력을 매복시킨 뒤 역습하려는 것.

“패거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 같은 양아치 때려잡는 데 남의 도움을 왜 받아?”

“이… 이 새끼! 죽여!”

- 우르르!

창수의 도발에 넘어간 양아치 일당이 분노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검, 창, 쇠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5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제법 폭력성이 보였다.

웬만큼 실력이 뛰어난 상대라도 당해 내지 못할 것처럼 흉흉한 모습.

그러나 창수가 누구인가? 평행우주 너머 지구와 혼원구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적을 처단한 인간 병기다. 게다가 최근 북명신공을 익혀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림 고수다.

- 퍽! 팍! 퍽!

- 쿠쾅! 쾅! 콰쾅!

창수는 AK-201을 사용하지 않고, 볼트23도 사용하지 않았다. 작열검도 사용하지 않고, 투명망토도 가동하지 않았다.

오로지 맨주먹으로 양아치 일당 5명을 가격했다.

“크아악!”

“으아악!”

그리고 빈민가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창수가 불과 수 초 만에 양아치 일당 5명을 격살한 것이다.

- 슥!

- 척! 척! 척!

창수는 시체낭과 마법자루를 사용해 흔적을 지웠다. 이대로 양아치 일당 시체를 방치해도 상관없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거다.

잠시 소란했던 빈민가는 곧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 * *

“쿨럭! 고맙소, 젊은이. 늙은이의 생명을 구했구려. 이 은혜 잊지 않겠소.”

“은혜랄 것이 있습니까?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창수가 디온의 집을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 제라드는 스스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보충제를 복용한 상태였다.

과학이 발달한 곳인 만큼 약효가 좋아, 생사의 경계를 오가던 제라드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몸을 추스른 제라드가 창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귀한 손님이 왔는데, 아무것도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하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르신. 그런데 어쩌다가 사막으로 나가시게 된 겁니까?”

“음……. 어멈이 물 수확하러 외부로 나갔다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소. 걱정돼서 길을 나섰는데, 내가 겨울 찬바람을 이겨 내지 못한 거요.”

토지 면적 78.5km²에서 150만 명이 거주할 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식량은 팜에서 넉넉히 생산하고 있다. 100m 높이 건물에서 인공 광원으로 작물을 경작하는 식물 공장 방식을 사용하기에, 150만 명을 부양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이 지역 연간 강수량이 100mm에 불과하다는 것. 150만 명의 삶을 지탱할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한 방울의 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재사용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재활용한다고 해도 증발이나 오염이 심해 버려지는 물을 막기 어렵다. 외부에서 물을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

매도우 시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막에서 물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막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서 새벽에 이슬이 맺히는 응결 현상이 나타난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응결 현상으로 발생한 이슬을 모으는 양이 많아진다.

매도우 시티 과학자들은 각설탕 크기만 한 흡착 소재로 축구장 20개에 달하는 표면적을 만들어 내는 신물질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신물질을 사용해 사막 곳곳에 물 응집기를 만들었다.

디온의 모친은 응집기에 고인 물을 수확하려고 사막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거다.

“사막에 변이체들이 들어오기도 하나요?”

“대부분 들어오지 못하오. 하지만 변이체 중에서도 특이한 놈들은 사막에서 장시간 버틸 수 있소.”

“혹시, 디온의 어머니가 변이체를 만난 건 아닐까요?”

“후……. 그럴 가능성이 높소. 변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사막에서 며칠째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소.”

디온 집안의 진짜 문제는 제라드가 아니었다. 생계를 꾸려 가는 디온의 모친이 사막에서 실종된 것이 근본 문제.

생사를 알 수 없는 며느리 걱정에, 가뜩이나 피폐해진 제라드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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